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가 포효하며 하늘로 뛰어오르던 바로 그 순간 하늘 위로부터 한 줄기 불빛이 떨어지더니 그 속에서 주작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불꽃 한가운데에서 황금빛 화염을 두른 주작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불타오르는 신성한 형체는 천지를 불살라버릴 듯한 위세로 백호를 향해 내리꽂혔다.“크아아악!”전신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백호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이내 불꽃 속의 주작 환영이 점점 거대해지더니 입을 열어 황금빛 화염을 한 줄기 뿜어냈다.그 강렬한 불꽃에 백호는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재로 변해버렸다.천하에 이름난 흉수인 백호도 신수 주작의 불꽃 앞에서 한순간에 소멸해 버렸다.“아바마마...”“주작상제, 설마 당신...”백자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금빛 황룡포를 입고 하늘에서 불꽃과 함께 내려온 인물은 주작 신수의 형상이 뒤를 수호하는 남자, 바로 주작제국의 주작상제였다.이도현은 불꽃을 휘감은 채 나타난 남자를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전투 중 신기로 감지한 어딘가에 숨어 있던 두 명의 강자 중 하나가 바로 주작상제였기 때문이다.‘왜 아까 그 위험한 상황에서는 안 나오고 지금에서야 나타난 거지?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나?’이도현이 주작상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주작상제 역시 이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주작상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시선을 거두었다.잠깐 마주친 눈빛 속에서 이도현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백자재가 그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던 눈빛과 똑같은 시선이었다.그 안에 기쁨, 놀라움 그리고 탐욕이 깃들어 있었다.그 시선에 이도현은 가슴이 서늘해지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백자재. 네놈이 감히 병력을 이끌고 우리 서북성을 공격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주작상제는 위엄이 깃든 냉혹한 목소리로 백자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하하하, 오해입니다. 진정하시지요. 이 모든 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저 건방진 놈의 몸에 있는 용골이 필요해서 온 것이지 서북성을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도현이 음양검을 휘두르자 검 끝에서 검붉은 빛의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어둡고 강렬한 기운은 하늘을 찢을 듯한 기세로 거대한 뱀을 향해 내리쳐졌다.푹!순식간에 거대한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며 공중을 가로질러 떨어졌고 시뻘건 피가 강한 비린내를 풍기며 사방으로 튀었다.쿵!산이 울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거대한 몸뚱이가 성벽 위로 무너져 내렸다.“진룡의 기운이야! 용골의 기운이야! 하하하.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용골이 네놈 같은 보잘것없는 몸에 숨어 있을 줄이야.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나오자마자 이런 큰 복을 손에 거머쥐다니 말이야.”백자재의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그의 눈빛은 마치 수백 년 감금당한 노망난 노인이 알몸의 여인을 발견한 것처럼 광기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흥분한 백자재는 죽은 뱀에는 눈길도 안 주고 이도현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방금 전 이도현이 검을 휘두를 때 진원 속에 스며든 진룡의 기운이 미세하게 흘러나왔고 수백 년을 살아온 노 괴물인 백자재는 그걸 놓치지 않고 이도현의 몸에 용골이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 기운은 용골 속에 깃든 진룡의 기운이 분명했다.“미천한 놈아, 당장 그 용골을 내놔라. 그건 너 같은 놈이 가질 물건이 아니다. 용골과 음양검을 넘기고 숨겨둔 보물과 공법도 넘겨라. 그러면 본좌가 네 목숨쯤은 살려주겠다. 보답으로 저 뱀 사체는 네게 넘기마. 그건 보약 중의 보약이라 먹으면 밤에 여자들을 울리기 딱 좋을 거다. 하하하.”말은 거창했지만 누가 봐도 강탈이나 다름없었다.백자재는 거래인 척하며 대놓고 뺏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었다.‘노망난 늙은이 같으니라고. 쓸데없는 욕심만 많아서는...’이도현은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갖고 싶으면 와서 가져가 봐. 실력 되면 뺏어보든가.”‘이대로 계속 진룡의 기운이 새어 나오면 안 된다. 어떻게 원력 안에 깃든 진룡의 기운을 숨기지? 매번 전투 때마다 기운이 새어 나오면 내가 용골을 가졌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퍼질 게 뻔해.’용골이 도대체
