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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9 11:30:29

​[202X년 X월 X일. TF팀 첫 출근 날.]

[차도현 팀장님께 처음으로 건네받은 만년필. 내 이름을 처음 불러주신 날.]

[닿지 않아도 좋은 사람. 이 마음은 이 필통 속에만 묻어두자.]

​그 밑으로 지난 3년간의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들이 가끔 적혀 있었다.

​[202X년 O월 O일. 팀장님이 건네주신 아메리카노. 오늘 처음으로 내 기안서가 통과되었다.]

[202X년 △월 △일. 독설 뒤에 팀원들을 챙기시는 따뜻함을 또 보았다. 욕심내지 말자. 그저 가장 완벽한 부하직원으로 곁에 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적힌, 눈물자국이 옅게 번져 있는 마지막 문장.

​[계약 1일 차. 14일간의 가짜 연애.]

[나를 가장 사사로운 감정 없는 사람이라 믿고 제안한 그의 눈빛. 슬프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14일이 지나면, 3년의 짝사랑을 미련 없이 태우고 파리로 떠나자.]

​스르륵-

​메모지를 쥐고 있던 도현의 손가락에서 힘이 풀려나갔다.

​거대한 망치로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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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17화

    소율은 이것이 도현의 진심이라 믿지 않았다. 그저 14일 동안 가짜 연애를 진행하며 순간적인 분위기와 착각에 휩싸인 차도현의 일시적인 이상 열증일 뿐이라고, 자신을 향한 깊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계약 파트너를 향한 최선의 '서비스'이자 착각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세뇌시켰다.​소율은 가만히 도현의 손을 뿌리쳤다.​"팀장님. 착각하지 마십시오."​소율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팀장님이 지금 보여주시는 그 어설픈 다정함이, 저한테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이고 실례입니다. 우리는 14일간의 위장 연애를 마치면 본래의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그리고 파리 지사 파견 절차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소율은 가방에서 정갈하게 봉투에 담긴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태성그룹 유럽 지사(파리) 발령 및 인사 이동 최종 신청서]​"계약 만료일인 14일 차 월요일이 되면, 약속대로 이 신청서에 최종 서명해 주십시오. 그게 제가 이번 위장 연애의 대가로 요구했던 유일한 조건입니다."​도현의 눈빛이 잘게 찢어발겨지는 듯 흔들렸다.​테이블 위에 놓인 그 파리 지사 파견 신청서. 그것은 소율이 자신을 향한 3년의 짝사랑을 깔끔하게 끊어내고 완벽하게 떠나겠다는 통보나 다름없었다.​"정말… 정말 가야겠습니까?"​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네. 가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 3년 동안 품어온… 아니, 제 커리어를 위한 가장 올바른 선택입니다."​소율은 '3년 동안 품어온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려다 황급히 고쳐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도현의 귀에는, 소율이 삼킨 그 진짜 말이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왔다.​도현은 가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낡은 만년필을 꽉 쥐었다.​자신이 소율에게 준 상처의 깊이가 너무나 깊었기에, 소율은 도현이 건네는 진심조차 믿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벽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계약 12일 차, 일요일 밤.​도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재에 앉아 소율이 내민 파리

  • 14일간의 계약 연애   16화

    ​소율의 책상에서 발견했던 오래된 포스트잇 메모와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3년 전 만년필.​그 작은 두 가지 소지품은 도현의 세계관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그가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3년의 오피스 라이프, 그 뒤편에서 한소율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숨죽여 눈물을 삼키고 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때, 도현의 가슴속에는 거대한 죄책감과 참을 수 없는 애정이 거세게 휘몰아쳤다.​'14일의 계약이 끝나면, 3년의 짝사랑을 미련 없이 태우고 파리로 떠나자.'​메모지 마지막 줄에 적혀 있던 그 문장은, 도현의 시계를 초조하게 재촉하는 시한부 카운트다운과도 같았다. 남아있는 시간은 불과 사흘. 소율이 진짜로 자신의 곁을 떠나기 전, 도현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계약 11일 차, 토요일 아침.​평소라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었지만, 도현은 아침 일찍 소율의 오피스텔 앞으로 직접 차를 끌고 찾아왔다.​소율은 집 앞 골목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도현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트렌치코트 차림의 도현은, 소율을 보자마자 환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회장님 앞이나 감시원들 앞이 아니면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오롯이 소율만을 향한 진짜 미소였다.​"팀장님? 주말에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회장님 쪽에서 또 연출 사진을 요구하셨습니까?"​소율의 첫마디는 여전히 '업무'와 '계약'이었다.​도현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계약이라는 감옥에 소율을 가둬두고, 그녀의 입에서 순수한 다정함이 나오는 것조차 막아버린 자신의 업보였다.​"아닙니다. 회장님 때문이 아니에요."​도현이 걸어와 소율의 손에 따뜻한 핫팩과 커피를 쥐여주었다. 도현의 손길은 더 이상 비즈니스용 연기처럼 과시적이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소율이 놀라 도망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애지중지하는 보물을 다루는 듯한 섬세함이 가득했다.​"오늘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그랬어요."​"네?

