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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꼬미 요괴
허서령은 진심으로 겁이 났다.

지난번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텔에서도 허서령에게 키스를 퍼부었던 지강산이었다.

지금은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인 데다가 아파트 복도에 인적도 끊겼다. 지강산이 또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강산 씨도 여기에 올 줄은 몰랐어요.”

허서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현관문에 몸을 바짝 붙였다. 당장이라도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칠 기세였다.

“강산 씨 눈앞에 일부러 나타난 게 아니에요.”

지강산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말없이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걸어가더니 피우던 담배를 비벼 꺼서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린 그때 허서령을 돌아보며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안 가?”

허서령이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다가갔다.

‘다시 미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날 기다렸던 거야?’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강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지강산의 키가 훤칠했고 짧게 자른 머리가 아주 깔끔했으며 뒤통수마저 참 예뻤다. 그리고 어깨가 넓고 허리가 좁은 데다가 몸매까지 다부져서 옷을 입으면 날씬하고 맵시가 있어 보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예전의 허서령은 지강산이 요리를 할 때마다 몰래 백허그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의 넓은 등에 얼굴을 파묻으면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다.

그럴 때면 지강산이 웃으며 묻곤 했다.

“이렇게 매달려 있으면 요리를 어떻게 해?”

허서령이 애교를 부렸다.

“손은 안 잡았잖아요. 강산 씨는 요리해요. 난 이렇게 안고 있을 테니까.”

“네 몸이 얼마나 말랑거리는지 잊었어? 자꾸 이러면 나 속이 근질거려서 밥이 아니라 널 먹고 싶어져.”

“요리나 해요.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지강산이 농담으로 끝내는 법이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허서령을 번쩍 들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앉힌 다음 ‘처벌’을 내리곤 했다. 만족할 만큼 그녀를 탐한 뒤에야 기진맥진한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다시 식사 준비를 했다.

예전에는 이토록 달콤했었는데 추억하는 지금은 쓰디쓰기만 했다.

허서령이 더는 지강산의 뒷모습을 보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후에도 두 사람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나란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강산의 차가 아파트 단지에 세워져 있었는데 허서령이 그의 차 옆을 그냥 지나가려 했다.

“타.”

뒤에서 들려온 지강산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허서령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지강산이 운전석 문을 잡고 서서 차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서령을 쳐다보는 얼굴이 무표정했고 눈빛이 서늘했으며 목소리에도 그 어떤 온기가 섞여 있지 않았다.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고마워요.”

허서령은 여전히 그가 두려웠다.

“타라고.”

그의 말투가 조금 더 세졌다.

“정말 괜찮아요. 난...”

“세 번 말하게 하지 마.”

허서령이 멍하니 선 채 의아한 눈빛으로 지강산을 쳐다봤다.

‘무슨 뜻이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지강산이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안전벨트를 한 뒤 허서령이 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허서령도 잘 알고 있었다. 지강산이 그녀를 아무리 미워하고 혐오한대도 그가 좋은 남자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강산의 성품과 교양이라면 새벽 두 시가 넘은 심야에 여자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더 망설이지 않고 뒷좌석 쪽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당겼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힘껏 당겨보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지강산이 조수석 쪽으로 몸을 숙이더니 팔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웠다.

허서령은 열린 조수석 문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체념한 듯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비좁은 차 안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 차 안을 감도는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허서령이 좋아하던 향이자 지강산도 즐겨 쓰던 향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허서령이 안절부절못했다. 지강산의 체취가 그녀를 휘감은 듯한 기분에 가슴이 요동쳤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차 안의 불이 꺼지고 지강산이 시동을 걸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그가 내비게이션을 클릭하며 짧게 말했다.

“주소.”

“아...”

허서령이 손을 뻗어 화면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지강산이 화면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가는 내내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잔인할 만큼 더디게 흘렀다. 허서령에게 1분 1초가 고문과도 같았다.

차마 지강산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창밖의 야경만 내다봤다. 심장이 계속 쿵쾅거렸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공기마저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았다.

5년 만에 다시 앉게 된 그의 조수석이 이토록 가시방석 같을 줄은 미처 몰랐다.

예전에 지강산이 수업을 마친 허서령을 데리러 갈 때마다 늘 요구르트 같은 간식거리를 사 가곤 했다.

깔끔한 성격의 지강산이었지만 허서령이 차 안을 어질러 놓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차 안에서 간식을 먹으며 지강산에게 먹여주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허서령이 주는 거라면 독약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40분 후 차가 울심시 외곽인 낡은 3층짜리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

주변의 가로등이 무척 어두웠고 골목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다 왔어요. 고마워요.”

허서령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지강산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차에서 내려 차 앞을 돌아 허서령에게 다가가더니 낡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살아?”

