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화

Author: 도도화
“너 입사 기념 선물이라고 하면 이해해 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서율이는 이런 거로 쪼잔하게 화내지 않아.”

차주헌의 말을 들은 임서율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차주헌은 그녀가 마음이 넓다는 것을 핑계로 프로젝트도 팔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강수진에게 바쳤다.

이쯤 되니 임서율은 문득 자신이 인생을 잘 못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이 모두 자신이 바보라서 생긴 것 같았다.

“임서율 씨가 왜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하나 했는데 남편이 애인을 둬서 그런 거였네요.”

그때 바로 옆에서 장난기가 살짝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하지만 그때 신발이 카펫에 걸려버렸고 그녀의 몸은 중력을 따라 뒤로 넘어가 버렸다.

임서율은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을 예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몸이 반쯤 넘어가던 그때 누군가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아버렸다.

임서율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느끼며 살았다는 표정으로 하도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하도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다시 거둬가 버렸다.

‘이 남자가 진짜!’

임서율은 이에 이를 꽉 깨물며 하도원의 옷깃을 확 낚아챘다. 그 행동으로 하도원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의 허리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도원의 가슴팍에 그대로 돌진해버린 임서율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하도원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 품이 생각보다 따뜻한가 보죠?”

“!”

임서율은 그 말에 그제야 가슴을 퍽하고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첫인상도 그러했지만 하도원은 정말 호감이 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방금도 그가 손을 거둬들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어요. 죄송해요.”

임서율은 하도원이 괘씸해 조금 새침한 말투로 사과했다.

하지만 말을 다 내뱉고 난 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금세 다시 태도를 바꾸며 미소를 지었다.

“하 대표님도 이제 제 상황이 어떤지 보셨으니 아시겠네요. 저는 성운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니에요. 정말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하도원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느긋한 말투로 답했다.

“임서율 씨와 차 대표가 짜고 연기하는 걸 수도 있죠.”

임서율은 생각보다 더 의심이 많은 그의 태도에 속으로 질색했다.

이 정도의 의심병이면 자기 아내가 외간 남자와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바람이라고 확정 지을 게 분명했다.

‘누가 이런 남자랑 결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불쌍하다.’

“제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그렇게 의심스러우시면 하 대표님이 직접 한번 조사해보세요.”

강수진과 차주헌이 과거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했는지는 조금만 알아봐도 나오는 얘기였다.

하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프로젝트, 만약 재호가 뺏어오면 차 대표는 분명히 조사를 진행할 거고 그렇게 되면 임서율 씨의 행동도 금방 드러나게 될 겁니다. 또한 소식이 새어나가면 임서율 씨는 물론이고 재호도 휘말리게 되겠죠. 어쩌면...”

하도원은 말끝을 흐리더니 갑자기 앞으로 다가오며 임서율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임서율 씨가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헛소문도 돌게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장난기가 조금 어린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하도원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임서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따른다고 해도 그녀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녀에게는 엄마의 소원이 더 중요했으니까.

임서율은 단호한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 대표님은 그저 프로젝트로 얻게 되는 수익에만 집중해 주세요.”

사실 임서율이 굳이 하도원을 찾아간 건 그가 성운 그룹의 라이벌 회사 대표인 것도 있지만 더 많게는 하도원이 차주헌을 겁낼 만한 사람으로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하도원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하더니 갑자기 피식 웃으며 임서율을 불렀다.

“임서율 씨.”

“네.”

“임서율 씨 남편분이 우리 쪽을 보고 있는데.”

임서율은 그 말에 하도원의 시선을 따라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말 차주헌이 이쪽을 정확히 바라보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 흠칫했다.

차주헌은 임서율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가 그녀 옆에 서 있는 하도원을 본 순간 바로 표정을 굳혔다.

한편 차주헌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한 강수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임서율의 앞으로 다가왔다.

“서율 씨도 참석하는 줄 알았으면 저는 오지 말 걸 그랬어요. 아, 오해하지 말아요. 대표님이 함께 갈 파트너가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온 거니까.”

강수진은 서툰 수화를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말을 하다 자기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 생각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임서율은 그녀의 행동에 마치 스스로가 착한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계모가 된 듯했다.

차주헌은 임서율의 눈빛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쉬라니까 왜 나왔어.”

임서율은 순간 그의 말이 걱정인지 책망인지 구분이 서지 않았다.

“내가 대학교 때 디자인 했던 팔찌가 오늘 경매에 나온다길래 한번 와봤어.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회사일 때문에 바쁠 것 같아서. 그래서 혼자 왔어.”