백자재가 말한 같은 종족의 기운과 진룡의 기운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도현 스스로는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그의 몸에 융합된 교룡의 척추골에서 비롯된 교룡이 기운이었다. 진룡의 기운 또한 그가 융합한 용골로 인해 자연스레 몸 안에 깃들어 있던 것이었다.“이놈! 본좌가 묻고 있지 않느냐!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당장 네놈 몸에 숨겨진 비밀을 털어놔라. 그러면 본좌가 네 목숨 정도는 살려줄 거다. 아, 맞다. 네 손에 들려 있는 그 음양검도 본좌에게 넘겨라. 이 정도면 의외의 수확이군. 허허. 그냥 한 번 나섰을 뿐인데 음양검까지 얻을 줄이야. 오늘이야말로 천운이 따르는 날이 아니면 뭐겠냐 말이다.”백자재는 사람들 앞에서 물건을 빼앗겠다고 노골적으로 선포했다.“흥! 내 음양검을 갖고 싶다고? 네놈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 내 검에 흑심을 품은 놈들은 전부 지옥으로 보냈다. 도급 경지의 강자도 예외는 아니지. 네 놈이 그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나?”이도현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하하하! 건방진 꼬맹이가 겁도 없이 까부는구나. 좋다. 네놈에게 비단뱀의 실력을 보여주마!”백자재는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삼켜버려라! 네놈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백자재의 명령에 응하듯 거대한 뱀은 다시금 포효하며 몸을 틀어 이도현에게 돌진했다.짙은 흑색의 비늘로 덮인 몸통은 굵고 거칠었으며 하나하나의 비늘은 날 선 칼처럼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조심해! 우리 같이 상대하자!”공인아는 이도현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곧장 앞으로 달려 나왔다.그녀는 과거 주작제국 화산에서 그 안에서 서식하던 흉수와 사투를 벌인 경험이 있었기에 비단뱀 정도의 흉수를 보고 움츠러들지 않았다.그녀는 은창을 손에 쥐고 곧장 뱀의 꼬리를 향해 날카롭게 찔렀다.쾅!은창이 뱀의 꼬리에 닿는 순간 쇠와 쇠가 부딪히는 듯한 금속음이 터졌다.창이 튕겨 나가자 그녀도 같이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공인아는 손이 타들어 갈 듯 화끈거렸다.한순간 양팔의 감각이
“크아아아아!”소름 끼치는 짐승의 포효가 울려 퍼지는 순간 백자재의 뒤편 우뚝 솟은 산속에서 거대한 검은 뱀이 하늘을 뚫을 듯 솟구쳐 올랐다.뱀은 번개처럼 번뜩이며 순식간에 서문 성루 위로 날아올랐다.검은 뱀은 몇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으며 장독만큼 굵은 몸체를 자랑했다.주먹만 한두 눈은 붉게 빛났고 이마 위에는 마치 뿔이라도 자라날 듯한 두 개의 커다란 혹이 불룩 솟아 있었다.“크아아아!”거대한 뱀이 다시 포효하자 피비린내와 악취가 섞인 강풍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고 매캐한 냄새는 사람들의 숨통을 틀어쥘 듯 강하게 퍼졌다.“저... 저게 도대체 뭐야? 짐승이 아니라 신이라도 된 거 아니야? 무서워 죽겠네.”“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괴물이 있을 수가... 머리 위에 혹 봤어? 혹시 뿔이 자라려는 거 아니야? 설마... 교룡이라도 되려는 건가?”“젠장! 교룡이라니... 교룡이라니!”성 위에 있던 사람들은 눈앞의 괴물 같은 거대한 뱀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었고 뱀의붉게 빛나는 눈이 그들을 바라보자 본능적으로 몇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사람이 뱀을 무서워하는 건 본능이었다.하물며 저런 괴물 같은 뱀을 보고 도망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저 뱀은 그냥 뱀이 아니야. 이미 자아를 깨우치고 지능을 얻은 흉수야. 조심해야 해. 저 정도면 영급 경지의 무인과 맞먹을 거야. 하지만 저 뱀의 공격력만 보면 영급 강자보다 훨씬 더 강할 테니 절대 방심하면 안 돼.”공인아는 굳은 표정으로 거대한 뱀을 경계했다.흉수가 지능을 얻는 건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지능을 얻고 자아를 깨우치면 천지의 정수를 흡수하며 수련을 시작해 그 힘은 인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같은 경지라 해도 흉수는 인간보다 몇 배는 강했다.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여러 명의 왕급 경지의 강자도 천급 경지의 흉수 한 마리를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그게 바로 흉수가 타고난 이점이었다.수련을 시작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시작만 하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강해지는 것이다.물론 흉수
