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4화 : 살인(殺人)이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달빛에 휘감긴 바람이 마치 그를 중심으로 맴돌 듯 소용돌이치고, 여기저기 걸린 천들이 떨어져 나갈 듯 힘 있게 나부꼈다.이완이 산채 중앙의 막사 앞에 도달했을 때, 덩치 큰 사내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는 짐승의 털을 이어 만든 외투를 두르고, 손엔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싸늘한 이완의 목소리가 울렸다.“…네가 야귀라는 자냐.”“그, 그렇다…! 설마, 네가 그 냉궁 괴물이냐?"심하게 떨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뒤엉켜 있었다.이완은 대답 대신 조용히 한 발짝 더 앞으로 다가섰다.거세게 울리던 바람이, 다시 한번 그의 은발을 타고 휘몰아쳤다.야귀의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였다.“…목숨은 목숨으로 받겠다.”이완의 눈이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 야귀는 무언가에 홀린 듯 크게 몸을 떨었다.그리고.우두둑.두툼한 다리가 꺾이듯 굽혀졌다.쾅!쾅!쾅!그가 자신의 머리를 흙바닥에 연신 찧어대기 시작했다.한 번. 두 번. 세 번….사방으로 피와 뇌수가 튀고,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아악…!”누군가가 울부짖었지만, 이완은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야귀는 마지막으로 부서진 머리를 힘겹게 들어 이완과 경렬을 번갈아 본 뒤… 그대로 고꾸라졌다.이완은, 그렇게 피범벅이 된 야귀의 시체를 한참 동안 노려보며 서 있었다.달빛을 받은 그의 은발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났다.경렬은 황홀하다는 듯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이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이렇게 네가 내 것이 되는구나…! 무섭고도 아름다운, 나만의 칼….’***잔혹했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산등성이에는 이슬에 젖은 풀 내가 감돌았다.이완은 야귀가 쓰던 막사 안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가슴 속의 분노와 열기가 천천히 가시고, 예민하게 들떴던 온몸의 감각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그러나 야귀가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죽던 모습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이마가 깨지고 뇌수가 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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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3화 : 산채(山寨) (2)하늘을 찢어낼 듯한 비명이 연무곡을 울렸다.이완은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열기를 도저히 참아낼 수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홀로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약초를 잔뜩 채집해서 돌아오자마자… 엉망이 된 별채, 피투성이가 된 경렬과 한 어린아이의 굳은 몸을 보았다.이완은 그 아이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평소에도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자신의 은백색 머리카락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며 살갑게 웃어주던 아이였다.검붉은 피가 스며든 방바닥 위로, 아직 미처 식지 못한 작은 손이 떨구어진 채 굳어 있었다.경렬은 이를 악물고 가슴 압박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숨은 이미 끊겨 있었다.현웅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송구합니다, 의원님. 제가 한발 늦었습니다….”그런데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이완이 피를 토하듯 탄식하며 물었다.경렬은 그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산채의 두목인 ‘야귀’라는 자가 수하들을 또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모조리 데려가려던 중에, 이 아이가 저를 지키려다 그만….”이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가시처럼 맺히는 감정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그는 결국 그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목을 묻은 채… 한참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그날 밤.연무곡 위의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솟았다.이완은 말없이 칼을 들고 산을 올랐다.흙탕물이 고인 고갯마루를 넘어 산채를 향하는 동안, 푸른 두 눈동자에 내내 달그림자가 박혔다.산속은 모든 것이 기묘할 만큼 조용했다.그 깊은 고요 속에서도, 이완의 마음속에서는 뭔가 무겁고 어두운 것이 끓어오르고 있었다.그것은 분노였고, 죄책감이었으며, 또한 이전엔 한 번도 품어본 적이 없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싶다는 강한 살기였다.경렬과 현웅이 그의 뒤를 따랐지만, 역시 이완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산채는 연무곡 뒤편 산 능선 중턱에 숨겨져 있었다.