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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물한 살의 이서하를 되찾다

Autor: 복순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28 14:32:41

룸 문이 등 뒤에서 닫히자, 시끌벅적한 소리와 악의에 찬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이서하는 복도 끝에 서서 차가운 벽을 짚었다. 온몸에 남은 오래된 흉터가 쑤시듯 아파 왔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비참한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가엾을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 강신혁이 뒤따라 나와 주기를. 자신의 손을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한마디만 해 주기를.

“딩.”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천천히 닫혔다. 그 안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는 죽은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 결혼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는 더 이상 그녀와 함께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오직 혼자 걸어가야 했다.

룸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했다.

권나영은 때맞춰 한숨을 내쉬며 강신혁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다들 이제 그만해. 서하 언니 얘기 때문에 신혁 오빠 기분까지 상하면 어떡해. 혹시 서하 언니가 집에 가서도 화나 있으면 오빠가 나한테 전화해. 내가 가서 사과할게.”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강신혁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다.

“그렇게 화낼 사람도 아니야. 오늘 밤 집에 가면 혼자 알아서 기분 풀겠지.”

김태호가 히죽 웃으며 강신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영아, 넌 정말 너무 착하다니까! 그때 네가 외국으로 나가지만 않았어도 저 여자가 강 사모님 자리를 차지할 일은 없었잖아. 신혁아, 안 그래?”

권나영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일부러 몸을 피했다.

“다들 그만 놀려. 신혁 오빠는 이미 결혼했잖아…… 난 이번에 돌아오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그저 다시 여러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나영아, 무슨 소리야! 넌 영원히 우리 공주님이야. 그렇지, 신혁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신혁에게 쏠렸다.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이 감돌았다. 사람들이 계속 장난스럽게 부추기자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영을 대할 때 늘 그랬듯 너그럽고 다정한 말투였다.

“됐어, 그만들 놀려. 나영이부터 어서 밥 먹게 해.”

한편, 이서하는 홀로 청담동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그녀는 비참한 현실을 깨달았다. 화려한 서울에서, ‘강 사모님’이라는 이름만 걸린 차갑고 거대한 저택을 제외하면 자신에게는 돌아갈 곳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죽어도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난 6년 동안 자신을 가두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던 감옥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호텔에 방을 하나 잡았다.

문이 닫히자, 오는 내내 억눌러 왔던 감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두 팔로 무릎을 꼭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머릿속에서는 김태호가 자신의 절뚝거리는 걸음을 흉내 내며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던 모습과, 귀를 찌르던 역겨운 웃음소리가 번갈아 떠올랐다.

사실 강신혁의 친구들이 뒤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신혁이 친구들 사이에서 난처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지난 6년 동안 그녀는 모든 억울함과 모욕을 꾹꾹 삼켰다. 듣지 못한 척,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버텨 왔다.

그녀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흐느꼈다. 그리고 아주 작고 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서하아...”

스물한 살의 눈부시던 자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자부심과 당당함으로 가득했던 이서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낸 그녀는 손끝으로 화면을 쓸어 내려, 6년 동안 감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앨범, 비밀번호로 잠가 둔 그 앨범을 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기도 했고, 연습실에서 땀에 흠뻑 젖은 채로도 눈동자만은 반짝이고 있었다.

스물한 살의 이서하만이 가지고 있던 그 빛이 눈을 찌르는 듯 아팠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를 구한 일을 그녀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흉터를 내세워 강신혁에게 책임지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청혼을 사랑의 시작이라고 착각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의 다정함을 자신에게 마음이 생겼다는 신호라고 믿은 것도 그녀의 잘못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받았던 온갖 조롱과 냉대, 경멸은 거대한 산처럼 그녀를 짓눌렀다.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피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서하, 이제 그만하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가에 남은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힘껏 닦아 냈다.

벽을 짚고 욕실로 들어간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창백하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하지만 눈빛만큼은 조금씩 차갑고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서하야, 이제 그만 울어. 오늘 밤은 푹 쉬고, 유학 갈 준비를 해…… 그리고 스물한 살의 이서하를 되찾는 거야.”

지난 6년 동안 그녀는 언젠가 강신혁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게 될 날을 위해 매일 필사적으로 영어와 쇼 기획을 공부했다. 그날이 오면 적어도 그에게 망신을 주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신혁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그녀를 데리고 나간 적이 없었다. 심지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저 그가 일이 너무 바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직접 네 시간 동안 푹 고아 낸 따뜻한 국을 보온 용기에 담아 한성그룹 본사로 찾아갔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우연히 협력사 대표가 농담조로 강신혁에게 묻는 말을 듣게 되었다.

“강 대표님, 매일 이렇게 밤늦게까지 일하시면 집에 계신 미인 사모님이 서운해하지 않으세요? 부부 생활도 중요한 법인데요.”

강신혁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이 서류 위를 긁으며 날카롭고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그는 아주 담담하면서도 잔인한 어조로 대답했다.

