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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귀차니즘
구청에서 나왔을 때 신예린은 그제야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이렇게 결혼을 해버리다니.’

게다가 상대는 교수님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시우를 보니 혼인관계증명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주시우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예린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의 SNS를 몰래 염탐했을 때 게시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시우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설명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

신예린은 멈칫했다.

“그러면 아저씨, 아주머님을 뵈어야...”

주시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신예린은 그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바꿨다.

“아버님, 어머님을 뵈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어색해서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

“급해할 것 없어.”

주시우는 서류를 챙기며 말했다.

“지금 두 분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셔. 당분간은 귀국하시지 않을 거야.”

“혹시 두 분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

신예린이 걱정했다.

주시우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시우의 부모님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귀엽다고 하셨어.”

“네?”

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바라보면서 눈을 빛냈다.

주시우가 설명했다.

“네 사진을 보셨거든. 귀여운 아이니까 나더러 잘 챙겨주래.”

신예린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

주시우는 빨개진 신예린의 귀 끝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오늘 약속 없으면 나랑 어디 좀 갈래?”

“어디로요?”

“가면 알게 될 거야.”

주시우와 함께 집을 보러 가게 된 신예린은 조금 당황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앞에서 걸으며 소개했다.

“이 집은 남서향이고 베란다에서 노을을 볼 수 있어요. 가장 편리한 점은 인테리어가 다 되어 있어서 바로 입주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가구는 두 분이 원하시는 걸로 구매해서 놓으시면 돼요. 저랑 같이 방을 구경해 보실까요?”

신예린은 주시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주시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 하마터면 그와 부딪칠 뻔했다.

“조심해.”

주시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

“여긴 어떤 것 같아?”

“네?”

신예린은 멍한 표정이었다.

“이 집 마음에 들어?”

신예린은 더듬댔다.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주시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잘 모르겠다니. 앞으로 우리 집이 될 수도 있는데. 네가 그랬잖아. 집이 필요하다고.”

신예린은 그 순간 한 방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시우는 그녀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감정이 격해져서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예린이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자 주시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안방이야. 꽤 넓은 편이고 옷장도 커. 하지만 화장대가 없으니까 인터넷으로 네가 원하는 걸 사면 돼. 그리고 작은 방은 앞으로 아이 방으로 쓰자. 그리고 아이가 좀 크면 여기서 같이 지내면 돼. 가장 작은 방은 서재로 쓰는 게 어때? 너는 그곳에서 공부하는 거야. 나는 저기 안쪽에 있는 서재를 쓸게. 앞으로 둘째가 생긴다면 방이 네 개짜리인 곳으로 이사를 가든가 이 방을 다시 침실로 바꾸든가 하자.”

주시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신예린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신예린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주시우와 함께 서재에서 책을 읽고, 함께 아이들과 놀아주고, 함께 베란다에 앉아서 노을을 구경하고... 그런 나날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결국 주시우는 그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집을 구경하고부터 구매하기까지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주시우는 신예린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가구는 작은 건 네가 고르고 큰 건 내가 고를게. 그리고 사기 전에 미리 너한테 의견을 물어볼 거야. 아마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곳에서 살게 될 텐데 혹시 마음에 안 든다면 바로 얘기해.”

신예린은 조수석에 앉아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보름 안에 입주하게 될 것 같은데 미리 기숙사에 퇴실 신청하는 거 잊지 마.”

“네?”

신예린은 놀란 얼굴로 주시우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빨리 주시우와 동거하게 되다니.

주시우는 신예린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넌 지금 임신해서 기숙사에서 지내면 불편할 거야. 나도 널 돌보기 힘들고.”

“저는 제가 알아서 챙기면 돼요.”

신예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아봤는데 너희 기숙사 2층 침대라며? 위험할 것 같은데.”

신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시우는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걱정되는 점이라도 있어?”

“친구들이 저희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될까 봐 걱정돼요.”

주시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람들이 알면 안 돼?”

신예린은 그가 오해할까 봐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알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요.”