얼핏 보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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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3화 : 산채(山寨) (1)짙은 안개가 계곡에 가득하고, 비에 젖은 흙냄새가 산기슭을 짓눌렀다.좁고 외진 오솔길 끝, 오래된 나무 창고 안.작은 등잔 하나만 밝혀진 어둑한 그 안에는, 비린내와 담뱃재가 섞인 냄새가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검은색 도포 차림의 남자가 조용히 들어서서 복면을 벗었다.경렬이었다.“이제야 그 재수 없는 낯짝을 보여주는군. 그 볼 것 없는 의원이라도 아쉽다 이거냐. 죄다 불태운다고 협박해야 겨우 말을 알아들으니.”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산채 두목 ‘야귀(夜鬼)’였다.팔뚝과 손잔등엔 온통 칼자국이 얽혀 있었다.그는 반쯤 말라붙은 피가 묻은 손으로 술병 하나를 들고 앉아 경렬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고아들, 매달 약속한 수만큼 데려간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 쪽 애들이 자꾸 사라지는 거지?”야귀의 거친 목소리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경렬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두 눈동자가, 등잔 옆에서 더욱 붉게 빛났다.“이 가짜 의생 나부랭이야! 네놈이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 냉궁 괴물이고 뭐고, 그저 헛소문일 뿐이라고! 아무 힘도 없는 폐인이라고 했지!”야귀의 불끈 쥔 주먹이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그래서 네 말대로 현상금 좀 타 보자고 애들을 더 보냈는데, 돌아온 놈이 단 한 명도 없어!”말끝마다 침이 튀고, 풀어헤친 머리가 어깨 위에서 출렁였다.“그런데 이번에 그 괴물 놈 잡으러 간 내 부하들이, 한둘도 아니고 자그마치 다섯이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작당을 한 것이냐? 이게 다 네놈 머리에서 나온 짓이지? …내 부하들은 대체 어디 있냔 말이다!”경렬은 상대의 말이 그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군, 야귀.”경렬의 음성은 낮고 매끄러웠지만, 얼음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이완이나 고아들을 직접 대할 때에는, 단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었던 서늘한 기운.“네 부하들이 어디 있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뭐, 하찮은 소문에 놀란 겁쟁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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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2화 : 열기(熱氣)경렬은 지금 이완의 상태가 어떠할지,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저 먼 극동에서부터 힘겹게 구해온 ‘월초’의 기운이, 저렇듯 이완의 혈맥을 따라 온몸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자, 곧 흡족한 기분이 올라왔다.‘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며 냉궁에서 도망쳤다던 괴물.다행히 이완이 이곳 연무곡 근처에서 쓰러진 덕에, 경렬은 그를 다른 추격대보다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를 데리고 와서 처음 진맥했을 때, 바로 알아차렸다.이 자는 분명 사람이고, 또한 남성이나… 그 어떤 여성보다도 강한 음기를 지닌, 너무나도 특별한 체질이라는 것을.극한의 음기를 가진 월초라면, 그의 몸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이 과하면… 그 어떤 춘약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게 된다.이완이 월초의 기운에 취해 감각이 흐려지고 판단이 둔해질수록, 양기가 특히 강한 화호족인 자신은 더욱 쉽고 또 완벽하게 그를 손에 쥘 수 있겠다고 여겼다.다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영력 때문에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던 중, 이제는 이완의 약점마저 파악하게 된 것이다.그를 월초로 무너뜨린 뒤 서서히 길들이며, 결국은 온전히 자신만을 따르는 칼로 만들리라는 치밀한 계획을 드디어 실행에 옮길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연무곡은 달빛 하나 스며들지 못하고 완전히 암흑에 잠겨 있었다.방안 작은 화로 안엔, 반쯤 꺼진 불씨만이 남아 흔들렸다.“…이완, 접니다.”경렬의 손엔 방금 달여내어 김이 피어오르는 탕약이 들려 있었다.방문을 여는 이완의 표정은 뭔가 힘들어 보였다.“오후의 검술 훈련이 좀 고되었나 보군요. 약 드실 시간입니다.”“…네… 의원님….”이완은 숨을 조금씩 몰아쉬며 말없이 약탕을 두 손으로 받았다.처음엔 깔끔하고 쓴 풀 내음. 그러나 목을 타고 넘어간 순간, 역시 가슴 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요즘 제 몸이… 좀 이상합니다.”“이상하시다니, 어떤…?”이완은 비워낸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이마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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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1화 : 월초(月草)회복이 다 안 된 상태에서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인지, 이완의 몸은 다시 나빠졌다.