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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주 한잔
한편, 소우연은 약들을 서랍 안에 잘 정리해둔 뒤, 의서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때, 창문이 바람에 흔들렸고 방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자 소우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굳게 닫았다.

“왕비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밖에 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고 소우연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의서를 내려놓은 소우연은 그제야 날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육진은 어디 갔지? 왜 아직도 안 돌아오지?’

소우연이 방 문을 열자 밖에 서있던 어린 시녀 한 명이 소우연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왕비님.”

“저기… 왕야께서 오늘 외출하셨느냐?”

“왕야께서는 현재 서재에 계십니다.”

하긴, 다리가 불편한 이육진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외출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품을 하던 소우연은 방으로 돌아가 겉옷을 걸치고는 다시 방을 나섰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소인 명심이라고 합니다.”

“명심이 네가 길을 좀 안내하거라. 왕야께 겉옷을 가져다주려고 한다.”

소우연의 말에 흠칫하던 명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왕비님, 소인이 일단 물어보고 나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물어본다니? 누구한테 물어본다는 것이냐?”

이 저택에서 소우연이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그 어떤 행동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물어보거라.”

“네, 왕비님.”

명심은 이내 곁채로 향했고 마침 한 여인이 곁채 안에서 걸어 나왔다.

“정연 언니, 왕비님께서 왕야께 겉옷을 드리러 가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명심의 말에 정연은 본채를 힐끗 쳐다보고는 빠르게 다가와 소우연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소인, 왕비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왕야께 겉옷을 드리러 가도 되겠느냐?”

소우연의 말에 정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이 관저에 시집온 여인들은 하나같이 나쁜 꿍꿍이를 품고 있었으며 의도를 가지고 회남왕에게 접근했기에 결국 이튿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밖에 버려졌다.

하지만 소우연은 그 여인들과 많이 다른 것 같았다.

혼인 첫날, 침대보에 피를 묻혔을 뿐만 아니라 친정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 바퀴를 끄는 소리가 들렸고 진규가 이육진을 모시고 돌아왔다.

“왕야께 인사를 올립니다.”

이육진은 사람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본채 안으로 향했고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들어와.”

“네.”

소우연은 바로 방으로 들어갔고 정연은 하인에게 목욕 물을 준비하라고 했다.

방에 들어갔지만 소우연과 이육진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조금 전 이육진이 소우연을 지나칠 때 소우연은 그의 몸에서 익숙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조금 뒤, 정연이 하인들을 데리고 들어와 욕조 안에 물을 채웠고 갈아입을 옷도 챙겨왔다.

“왕야, 제가 씻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소우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이번 생에 이육진과 묶여 있어야 하는 신세라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한편, 이육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래.”

말을 마친 이육진은 손을 쓱 내둘렀고 정연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하인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소우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결혼 첫날, 본의 아니게 이육진에게 알몸을 보여줬는데 이제는 이육진의 알몸을 봐야 한다니.

소우연은 손발이 굳은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고 기다리다 못한 이육진이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게 싫은 거면 왜 씻겨주겠다고 먼저 제안을 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소우연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고 다급하게 외쳤다.

“전 싫은 게 아니라 긴장한 것뿐입니다.”

인생을 두 번이나 살았지만 남자의 벗은 몸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육진은 아무 말없이 휠체어를 끌고는 욕조로 향했다.

욕조 안에는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병풍을 통해 옷을 벗고 있는 이육진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조금 뒤, 이육진이 욕조 안으로 들어갔고 소우연은 다시 한번 마음 다짐을 했다.

‘안 돼. 계속 이렇게 말로만 잘하겠다고 하는 걸로 부족해! 잘 살기로 했으면 저자를 부군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또 저번 생처럼 덕빈 마마 심기를 건드려 손발이 잘릴지도 몰라.’

입술을 꽉 깨문 소우연은 욕조로 다가갔다.

“왕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홀딱 벗은 이육진의 상체를 본 순간, 소우연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수건을 적셔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소우연의 손길이 이육진의 어깨와 팔, 그리고 가슴을 스치자, 이육진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난 뒤, 참다못한 이육진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내 윗몸이 그렇게 더러운가? 계속 윗몸만 닦아주네? 아래는 씻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소우연은 멈칫하다가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뒤 손수건을 밑으로 내렸고 다음 순간, 이육진이 소우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제대로 못 할 거면 비켜!”

“아닙니다, 왕야. 저는 그게 아니라…”

“아니라고?”

도발하듯 되묻던 이육진은 소우연의 손목을 확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욕조 안으로 끌어 들였고 돌발 상황에 제대로 반응도 못한 소우연은 욕조에 풍덩 빠진 채 엉덩이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소우연이 그 물건을 치우려고 손으로 덥석 잡은 순간, 이육진이 언성을 높였다.

“건방지게 이게 무슨 짓이냐!”

이육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목소리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기댈 곳이 없어진 소우연은 그대로 욕조 안에 머리까지 잠기게 되었다.

“쿨럭쿨럭…”

목에 물이 들어간 소우연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기침을 했고 겨우 욕조 안에서 얼굴을 뺐을 때, 이육진은 이미 욕의를 걸친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세상에! 내가 조금 전에 왜 그걸 손으로 잡은 거지? 이육진은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서 화가 난 거고! 평범하게 잘 살고 싶었는데 이게 대체 뭐냐고!’

이육진은 소문처럼 그리 난폭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까이하기 쉬운 상대도 아니었다.

어차피 욕조에 들어간 김에 소우연은 일단 씻기로 했다.

조금 뒤, 씻고 나온 소우연은 정연이 준비한 옷을 입은 채 침대 곁으로 다가왔고 침대 곁에 걸치고 앉아있던 이육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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