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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9 23:45:47

성수동 오피스텔 단지 골목에서 소율이 가슴팍에 내던지고 간 파리 지사 파견 승인서.

도현은 그 종이 쪼가리를 쥔 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손 끝이 벌벌 떨렸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호흡조차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았다.

'3년 동안 혼자 가슴 졸였던 제 어리석은 짝사랑도, 이번 14일 동안 완전히 다 정리했습니다.'

소율의 마지막 한마디가 도현의 뇌리를 송곳처럼 후벼팠다.

그녀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도현이라는 남자를 향해 혼자 가슴을 태웠고, 도현이 오만하게 건넸던 '14일간의 위장 연애'라는 비즈니스 제안을 제 마음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한 마지막 형벌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하… 하하."

도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조와 지독한 후회가 섞인 웃음이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그 비즈니스적 이성과 칼 같은 공사 구분. 그 모든 것이 한 여자의 진심을 짓밟고 파멸시키는 잔인한 단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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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21화

    찢겨진 종이 조각들이 눈 내리듯 소율의 발등 위로 처참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지난 14일 동안 소율의 목을 옥죄고 있던 족쇄가 박살 나는 소리이자, 3년의 짝사랑을 가둬두었던 견고한 유리벽이 깨져나가는 파열음이었다."팀장님!"소율이 놀라 소리쳤으나, 도현은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짓밟으며 소율에게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왔다."이딴 계약서 필요 없어. 한 대리, 아니 한소율."도현의 낮고 갈라진 음성이 소율의 귓가를 거세게 때렸다."넌 이게 3년 짝사랑의 정리였는지 몰라도… 난 이제 시작이야.""무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알았어."도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네가 3년 동안 날 어떻게 바라봤는지, 내 무심한 말 한마디에 얼마나 홀로 아파했는지… 네 책상에서 떨어진 메모지랑 그 낡은 만년필 보고 다 알았다고!"소율의 몸이 굳어버렸다.'노란 포스트잇 메모'와 '낡은 만년필.'도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단어들에 소율의 뇌리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3년 동안 기를 쓰고 숨겨온 제 가장 초라하고 서글픈 비밀을, 이 남자가 이미 모조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어떻게… 어떻게 그걸…."소율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수치심과 슬픔, 그리고 드러나 버린 진심에 대한 두려움이 소율의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들었다."죄송합니다… 팀장님을 괴롭히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 혼자만의 감정이었고… 그래서 이번 14일이 지나면 다 정리하고 떠나려고—""떠나긴 어디로 떠나!"도현이 소율의 두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었다.도현의 눈동자에서 맑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그늘진 뺨을 타고 떨어졌다. 오만하고 차가웠던 그 차도현이, 소율의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미안해, 소율아. 미안하다…."도현의 음성이 무너져 내렸다."3년 동안 네가 바로 옆에서 나를 향해 그런 눈빛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독하게 바보 같아서 그걸 단 한 번도 알아보지 못했어. 사사로운 감정 없는 부하직원이라니… 내가 너한

  • 14일간의 계약 연애   20화

    성수동 오피스텔 단지 골목에서 소율이 가슴팍에 내던지고 간 파리 지사 파견 승인서.도현은 그 종이 쪼가리를 쥔 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손 끝이 벌벌 떨렸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호흡조차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았다.'3년 동안 혼자 가슴 졸였던 제 어리석은 짝사랑도, 이번 14일 동안 완전히 다 정리했습니다.'소율의 마지막 한마디가 도현의 뇌리를 송곳처럼 후벼팠다.그녀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차도현이라는 남자를 향해 혼자 가슴을 태웠고, 도현이 오만하게 건넸던 '14일간의 위장 연애'라는 비즈니스 제안을 제 마음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한 마지막 형벌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하… 하하."도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조와 지독한 후회가 섞인 웃음이었다.자신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그 비즈니스적 이성과 칼 같은 공사 구분. 그 모든 것이 한 여자의 진심을 짓밟고 파멸시키는 잔인한 단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단 말인가."정리하긴 뭘 정리해, 한소율…."도현의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일었다. 이대로 소율을 파리로 보내고, 제 인생에서 그녀라는 존재를 지워버린다면 차도현이라는 인간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만했던 갑(甲)의 가면은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제 인생 단 하나의 사랑을 붙잡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된 한 남자뿐이었다.* * *같은 날 밤 10시, 소율의 오피스텔 안.거실 바닥에는 출국 준비를 위한 작은 캐리어가 펴져 있었고, 소율은 차분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오전 골목길에서 도현을 향해 던졌던 그 단단한 이별 통보. 마음을 완전히 정리했다고 말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나간 것 같은 서늘한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잘한 거야, 한소율. 더 이상 기대하지 마. 차 팀장님은 그저 순간적인 죄책감과 질투에 흔들렸을 뿐이야.'소율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주문을 걸며 캐리어 라인을 잠갔다. 이제 파리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남아있는

