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배달 오토바이 5대.동네 치킨집 메뉴를 종류별로 싹쓸이했다. [갓 튀긴 후라이드], [마늘 간장], [매운 양념]... 치킨 박스가 거실에 탑을 쌓았다."우와아아!! 치킨이다!!"학교에서 돌아온 희선이와 히나가 가방을 던지고 달려들었다.퇴근한 하루 씨와 미혜 누나도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빠, 오늘 무슨 날이에요? 옷이..."하루 씨가 내 정복 차림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잘 어울리네. 제복 입으니까... 좀 멋있다?"미혜 누나가 내 넥타이를 고쳐 매주며 은근슬쩍 가슴팍을 쓸었다.어제 영상 통화 사건 이후로 누나의 스킨십이 과감해졌다. 소피아를 의식하는 게 분명하다."자자, 묵자! 식는다!"우리는 거실에 둘러앉아 치킨을 뜯었다.바삭한 튀김옷 소리, 달달한 양념 냄새, 그리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형님. 닭다리 뼈 발라내는 솜씨가 예술인데? 데이터 저장 중.]레비아탄도 스마트워치 화면 속에서 침을 흘리며 구경했다.어제 군주의 심장을 먹고 업그레이드된 덕분인지, 녀석의 홀로그램 화질이 4K급으로 좋아졌다.나는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식구들을 바라봤다.맛있게 먹는 할머니, 내 계급장을 만지작거리는 성배 아저씨, 닭다리 가지고 싸우는 희선이와 히나.이 평범하고 소란스러운 풍경.내가 지켜야 할 것은 거창한 세계 평화가 아니었다.바로 이 저녁 식탁의 온기였다.이 웃음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중국해든 지옥 끝이든 갈 수 있다.'이제 나는 단순한 병사가 아니야.'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 작은 하숙집이라는 방주(Ark)를 지키는 선장이다.지잉-그때, 내 스마트워치로 화상 통신이 들어왔다.발신자: [리 웨이 (중국)].어제 보낸 좌표에 대한 답신이 온 모양이다.분위기가 깨질까 봐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갔다."통신 연결."*옥상 평상.홀로그램 화면에 리 웨이의 얼굴이 떴다. 배경은 중국의 어느 작전 사령부 같았다.-[하 준위. 소식 들었소. 아크 부대 창설과 준위 임관을 축하
[부산 사령부]지난밤은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내가 레비아탄의 [심해 감지]로 찾아낸 남중국해의 좌표.그냥 던져본 게 아니었다. 사령부에서 위성을 돌리고 중국 측에 교차 검증을 요청한 결과, 그곳 해저 화산 지대에서 초거대 마력 반응이 실존한다는 게 확인됐다.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최첨단 레이더로도 못 찾던 걸, 부산에 앉아서 찾아냈으니까.국방부와 청와대는 밤새 회의를 소집했고,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고 한다.'하태수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자네, 진짜 길드로 안 갈 건가? 화이트 타이거에서 백지수표에 강남 빌딩까지 불렀다던데."국방부 장관이 헬기까지 타고 내려와서 묻는 첫마디가 이거였다.그 옆에는 합참의장이, 뒤에는 사령관님이 굳은 표정으로 서 계셨다."관심 없습니다. 제 주제는 제가 더 잘 압니다."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레비아탄이 있어야 Z급이지, 없으면 전 그냥 동네 '빙신'인걸요. 제가 길드로 간다면, 국방부에서 레비아탄 내어주실 건가요?"내 직설적인 물음에 장관과 합참의장이 말문이 막힌 듯 서로를 쳐다봤다."아니잖습니까. 국가 전략 자산인 기체를 사기업에 줄 리가 없죠. 깡통 로봇 없는 파일럿이 가서 뭐 합니까? 설거지나 하겠죠."나는 씩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그리고 거기 가면 우리 하숙집 이모님 밥 못 먹어서 힘 못 씁니다. 전 여기가 편합니다."장관이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허허...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군. 진짜 괴짜야, 괴짜."하지만 그의 눈빛은 안도감과 감동으로 일렁이고 있었다.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알고, 돈보다 의리와 밥심을 택한 영웅.정부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다루기 편하면서도 믿음직한 병사가 없을 거다."좋아. 자네가 군에 남겠다면, 우리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지. 어젯밤 대통령님 긴급 재가가 떨어졌네."장관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대통령령 제1호: 전략 특수기동부대 '아크(Ark)' 창설 인