강수진은 그 말에 얼른 손목을 숨기려다가 임서율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그거 내가 디자인한 팔찌 아니에요? 근데 그게 왜 강수진 씨한테 있는 거죠?”

임서율이 강수진의 손목을 낚아채는 바람에 빼도 박도할 수 없게 되었다.

하도원은 팔짱을 끼며 눈 앞에 펼쳐진 연극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고 임서율은 강수진의 손목을 잡은 채로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차주헌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이거 서프라이즈지? 나한테 이 팔찌 주려고 일부러 급한 일 때문에 나간다고 한 거구나.”

차주헌은 멍하니 있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들켜버렸네? 네 말대로 몰래 낙찰받아서 너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한 거야. 수진이가 차고 있었던 건 전주인이 팔찌를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것 같길래 괜찮나 한번 차보라고 한 거고.”

임서율은 예쁘게 웃으며 차주헌과 강수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수진 씨, 고마워요. 괜찮아 보이는 것 같으니까 팔찌 주세요.”

강수진은 표정이 확 어두워져서는 뭐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아주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느릿느릿 팔찌를 빼고는 임서율에게 건네주었다.

임서율은 만족한 듯 바로 손목에 차보더니 일부러 더 보란 듯이 두 사람 앞에서 손목을 흔들었다.

“어때? 잘 어울려?”

“당연하지. 딱 율이 네 거야.”

차주헌은 늘 그렇듯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 하 대표님 아니세요? 근데 왜 서율 씨랑 같이 있어요? 혹시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에요?”

그때 강수진이 갑자기 하도원을 바라보며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100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던 중, 하도원의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지자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쏠렸다.그는 낮게 속삭이듯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일단 날 방으로 좀 데려가 줘요.”임서율은 망설일 틈이 없었다.만약 하도원의 약기운이 갑자기 심해져 이 공공장소에서 사고라도 나면 내일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 당장 오를 일이었다.그렇다면 임씨 가문까지도 덩달아 곤란에 휩싸일 게 뻔했다.‘임유나, 진짜 미친 거 아니야?’하도원에게 몰래 약을 타다니, 상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임서율은 하도원을 부축해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걸었다.호텔 방 앞에 다다르자 그녀가 물었다.“방 카드 어디 있어요?”“바지 주머니...”“아.”딴생각할 겨를도 없이 임서율은 손을 깊은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남자의 정장 바지는 유독 주머니가 깊기로 유명했다.한 손으로는 하도원을 부축하면서도 다른 손은 카드 찾느라 분주했다.손가락 다섯 개가 마치 끝없이 깊은 검은 구멍 속을 더듬는 듯했다.오로지 촉에 의지할 뿐이었다.“스읍... 제대로 찾아요. 왜 그렇게 막 만져요?”하도원이 찡그린 얼굴로 낮게 말했다.임서율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 제가... 언제 막 만졌어요? 누가 바지 주머니를 그렇게 깊게 만들래요.”몇 번 더 만지작거리다 손끝에 딱딱한 카드가 닿았다.“찾았어요!”임서율은 방 카드를 꺼내 문에 대고 톡 눌렀다.“딩!”방 문이 열렸다.그녀는 하도원을 부축해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곧 욕조 쪽으로 데려가 눕히려 했다.지난번 자신이 사약을 먹었을 때, 하도원이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났다.“차가운 물로 먼저 식히는 게 어때요?”하도원의 상태는 이미 심상치 않았다.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옷 너머로도 체온이 느껴졌다.임서율은 온 힘을 다해 그를 욕조에 눕혔다.‘이 호텔 샤워기는 왜 이렇게 높게 달려 있지?’그녀는 발끝을 쭉 뻗어 손을 댔고 그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욕조 안으로 곤두박질쳤다.“악!”“어...”하도원이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99화

