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5화 : 재회(再會) (2)“어서 와 보게, 랑하. 이 염상이 자네를 위해 정성 들여 마련한 귀한 선물이 여기 있다네.” 늦은 밤, 염상은 어딘가 들뜬 표정으로 랑하의 팔을 억지로 이끌었다.그들은 현궁을 나가, 곧장 북쪽으로 말을 달려 우화산(牛化山) 중턱에 닿았다.그곳에는 염상의 안가로 쓰이는 암자와 정원이 숨겨져 있었다.언젠가 수련을 데리고 오려고 했었는데, 랑하를 먼저 데려오게 될 줄은 염상 자신도 정말 몰랐다. “이 밤에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곳은 또 어디지? 우화산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도 몰랐군. 자네란 사람, 정말….” 랑하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소중한 벗과 함께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도록, 따로 준비해 둔 곳일세. 현궁만큼 크고 화려하진 않아도, 나름의 운치가 있지 않나?” 염상은 대나무 숲을 넘어 검붉은 벽을 가진 자그마한 별채로 랑하를 안내했다.그들을 따르던 수하들이 대숲 밖에서 조용히 발길을 멈췄다. “어떤가, 마치 신방(新房) 같지 않나?” “그래서 그 선물이란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염상의 목소리가 낮고 음험하게 깔렸다. “자네, 예전에 내게 물었지. 백호족 순혈을 가까이서 본 일이 있느냐고.”“갑자기 그 이야긴 왜…?” 랑하는 가슴 한구석이 갑자기 서늘해왔다. “은어곡 일 이후로…, 자네가 백호족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길래 말일세.이 위험한 놈을 생포하느라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나?” 염상은 바짝 얼어있는 랑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절대로 그의 눈을 풀어주지 말게… 이유는 자네도 잘 알 테니.” 염상이 별채의 좁은 복도 끝에 난 문을 가만히 밀자,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방이 나타났다.휘장이 걷히자, 그 안쪽에 놓인 침상 위에는…은빛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굵고 단단한 밧줄로 양 손목과 발목이 대자로 결박된 사람이 누워 있었다.눈가엔 검은 천이 겹겹이 감겨있었고, 몸은 지쳐 혼절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랑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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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5화 : 재회(再會) (1)‘…왜 내가 이런 곳에….’ 의식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이후는 얼굴에 묶인 천 때문에 눈꺼풀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한 채,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을 붙잡으려 애썼다. 달이 떠오른 시각.또다시 그는 현궁의 동편 담을 넘었다.뒤뜰 회랑을 따라 연못 끝으로 돌다 보면, 작은 돌탑이 하나 나왔다.랑하의 옆모습을 몰래 지켜볼 수 있는, 좁고 비밀스러운 공간.그러나 그날은 몸을 숨기기도 전에 누군가가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그다음은… 공백이었다.그리고 깨어난 순간.들리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가쁜 숨소리뿐이었다.무모했다.겁도 없이 적국의 심장부에 스스로를 내던진 자신이, 이 순간만큼은 너무 부끄러웠다.랑하는 아마도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그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가슴이 미어졌고, 눈물이 묶인 천을 타고 흘러내렸다. 은어곡에서 무사히 돌아온 그날 뒤로.세상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성인식을 마쳤으니, 이어서 정식 후계자 책봉일에 연화와의 혼례까지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후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이 모든 것이 다… 그날 밤의 기억 때문이었다. 은어곡의 달빛 아래에서 마주했던 한 사람.그가 도무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백호부 월지.이후는 처소 침상에 팔다리를 펴고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어둠 속에서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형상.검고 윤기나던 머리칼.반쯤 감겼지만, 아름다웠던 잿빛 눈동자,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힘겹게 흘러나오던… 그 숨결. 깊은 숲이 뿜어내는 향기.그건 마치 고요하고도 아득한 그리움 같아서, 이후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후우…후우….” 그는 사내의 호흡을 따라 하듯, 깊고 고른 숨을 내쉬어 보았다.그의 숨결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그리고 어느 순간…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이후는 은어곡에서 마주쳤던 랑하의 숨결을, 그의 체취를 도무지 잊지 못했다.자신을 짓눌렀던 손의 뜨거운 온도.가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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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4화 : 염상(炎常) (2) “…허.” 