밥 먹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소피아의 그 대형 사고를."태수야. 해명 좀 해볼래?"미혜 누나가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었다. 하루 씨도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요구했다.이건 질투라기보다는, '외부의 침입자'에 대한 공동 대응이었다.식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청문회가 시작됐다.나는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아니, 꿇으려고 했다.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굳이 죄인처럼 굴 필요가 있나?'아니, 10년 전 대격변으로 전 세계 인구가 반토막 났잖아.'그때 죽은 사람이 억 단위다. 그중에서도 전투 병력이었던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죽었다. 남녀 성비가 박살이 났다는 소리다.그래서 UN이고 각국 정부고 부랴부랴 내놓은 게 [출산 장려 정책]이랑 [일부다처제 합법화] 아니던가. 한국도 작년에 통과됐고.'능력만 되면 두세 명이랑 결혼하는 게 오히려 애국인 세상인데, 내가 뭐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물론 법이랑 정서는 다르다. 내 머리로는 이해해도, 이 놈의 K-유교 드래곤이 아직 승천을 못 해서 그런가, 여자 둘 셋 거느리는 게 영 뜨끔하고 찔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사회 분위기도 "능력 좋네"와 "짐승 같은 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그래도... 찔리는 건 찔리는 거고, 변명은 해야지.'나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그... 오해입니다. 걔가 좀... 저한테 과하게 고마워하는 애라서요."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전쟁터에서 멘탈 나간 걸 제가 좀 도와줬더니, 고마움의 표시가 좀 과격하게 나온 겁니다. 진짜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제 마음속 1순위는 언제나 여기, 하숙집 식구들입니다!""흐음..."미혜 누나가 과도로 사과 껍질을 길게 깎으며 나를 째려봤다."그럼 뽀뽀는? 피할 수 없었어? Z급 반사 신경이라며?""햄! 팩트 체크 들어간데이!"그때, 손목의 레비아탄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당시 형님의 심박수는 급격히 상승하지 않았어. 당황하긴 했지만,
[부산 상공]"여기는 KF-21 편대장. Z급 기체의 영공 진입을 환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귓가에 꽂히는 투박한 한국어 교신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레비아탄의 좌우로 대한민국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들이 호위 비행을 하고 있었다. 구름 아래로 익숙한 부산의 해안선이 보였다. 광안대교, 해운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동네.[와... 형님. 저기 봐. 플래카드 깔렸는데? 완전 아이돌인데?]레비아탄이 줌인을 당겨 보여준 지상 풍경은 가관이었다.방벽 위, 건물 옥상, 심지어 도로변까지.[부산의 아들 하태수! 세계를 구하다!][Z급! 우리들의 영웅!]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부담스럽게 시리..."나는 헬멧을 고쳐 썼다.금의환향(錦衣還鄕). 남들이 보기엔 개선장군의 귀환이겠지만,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뿐이었다.'이모님표 갈비찜. 잡채. 그리고 미역국.'하와이에서 직접 끓여 먹은 부대찌개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남이(최 여사님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착륙 지점 도달: 통제구역 1구역]"내려간다."나는 조종간을 당겼다.쿠아아앙-!레비아탄이 역추진을 걸며 하숙집 앞 공터(이제는 전용 주기장이 된)로 하강했다.추진기의 엄청난 열기가 아스팔트의 물기를 순식간에 증발시키며 하얀 수증기 구름을 만들어냈다.쿵-!육중한 착지음. 땅이 울렸다.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사령관님과 헌병대가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치이익-콕핏 해치가 열리고, 내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하 병장! 아니, 영웅!"사령관님이 체면도 없이 달려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자네가 해낼 줄 알았네! 하와이를 구하고 태평양을 지켰어! 베히모스의 심장은 어제 수송선 편으로 무사히 연구소에 안치했네. 대통령님께서 친히 전화를...""사령관님. 그건 나중에 듣겠습니다."나는 정중하게 경례를 붙였다."지금 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아, 그렇지! 어서 가보게. 보고는 나중에 받아도 되네."사령관님이 흐
