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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지우려는 온도

작가: 안나
last update 게시일: 2026-08-15 18:01:19

친구인 재혁과 무거운 술자리를 마치고 헤어진 민성은 곧바로 자신의 집으로 차를 돌리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묘한 허전함과 지혜를 향한 복잡한 감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재혁의 충고대로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서늘한 공백을 견딜 수 없었던 민성은 결국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지금… 뭐 해?"

"어머, 민성 씨?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혜진의 목소리는 반가움으로 젖어 있었다. 평소 두 사람이 필요할 때만 가볍게 만나 몸을 섞던, 깊은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관계였다.

"지금 갈게."

짧은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은 민성은 곧장 혜진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도착한 민성을 맞이한 혜진은 오랜만의 방문에 기분이 좋은 듯, 평소보다 훨씬 짙은 향수를 뿌리고 아슬아슬한 슬립 차림으로 그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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