  • 14일간의 계약 연애   19화

    ​오전 8시.​오피스텔 공동 현관문이 열리고, 차분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차림의 소율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연차를 낸 날이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서류 가방과 작은 캐리어 하나가 쥐여 있었다.​도현은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한소율!"​거친 도현의 음성에 소율의 걸음이 멈춰 섰다.​소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밤새 차 안에서 지새운 듯 피곤함이 가득한 도현의 얼굴, 헝클어진 머리칼과 구겨진 슈트 차림. 언제나 오만하고 완벽하던 차도현 팀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러나 소율의 눈동자는 서늘할 정도로 덤덤했다. 이미 어제 13일 차에 모든 오해와 상처를 끌어안고 마음을 모질게 잘라낸 뒤였다.​"팀장님.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뭐 하냐고?"​도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소율의 앞으로 다가왔다. 압도적인 크기의 도현의 그림자가 소율을 덮쳤지만, 소율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어제 사무실에 남겨두고 간 그 메모와 서류는 대체 뭡니까? 왜 멋대로 오해하고 짐을 싸서 나오는 건데요!"​도현의 목소리에 초조함과 억울함이 번져 나왔다.​소율은 가만히 도현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려 차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현의 가슴을 서늘하게 베어내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이고 완벽한 미소였다.​"오해라니요, 팀장님. 제가 무슨 오해를 했다는 말씀이십니까?"​"1층 VIP 접견실! 어제 서연주 이사를 만난 건—"​"회장님께서 지정해 주신 정략혼 상대와의 자리였지 않습니까."​소율의 또렷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도현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팀장님. 저는 팀장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비난할 자격도, 이유도 없습니다. 당초 우리 계약의 목적은 회장님의 억지 맞선 압박을 피하기 위한 14일간의 위장 연애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14일 차, 계약 만료일입니다."​소율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계약 기간 동안 저는 팀장님의 애인 대행으로서 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회장님의 의심을 피했고, 커플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화

    ​한편, 주말 특근 서류 정리를 위해 잠시 1층 로비로 내려왔던 소율은, VIP 접견실 유리를 통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VIP 접견실 안.​고급스러운 소파 상석에는 이혜민 회장이 좌정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우아하게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미모의 여성—서연주 이사—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현이 접견실 안으로 들어서자, 서연주 이사가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아주었다.​약간 열린 접견실 문틈 사이로, 이 회장의 서늘하고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도현이 너, 지난번 본가에서 한 대리의 진심을 확인했으니 네 연애까지 방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연애와 태성그룹 후계자의 '결혼'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집안의 대사인 정략혼은 한성그룹 서 이사와 치러야 해."​뒤이어 앉아있던 서연주 이사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거들었다.​"맞아요, 차 팀장님. 저는 개의치 않아요. 능력 있는 남자 곁에 연애하는 여자 한둘쯤 있는 건 재벌가에서 흔한 일이죠. 한 대리님과의 관계는 결혼 전까지만 적당히 즐기시다 정리해 주세요. 그 정도 사생활은 얼마든지 눈감아드릴 수 있어요."​이 회장 역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서 이사 말이 맞다. 그게 너도, 한 대리도, 태성그룹도 모두 정돈되는 길이다."​그 대화들이 문틈 너머로 소율의 귀에 송곳처럼 파고들었다.​VIP 접견실 유리 너머로, 도현이 그 자리에 함께 앉아 회장님과 서연주 이사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소율의 피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가슴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아… 결국 회장님이 인정했던 건 가벼운 '연애'였을 뿐이구나. 그리고 차 팀장님도… 결국 재벌가의 정략혼을 피할 수 없어서, 나를 정리할거고...'​소율의 머릿속에서 잔인한 추론이 완성되었다.​도현이 지난 주말 동안 보여주었던 그 일방적인 다정함, "내 진짜 마음이야"라며 손을 잡아주던 그 따뜻한 온도, 그리고 눈빛에 서려 있던 낯선 열기까지.​그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이었단