순간 움찔한 허서령은 대답하지 않고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누런 가로등 불빛이 지강산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췄다. 안색이 말이 아니게 굳어졌고 약간의 분노도 섞여 있었다.

가슴에 돌덩이가 막힌 듯 가슴이 답답해진 그가 무거운 숨을 내쉰 뒤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허서령, 이게 네가 말하던 행복한 삶이었어?”

허서령은 갑자기 마음이 저렸다. 지강산이 뒤이어 어떤 말을 쏟아낼지 짐작한 듯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속상할까 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강산이 빠르게 뒤따라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다시 끌어당겼다.

지강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허서령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마음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버려져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는 기분이었다.

“허서령, 너 이거밖에 안 되는 여자였어?”

지강산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

“고작 이렇게 살려고 그때 날 배신하고 그 남자를 따라갔던 거야? 그 남자는 어디에 있어? 널 실컷 가지고 놀다가 버리기라도 한 거야?”

“이거 놔요.”

허서령이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목구멍이 칼날에 베인 것처럼 아려와 말을 잇기 힘들었다.

사실 그녀는 무척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과거 명문대 금융학과를 졸업하고 제산시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훌륭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허서령이었으나 지금은 공익 변호사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았다. 게다가 거액의 빚까지 짊어진 채 외곽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단했다.

예전에 헤어질 때 내뱉었던 변명들이 이제 고스란히 되돌아와 허서령을 힘들게 했다. 자업자득이라 울 자격조차 없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면서 밀려온 고통에 온몸이 다 떨렸다.

“제발 나 좀 놔줘요.”

지강산이 대놓고 비웃었다.

“그 남자 그래도 재벌 2세는 된다고 들었는데 그 남자한테서 아무런 이득도 못 챙긴 거야?”

허서령이 손목을 빼내려 애를 썼지만 지강산이 꽉 잡고 있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손목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눈을 감자 눈물이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두컴컴한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수척한 얼굴을 비추었다. 연민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강산은 허서령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턱을 잡고 강제로 들어 올린 다음 또박또박 말했다.

“5년이야. 이 예쁜 얼굴이랑 몸매로 마음만 먹으면 돈 많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나서 팔자를 고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다가 이 꼴이 됐어?”

허서령이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나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산 씨, 날 모욕하면 화가 조금이라도 풀려요?”

지강산이 코웃음을 쳤다. 희미한 불빛이 그의 차가운 얼굴에 드리워졌고 짧은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붉게 충혈된 눈을 가렸다.

그가 허서령의 옷깃을 잡아챘다. 분노가 치솟아 짙은 증오심을 담아 말했다.

“나랑 자면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차도 줄게.”

극도로 분노한 나머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려 허서령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허서령의 흰 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옷이 벌어지면서 하얀 어깨와 글래머한 가슴이 절반 드러났고 하얀 속옷이 살짝 보였다.

지강산의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주먹을 꽉 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허서령은 더 이상 저항할 기력조차 없었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돼버렸고 영혼이라도 잃은 듯 공허한 눈빛으로 지강산을 쳐다봤다.

“필요 없어요.”

지강산이 허서령을 놓아주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중얼거렸다.

“한심한 놈.”

이건 자신에게 하는 욕이었다.

그 말이 허서령의 귀에 유독 날카롭게 박혔다.

지강산의 얼굴이 섬뜩할 정도로 험악해졌다.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탄 뒤 차 문을 세게 닫고 가장 빠른 속도로 휙 가버렸다.

허름한 골목이 다시 깊은 정적에 잠겼고 어두운 밤에 쓸쓸함이 더해졌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허서령이 휘청거렸다. 눈물 젖은 눈으로 멀어지는 지강산의 차를 바라보면서 흐트러진 옷깃을 바로잡았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지강산을 만난 이후 정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이제 어디로 숨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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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요. 우빈 오빠.”황급히 호칭을 고친 지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김우빈은 맞은편에 앉았다.두 사람도 자리에 앉았다. 혜원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대표님, 오늘 찾아뵌 건 광고 협찬에 관해 상의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구체적으로는...”“그건 진 이사와 이야기하시면 됩니다.”김우빈이 말을 끊었다.“진 이사님이요?”김우빈은 휴대전화를 꺼내 업무용 메신저로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 내려놓았다.“이런 업무는 내가 직접 맡지 않아요. 진 이사가 와서 이야기할 겁니다.”혜원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팔꿈치로 지은영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마침 물을 마시던 지은영은 잔을 쏟을 뻔하다 겨우 물잔을 바로 잡고 혜원을 바라봤다.혜원이 눈짓했다.지은영도 뜻은 알았다. 하지만 김우빈이 협찬 업무는 진 이사 소관이라고 분명히 말했으니 옆구리를 찌른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김우빈은 예리한 눈으로 혜원의 행동을 보더니 지은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은영은 난감한 표정으로 혜원에게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의 작은 행동까지 모두 김우빈에게 보였다.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때 진 이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정중하게 인사했다.김우빈은 혜원을 데리고 가 사무실에서 협찬 업무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혜원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진 이사를 따라갔다. 지은영도 따라 일어서려는 순간 김우빈이 불렀다.“은영아, 넌 남아.”지은영은 긴장한 채 멈춰 서서 나가는 혜원을 보았다가 다시 김우빈을 바라봤다.“우빈 오빠, 무슨 할 말 있어요?”“업무 협상하러 가는 건데 네가 따라가 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어?”김우빈이 물었다.지은영은 할 말을 잃었다.김우빈이 손짓하며 자리를 권했다.“다시 앉아. 너랑 할 얘기가 있어.”지은영은 얌전히 돌아와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아주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넓은 대표실에 김우빈과 단둘이 남자 지은영은 더 긴장됐다. 몸이 굳고 압박감이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727화

