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작가: 꼬미 요괴
지강산이 몸부림치는 허서령의 손목을 잡고 머리 위 벽에 고정시킨 뒤 이성을 잃은 맹수처럼 키스를 퍼부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허서령의 감긴 눈꺼풀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지강산은 멈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허서령이 그의 아랫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윽.”

날카로운 통증에 지강산이 입술을 뗐다.

허서령이 기억하는 지강산은 언제나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사납게 구는 건 분명 그녀를 뼛속 깊이 증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생각에 허서령은 심장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지강산이 허서령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계속 짓눌렀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

“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영원히 사라졌어야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지강산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허서령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허서령이 울컥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간결하게 답했다.

오직 그녀만 알고 있었다. 지강산이 그녀의 세상에서 단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너무 눈부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남은 생이 외로워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문득 알 것만 같았다.

지강산이 허서령을 놓아주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깨물린 입술을 쓱 닦아냈다. 그러고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돌아서서 비상계단을 나갔다.

허서령이 맥없이 벽을 타고 주저앉았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고 입술 위에 지강산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다시 한번 심장이 부서져 내리는 고통에 한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비상계단에서 마음을 추스른 뒤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내고 휴대폰을 꺼내 심인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갈게. 미안한데 내 가방 좀 퀵으로 보내줘.]

메시지를 보낸 후 벽을 짚고 일어나 고개를 들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더는 지강산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인혜에게서 답장이 왔다.

[잘했어, 서령아. 지강산의 입술이 터진 거 봤어. 아주 격렬했나 본데? 잘했어.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는 건드려선 안 돼.]

허서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텅 빈 것 같은 허망함을 안은 채 쓸쓸히 호텔을 떠났다.

...

밤이 깊어서야 모임이 끝이 났다.

한산한 대로변 위 노란 가로등 불빛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지강산의 어두운 얼굴을 비췄다.

그의 입술에 생긴 상처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술을 마시지 않은 소유하가 운전대를 잡았다. 핸들을 꽉 쥔 그녀의 손가락 끝에 서슬 퍼런 분노가 서려 있었다.

소유하가 지강산의 입술을 힐끗 보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울심이 얼마나 큰데 하필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나다니.”

지강산이 고개를 돌려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의 풍경을 내다봤다. 소유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소유하가 뜨끔했다.

“시욱 오빠한테 오빠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어.”

지강산이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내 친구들 모임에 억지로 끼어들려 하지 마.”

“오빠, 허서령이 그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인 걸 알고 일부러 온 거야?”

짜증이 난 지강산이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소유하가 말을 이어갔다.

“허서령 걔 오빠를 배신하고 떠난 년이야. 설마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 다시 잘해볼 생각인 건 아니지?”

지강산이 차갑게 말했다.

“서령이가 나한테 어떻게 했든 그건 내 일이야. 네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던 소유하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빠는 왜 아직도 걔 편을 들어? 그때 걔가 오빠한테...”

지강산이 말을 가로챘다.

“입 좀 다물래?”

그 말에 소유하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소유하는 지강산이 허서령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당시 지강산이 울면서 무릎을 꿇었었고 이성을 잃고 무너졌었다.

허서령을 붙잡기 위해 늦가을 찬 바람이 불던 제산시의 빗속에서 일곱 시간을 꼬박 서 있다가 결국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가기까지 했다.

허서령이 세상에서 가장 모진 말들을 쏟아내며 밀어내도 지강산은 계속 미친 듯이 매달렸었다.

결국 대학교 졸업 후 허서령이 모든 연락처를 바꾸고 제산시를 떠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지독했던 인연도 마침표를 찍었다.

...

“서령아, 우리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자.”

“뭐가 그렇게 급해요?”

“사회에 나가면 유혹이 너무 많아. 우리 이쁜 서령이를 탐내는 놈들이 얼마나 많겠어.”

“걱정하지 말아요. 평생 강산 씨만 사랑할 거니까.”

“사랑한다면 나랑 결혼해줘. 마음을 놓게.”

“그래요. 졸업하면 바로 결혼해요.”

“결혼식은 어디서 하고 싶어?”

“난 바다가 좋아요. 햇살이 쬐는 모래사장 같은 곳에서 하고 싶어요.”

“네가 좋아하는 거면 나도 다 좋아. 그럼 우리 바닷가에서 결혼식 올리자.”

