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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꼬미 요괴
병원 안.

허서령이 수납을 마치고 영수증을 챙겨 병원을 나섰다. 그때 진성호가 뒤쫓아와 허서령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거 생각해 봤어?”

허서령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진성호의 손을 뿌리치며 째려봤다.

“미친놈.”

진성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

“허서령, 나한테 시집오면 배상금 1억 6천만 원을 주지 않아도 돼. 우리 아버지 병원비도 낼 필요 없고. 게다가 너의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은행에서 1억 원 대출받아 예물로 줄게. 우리 두 집안끼리 얽힌 지긋지긋한 악연도 이걸로 다 끝내는 거야.”

허서령은 진성호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발걸음을 옮기자 진성호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다시 허서령의 팔을 잡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네 엄마도 동의했는데 대체 언제까지 콧대를 세울 거야?”

허서령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럼 우리 엄마랑 결혼하든가.”

화가 난 진성호가 입을 파르르 떨었다. 허서령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듯 눈빛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그녀의 뒷머리를 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내가 널 눈여겨본 걸 너의 복인 줄 알아야지.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으니까 거절도 적당히 해. 그때 가서 감당 못 하겠다고 울지 말고.”

더러운 손이 뒷머리에 닿은 순간 헛구역질이 밀려왔다. 허서령이 그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은 법치 사회야.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썩게 할 수도 있어.”

“흥. 법으로 날 협박할 생각 하지 마.”

진성호가 콧방귀를 뀌며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

“너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진 빚을 딸인 네가 몸으로 갚는 게 뭐가 어때서? 지극히 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허서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무죄야.”

반드시 재심을 청구하여 진실을 밝힐 생각이었다. 배상금은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고 이미 지불한 병원비도 전부 돌려받을 것이다. 5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기에 법원에도 배상을 청구하리라 마음먹었다.

진성호가 대놓고 비웃었다.

“22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아직도 무죄 타령이야?”

허서령이 진성호의 손을 힘껏 밀쳐냈다.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뒤에서 진성호의 분노 섞인 고함이 울려 퍼졌다.

“허서령, 넌 내 거야. 절대 도망 못 가.”

귀가 오염된 것 같은 불쾌감에 허서령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법도 모르는 무식한 인간을 상대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

일주일 뒤 새벽 한 시.

깊은 잠에 빠졌던 허서령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아 화면을 밀어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서령아, 나 결혼 안 해. 엉엉... 백시욱이랑 헤어질 거야...”

휴대폰 너머로 술에 취한 심인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순식간에 깬 허서령이 벌떡 일어나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디야? 술 마셨어?”

결혼식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이었다. 혼인신고를 마쳤고 청첩장도 다 돌렸다. 웨딩 촬영, 식장 예약까지 다 끝낸 마당에 파혼이라니. 무슨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허서령이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 어디야?”

“밤의 온도.”

“거기서 기다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지금 바로 갈게.”

허서령이 서둘러 옷장을 열어 옷을 꺼내 입었다.

그녀가 숨 가쁘게 달려간 술집의 룸 안에 백시욱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만취한 상태로 2m 정도 거리를 둔 채 소파 양 끝에 주저앉아 있었다.

“서령아...”

허서령을 본 심인혜가 울면서 손을 내밀었다. 술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눈물범벅이었고 아직도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 이 사람이랑 끝낼 거야. 제발 나 좀 데려가 줘. 다시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허서령이 가방을 내려놓고 심인혜의 옆에 앉아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너무 감정적으로 굴지 말고 일단 술 깨고 나서 다시 얘기해.”

그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백시욱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지강산, 왔어?”

그 소리에 허서령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고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의 지강산이 차갑고 고귀한 아우라를 풍기며 서 있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두 눈이 허서령에게 머물러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허서령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고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주 그에게 강제로 입맞춤 당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지강산의 입술 상처는 아물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가슴 속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백시욱이 휘청거리며 지강산에게 기대자 지강산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인혜가 나랑 헤어지겠대.”

그가 심인혜를 가리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이 여자 진짜 양심도 없지 않냐?”

하지만 지강산의 시선은 심인혜가 아니라 허서령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서늘한 눈빛에 허서령은 마음이 씁쓸해졌다.

“맞아. 양심이 없어.”

지강산의 목소리가 지극히 낮고 무거웠으며 한겨울 서리처럼 차가웠다.

허서령이 켕기는 게 있는 듯 지강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심인혜를 부축해 일으키며 그녀와 심인혜의 가방을 챙겼다.

“인혜야, 집에 가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심인혜를 부축한 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탔다.

“인혜야, 너의 엄마 집으로 데려다줄게.”

허서령이 심인혜를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넘겼다. 엄마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소리에 심인혜가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싫어. 엄마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속상해하실 거란 말이야.”

“그럼 우리 집으로 가.”

“아니야. 네가 쉬는 데 방해돼. 그냥 신혼집으로 데려다줘.”

“하지만 시욱 씨도 그리로 갈 텐데. 밤에 또 싸우면 어쩌려고.”

심인혜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분노를 쏟아냈다.

“그 사람은 아직 젖도 못 뗀 애야. 엄마 집으로 돌아가라, 신혼집엔 절대 못 들어와.”

허서령이 두 사람이 싸운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산 백시욱과 달리 심인혜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공주처럼 자랐기에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그런 그녀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 절대 동의할 리가 없었다.

결국 허서령은 심인혜를 그들의 신혼집에 데려다주었다. 아파트가 편안하면서도 아늑했다.

집으로 들어가 심인혜를 침대에 눕히고 신발과 양말을 벗겨주었다. 그다음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정성스레 화장을 지워준 뒤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머리맡에 숙취해소제와 내일 아침에 신을 슬리퍼까지 챙겨놓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허서령이 급히 방 밖으로 나갔다. 지강산이 인사불성이 된 백시욱을 부축해 들어오고 있었다.

지강산은 백시욱을 소파에 던지고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친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허서령이 황급히 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고 긴장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던 지강산의 경고가 떠올랐다.

잠시 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허서령은 한참을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가 밖이 완전히 조용해진 뒤에야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다.

지강산이 이미 떠나고 없었다.

소파에 널브러진 백시욱을 보고 있자니 가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자들은 참 무심하단 말이야. 집까지 데려다줬으면 이불이라도 좀 덮어주고 가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허서령이 이불장에서 이불을 꺼내 백시욱에게 덮어주었다.

시간이 어느덧 새벽 두 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허서령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문이 닫힌 순간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는 놀란 나머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등이 현관문에 부딪혔다. 허둥지둥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문이 이미 굳게 잠겨 있었다. 도망갈 길이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고 숨도 가빠왔으며 긴장감에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지강산이 현관문 앞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로 허서령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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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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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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