주시우는 학교의 유명 인사였다. 만약 다른 학생들이 그녀가 주시우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다.

주시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은 결국 밝혀지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 당분간은 비밀로 하자. 하지만 기숙사에서 지내는 건 안 돼.”

주시우의 말대로 임신한 상태로 2층 침대를 사용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신예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교 근처에 도착하게 되자 신예린은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잠깐만.”

주시우가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주시우가 그녀를 향해 카드 한 장을 내밀고 있었다.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받아.”

주시우는 카드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난 네 남편이고 이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야.”

신예린은 도저히 그 카드를 받기 힘들었다.

주시우는 신예린의 불안감을 눈치채고 그녀를 위로했다.

“안에 천만 원밖에 안 들어 있어. 그냥 용돈으로 쓰면 돼. 넌 아직 어리니까 일단은 이걸 쓰고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네게 월급이 들어오는 카드를 맡길게.”

월급이 들어오는 카드를 맡기겠다니, 신예린은 그런 일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비밀번호는 이거야. 그냥 내 카드를 긁어도 되고 앞으로 여유 있을 때 네 카드로 계좌이체 해서 써도 돼.”

주시우의 다정함에 신예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 가봐. 몸조심하고.”

그렇게 신예린은 넋을 놓은 채로 차에서 내린 뒤 주시우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가 그녀가 살아온 지난 21년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다.

신예린은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꼬집어 보았다.

‘악, 아파.’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카드를 본 신예린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서둘러 카드를 가방 안에 넣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

“예린아, 왜 화장대를 보고 있어?”

갑자기 다가온 송지유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신예린이 인터넷으로 화장대를 검색하는 걸 보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집에 하나 사두려고.”

신예린은 얼버무렸다.

“네 그 작은 방에 화장대를 놓겠다고? 책상 하나 놓는 것도 힘들 텐데 거기다가 화장대까지 놓을 거야?”

송지유는 신예린이 보고 있는 화장대를 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예쁜 걸 거기에 놓겠다니, 너무 아깝다.”

신예린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

“어떤 게 더 예쁜 것 같아?”

송지유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의 화장대를 골랐다.

“이거. 그런데 좀 비싸서 굳이 이걸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신예린도 그것이 마음에 들어서 캡처해 두었다. 그녀는 비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예쁜 만큼 값을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화장대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예린아, 너 어제 어디 갔었어?”

송지유가 갑자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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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3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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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3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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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3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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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325화

    다음 날 아침, 신예린이 눈을 떴을 때 옆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 뻐근한 다리를 움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진짜 무서운 남자네. 어젯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해놓고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신예린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던 찰나, 문이 열리고 주시우가 들어왔다.그도 신예린이 벌써 깬 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고 어젯밤 불타오르던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장까지 깔끔히 차려입고 멀쩡한 교수님 모드로 서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신예린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눈을 피하다가 아예 다시 이불 덮고 자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주시우였고 그는 가볍게 헛기침하고 말했다.“출근 시간 다 됐어. 너 깨우러 왔어.”“아, 네...”신예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리면서 대답했다.“그... 내가 아침 좀 차려놓을까?”“네, 네!”신예린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주시우는 아직 빨간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굳었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그가 나간 후에야 신예린은 한숨을 내쉬었다.‘아, 뭐야. 분위기 너무 이상한데? 분명 어젯밤엔 그렇게 가까웠으면서 지금은 왜 이렇게 어색하지? 뭐가 잘못된 거지?’하지만 시계를 보니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신예린은 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가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아, 진짜...”신예린은 이를 악물고 허벅지를 툭 쳤다.‘금방 시작했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얼른 씻고 식탁으로 가니 주시우가 준비한 푸짐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가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식사하는 내내 둘은 대화하지 않았다.하지만 어젯밤엔 아주 딱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신예린은 밥을 먹으며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녀가 옆을 슬쩍 보자 주시우 역시 생각이 많아 보였다.숨 막히게 조용한 식사가 끝나갈 무렵, 주시우가 입을 열었다.“너도 좀

  • 터닝포인트   제3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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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3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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