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밤 11시 50분.방송 종료까지 10분을 남겨 두고 주문 알림이 끊겼다.처음에는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1분, 2분이 지나도 숫자가 그대로이자 해나가 태블릿을 두드렸다."어? 댓글에는 주문하셨다는 분이 있는데 왜 안 올라오죠?"온라인 담당 직원이 판매 화면을 새로 열었다. 상품 사진 위에 회색 글자가 떠 있었다.[판매가 종료된 상품입니다.]"끝났다고 나와요!"직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송은 아직 진행 중이었고, 판매 페이지는 새벽 1시 50분까지 열어 두기로 설정했다. 그런데 종료 시각이 2시간 앞당겨진 밤 11시 50분으로 바뀌어 있었다.소율은 카메라를 먼저 봤다. 시청자들은 화면 너머에서 결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유를 묻고 있었다."방송은 계속합니다."그녀가 해나에게 태블릿을 건넸다."지역 주문 채널 번호를 화면에 띄워 주세요. 상품과 수량, 연락처를 먼저 받고 임시 결제 회선으로 개별 링크를 보내겠습니다.""네! 바로 올릴게요.""차 과장님은 종료 시각을 바꾼 기록과 복구 가능 시간을 확인해 주세요.""확인하겠습니다."도현은 온라인 담당자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마우스를 잡기 전에 직원에게 화면을 그대로 촬영하게 했다."새로 고침하지 마십시오. 현재 화면과 시각부터 남겨야 합니다."권재필이 다가왔다."접속자가 몰려 생긴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전화 주문까지 받으면 중복 결제가 생길 텐데, 일단 방송을 멈추고 시스템부터 확인하는 편이...""오류 가능성도 확인하겠습니다."소율은 그의 말에 중단해야 할 이유부터 분명히 했다."다만 상품의 안전 문제는 없고, 주문 기록은 별도로 나눌 수 있어요. 지금 멈추면 기다리는 고객부터 놓칩니다."그녀가 포장실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전화 주문은 노란 주문표, 온라인에서 이미 결제된 건 흰 주문표로 구분해 주세요. 같은 번호가 나오면 포장 전에 다시 확인합니다."준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조합 방송 계정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여기 화면이 끊기면 보던 사람들도
밤 9시 40분.첫날 주문은 84상자까지 올라갔다. 직원들은 다음 날 출고할 상자를 포장실에 쌓았고, 생산자들은 아침 촬영 시간에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소율은 촬영실에 남아 주문 지역을 확인했다. 도현은 맞은편에서 계산표를 정리하다가 열린 문 쪽을 한번 봤다.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관사에서 얼굴 보기도 어렵겠네."둘만 들을 수 있는 사적인 말투였다. 소율도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남편을 봤다."48시간이 먼저잖아요.""알아. 그래서 참고 있잖아."도현이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소율은 그 뜻을 알아보고 제 손을 얹었다. 낮 동안 가까이 있어도 잡지 못했던 손이었다.그는 차갑게 식은 아내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완판하면 48시간 동안 못 한 것까지 다 받아낼 거야."말뜻을 바로 알아들은 소율의 입가가 올라갔다. 판매를 끝낸 뒤에는 남편으로 돌아오겠다는 예고였다."후훗. 아직 216상자 남았어요, 차 과장님.""나도 계산 잘해.""그럼 더 열심히 파셔야겠네요."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떨어졌다. 해나가 촬영 일정표를 들고 들어왔을 때는 한 차장과 차 과장이 각자 화면만 보고 있었다.해나는 두 사람 사이를 한번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얼씨구? 내가 없을 때만 아주 빠르시네.'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또 자기 할 일이 늘어날 것 같았다. 그녀는 모른 척 일정표를 소율 앞에 내려놓았다.다음 날 아침부터 짧은 방송이 이어졌다.박정임 사장은 못난이 채소로 반찬 3가지를 만들었다. 준호는 생산자별 이름표를 상자에 넣었고, 해나는 지역 식당과 군청 게시판, 관광객 단체방까지 판매 영상을 보냈다. 도현은 주문 지역을 묶어 배송차량의 빈 공간을 채웠다.화요일 오후 6시, 판매 수량은 132상자였다.절반에 가까워졌지만 남은 물량은 168상자였다. 14시간 안에 지금까지 판 것보다 더 많이 팔아야 했다.준호는 현황판 앞에서 팔짱을 꼈다."처음보다는 낫습니다. 그