  • 14일간의 계약 연애   17화

    소율은 이것이 도현의 진심이라 믿지 않았다. 그저 14일 동안 가짜 연애를 진행하며 순간적인 분위기와 착각에 휩싸인 차도현의 일시적인 이상 열증일 뿐이라고, 자신을 향한 깊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계약 파트너를 향한 최선의 '서비스'이자 착각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세뇌시켰다.​소율은 가만히 도현의 손을 뿌리쳤다.​"팀장님. 착각하지 마십시오."​소율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팀장님이 지금 보여주시는 그 어설픈 다정함이, 저한테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이고 실례입니다. 우리는 14일간의 위장 연애를 마치면 본래의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그리고 파리 지사 파견 절차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소율은 가방에서 정갈하게 봉투에 담긴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태성그룹 유럽 지사(파리) 발령 및 인사 이동 최종 신청서]​"계약 만료일인 14일 차 월요일이 되면, 약속대로 이 신청서에 최종 서명해 주십시오. 그게 제가 이번 위장 연애의 대가로 요구했던 유일한 조건입니다."​도현의 눈빛이 잘게 찢어발겨지는 듯 흔들렸다.​테이블 위에 놓인 그 파리 지사 파견 신청서. 그것은 소율이 자신을 향한 3년의 짝사랑을 깔끔하게 끊어내고 완벽하게 떠나겠다는 통보나 다름없었다.​"정말… 정말 가야겠습니까?"​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네. 가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 3년 동안 품어온… 아니, 제 커리어를 위한 가장 올바른 선택입니다."​소율은 '3년 동안 품어온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려다 황급히 고쳐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도현의 귀에는, 소율이 삼킨 그 진짜 말이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왔다.​도현은 가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낡은 만년필을 꽉 쥐었다.​자신이 소율에게 준 상처의 깊이가 너무나 깊었기에, 소율은 도현이 건네는 진심조차 믿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벽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계약 12일 차, 일요일 밤.​도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재에 앉아 소율이 내민 파리

  • 14일간의 계약 연애   16화

    ​소율의 책상에서 발견했던 오래된 포스트잇 메모와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3년 전 만년필.​그 작은 두 가지 소지품은 도현의 세계관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그가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3년의 오피스 라이프, 그 뒤편에서 한소율이라는 여자가 얼마나 숨죽여 눈물을 삼키고 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때, 도현의 가슴속에는 거대한 죄책감과 참을 수 없는 애정이 거세게 휘몰아쳤다.​'14일의 계약이 끝나면, 3년의 짝사랑을 미련 없이 태우고 파리로 떠나자.'​메모지 마지막 줄에 적혀 있던 그 문장은, 도현의 시계를 초조하게 재촉하는 시한부 카운트다운과도 같았다. 남아있는 시간은 불과 사흘. 소율이 진짜로 자신의 곁을 떠나기 전, 도현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계약 11일 차, 토요일 아침.​평소라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었지만, 도현은 아침 일찍 소율의 오피스텔 앞으로 직접 차를 끌고 찾아왔다.​소율은 집 앞 골목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도현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트렌치코트 차림의 도현은, 소율을 보자마자 환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회장님 앞이나 감시원들 앞이 아니면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오롯이 소율만을 향한 진짜 미소였다.​"팀장님? 주말에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회장님 쪽에서 또 연출 사진을 요구하셨습니까?"​소율의 첫마디는 여전히 '업무'와 '계약'이었다.​도현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계약이라는 감옥에 소율을 가둬두고, 그녀의 입에서 순수한 다정함이 나오는 것조차 막아버린 자신의 업보였다.​"아닙니다. 회장님 때문이 아니에요."​도현이 걸어와 소율의 손에 따뜻한 핫팩과 커피를 쥐여주었다. 도현의 손길은 더 이상 비즈니스용 연기처럼 과시적이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소율이 놀라 도망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애지중지하는 보물을 다루는 듯한 섬세함이 가득했다.​"오늘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그랬어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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