  • 14일간의 계약 연애   15화

    ​[202X년 X월 X일. TF팀 첫 출근 날.][차도현 팀장님께 처음으로 건네받은 만년필. 내 이름을 처음 불러주신 날.][닿지 않아도 좋은 사람. 이 마음은 이 필통 속에만 묻어두자.]​그 밑으로 지난 3년간의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들이 가끔 적혀 있었다.​[202X년 O월 O일. 팀장님이 건네주신 아메리카노. 오늘 처음으로 내 기안서가 통과되었다.][202X년 △월 △일. 독설 뒤에 팀원들을 챙기시는 따뜻함을 또 보았다. 욕심내지 말자. 그저 가장 완벽한 부하직원으로 곁에 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리고 가장 최근에 적힌, 눈물자국이 옅게 번져 있는 마지막 문장.​[계약 1일 차. 14일간의 가짜 연애.][나를 가장 사사로운 감정 없는 사람이라 믿고 제안한 그의 눈빛. 슬프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이 14일이 지나면, 3년의 짝사랑을 미련 없이 태우고 파리로 떠나자.]​스르륵-​메모지를 쥐고 있던 도현의 손가락에서 힘이 풀려나갔다.​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통째로 후려맞은 것 같은 지독한 충격이 도현의 온몸을 덮쳤다.​소율이 자신을 향해 보여주었던 그 완벽한 부하직원의 가면, 선을 긋는 단호함, 회장님 앞에서 내뱉었던 사소한 습관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주말 산책로와 펜트하우스에서 자신의 스친 손길에 떨던 그 모든 행동들의 실체가 단 한순간에 명확한 그림으로 완성되었다.​소율은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비즈니스 대행을 위해 조사한 것도 아니었다.​소율은 3년 동안.바로 그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도현을 홀로 짝사랑해 오고 있었다.​자신이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일절 품지 않을 가장 깔끔한 부하직원'이라며 자랑스럽게 계약 연애를 제안했던 바로 그 한소율이, 자신을 향한 사랑을 숨기기 위해 매 순간 피눈물을 흘리며 그 잔인한 계약서에 서명했던 것이었다.​"아…."​도현의 입에서 짓눌린 탄성이 새어 나왔다.​가슴 한구석이 칼로 베여나가는 듯 지독한 통증이 몰려왔다. 자신이 얼마나 거대하고 잔인한 짓을 저질렀

  • 14일간의 계약 연애   14화

    ​"말해요, 소율 씨.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던 겁니까?"​차 안을 짓누르던 도현의 낮고 조급한 음성은 여전히 소율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전날 밤 9일 차 본가 식사 자리 직후, 소율은 끝까지 "부하직원으로서 상사를 관찰한 것뿐"이라며 차갑게 선을 긋고 내렸다. 하지만 도현의 가슴속에 일어난 커다란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율이 보여준 그 눈빛과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섬세한 관찰력은,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의 영역을 완전히 뛰어넘어 있었다.​그리고 맞이한 금요일, 계약 10일 차.​사옥 18층 기획본부는 주말을 앞두고 유럽 신규 사업 이사회 제출 서류의 막바지 검토로 폭풍 전야와 같았다.​"팀장님, 3차 보완 데이터 출력물입니다. 유럽 파견 인력 배치안과 현지 법인 설립 예산서 함께 묶어 두었습니다."​소율이 정갈하게 정리된 두툼한 서류 봉투를 도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소율의 얼굴은 평소처럼 단정하고 침착했다. 어제 차 안에서 도현이 던진 날 선 추궁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완벽한 오피스 모드로 돌아와 있었다.​도현은 서류를 받아 들며 소율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부하직원으로서 상사를 관찰한 것뿐이다.'​소율은 그렇게 말했지만, 도현의 머릿속에는 회장님 앞에서 도현의 섭식 습관과 스트레스 반응, 심지어 독설 뒤에 숨겨진 진심까지 따뜻하게 대변하던 소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알겠습니다. 확인 후 부르죠. 한 대리, 오늘 야근입니까?"​"네, 팀장님. 현지 법률 검토 건으로 법무팀 서류 백업이 남아있습니다. 9시 전후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그래요. 수고해요."​소율은 깍듯하게 목인사를 건넨 뒤 팀장실을 나갔다.​오후 8시 40분.​사무실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TF팀 구역에는 소율의 자리에만 작은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소율은 잠시 법무팀에 최종 확인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도현은 팀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소율의 책상 위에는 다 쓴 서류