시끄러운 벨 소리에 허서령이 꿈에서 깨어났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가느다란 햇살이 어두컴컴한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눈가가 축축한 걸 보니 또 과거의 꿈을 꾼 모양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진성호의 이름이 떴다. 허서령은 그 이름만 봐도 생리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간 뒤 잠기운을 억눌렀다.

“병원비 낼 때가 됐으니까 얼른 병원으로 와.”

진성호의 말투가 무척이나 강압적이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다음 휴대폰을 던지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5년 전 허서령의 아버지가 진성호의 아버지 진병철을 때려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누명을 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증거와 증언이 아버지를 향했다. 게다가 사건 전날 아버지가 진병철과 크게 다투며 이런 폭언을 퍼부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내일 네놈의 목숨줄을 끊어버릴 거야.”

명확한 살인 동기로 인해 아버지는 결국 22년형과 1억 6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진병철의 치료비도 전부 부담해야 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와 달리 진병철은 동네에서 악명이 자자한 건달이었다. 허서령은 아버지가 무죄라는 것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허서령은 변호사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새로운 증거를 수집했다.

허서령은 반드시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리라 다짐했다.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30화

    동거 첫날.어쩔 수 없이 어색함이 감돌았다.허서령은 방에 틀어박혀 사건 자료를 보고, 맞은편 건물의 이은경을 관찰했다.해 질 무렵, 이은경이 중년 남성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두 사람은 거실에서 포옹하고 키스하더니 곧바로 커튼을 닫았다.허서령은 놀랐다.‘이은경은 도대체 몇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진성호가 집에 들어와 보면 어쩌려고?’똑똑.노크 소리에 허서령은 생각에서 깨어나 급히 망원경을 서랍에 넣고 문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에요?”“저녁을 좀 많이 했는데 같이 먹을래?”허서령은 휴대폰을 확인했다.늘 바빠서 끼니를 놓치기 일쑤였는데, 벌써 6시였다.“네.”허서령은 휴대폰을 들고나와 식탁에 앉았다.지강산 맞은편 자리였다.식탁에는 세 가지 반찬과 국 하나가 놓여 있었다.소고기 달걀 볶음, 생선찜, 야채볶음, 갈비탕, 그리고 이미 담아놓은 밥 두 그릇.이렇게 제대로 된 집밥을 먹는 건 5년 만이었다.마지막은 태풍 오던 날, 지강산 집에서였다.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지강산은 젓가락으로 소고기를 집어 그녀의 밥그릇에 올려줬다.허서령은 당황했다.“제가 할게요.”지강산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밥을 먹기 시작했다.허서령은 젓가락을 들지 못한 채 말했다.“이거 얼마 들었어요? 반씩 낼게요.”지강산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한 만 원쯤.”“그보다 더 들었을 것 같은데요?”허서령은 가격을 잘 몰라도 소고기, 생선, 갈비가 싸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럼 얼마라고 생각해?”지강산이 담담하게 물었다.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일단 만 원 줄게요. 그리고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필요 없어. 식기세척기 있어.”허서령은 돈을 송금하고 말했다.“그럼 제가 그릇 정리하고 식탁 닦을게요.”“응.”지강산은 그녀가 보낸 돈을 확인하고 받았다.돈을 내고 나니 허서령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했다.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9화

    마지막에는 서명과 지장까지 찍는, 법적 효력을 갖춘 계약서였다.지강산은 물병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다 읽은 뒤, 펜을 들어 이름을 적고 준비된 인주에 손가락을 찍어 지장을 남겼다.그때 허서령이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고개를 들다가 그의 눈과 마주치더니 순간 멍해졌다.혼자 살던 집에 전 남자친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슬리퍼를 갈아 신고 물었다.“서명했어요?”“했어.”지강산은 휴대폰을 꺼냈다.허서령은 내려다봤다.“이건 뭐예요?”“계약서에 상호 협조, 비용 분담 의무 있잖아. 연락처 없으면 돈은 어떻게 보내려고?”동거라면 연락처 교환은 필수였다.비 오는 날 빨래 거두기, 가스 확인, 월세 송금 등, 연락할 일이 많았다.허서령은 잠시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꺼내 그의 친구신청을 수락했다.친구 추가 후, 전화번호도 보냈다.지강산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잠시 말이 없었다.마치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허서령이 말했다.“이번 달 월세는 이미 인혜한테 줬어요. 다음 달부터 강산 씨한테 드릴게요.”“그래.”그는 휴대폰을 넣고 물었다.“짐 도와줄까?”“괜찮아요.”허서령은 짐을 나눠 들고 하나는 방으로, 하나는 부엌으로 옮겼다.지강산도 부엌으로 따라 들어왔다.“점심 먹었어?”“네. 밖에서 족발 덮밥 먹고 왔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방금 일어난 거예요?”지강산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허서령은 봉투를 뒤적이다가 내일 아침으로 사 온 영양죽 한 캔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먹을래요?”지강산은 그녀 손에 들린 영양죽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요리를 잘 못 하는 허서령은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배달이나 간편식으로 때우는 모습이 떠올라 왠지 씁쓸했다.그는 받아들었다.“고마워. 나중에 두 개로 갚을게.”“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먹어요.”허서령은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8화