백호는 결코 평범한 맹수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 공중에 떠 있을 수가 없었다.이도현은 이런 맹수를 처음 본다.그는 당시 세속계에 있을 때 웅나라의 북극곰 용사팀이 한나라에서 그를 죽일 때 수왕을 만난 적이 있다.그 수왕은 토끼 같은 얼굴에 긴 귀가 자라 있었다. 사람도 괴물도 아닌 자객이었는데 엄청 강대했다. 이도현은 그 사람을 죽인 후 결석 또는 내담 같은 것을 얻기도 했다.그때의 이도현은 이 세상에 정말로 수련할 수 있는 요수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런 요수를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이 백호가 요수가 아니라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게다가 이도현이 신기로 살펴본 결과 백호의 체내에 엄청난 힘이 담겨있었다.이 힘은 무사들의 원력과 전혀 다른 힘이었다.“백 어르신.”도망치던 사람들은 백호에 탄 노자를 보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땅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공인아는 노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백자재, 당신 죽은 거 아니었어?”“하하하. 죽다니?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거야?”백자재는 실컷 웃더니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마 밖에서 다들 내가 죽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거야? 정말 우습구나. 나는 그냥 폐관 수련하러 간 것뿐인데 죽다니? 허허. 나는 벌써 수원을 돌파해 앞으로 몇백 년은 더 살 수 있어. 원래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저 뒤에 있는 백호산에서 폐관하며 우리 청운제국의 진국공법인 백호어수결을 수련하고 있었어. 그런데 방금 용골의 기운이 감지되어서 나와보다가 네 놈이 인정사정없이 우리 청운제국 사람을 죽이는 꼴을 보게 되었어. 그러니 내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이래 봐도 내가 청운제국 황실의 일원이거든. 어떻게 네가 우리 청운제국 사람을 죽이는 걸 그냥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겠어?”노자는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했기에 이도현은 그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백자재. 원래는 청운제국 황실의 황자였다. 하지만 무술
“이도현... 네가 감히...”“이 녀석,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네가... 감히 우리를 죽이려 해? 우리 가문에서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 녀석, 사람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우리 함께 덤벼서 저 녀석을 죽입시다.”“그래요... 저 녀석과 한판 붙어봅시다.”...청운제국의 여러 강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겁에 질려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 이도현과 목숨 걸고 싸우려는 사람도 있었다.그리고 이 틈을 타서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죽어라...”이도현은 피식 웃으며 수중의 음양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붉은 검기가 뻗어 나와 하늘에서 태극도를 형성했다.태극도는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점점 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청운제국의 여러 고수를 중간에 가두었다.잠시 후 태극도 중앙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곧이어 붉은 빛이 어렴풋이 나타나더니 바로 사라져버렸다.검붉은 검기가 다 사라진 후 바닥에는 피 흔적만 남아 있고 사람이 전부 없어졌다.“어서 가요. 저 녀석 너무 수상해요. 어서...”“도망칩시다. 우리는 저 녀석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어서요...”뒤쪽에 있던 강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즉시 몸을 돌려 도망쳤다. 다들 위엄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도망쳐? 너희들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늘에 하느님이 내려와도 너희들을 구하지 못한다. 그냥 죽어라...”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도현의 손에서 수십 개의 파란색 은바늘이 날아 나갔다.이도현은 이미 오랫동안 은바늘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의 내공이 끊임없이 제고되면서 은바늘을 사용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왜냐하면, 속도가 아주 빨라졌고 검기도 많이 길어졌기에 대부분 상황에서 적이 도망치기도 전에 검기로 상대방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바늘을 사용할 기회가 딱히 없었다.순식간에 수십 개의 은바늘이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