아삭.마이크에 씹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어갔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이를 키운 농부가 카메라 밖에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거봐요. 내가 멀쩡하다 했잖소.""어르신, 목소리만 나오셨어요. 얼굴도 보여 드릴까요?""어허! 거시기 오이만 가까이 잡으라니까!"댓글창에 웃음 표시가 빠르게 늘었다. 소율은 완성된 상자를 저울 위에 올렸다. 화면에 무게가 보이도록 카메라를 낮추고, 검수 직원이 외관과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까지 그대로 보여 줬다."모양은 달라도 상자마다 받는 무게는 같습니다. 오늘 확인한 상품만 포장하고, 상태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여기서 제외합니다."준호도 옆 상자를 열어 토마토를 하나씩 보여 줬다."어느 농장에서 왔는지 상자 안쪽 카드에 적겠습니다. 조리하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조합으로 바로 연락 주세요."그때 태블릿에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띠링!해나가 화면을 내려다봤다. 집밥 상자 첫 주문이 들어와 있었다."주문 들어왔어요! 첫 상자요!"오이를 키운 농부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쳤다.짝!박수를 친 뒤에는 민망했는지 급히 모자를 고쳐 썼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웃음까지 감추지는 못했다.곧 두 번째 알림이 울렸다.띠링! 띠링!차갑던 댓글 사이에 조리법을 묻는 질문과 주문 완료 표시가 섞이기 시작했다.방송은 곧바로 폭발하지 않았다.첫 주문 뒤에도 숫자는 한동안 3에서 멈췄고, 다시 7까지 올라가는 데 10분이 걸렸다. 생산자들은 주문 알림이 울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가, 조용해지면 손에 든 상품을 괜히 다시 닦았다.소율은 조급하게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어떤 질문에서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답을 생산자에게 넘겼다."소스 상자는 토마토가 너무 익어서 배송 중 터지지 않느냐는 질문이에요."토마토를 가져온 여성이 한 알을 손바닥에 올렸다."손가락으로 눌러 보세요. 물렁한 건 여기서 빼고 있어요. 집에 받으시면 절반은 바로 소스 끓이시고, 단단한 건 서늘한 데 두셨다가 드시면 돼요."처음에는 카
해나는 두 사람이 건넨 메모를 읽었다.– 3분만 주세요. 보완해서 다시 보내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통화가 끊기자 해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빠진 숫자를 채우고 소율의 승인 서명과 도현의 계산표를 첨부했다. 전송 버튼을 누를 때까지 정확히 2분 41초가 걸렸다.잠시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보완본 확인했습니다. 장비 임대와 임시 결제 회선 모두 승인했습니다. 장비는 인근 협력업체에서 오전 11시까지 도착합니다.해나가 화면의 시계를 확인했다. 승인 요청을 다시 보낸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다.– 벌써요?– 필요한 숫자가 모두 들어왔으니까요.– ...김 실장님, 말은 되게 답답하게 하시는데 일은 빠르시네요.전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소리가 잠깐 멎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네. 그렇게 들으세요. 감사합니다.해나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까다로운 본사 고참을 상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일 처리가 빨라 화를 오래 낼 수도 없었다.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김선우가 해담지사 보완 요청을 승인 목록 맨 위에 올렸다. 그는 3분도 안 돼 서류를 완성한 윤 대리를 떠올렸다. 목소리는 급했지만 현장 경력이 꽤 오래된 직원 같았다.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자신과 동갑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오전 11시가 되자 이동식 카메라와 조명이 도착했다. 해나는 지역 상인 2명까지 데려왔다. 박정임 사장은 도마를 내려놓자마자 굽은 오이를 집어 들었다."이 정도 휜 걸로 못 판다고? 칼은 직선만 자르는 물건이 아닌데."준호가 작게 웃었고, 오이를 가져온 농부는 입꼬리를 누르느라 고개를 돌렸다.소율은 준비한 진행 원고를 접었다.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상품을 설명하는 것보다, 지금 나온 한마디가 훨씬 살아 있었다."제가 앞에서 설명하려던 계획은 바꿀게요."그녀가 생산자들을 촬영대 앞으로 불렀다."오늘 주인공은 물건을 키운 분들입니다. 저는 필요한 질문만 드릴게요. 왜 이런 모양이 됐는지, 집에서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직접 말씀해 주세