  • 14일간의 계약 연애   13화

    소율의 눈빛에는 회장을 속이려는 '연기자'의 긴장감이 없었다. 대신 그 눈동자 안에는 지독할 정도로 깊고 오래된 애정과 이해,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남자를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며 가슴속에 묵혀둔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 회장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파문이 일었다.회장은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 온 인물이었다. 지금 소율이 내뱉는 말들은 외워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상대를 오랫동안 깊은 애정으로 관찰하고 품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된 울림이었다.​이 회장은 묵직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도현이 너보다 네 속을 더 잘 아는 아이를 곁에 두었구나."​이 회장의 목소리에서 서슬 푸른 경계심이 거두어졌다.​"좋다. 네가 말했던 정략혼 거절의 명분, 받아들이마. 한 대리라고 했나. 앞으로 도현이를 잘 보살펴 주거라."​식사 자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계약의 가장 큰 목표였던 '회장님의 정략혼 압박 퇴치'가 완벽하게 달성된 것이다.​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밤하늘을 수놓은 도심의 불빛 사이로 도현의 세단이 조용히 달렸다.​차 안에는 밀도 높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운전석의 도현은 계속해서 룸미러와 옆시선을 통해 조수석의 소율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은 방금 전 한옥에서 있었던 소율의 말들로 인해 거센 지진이 일어난 듯 요동치고 있었다.​"한 대리…."​도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회장님 앞에서 했던 대답 말입니다."​소율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도현을 향했다.​"네, 팀장님. 회장님께서 의심하실까 봐 제가 조금 과하게 덧붙였습니다. 혹시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과하게 덧붙였다?"​도현이 차를 도로변 갓길에 세우고 시동을 껐다.​차 안이 완벽한 정적 속에 휩싸였다. 도현은 몸을 틀어 소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짙은 충격과 의구심,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뜨거운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내가

  • 14일간의 계약 연애   12화

    ​차에서 내린 도현은 시동을 끄고 조수석 문을 열어 소율을 맞이했다. 오늘 소율은 차분한 네이비톤의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지난 주말 도현과 함께 고른 과감한 스타일과는 달리, 어르신과의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격식 있고 단정한 차림새였다.​"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회장님이 무슨 무리한 질문을 하든 내가 다 커버할 테니까."​도현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소율의 손을 잡으려 했다.​스윽-​그러나 소율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고쳐 메는 척하며 도현의 손길을 피했다. 도현의 손이 공중에서 허무하게 멈췄다."……"​8일 차 아침의 메모 사건 이후, 소율은 도현과 철저히 업무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현의 가슴속에 씁쓸한 불꽃이 일었지만, 곧이어 본가 대문을 향해 나아갔다.​"들어가지."​대청마루를 지나 안내받은 프라이빗한 한식 연회장.방 안쪽 상석에는 태성그룹의 실권자, 이혜민 회장이 좌정하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했고, 오랫동안 대기업을 이끌어온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방 안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앉거라."​이 회장의 낮고 엄숙한 음성이 떨어졌다.도현과 소율은 나란히 맞은편 방석에 앉았다. 소율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븄다.​"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기획본부 TF팀 한소율 대리입니다."​이 회장의 예리한 시선이 소율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샅샅이 훑었다. 마치 신규 사업 기안서를 검토하는 심사위원의 눈빛이었다.​"한소율이라…. 도현이 곁에서 3년 동안 일했다고 들었다."​"네, 그렇습니다."​"도현이가 여자라고는 일밖에 모르는 위인인 줄 알았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제 부하직원과 연애질을 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나. 그것도 하필 내가 정략혼 맞선을 추진하려던 딱… 그 시점에 말이다."​이 회장의 비꼬는 어조 속에 뼈가 들어있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단 1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슬 푸른 경고였다.​도현이 상체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회장님, 그건…"​"네가 말하지 마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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