“저도 노력은 해 봤습니다만, 그 사람 몸의 흉터에 손이 닿는 순간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더군요.”

그 말은 심장을 깊숙이 꿰뚫는 독침과도 같았다. 그날 이후 매일 밤, 그 한마디가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 댔다.

거울 앞에 선 이서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세게 쥐었다. 밀려오는 통증이 그녀를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이제는 이 결혼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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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11. 당신을 구한 대가

    강신혁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이서하의 손목을 와락 붙잡았다.“너는 나영이 좀 본받으면 안 돼? 네가 나영이를 밀쳐서 다쳤잖아. 그런데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 어딜 가겠다는 거야?”“놔.”“먼저 나영이한테 사과해.”그는 고집스럽게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마치 이서하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눈앞의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나영이가 다쳤는데 사과 한마디도 못 하겠어? 네 꼴을 좀 봐! 나영이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거야? 왜 맨날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데?”이서하는 문득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남자를 바라보았다.6년 전, 그녀는 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 뒤로는 그날의 사고를 입에 올리지 않고, 몸에 남은 흉터를 내세워 그에게 무언가를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그가 이 결혼을 부담스럽게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심지어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좋은 점을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바로 지금, 그녀는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그저 자신 혼자만의 일방적인 바람이었다는 것을.다른 여자를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강신혁을 바라보던 이서하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끝내 접었다.“강신혁.”그녀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강신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가 계속 변명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하지만 이서하는 그저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후회해.”강신혁은 순간 멈칫했다.“뭐?”“널 구한 걸 후회해.”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예전에는 네 목숨을 구하다가 다쳤어도, 몸에 이런 흉터가 남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난 한 번도 이 흉터로 널 붙잡아 두려 한 적 없어. 네가 내게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로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10. 그의 품 안의 사모님

    이서하는 휴대폰에 뜬 메시지를 못 본 척했다. 최 감독과 여유롭게 개인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음 주 리허설 현장에 가서 돕기로 약속까지 마친 뒤에야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넸다.1층 로비를 막 나서자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이서하가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던 순간, 물빛 푸른 그림자가 한발 앞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권나영이 하이힐을 신고 다가왔다. 얼굴에는 어느새 억울하고 가련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서하의 팔을 붙잡더니, 듣기만 해도 역겨울 만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서하 언니, 아까 안에서는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그랬어요. 화내지 마세요…… 신혁 오빠도 탓하지 마시고요. 오빠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권나영은 이서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그룹 사업에 지장이 갈까 봐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부부인 걸 그냥 묵인한 거고요…… 언니는 이해해 주실 거죠, 서하 언니?”말하는 동안 권나영은 별생각 없다는 듯 치맛자락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무심코” 이서하의 옷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울퉁불퉁한 흉터를 스쳤다.순간, 구역질 나는 혐오감이 신경을 타고 터져 나왔다. 이서하는 속이 격하게 뒤집혔고, 눈빛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심마저 바닥났다.“손대지 마!”이서하는 차갑게 팔을 뿌리쳤다. 본능적으로 권나영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려 했다.힘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런데 권나영은 “꺅”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으로 그대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나영아!”벼락같은 고함이 터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강신혁이 성큼성큼 달려와, 낯빛이 시퍼렇게 질린 채 바닥에 쓰러진 권나영을 와락 품에 안았다.권나영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듯 강신혁의 품에 웅크렸다. 눈물은 말 그대로 뚝뚝 떨어졌고, 그녀는 손목을 문지르며 흐느꼈다.“신혁 오빠…… 서하 언니 탓하지 마세요. 제가 혼자 못 버티고 넘어진 거예요…… 서하 언니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9. 숨길 수 없는 불안

    “아! 스미스 씨!”권나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이서하의 말을 억지로 끊어 버렸다.그녀는 허둥지둥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더니, 다음 순간 마치 손이 미끄러진 것처럼 와인 반 잔이 하늘색 고급 맞춤 드레스 위로 쏟아졌다.진한 와인이 순식간에 치맛자락을 적시며 눈에 띄게 붉은 얼룩으로 번져 나갔다.“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부주의했네요!”권나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황급히 냅킨을 집어 들고 얼룩을 닦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말까지 더듬거렸다.“갑자기 생각났는데…… 신혁 오빠, 우리 중요한 회의에 가야 하잖아요! 거기 일이 급해서 지금 바로 가야 해요. 정말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날게요!”입으로는 사과하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치맛자락을 문질렀다. 어색하게 화제를 돌리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괜찮아요. 어서 닦아요.”최 감독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친절하게 냅킨을 건넸다.권나영은 일단 이서하의 말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하지만 이서하가 정말 말을 이으려 했다면, 누가 그녀를 막을 수 있었을까?테이블 맞은편에서 강신혁은 와인잔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당장이라도 잔을 깨뜨릴 기세였다.그는 깊고 검은 눈동자로 이서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당황과 경고, 그리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애원이 뒤섞여 있었다.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그는 그녀에게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흥.이서하는 찻잔을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모금 마셨다.그저 평소 높은 곳에서 군림하던 두 사람이 얼마나 추한 꼴을 보일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최 감독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흥미롭게 물었다.“참, 서하야. 너 결혼했니? 남자 친구는 있고?”“네, 결혼한 지 벌써 6년 됐어요.”이서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제 남편도 강 씨예요.”그 말이 떨어지자 맞은편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숨소리마저 멎은 듯했다.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8. 당신의 아내는 누구인가