"외관 기준에서 빠진 이유를 공개하고, 구성과 판매처를 분리해야 합니다. 정규 납품 상품과 경쟁하지 않게 한정 수량으로 끝내겠습니다."소율은 그의 계산표를 본 뒤 상자 옆에 새 종이를 붙였다.[해담 못난이 한 상자]글씨를 읽은 농부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저기... 그래도 못난이는 좀 그렇지 않소? 휘었어도 맛은 멀쩡한데..."그 말에 해나도 종이를 다시 봤다. 이름이 눈에는 잘 들어왔지만, 물건을 키운 사람에게는 속상하게 들릴 수 있었다.소율은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그래서 생산자분들의 설명이 필요해요. 못난이라는 말을 흠을 감추는 이름으로 쓰지 않겠습니다. 매장 규격에는 맞지 않았지만 맛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상자마다 밝힐게요. 그래도 싫으시면 다른 이름을 찾겠습니다."농부가 구부러진 오이를 한 번 내려다봤다."흠... 이름을 숨기자는 건 아니고... 누가 왜 이렇게 생겼냐고 물으면 그건 내가 말은 할 수 있지.""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비 많이 온 다음 날 갑자기 컸다고. 생긴 건 굽었어도 썰어 놓으면 똑같다고 해야지."해나가 얼른 종이 아래에 받아 적었다.[비 온 뒤 급하게 자란 오이. 얇게 썰어 냉국과 무침에 사용하세요.]농부가 문장을 읽더니 헛기침했다. 조금 전보다 어깨가 펴졌다."그 정도면 됐네. 얼굴은 가까이 잡지 마시오.""하하, 네. 오이부터 가까이 잡을게요."해나가 웃으며 대답하자 주변의 굳은 분위기도 조금 풀렸다.소율은 상품을 3가지로 나눴다. 채소를 묶은 집밥 상자, 토마토 중심의 소스 상자, 건조 수산물을 담은 바다 상자였다. 무게를 기준으로 구성해 크기가 달라도 소비자가 받는 양은 같게 맞췄다.도현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각 상자의 가격 하한선을 적었다. 생산자에게 돌아갈 금액을 먼저 고정하고 포장비와 결제 수수료를 더했다. 배송비를 포함해도 손실이 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이 나왔다."이 아래로는 내릴 수 없습니다."도현이 계산표를 소율 앞으로 돌렸다."대신 2상자를 함께 주문하면 같은 지
"48시간 안에 이 물량을 다 팔지 못하면, 저희 조합은 태성과 거래를 끊겠습니다."툭.강준호가 반품 예정표를 접이식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 휴대전화의 타이머를 48시간에 맞춰 소율 앞에 세웠다.월요일 오전 8시 3분.해담지사 입고장 앞에는 트럭 4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주에 왔던 생산자들뿐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도 여럿이었다. 구부러진 오이, 크기가 제각각인 토마토, 끝이 갈라진 당근이 투명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바다 쪽 생산자들이 가져온 마른 미역과 반건조 멸치도 포장 규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고를 기다리고 있었다.물건의 상태보다 생산자들의 얼굴이 먼저 굳어 있었다.허리가 굽은 농부가 오이 하나를 들어 보였다."이게 상했습니까? 조금 휘었다고 창고에서 다시 빼라는데, 계속 이러면 밭을 갈아엎는 게 낫지."옆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이 토마토 상자를 끌어안았다. 꼭지를 직접 따 온 사람답게 손끝에 초록물이 배어 있었다."토요일에 장 열어 주신 건 고맙죠. 그런데 하루 팔고 또 원래대로 돌아가면 우리도 더 못 버텨요."지난 수요일, 준호는 지사가 달라지는지 1주일만 더 보겠다고 했다. 그 기한이 끝나는 수요일 아침까지 이제 48시간 남았다. 오늘 가져온 물량은 그동안 반품 통보를 받았거나 대형 매장 출고에서 빠진 상품들이었다.소율은 타이머보다 먼저 상자들을 봤다."전체 수량부터 확인할게요."해나가 들고 있던 목록을 펼쳤다."전부 300상자예요. 채소와 토마토가 220상자, 건조 수산물이 80상자요. 상해서 돌아온 건 빼고, 모양이나 크기 때문에 출고 보류된 것만 다시 모았어요.""제가 상태를 같이 확인하겠습니다."준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확인만 하다가 이틀 다 보내지는 마십시오."말이 거칠었지만 목소리 끝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준호 뒤에 선 생산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팔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하고, 또 실패하면 지사와 거래를 이어 갈 이유도 사라졌다.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오전 중에 상품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