염상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거,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군.” 그의 두 눈동자는 섬뜩할 만큼 번쩍이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은어곡에서 랑하와 마주쳤다는 바로 그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놈이 감히 혼자 이곳까지 숨어들어,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고?’ 염상은 모든 의문이, 마치 깨진 그릇이 들어맞듯 조금씩 맞춰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그 백호족 사내가 정말로 단순히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아니라, 랑하와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존재라면?’ 사실 염상은 오래전부터 랑하의 주변에 촘촘하게 자기 사람들을 심었다.표면적으로는 수련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혹시라도 랑하의 빈틈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직접 매복시킨 수하들 외에도, 현궁 안팎의 보초병들 또한 매수해 두었다.그렇게 공들인 덫 안에, 사냥감이 스스로 들어온 셈이었다.염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명령을 내렸다. “당장 가서 놈을 생포해 내 앞에 끌어오너라! 꼭 살아있는 채로 데려와야 한다!” 그의 말 속에는, 들뜬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놈의 두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말아라! 잡는 즉시, 눈을 묶어 가려야 한다!”“예! 장군!” 명을 받은 수하가 물러가자, 염상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빛 달이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무언가 예상치 못한 운명 또한,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 “…흐….” 백호족 청년이 가는 숨을 겨우 토해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은빛 머리칼이 그의 뺨을 스치며 흔들렸다.그의 눈은 검은 천으로 사정없이 동여매어져 있었고, 두 팔은 벌려진 채 나무틀에 단단히 묶여있었다. “드디어 깨어난 건가…?” 염상은 단상 위에서 내려오며 키득거렸다.그의 두 갈색 눈동자는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이게 무슨 짓이냐! 여긴 어디냐!” 백호족은 격하게 몸을 떨며 소리쳤다. “그건 네 놈이 알 필요가 없다.” 염상이 천천히 그의 곁에 다가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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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4화 : 염상(炎常) (1)상국 태상황(太上皇)의 둘째 황자 염형(炎炯)의 장자.이름하여 염상(炎常).그는 어릴 적부터 화려한 외모와 총명함을 겸비하고 있었다.진갈색의 부드러운 곱슬머리와, 금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그러나 그의 내면 어딘가에는,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얇은 칼날이 감춰져 있었다.권세와 재력, 미모와 언변을 겸비한 그는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아마도 랑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 질투라는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염상과 랑하는, 어릴 적부터 광명군부 산하의 연무관에서 함께 무술을 배우며 자랐다.형제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사이.그러나 동시에… 두 사람은 연적(戀敵)이기도 했다. 랑하의 아내, 금수련.그녀는 화호족의 귀족 부락인 비취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곳은 곧 염상의 고향이기도 했다.염상은 오랫동안 수련을 연모했다.그녀의 수정처럼 맑은 눈동자, 도도한 듯하면서도 섬세한 성정.귀족 가문의 여식다운 기품 속에서도, 그녀는 때때로 깨질 듯 연약한 눈빛을 보였다.그러나 그런 그녀의 마음속에… 이미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 장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혼담은 수련이 성인이 되자마자 빠르게 성사되었다.그녀의 아비 금예가 쌓아 올린 명예는, 랑욱 대장군의 아들 랑하와 외동딸의 혼인으로 보상받았다. 염상에게 그 모든 과정은… 고통 그 자체였다. 비취구의 대혼례 날 밤.웃음과 축배가 끊이지 않던 그날, 그는 신방 앞에서 랑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문이 닫히고, 염상은 등을 돌려 처음으로 넋을 놓고 울었다.그는 랑하를 친구로 사랑했고, 무장으로 존경했으며, 같은 남자로서 증오했다.무표정하게 그녀를 품에 안은 그가,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염상은 수련을 잊지 못했다.아니, 잊으려 애쓰지조차 못했다.현궁에 올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수련의 처소를 찾았다.그녀는 그를 맞이할 때마다 활짝 웃었고, 그렇게 웃다가도 눈물을 흘렸다.염상이 들려주던 고향 이야기, 어릴 적 그들이 함께 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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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3화 : 랑하(狼河) (2)그의 이름은 랑하(狼河).