    두 사람은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백시욱은 얼른 심인혜를 안고 달랬다.“미안해. 자기야.”심인혜는 밀어내며 말했다.“꺼져. 이혼 안 하면 개야.”백시욱은 진지하게 말했다.“멍멍.”심인혜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곧 다시 울적해졌다.“서령이한테 너무 미안해. 우리가 이혼으로 압박해서 양보하게 만든 거잖아...”백시욱은 억울한 얼굴이었다.“우리도 어쩔 수 없잖아. 둘 다 고집이 세서 누구도 안 물러나는데.”심인혜가 말했다.“서령이는 아버지 사건 조사 때문에 여기 사는 거야. 범인이 맞은편에 있으니까. 그런데 지강산 씨는 왜 그렇게까지 안 나가려고 하는 거지?”백시욱은 고개를 갸웃했다.“그러게... 원래 지강산은 점잖고 예의 바르고, 사람 대하는 태도도 좋고 품위 있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어.”심인혜는 한숨을 쉬었다.“됐어. 이제 해결됐으니까 우리 가정법원 갈까?”“자기야, 그만 놀려. 나 심장 약해.”심인혜는 미소 지었다.백시욱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집 가서 더 자자.”...희미한 아침 햇살이 구름타워를 금빛 안개처럼 감쌌다.7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단지 안은 푸른색으로 가득했다.전 남자친구와 동거?허서령은 몇백 년은 고민해야 할 선택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거만 꺼내지 않는다면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었다.지강산은 소파에 기대 두 팔과 다리를 벌린 채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밤을 새운 데다 비행까지 하고 와서 피곤한 듯했다.허서령은 작은 소파에 앉아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말했다.“강산 씨가 반년 치 월세 냈으니까 앞으로는 제 몫이랑 공과금은 강산 씨한테 줄게요.”“그래.”“같이 사는 거니까 규칙 정해야 해요.”“마음대로 해.”“추가할 거 있어요?”“없어.”허서령은 잠시 침묵했다.거실은 고요했다.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그녀는 어쩔 줄 몰라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한참 후, 지강산이 일어났다.“나 방에 가서 좀 잘게.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7화

    “안 가요.”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이건 단순한 거주 문제도, 가격 문제도 아니었다.이곳에 사는 건 진성호의 어머니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사실 반년 전부터 이 동네로 이사 오고 싶었지만, 비싼 월세와 부족한 매물 때문에 미뤄왔던 계획이었다.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게다가 지강산 집 맞은편에는 소유하가 살고 있었다.계속 마주친다면 그것도 큰 스트레스였다.지강산은 휴대폰을 꺼내 채팅 기록을 열어 보여줬다.“너 변호사잖아. 문자나 송금 기록도 법적 효력 있는 거 알지?”허서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강산이 말했다.“이 집은 반달 전에 내가 먼저 들어와서 살았고, 반년 치 월세도 냈어. 뭐든 선후가 있는 거야. 지금 네가 억지로 뺏는 거야.”허서령은 숨을 고르며 후드 끈을 만지작거렸다.조금은 찔리는 표정이었다.“이 집은 심인혜 소유예요. 저는 집주인이랑 직접 계약했으니 더 합법적이고 정식적인 거예요. 싸운다면... 제가 질 것 같진 않아요.”지강산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머리를 손으로 받친 채, 피곤하고 골치 아픈 듯한 표정이었다.허서령은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부탁했다.“강산 씨... 저 진짜 이 집 필요해요. 강산 씨는 돈도 집도 부족하지 않잖아요. 회사에서도 숙소 제공되고요. 손해는 제가 보상해줄게요. 더 좋은 집도 찾아줄게요. 그러니까 강산 씨가 나가주면 안 될까요?”지강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깊고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로 한참을 보다가, 담담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안 돼.”“그래요. 얘기가 안 통하니까 집주인 올 때까지 기다리죠.”허서령은 힘없이 소파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심인혜에게 빨리 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30분 후, 심인혜와 백시욱이 도착했다.두 사람은 다투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심인혜는 왜 반달 전에 집을 세를 주고도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며 계속 화를 냈고, 백시욱은 바빠서 잊었다며 연신 사과했다.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거실은 아수라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6화

