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밥벌이요정
“여보, 무슨 일이야?”

고영훈은 의아해하면서도 송서윤의 말이라면 일단 따랐다.

“파나메라에 두고 온 게 있어.”

송서윤은 차가운 눈빛을 순식간에 감췄다.

“그래.”

고영훈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연녀 허연수를 내쫓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차가운 얼굴로 외면하더니, 송서윤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다정한 남편 행세를 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조금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송서윤은 이 남자가 점점 낯설게만 느껴졌다.

차는 금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보, 내가 다녀올게.”

고영훈이 먼저 차 문을 열었다.

“응. 짙은 그레이색 머리핀, 꼭 찾아줘.”

송서윤이 덤덤히 말했다.

고영훈이 자리를 비우자, 송서윤은 눈물에 젖어 잠든 고하준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정원 쪽 문 앞, 커튼 뒤에 숨어서 거실을 바라봤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거실, 허연수가 주희영의 어깨를 다정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정말 친 모녀처럼 다정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송서윤의 머릿속에는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주희영이 아픈 어머니 곁을 밤새워 지키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혼자 남게 될 송서윤을 위해 세상의 모든 시련을 대신 짊어지겠다고 약속했었다.

송서윤에게 주희영은 지금까지 엄마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랬기에 주희영이 이렇게 등을 돌릴 리 없다고, 분명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송서윤은 손에 쥔 커튼이 떨릴 만큼, 마음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차올랐다.

그때 허연수의 손이 잠시 멈췄다. 커튼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눈치챈 듯, 그녀는 보란 듯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큰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큰 사모님 말씀이라면 뭐든 들을게요. 영훈 오빠를 닮은 토끼 같은 자식도 더 많이 낳을게요.”

“그래, 애는 많이 낳을수록 좋지. 우리 고씨 가문이 너한테 손해 보게 할 일은 없을 거야.”

“서윤 언니는 정말 안됐죠. 둘째 갖겠다고 한약에 침까지 맞고 하느라 몸만 더 망가졌으니... 큰 사모님이 그만하라고 한 번 설득해 보시지 그래요?”

“고씨 집안에 시집왔으면, 자식 낳고 기르는 건 당연한 도리지.”

허연수의 갑작스러운 말에 주희영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걔는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잖아. 신경 쓰지 마.”

송서윤은 오랜 시간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던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주희영을 친엄마처럼 믿어왔는데, 이렇게 뒤에서 자신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 엄마가 어머님의 진짜 모습을 알았다면, 하늘에서 편히 눈 감으실 수 있었을까...’

바로 그때, 주희영이 문 쪽을 돌아봤다. 조금 전 잠깐 슬픈 시선이 느껴진 듯해서 돌아봤지만, 그 커튼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희영은 허연수의 손을 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미리 경고하는데, 케이원 그룹 대표이사 사모님 자리는 무조건 송서윤이야. 네가 몇 명을 더 낳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허연수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네, 큰 사모님...”

주희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이번에 하준이 앞에서 실수한 건 넘어갈 테니, 내일부터 별채로 옮겨. 특별한 일 아니면 절대 나오지 마.”

“큰 사모님, 그럼 보육원에 있는 그 아이의 입양 문제는요?”

“이 일은 서윤이가 진정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송서윤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너무 괴로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머물렀다가는 참지 못하고 주희영을 붙잡고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따져 물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고영훈이 차 옆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그녀가 찾던 짙은 그레이색 머리핀이 들려 있었다.

“여보, 어디 갔다 왔어?”

“속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 다녀왔어.”

송서윤은 고영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어쩐지 얼굴이 안 좋더라. 우리 그냥 집에 가서 쉬자.”

고영훈은 조심스럽게 송서윤을 부축해 뒷좌석에 태웠다.

차에 앉은 송서윤은, 잠시나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머님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배신한 건 아닐까?’

고영훈은 원래부터 효심이 지극했다.

‘아니야, 만약 정말 내 편이었다면 허연수가 아무리 유혹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랜 시간 허연수와 관계를 이어왔다.

서글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더 이상 이 약한 모습을 고영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송서윤은 앞좌석 뒤의 수납함에서 휴지를 꺼내려다, 안에 있던 여러 물건이 쏟아졌다. 그중에 빨간색 레이스로 된 여성용 T팬티가 눈에 띄었다.

송서윤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옆에서 자고 있던 고하준이 어느새 깨어나 그 팬티를 집어 들었다.

“아빠, 이거 뭐야?”

고하준의 손에는 빨간색 레이스 T팬티가 들려 있었다.

송서윤도 고영훈을 똑바로 바라봤다.