대장군 랑욱(狼旭)의 적장자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산고로 잃고 홀로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부친은 아내를 잃은 뒤 평생 다른 여인을 들이지 않았다.그는 적막한 현궁에서 글보다 무예를 먼저 배웠고, 사사로운 정을 감추는 법부터 익혔다. 서늘한 눈빛.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허리춤에 드리운 장검과 절제된 기운.그는 늘,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 왔다.그리고 두 어깨에는 언제나, 온 나라의 기대가 얹혀 있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랑하는 화호족 금예(金藝)의 딸 금수련(金秀蓮)과 혼인했다.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가문 간의 혼담에서 비롯된 연이었다.사실 수련은, 어렸을 때부터 랑하를 짝사랑해 왔었다.하지만 혼인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랑하는 아이가 있든 없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지만, 그런 그의 태도야말로 수련에게는 가장 큰 상처였다.그런 랑하가… 지금껏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에 붙들려 있었다.단 한 번의 만남.단 한 번의 접촉.그러나 그날 후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손끝에 남은 감촉.입술에 스친 열기.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빛나던, 그 푸른 눈동자.밤이 되면 어김없이 같은 꿈을 꾸었다.그를 끌어안고, 숨이 뒤엉키도록 입을 맞추며, 끝없이 탐하고 또 탐하는 꿈.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기억.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마음.그는 날이 갈수록, 그 꿈에 점점 더 깊이 사로잡혀 갔다.‘이것이 중독이 아니라면… 정녕 마도(魔道)란 말인가?랑하야, 랑하… 네 꼴이 우습구나….’랑하는 매일 같이 가슴속으로 한탄했다.그러나 아무리 부정하고 지우려 애써도, 그 백호족 청년의 형상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 “내가 보니, 랑하 자네, 그날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혹시 정말로 백호족 순혈을 보기라도 한 건가?” 염상의 눈꼬리가 번쩍이며 치켜 올랐다.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으나,
Last Updated: 2026-04-02
Chapter: 1부 사랑을 탐하다 - 3화 : 랑하(狼河) (1)온몸을 스치는 저릿하고 날카로운 통증.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꿈.그것들이 밤낮없이 랑하를 잠식한 탓에, 그는 꼬박 일주일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통증은 서서히 옅어졌지만, 은어곡에서 마주친 백호족 청년의 형상만큼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졌다.은백색 머리카락.달빛을 머금은 듯 부드럽게 흐르던 결.서늘한 목덜미의 감촉과, 차가운 대리석처럼 단단했던 허리.침묵과 바람을 함께 품은, 짙푸른 눈동자.손에 잡힐 듯 선명한 감각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그래서인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흔드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랑하는 외부와의 만남을 모두 끊었다.군부의 업무는 부관에게 넘기고, 현궁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낮에는 후원의 정자에 기대어 연못을 바라보았고, 밤이면 회랑 한가운데 서서 달을 응시했다.시간은 그렇게, 그를 비켜 간 채 흘러갔다. “부군….” 수련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뜨렸다.그녀는 다가와 조심스레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그의 따뜻한 체온과 나무를 닮은 체취가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괜찮소.” 랑하는 짧게 답했다. “그저 머릿속이 좀 복잡할 뿐이오.” 수련은 그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부군께서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은 처음 뵙습니다. 소첩은 그저, 작은 위로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랑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았다.시선은 여전히, 구름에 반쯤 가린 달을 향해 있었다.그런데 그 순간.선명한 두 개의 푸른 눈동자가 눈앞에 겹쳤다.마치 지금 이곳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 그는 반사적으로 팔을 풀었다.그러나 수련은 아무 말 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목선을 감쌌다.소나무 숲처럼 진한 사내의 체취가 풍겨오자,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랑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한숨에는,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한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다가왔다.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고, 랑하는 그
Last Updated: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