오후 2시. 작전 회의실.나와 S급들, 그리고 연합군 지휘부가 모여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어제 회수한 [군주의 심장]이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레비아탄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태평양 지도 위에 7개의 붉은 점. 하와이는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남은 기둥은 6개. 하지만... 위치가 안 보입니다."지도의 나머지 점들이 흐릿하게 점멸하고 있었다."놈들이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소."리 웨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하와이 기둥이 파괴된 걸 감지하고, 나머지 기둥들을 고농도의 마력 폭풍 속에 숨겨버린 게요. 이 심장 하나로는 정확한 좌표를 특정할 수 없소."좌표를 모르면 갈 수가 없다.태평양 바닥을 이 잡듯이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럼 어떡합니까? 나올 때까지 기다려요?""그 수밖에 없네."제임스 장군이 한숨을 쉬었다."연합 본부의 결정이오. 다음 기둥이 활성화되거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될 때까지 [심해 토벌대]는 잠정 해산한다."해산.그 단어가 이렇게 달콤하게 들릴 줄이야."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대기하시오. 재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합류하는 조건으로."'나이스! 집에 간다!'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임무 완료. 보수 빵빵. 이제 금의환향만 남았다."동의합니다. 저도 돌아가서 재정비 좀 해야겠습니다."나는 짐 챙길 생각에 벌써 엉덩이가 들썩거렸다.*복귀가 결정되자마자 나는 하숙집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지금 한국은 저녁 시간."이모! 저 태수입니다! 저 내일 갑니다!"화면이 켜지자마자 나는 소리쳤다.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아이고! 내 새끼! 살아서 오는기가!""햄! 진짜가! 와, 대박!"최 여사님이 국자를 흔들며 춤을 추셨고, 희선이와 히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그때, 마당으로 들어서던 미혜 누나가 화면에 잡혔다."태수야...!"누나는 나를 보더니 짐을 툭 떨어뜨렸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너 진짜... 진
밤새 쏟아지던 붉은 비가 그치고, 하와이의 아침이 밝았다.내가 전개한 [프로즌 돔] 덕분에 진주만 기지는 무사했지만, 돔 밖의 풍경은 처참했다.'머리 깨질 것 같네...'나는 레비아탄 콕핏에서 비틀거리며 내렸다.마력? 그건 차고 넘쳤다. 내 뱃속의 빙정과 레비아탄의 뇌정이 만들어내는 [무한 동력] 덕분에 에너지는 여전히 풀 충전 상태였다.문제는 내 [정신력]이었다.밤새도록 도시 하나 크기의 돔을 미세하게 컨트롤하느라 뇌가 과부하에 걸린 기분이었다. 컴퓨터로 치면 CPU가 열받아서 뻗기 직전이랄까."미스터 하! 일어났소?"제임스 장군이 퀭한 눈으로 달려왔다."당신 덕분에 살았소. 돔이 없었으면 우리 기지는 전멸했을 거요. 연합 사령부에서 당신에게 최고 등급 훈장을 수여하기로...""훈장은 됐고, 밥이나 주십쇼. 한국 가는 비행기랑."나는 손을 휘적거렸다.지금 내게 필요한 건 명예가 아니라, 뇌를 쉬게 해줄 휴식과 최 여사님이 끓여주는 김치찌개였다."일단 의무대 가서 검진부터 받으시죠.""됐습니다. 멀쩡해요. 잠만 좀 자면 됩니다."나는 비틀거리며 격납고 구석의 휴게실로 향했다.그런데 그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싫어! 오지 마! 저리 가!"소피아였다.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구석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주변에 의무병들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가 무차별적으로 방출하는 신성력 때문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소피아! 진정해! 나야, 스티브!"스티브가 달려와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소피아는 그를 밀쳐냈다."안 돼... 비가... 붉은 비가 내려... 다들 죽어가... 내가 살려야 해...!"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신성력 역류].그녀는 어젯밤, 돔 내부의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력을 한계까지 갉아먹으며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독기가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은 막지 못한 것이다.남을 살리느라, 자신이 죽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