    안내 데스크 직원도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김우빈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였다.혜원 옆을 지나려는 순간, 혜원이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김우빈은 혜원을 그대로 지나쳤다. 시선은 오직 지은영에게 고정돼 있었다.지은영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우빈을 바라봤다. 차갑고 고고하면서도 침착하고 날카로운 분위기, 마치 김우빈이 나타나는 순간 모든 상황이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지은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은영아.”가까이 온 김우빈이 먼저 인사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숨결에는 묘한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여긴 어떻게 왔어?”“혜원 언니랑 광고 협찬 때문에 왔어요.”지은영이 멋쩍게 말했다.“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그냥 업무대로 처리하면 돼요. 저 때문에 신경 쓰실 필요는...”은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혜원이 급하게 끼어들어 지은영의 앞을 가로막고 김우빈에게 공손히 인사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 지은영이가 말한 혜원이 접니다. 그냥 혜원이라고 불러 주세요.”김우빈은 혜원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지은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내 사무실로 올라가서 얘기하자.”“네, 대표님!”혜원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나 두 사람이 먼저 가도록 길을 비켰다.지은영은 아까 벗어 놓았던 배낭을 손에 들고 있었다. 촬영 장비와 개인 물건이 많이 들어 있어 제법 무거웠다.옆에서 걷던 김우빈이 배낭끈에 손을 뻗었다.“내가 들게.”“괜찮아요.”지은영은 황급히 거절했다. 하지만 김우빈의 따뜻한 손이 이미 지은영의 손등에 닿으며 배낭끈을 잡았다.손바닥이 스치는 순간 지은영은 괜히 긴장하며 깜짝 놀라 손을 빼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가방을 내주었다.그러자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부하 직원 여러 명이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7화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고 세상의 색채가 빛을 잃어가는 가운데 오직 지강산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연한 블루 반팔 셔츠에 블랙 바지 차림의 지강산이 청량하면서도 멋진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평범한 출근룩이었음에도 조각 같은 이목구비, 탄탄한 몸매와 훤칠한 키 덕분에 우아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그가 깊고 어두운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허서령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휩싸였다.소유하가 슬리퍼를 가져와 지강산의 앞에 놓으며 살갑게 굴었다.“오빠, 신발 갈아 신어.”하지만 지강산은 아무 반응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6화

    다음 날.업무를 마친 허서령이 휴대폰을 들어 심인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인혜야, 깼어?][어, 깼어.][시욱 씨랑은 어떻게 됐어?][얘기 잘 끝냈어. 시욱 씨가 양보하기로 해서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해.][미안해서 어떡하지? 지금 손에 엄청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거든. 다음 달에 출장 가야 할 것 같아. 들러리 못 서줄 것 같은데...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양쪽의 비주얼 담당 두 사람이 다 못 온다고? 둘이 짰어?][그게 무슨 소리야?][지강산 씨도 일이 생겨서 못 온대.]지강산 역시 허서령을 만나고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4화

    병원 안.허서령이 수납을 마치고 영수증을 챙겨 병원을 나섰다. 그때 진성호가 뒤쫓아와 허서령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거 생각해 봤어?”허서령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진성호의 손을 뿌리치며 째려봤다.“미친놈.”진성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허서령, 나한테 시집오면 배상금 1억 6천만 원을 주지 않아도 돼. 우리 아버지 병원비도 낼 필요 없고. 게다가 너의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은행에서 1억 원 대출받아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3화

    지강산이 몸부림치는 허서령의 손목을 잡고 머리 위 벽에 고정시킨 뒤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키스를 퍼부었다.참아왔던 눈물이 허서령의 감긴 눈꺼풀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지강산은 멈출 기색이 전혀 없었다.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허서령이 그의 아랫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윽.”날카로운 통증에 지강산이 입술을 뗐다.허서령이 기억하는 지강산은 언제나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이토록 사납게 구는 건 분명 그녀를 뼛속 깊이 증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생각에 허서령은 심장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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