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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작가: 꼬미 요괴

제1화

작가: 꼬미 요괴
지강산과 함께한 4년은 허서령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별 후 허서령은 5년을 울며 보냈다.

매일같이 눈물을 쏟은 건 아니었지만 지강산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속에 장마라도 진 것처럼 축축하고 눅눅한 비가 내렸고 이내 눈시울도 뜨겁게 젖어 들곤 했다.

살면서 지강산을 다시 마주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시욱이 주선한 술자리.

떠들썩한 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석에 이끌리듯 허서령의 시선이 익숙한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 해일이라도 밀려온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주변의 소음이 멀어지고 지강산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이트 셔츠에 블랙 바지 차림의 지강산이 여전히 귀공자 같은 우아함을 풍기고 있었고 거기에 서늘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조각 같은 옆모습이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지강산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싱그러운 소년미를 풍기며 따스하고 햇살처럼 밝게 웃어주던 소년이 눈앞에 나타났다. 허서령을 품에 안고 어리광을 부리던 게 마치 어제 있었던 일 같았다.

“서령아, 뽀뽀해줘.”

하지만 어제가 아니라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젠 전생의 일처럼 아득했다.

허서령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저릿한 통증이 번졌다. 어느새 눈시울도 붉어졌다. 도저히 지강산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주춤거리던 허서령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룸을 나가려 했다.

“서령 씨.”

백시욱이 허서령을 불러 세웠다.

“오자마자 왜 그냥 가요?”

허서령이 멈칫하더니 문고리를 꽉 잡았다.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허서령에게 쏠렸다. 오직 지강산만 예외였다. 휴대폰 화면을 넘기던 엄지손가락이 잠깐 멈칫했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서령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첫사랑과의 재회가 너무나 당혹스럽고 민망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다시는 안 볼 각오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헤어졌다.

“빨리 들어와요. 인혜도 곧 도착한대요.”

백시욱이 허서령을 재촉했다.

심인혜와 허서령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절친이었다. 지난달 소개팅으로 만난 백시욱과 첫눈에 반해 초고속으로 연애를 시작하더니 결혼 날짜까지 다음 달 중순으로 잡아버렸다.

오늘 이 자리는 백시욱과 심인혜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미리 안면을 트고 결혼식 축하 공연도 상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심인혜의 계획은 들러리들이 춤을 추고 신랑 신부가 무대에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면 이런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허서령이 한참 동안 마음을 다잡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백시욱이 반갑게 맞이했다. 손을 허서령의 등 뒤로 뻗긴 했지만 닿지는 않았다. 매너 있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허서령을 여자들 쪽 빈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지강산의 옆자리에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바로 지강산의 소꿉친구 소유하였다.

지강산과 연애하던 시절에도 소유하는 늘 허서령에게 적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었다.

소유하의 눈빛이 지금도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허서령을 향한 혐오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아니, 시욱 오빠, 아무 쓰레기나 들러리로 세워도 되는 거야?”

그 한마디에 룸 안에 정적이 흘렀다. 백시욱조차 당황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이토록 듣기 거북한 말이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소유하에게 쏠렸다.

허서령도 소유하가 그녀를 욕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난감한 얼굴로 지강산을 쳐다봤다.

하지만 지강산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남의 일인 것처럼 휴대폰만 응시하고 있었다.

지강산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턱선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조명이 그의 짧은 머리끝에 걸려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서늘함을 내뿜었다.

참다못한 한 여자가 불쾌해하며 나서서 한마디 했다.

“지금 누구한테 하는 소리예요?”

그러자 소유하가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

“내가 누구를 말하는지 허서령은 알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허서령에게 향했다.

허서령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거들먹거리거나 티를 내지 않았고 깊은 골짜기에 피어난 은방울꽃처럼 단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리고 검고 부드러운 긴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묶었다. 공익 변호사인 그녀는 다정하고 선량해 보였으며 욕심이 없는 듯한 차분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허서령을 아는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허서령의 내면과 겉모습이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를.

사람들은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길래 만나자마자 ‘쓰레기’라고 욕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모욕을 당했다면 허서령이 화를 내거나 반격하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소유하가 지강산을 대신하여 이러는 걸 알고 있었기에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강산에게 있어서 허서령은 쓰레기 같은 존재였다.

백시욱이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썼다.

“아, 원래 알던 사이였구나. 서령 씨는 우리 예비 와이프의 제일 친한 친구야. 예전에 무슨 원한이 있었든 오늘은 내 체면을 봐서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화해하면 안 될까?”