    구름타워.허서령은 주말을 쪼개 혼자 이사를 했다.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온몸이 부서질 듯 피곤했던 그녀는 샤워하고 곧바로 잠들었다.비몽사몽 사이, 집 밖에서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생긴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새벽 5시 30분.도둑이 활동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허서령은 긴장과 불안 속에 얇은 겉옷을 걸치고, 가방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었다.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다가갔다.문에 귀를 대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놀라 두 걸음 물러났다.‘도둑이 문을 두드린다고? 이렇게 대담하게? 혹시 심인혜일까?’심장이 빠르게 뛰며 손에 땀이 났다.그녀는 전기충격기를 꽉 쥐고 외쳤다.“누구세요?”“잠깐 나와.”문밖에서 들려온 건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였다.부드럽고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는 지강산 같았다.허서령은 믿기지 않았다.“누구세요? 어떻게 제집에 들어온 거예요? 경찰에 신고했어요. 당장 가세요!”“나 지강산이야. 나와서 얘기 좀 하자.”이번에는 확실했다.문 밖의 남자는 지강산이었다.허서령은 멍해진 채 전기충격기를 내려놓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심인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너머의 심인혜는 아직 잠에 취해 짜증이 가득했다.“뭐야... 지금 새벽 다섯 시 반이야... 우리 남편도 안 깨웠는데 네 전화 때문에 깼어...”허서령은 불안하게 말했다.“지강산이 지금 내 방 문 앞에 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내가 어떻게 알아! 가서 본인한테 물어봐!”“네 집이잖아, 너도 몰라?”심인혜는 반쯤 잠든 상태로 소리쳤다.“자기야! 지강산이 왜 구름타워 집에 있어?”멀리서 백시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참, 말하려던 거 깜빡했네... 반달 전에 그 집 지강산한테 세 줬어. 반년 치 월세 한 번에 받았고.”“헐...”심인혜는 완전히 잠에서 깨고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말했다.“서령아, 큰일났어. 반달 전에 우리 남편이 그 집을 지강산한테

  •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제25화

    지강산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울음보다 더 보기 힘든 미소를 지은 채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에는 실망이 타오르고 있었다.그는 단호하게 돌아서서 소파를 지나며 재킷과 넥타이를 집어 들고 집을 나갔다.허서령은 힘없이 벽에 기대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심장이 도려내진 듯했고, 숨이 막힐 것처럼 아팠다.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참고 있었지만, 눈물은 무너진 둑처럼 쏟아졌다.벽을 따라 주저앉아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입을 막고 있어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목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시야는 눈물로 흐려졌고, 얼굴과 손등은 흠뻑 젖었다.‘아파... 너무 아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미안해요. 강산 씨... 미안해요...’...11월, 울심시에 폭우가 쏟아졌다.바닷가에 가까운 이 지역은 마침내 첫 한기를 맞았다.기온 18도, 습하고 차가운 공기, 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들어 이가 덜덜 떨렸다.며칠 전, 허서령은 집주인에게서 통보를 받았다.재개발로 인해 보름 안에 이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원래도 일이 바쁜 그녀에게 이 통보는 완전히 날벼락이었다.주말에 심인혜를 만나 이사 이야기를 꺼냈고, 심인혜는 탁자를 치며 호쾌하게 말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 나 구름타워에 투룸 하나 더 있어. 거기 가서 살아. 월세 안 받을게.”구름타워는 백시욱이 심인혜에게 결혼 전 선물로 준 것으로, 심인혜 개인 소유였다.그 공증은 허서령이 맡아 처리했었다.허서령은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100㎡가 넘는 꽤 넓은 집이었고,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아늑했다.무엇보다 방 창문 밖으로 진성호의 집이 보인다는 점이 중요했다.이 점이 허서령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인혜야, 비어 있다면 나한테 임대해줘. 앞으로 조사하기에도 편할 것 같아.”심인혜는 그제야 떠올랐다.“진성호가 바로 맞은편 동에 사는데, 그 사람이 너한테 들러붙을까 봐 안 무서워?”허서령은 단호하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