    이서하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권나영은 자연스럽게 ‘강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였고, 강신혁마저 입을 열어 부인하지 않았다.이서하의 입가에 자조적인 냉소가 번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반걸음 물러난 뒤, 역겨운 광경에서 멀어지려 몸을 돌렸다.“서하야? 서하 맞니?”그때, 등 뒤에서 놀라움과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카리스마가 넘치는 중년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기쁨이 가득했다.최 감독이었다.과거 이서하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녀를 정상급 패션쇼 무대에 세워 준 사람이 바로 최 감독이었다. 이서하가 가장 빛나던 시절에도 그녀의 재능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세상에, 정말 너구나!”최 감독은 이서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감격했는지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렸다.“그동안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잖아! 그 사고 이후로…… 너, 괜찮았어?”오랜만에 받는 따뜻한 걱정이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밀려들었다.이서하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사고 이후, 한때 자랑스러워했던 그녀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멈춰 버렸다. 흉터와 다리를 저는 후유증은 그녀가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고, 그녀는 좁은 세상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과거의 모든 사람과 조금씩 연락을 끊었다.익숙한 사람들을 더는 만나지 않으면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오늘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은 결코 몸에 남은 상처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이서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허리를 폈다.“감독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다시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저는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7. 선물의 진짜 주인

    “강신혁, 우리 이혼해요.”오랫동안 사랑해 온 남자 앞에서 이서하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히는 듯했다. 마치 깨진 유리 조각을 삼킨 것처럼 목 안이 따끔거렸다.맞은편에서 강신혁이 소고기를 썰던 은색 포크가 도자기 접시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는 격한 분노 대신 심드렁한 시선만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가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꺼낸 것처럼.“또 왜 이래? 어젯밤엔 화가 나서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나를 피곤하게 해야겠어?”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물잔을 들어 올렸다. 말투는 말을 안 듣는 반려동물을 달래기라도 하듯 부드러웠다.“서하야, 아직 화가 안 풀린 건 알아. 그래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나랑 이혼하면 너 혼자 어떻게 살려고? 지금도 일상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진심이에요. 며칠 뒤에 이혼 서류를 당신 사무실로 보낼게요.”이서하는 무릎 위에 놓인 긴 치마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진심이라는 걸 그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강신혁은 냅킨을 집어 입가를 느긋하게 닦았다. 미간에 차가운 주름이 잡혔다.“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어젯밤 그깟 일 때문이야? 태호 쪽 애들이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나영이도 좋은 마음으로 널 타이르려던 거잖아. 네 성격 좀 봐. 툭하면 표정 굳히고 이혼하자고 하고. 그러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널 내 모임에 데리고 다니겠어? 넌 그 사람들이랑 어떻게 어울릴 건데?”그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손가락이 긴 커다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녀를 응시했다.“나랑 이혼하면 어디로 갈 건데? 나 말고 누가 널 먹여 살려 주겠어?”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그녀를 위한 충고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장 여린 곳을 파고들었

  • 6년간 사랑받지 못한 아내   6. 이혼

    이른 아침, 이서하는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 넘게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부 강신혁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녀는 말없이 화면을 껐다.오늘은 선생님을 만나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의논하기로 했다. 더는 강신혁 때문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카페 구석자리에서 선생님은 서류 목록을 그녀 앞으로 밀어 놓았다.“이건 쇼 연출 과정에 필요한 서류 목록이야. 다음 달 안으로 전부 제출하면 비자가 나오는 대로 언제든 출국할 수 있어.”“감사합니다, 선생님.”이서하는 서류 목록을 재빨리 가방에 넣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카페를 나선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강신혁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검은색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차갑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이서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가방을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자신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됐다. 그가 알게 된다면 돌아올 것은 뻔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태도뿐일 테니까.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것은 강신혁이었다. 그는 화를 억누른 채 일부러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여기서 뭐 해? 어젯밤엔 왜 집에 안 들어왔어? 전화도 안 받고. 아직도 화난 거야?”어젯밤 친구들이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내버려 둔 사람이 자신이 아니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말투였다.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반걸음 다가서며 내려다보았다.“서하야, 너무 철없이 굴지 마. 다들 장난이 좀 심했을 뿐이야. 그런데 네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내고 나가 버리면 나영이가 얼마나 난처하겠어? 예전엔 이렇게 철이 없지 않았잖아.”또 철이 없다고 한다.이서하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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