소유하가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쟤랑 원한 같은 거 없어. 저런 걸레 같은 여자를 알지도 못하고. 강산 오빠가 쟤한테 원한이 있으니까 오빠한테 물어봐. 화해할 수 있는지.”

‘걸레 같은 여자?’

관계가 점점 복잡해졌다. 난감해진 백시욱이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

“강산아, 서령 씨랑 아는 사이였어?”

사실 그가 묻고 싶었던 건 허서령에게 차였냐는 질문이었다.

허서령이 테이블 아래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지강산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그 몇 초가 수능 시험을 치를 때보다 더 긴장됐다.

공기가 희박해진 듯 숨이 막혀왔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온몸을 조여왔다.

이름이 불린 이상 지강산도 더는 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느긋느긋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허서령을 쳐다봤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 안에 알 수 없는 소외감이 서려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지강산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온기라곤 전혀 없었다.

그 한마디가 허서령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실망감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지강산과 시선이 마주친 그때 허서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주먹을 꽉 쥐고 서둘러 고개를 떨구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허서령은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들 눈치 빠른 성인이라 감정과 표정만 봐도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시욱이 정적을 깼다.

“오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줄 친구들을 이 자리에 부른 건 서로 친해지게 하기 위해서야. 빨리 친해지려면 게임만 한 게 없지. 밥 먹기 전에 게임이나 한판 할까?”

젊은 사람들끼리 빨리 친해지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진실 게임이 최고였다.

“나부터 시작할게...”

백시욱이 빈 술병을 테이블 중앙에 놓고 힘차게 돌렸다.

허서령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이 술병이 지강산을 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회전하던 술병이 서서히 멈췄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술병이 지강산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와, 지강산이 걸렸어. 진실을 말하는 거랑 벌칙 중에 뭘 선택할 거야?”

지강산의 표정이 차분하기만 했다. 남들 앞에서 속마음을 드러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벌칙.”

백시욱이 쪽지를 하나 뽑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종이 한 장 사이에 두고 여기에 있는 여자 한 명이랑 2분 동안 키스하기.”

지강산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허서령이 허벅지 위의 바지춤을 꽉 움켜쥐었다. 하도 꽉 쥐어서 손가락 마디가 다 하얘졌고 가슴에 씁쓸함이 번졌다.

이곳에 남아서 이런 꼴을 당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극에 달했다.

그때 소유하가 환하게 웃으며 티슈 한 장을 뽑아 들었다.

“다들 포기해. 강산 오빠는 나랑 할 거니까.”

그러고는 입술 위에 티슈를 갖다 대고 지강산 쪽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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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지강산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더니 단숨에 비워냈다.뽑은 벌칙 대신 술을 택했다. 그 누구와도 키스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유하가 티슈를 던지면서 씩씩거렸다.“재미없어, 정말. 뭐가 부끄럽다고 그래?”지강산이 한숨을 무겁게 내뱉으며 술기운을 눌러 내렸다.게임이 계속되었다. 술병이 여러 번 돌고 돌아 마침내 허서령의 차례가 왔다. 그녀는 벌칙이 지나칠까 봐 두렵기도 했고 술을 이길 자신도 없었다.“진실을 말하는 걸 선택할게요.”그러자 소유하가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7화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고 세상의 색채가 빛을 잃어가는 가운데 오직 지강산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연한 블루 반팔 셔츠에 블랙 바지 차림의 지강산이 청량하면서도 멋진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평범한 출근룩이었음에도 조각 같은 이목구비, 탄탄한 몸매와 훤칠한 키 덕분에 우아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그가 깊고 어두운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허서령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휩싸였다.소유하가 슬리퍼를 가져와 지강산의 앞에 놓으며 살갑게 굴었다.“오빠, 신발 갈아 신어.”하지만 지강산은 아무 반응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6화

    다음 날.업무를 마친 허서령이 휴대폰을 들어 심인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인혜야, 깼어?][어, 깼어.][시욱 씨랑은 어떻게 됐어?][얘기 잘 끝냈어. 시욱 씨가 양보하기로 해서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해.][미안해서 어떡하지? 지금 손에 엄청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거든. 다음 달에 출장 가야 할 것 같아. 들러리 못 서줄 것 같은데... 이번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양쪽의 비주얼 담당 두 사람이 다 못 온다고? 둘이 짰어?][그게 무슨 소리야?][지강산 씨도 일이 생겨서 못 온대.]지강산 역시 허서령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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