경렬은 왜 이리 회복이 더딘지 모르겠다며, 정성스레 다린 약을 이완에게 가져왔다.작은 사기그릇 안에 담긴, 맑고 따뜻한 갈색의 탕약.“새로 만든 보약입니다. 당신같이 몸이 찬 사람에겐, 더없이 잘 맞을 겁니다.”“감사합니다, 의원님.”이완은 그릇을 쥐고 가만히 향을 맡았다.평소 자주 손질하던 여러 약초 향에 섞여, 무언가 알 수 없는 냄새가 스쳤다.“그런데… 처음 맡아보는 향이네요.”“이젠 당신도 약재에 많이 익숙해졌군요.”경렬은 품 안에서 마른풀 하나를 내어 보였다.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털이 촘촘하게 돋은 잎사귀가 대여섯 개 정도 달려 있었다.“‘월초’라고 합니다. 이번에 계곡을 내려가서 얻은 귀한 약초이지요. 태생적으로 음기가 강한 사람의 기력을 돋우고 정신을 맑게 하며, 상처 회복을 돕습니다.”이완은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들이키기 시작했다.살짝 뜨겁고 묵직한 약탕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런데 놀랍게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통증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경렬은 그 후 며칠을, 아침마다 같은 탕약을 달여왔다.이완의 회복은 눈에 띄게 빨라졌고, 팔과 다리의 뻐근함도 곧 완전히 사라졌다.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변화도 있었다.언제부턴가, 가슴 한쪽이 미묘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처음엔 그저 가끔 숨이 가빴다.그런데 이제는 단지 옷깃이 스치거나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살갗 위로 소름이 올라왔다. 특히 경렬이 곁에 있을 때는, 유독 그의 숨결과 체온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이런 감각들은 이완에게 너무나도 낯설었고, 또한 무섭도록 자극적이었다.“오늘은 좀 어떠십니까?”경렬이 아침 탕약을 들고 이완의 방으로 왔다.“…괜찮습니다. 몸이 많이 나아진 느낌도 있고요.”그러나 지나치게 예민해진 감각에 관한 얘기까지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약초가 몸에 잘 받는 것 같으니, 오늘부터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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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0화 : 약점(弱點) (2)이른 아침.경렬이 이완의 방으로 들어섰다.방 안에는 약초 향기와 피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었다.잠에서 막 깨어난 이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몸은 좀 어떻습니까?”“많이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경렬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이완은 경렬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침입자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지키려다 좀 다쳤고요.”“하필 저나 현웅이 없을 때 그런 일이…. 또 산채 놈들이 아이들을 노렸군요.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까?”“그들이 제 머리카락과 눈을 보았습니다. ‘냉궁 괴물’이라고까지….”이완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제 목에 현상금이 걸린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언제 다시 이리로 몰려올지 모릅니다. 의원님과 아이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제가 여길 떠나야….”경렬은 그를 다독이며 말했다.“그런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이완. 일단 회복이 우선입니다. 이런 몸으로는, 길을 나서는 건 무리입니다.”“하지만….”“어차피 당신을 숨겨줬다는 것만으로, 들키면 다 죽은 목숨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탔습니다.”그러나 경렬의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차가웠다.“그런데, 이번엔 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친 겁니까? 제가 지난번에 보았던 당신의 힘이라면, 그놈들에게 이렇게 당할 리가….”이완의 긴장된 손끝이 이불자락을 가만히 움켜쥐었다.“…검술을 익혔으니, 굳이 그 힘을 쓰지 않아도 저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과신했나 봅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데….”“아무튼, 이만하길 다행입니다.”경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는 묻지 않았다.***며칠 후.오늘은 간만에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드러났다.검푸른 밤의 장막 위로 둥그런 달이 선명히 걸려 있었다.경렬은 의원 뒤편 언덕의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식은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말없이 달을 감상하는 듯했지만… 그 시선은 한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뒤뜰로 통하는 비탈길에는 이미 몇
最後更新: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