서울 청담동의 한 쇼룸.한해원은 유리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통유리 너머로 고급스러운 의상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절제된 조명과 넓은 공간, 그리고 옷 한 벌 한 벌을 돋보이게 하는 전시 방식까지.작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쇼룸이었다. 며칠 전 패턴 수업에서 윤정숙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여기 한번 가 봐요. 요즘 신진 디자이너들 중에서 꽤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그 말이 떠올라 해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쇼룸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음악이 들려왔다. 해원은 천천히 옷들을 둘러보았다. 단순해 보이는 재킷에도 섬세한 절개선이 숨어 있었고, 실크 블라우스는 움직임에 따라 전혀 다른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그녀는 한 벌의 원피스 앞에 멈춰 섰다. 짙은 회색 원단으로 만든 미디 드레스였다.“예쁘다.”작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그 옷 마음에 드세요?”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눈을 깜빡였다.백유라였다.유라는 쇼룸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몸에 꼭 맞는 버건디색 니트 원피스에 높은 굽의 검은색 부츠. 허리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옷의 실루엣이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길게 늘어뜨린 짙은 갈색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고, 또렷한 눈매와 선명한 입술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화려했다. 어디에 서 있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어머.”유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사모님 아니세요?”해원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 백유라 씨.”“이런 데서 뵐 줄은 몰랐네요.”유라는 해원이 보고 있던 드레스로 시선을 옮겼다.“이 브랜드 좋아하세요?”“오늘 처음 와 봤어요.”“아, 그러시구나.”유라는 부드럽게 웃었다.“저는 여기 디자이너랑 친해서 가끔 들르거든요. 이번 컬렉션도 먼저 보여 주셨고요.”“그러셨군요.”“사모님도 패션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해원은 잠시 드레스를 바라보았다.“네. 원래 좋아했어요.”“그렇죠
최신 업데이트 : 2026-10-3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