    “임서율 씨.”하도원의 목소리는 낮고 무겁게 깔렸지만 그 안에 은근한 냉기가 섞여 있었다.“네?”임서율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하도원의 따뜻한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았다.매서운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그녀를 꿰뚫듯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당신 비밀도 말하지 않았는데 벌써 팔아넘겼나요? 임씨 가문에서 무슨 달콤한 제안을 받은 거예요?”임서율은 하도원이 자신에게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그는 관찰력이 너무 예민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다 들통날 거였다.설령 일부러 속이려 해도 소용없었다.그가 자신을 계략하는 걸 알아챈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터였다.그래서 임서율은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하도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롱 섞인 웃음을 흘렸다.“내가 당신 소유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끼워 넣은 여자를 내가 좋아할 거라 단정짓는 건 오산이에요.”임서율은 머리를 갸웃하며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유나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럼 대표님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강수진 같은 조금만 다쳐도 금세 우는 그런 여자?”그녀는 임유나가 성격이나 배경은 별로일지 몰라도 자신한테는 까칠한 편일 뿐이라 생각했다.얼굴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부모님 모두 잘생기고 예쁜 편이었고 임유나 역시 뚜렷하고 세련된 이목구비를 가진 화려한 미녀였다.마치 드라마 속 까칠한 공주 같은 타입이었다.성격이 조금 까다로워도 딱 맞으면 매력적인 법이었다.하도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이마를 찌푸리며 무심코 가슴 부위를 움켜쥐었다.임서율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무슨 일이에요? 안 되겠으면 안 하셔도 돼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화내실 일은 아니잖아요, 하 대표님.”그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하도원 같은 혼자 모든 걸 떠맡는 성격은 집안 어른들 말도 잘 안 듣고 자신과 겨우 몇 번 만난 사이인 만큼 더욱 그럴 거라는 걸.그때 하도원은 숨 쉬기 힘든 듯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고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98화

    임유나는 옆에 서서 멍하니 있다가 본능적으로 임서율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전에 성취향 문제 있다고 한 적 없잖아.”임서율은 그 말에 얼어붙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머니 문제도 꼬일 게 분명했다.하지만 하도원이 자신이 좋아하는 쪽이 남자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임서율은 숨을 가다듬고 하도원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예요?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한 거예요?”하도원은 발끝을 살짝 맞대고 입꼬리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었다.그의 뚜렷한 턱선과 날카로운 얼굴,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희롱하듯 스쳤다.“왜요? 나보다 내 성취향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직접 경험해봤어요?”임서율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그가 말한 ‘직접 경험’이 아니라 그녀는 ‘직접 본’ 것이었다.전에 자신이 약에 취했을 때, 하도원이 분명 반응하는 걸 봤다.남자를 진짜 좋아했다면 그런 반응이 없었을 거다.그는 일부러 그런 척 하는 거였다.하지만 임유나가 옆에 있어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그는 속삭이듯 임유나의 귓가에 말했다.“너 재벌가에 시집가고 싶다며? 하 대표님은 차주헌보다 훨씬 실력 있는 사람이야. 만약 하 대표님과 잘 된다면 나중에 하씨 가문 사모님이 돼서 누가 감히 너 뒤에서 수군거리겠어? 잘 생각해 봐.”임서율의 말에 임유나의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하도원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이미 포기할 뻔했다.자신은 한창 예쁠 나이인데 성취향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귈 수는 없었다.설령 벗겨봐도 반응이 없다면 너무 굴욕적이지 않은가.하지만 임서율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과거 성운그룹은 독보적인 1위였지만 요즘은 재호그룹에 밀리고 있었다.하도원의 자산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막강했고 차주헌은 비교도 안 될 존재였다.임유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오랜 고민 끝에 다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하 대표님, 죄송해요. 아까 너무 크게 반응했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97화

    어쩔 수 없었다.이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그녀는 이 자리에 그대로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강수진과 차주헌의 날카로운 시선이 등을 찌르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하도원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계약서를 내민 건 명백했다.그녀가 자신의 편이라는 걸 모두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중요한 문서를 본인 손으로 확인도 안 하고 넘길 리가 없었다.잠시 망설이던 임서율은 이내 손을 뻗어 계약서를 받아들었다.차분한 얼굴로 전체 내용을 빠르게 훑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도원을 바라봤다.“하 대표님, 검토 끝났습니다. 문제 없습니다.”하도원은 한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럼 사인하시죠.”서명을 마친 임서율 옆에서 차주헌이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계속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계약서를 챙긴 그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임서율을 바라봤다.그녀 역시 그의 의도를 알아챘고 먼저 말을 꺼냈다.임유나가 비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정리하는 게 나았다.“신입이라 좀 긴장될 수도 있어. 한 번 둘러봐 줘.”“응. 나갈 때 전화해.”차주헌이 계약서를 들고 자리를 뜨자 임서율의 눈빛이 서서히 냉담해졌다.그녀는 들고 있던 술잔을 들어 하도원 쪽으로 다가갔다.“하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결국 따내셨네요.”그 말에 하도원은 마치 듣기 싫다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웃는 얼굴이 아주 예쁘네요. 다음부턴 웃지 마요.”임서율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입 진짜 독하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내가 웃는 게 그렇게 못생겼나?’그럼에도 임서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술잔을 내밀었다.“알겠습니다.”하도원은 술잔을 받아 한참을 살펴보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봤다.“이거... 독 들어간 거 아니죠?”“안 마실 거면 말아요.”임서율이 술잔을 되찾으려던 찰나, 하도원이 재빨리 그녀 손에서 잔을 낚아챘다.“됐어요. 체면은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96화

    하도원은 말끝을 길게 끌며 강수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어때요? 한 번 생각해 보죠.”강수진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만약 하도원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재호그룹에서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지금의 성운그룹은 이미 재호그룹과 견줄 수 없었다.하지만 성운그룹에선 차주헌의 보호를 받으며 조금은 편한 점도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원이라는 사람이 가진 아우라와 배경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끌었다.그의 출신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도 오히려 신비로웠다.무엇보다 하도원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다면...강수진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차주헌을 바라보았다.“주헌아, 내가 먼저 하 대표님 곁에서 배워볼 수 있을까? 거기서 더 많은 걸 배운다면 돌아와서도 네 곁에서 더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차주헌은 얼굴을 찌푸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진짜 재호그룹으로 가려는 거야?”누구나 알다시피, 하도원이 차주헌 앞에서 사람을 빼오는 건 명백한 모욕이었다.보통은 몰래 뒤에서 빼가는 법인데 하도원은 당당하게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했다.강수진은 입을 삐죽이며 차주헌의 소매를 붙잡았다.“주헌아, 나도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거기서 배운 게 널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하지만 차주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다툼을 하기 싫었는지, 그녀의 손을 냉큼 뿌리쳤다.“네 마음대로 해.”그 말을 들은 강수진은 환하게 웃으며 하도원을 바라봤다.“그럼 하 대표님, 주헌이가 허락했으니 저를 오아시스 프로젝트 책임자로 바꿔 주실 수 있나요?”하도원은 입가에 비꼬는 미소를 띠며 차주헌을 향해 경멸 어린 눈빛을 던졌다.“이게 당신이 찾은 여자입니까? 손가락 까딱하면 휙 넘어오는 그런 여자라니, 대체 뭘 소중히 여기는 거죠?”차주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도원을 노려봤다.하지만 하도원은 그의 불쾌한 시선을 무시하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가볍게 기침했다.“강수진 씨, 방금은 농담이었어요. 비서 자리를 원한다면 정식 채

  •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제95화

    임서율 옆에서 지켜보던 임유나는 넋이 나간 듯 말했다.“저 여자, 확실히 한 수 위야. 임서율, 넌 절대 못 이겨. 아마 네가 맡은 프로젝트 자리도 날아갈걸? 남자들은 여자 애교에 약한데 너는 그걸 못 하잖아.”임서율은 말문이 막혔다.강수진이 저렇게까지 체면을 내려놓고 하도원 앞에서 눈물까지 흘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그 눈물은 마치 배꽃잎 위에 맺힌 이슬처럼 투명하고 연약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하도원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즉각 반박하지 않았다.바로 반박하지 않는다는 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임서율은 손바닥을 꽉 쥐고 맑고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그가 마음을 바꾸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테니까.하도원은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매, 매끈한 선으로 이뤄진 강렬한 훈남이었다.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강수진 씨가 저렇게 우니까 나도 마음이 흔들리네요.”임서율은 깊게 숨을 고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순간 기운이 빠져 어깨가 축 처졌다.역시 하도원도 남자였다.남자는 여자 애교 앞에 무너지기 마련이었다.더구나 강수진은 그런 재주가 있었다.남자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게 만드는 능력 말이다.강수진은 코를 훌쩍이며 목소리를 더욱 부드럽고 애교 섞인 톤으로 낮췄다.“죄송해요, 하 대표님. 제 능력이 서율 씨만큼은 못 하지만,그래도 이 프로젝트 책임자를 저에게 맡겨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어요. 서율 씨가 요즘 안 좋은 소문에 휘말려서 회사 사람들이 우리랑 뭔가 짜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거든요.”“하지만 회사에 지장만 없다면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 서율 씨를 믿든 말든 저는 분명히 믿어요.”하도원은 눈물을 흘리는 강수진을 잠시 바라보다가 비꼬는 듯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강수진 씨가 서율 씨랑 그렇게 친한 줄은 몰랐네요.”“과찬이십니다, 하 대표님.”강수진은 하도원의 시선을 받으며 살짝 민망해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쾌재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