“여보, 당신 차에 왜 여자 팬티가 있어?”

“아...”

고하준은 빨간색 T팬티가 무엇을 의미인지는 모르는 듯, 바로 그걸 고영훈에게 던져주었다.

“아빠, 이거 연수 이모 거예요?.”

송서윤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허연수 팬티가 왜 당신 차에 있는 거야? 나 몰래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고영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갑자기 액셀을 힘껏 밟았다.

차는 클럽으로 향해 질주했다.

도착하자마자 고영훈은 곧장 VIP룸의 문을 밀치고 들어가, 정지욱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야, 어제 내 차 빌려서 뭐 한 거야? 내 차에서 여자 팬티가 왜 나와?”

정지욱은 놀란 눈으로 송서윤과 눈이 마주쳤고 이내 당황한 듯 얼굴을 감싸며 사정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어제 술 좀 마시고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그만... 그냥 차 안에서...”

고영훈은 그제야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정지욱은 바닥에 거의 기어가듯이 송서윤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형수님, 죄송합니다. 정말 오해하지 마세요. 다시는 형님 차 빌리지 않겠습니다.”

룸 안에 있던 남녀 모두가 시선을 송서윤에게 집중했다.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정지욱은 다급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

룸 안에선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나왔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코웃음을 쳤다.

“야, 제정신이야? 감히 형님 차에서 그딴 짓을 해? 형수님께 실례인 거 몰라? 얼마나 깔끔하신 성격인데!”

“형수님, 이참에 지욱이 혼 좀 내주세요. 형님이 알아서 처리하실 거예요.”

송서윤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됐어요, 그 영상부터 중단해 주세요.”

“형수님, 용서하신 거죠?”

정지욱이 흥분해서 송서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고영훈과 시선을 마주치자 황급히 손을 놓았다.

송서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닥에는 ‘고영훈을 건드리면 송서윤이 말리고 송서윤을 건드리면 고영훈이 끝까지 가만두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서 정지욱 역시, 아무리 고영훈과 가까운 사이라 해도 송서윤만큼은 절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형수님, 진짜 대인배시네요.”

“얼굴도 예쁜데 마음까지 넓으셔. 천사가 따로 없다니까!”

여기저기서 너나없이 추켜세웠고 송서윤은 어쩔 수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영훈과 함께한 10년, 그의 친구들은 언제나 그녀를 예우했다.

문득 케이원 그룹의 스마트 파킹 솔루션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여러 회사가 협력 의사를 밝혔고 사실 조건만 보면 제이 그룹이 압도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의 의리와 정지욱의 성의를 생각해 이번만큼은 선물처럼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그게 그녀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베푸는 호의였다.

송서윤은 고영훈을 흘끗 바라보고 말했다.

“하준이가 밖에서 기다리니까, 먼저 나갈게.”

고영훈이 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가니, 김태원이 차를 준비하고 대기 중이었다.

“저희가 타고 왔던 차는요?”

“아까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바로 폐차장에 넘겼습니다.”

“엄마, 내 장난감 아직 차에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트랜스포머란 말이에요.”

고하준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제 트랜스포머 돌려줘요.”

송서윤은 다시 룸으로 향했다.

고영훈이 차를 폐차장에 넘기기 전에, 장난감이라도 찾아달라고 전화해달라 부탁하려고 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손이 문고리에 닿는 순간 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체 무슨 영상이야, 우리도 좀 보자.”

“지욱이 형, 살짝만 보여줘!”

“에이, 뭘 그걸 가지고... 야한 동영상 처음 봐?”

정지욱이 태연하게 핸드폰을 들고 아까와 같은 영상을 틀었다.

“다들 한 번쯤은 본 거 아니야?”

“아, 이 영상 유명한 거잖아? 형수님, 진짜 잘 속으시네.”

“이렇게 답답하니까, 침대에서도 별로 재미가 없었겠지. 우리 형님만 불쌍하지.”

누군가 말했다.

그러자 정지욱이 또 말을 이었다.

“얼굴, 몸매, 학벌까지 뭐 하나 작은 형수님보다 나은 게 없잖아요?”

정지욱의 말은 송서윤의 뺨을 세게 후려친 듯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은 이미 고영훈의 배신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짜고 그녀를 속이며 우스꽝스럽게 ‘형수님’이라 불렀고, 허연수에게는 ‘작은 형수님’이라 부르며, 그녀를 바보로 만들고 뒤에서 조롱해 왔다.

룸 한가운데, 고영훈은 다리를 꼬고 앉아 정지욱이 송서윤을 조롱하는 말을 듣고도 그저 묵묵히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를 모욕하는 걸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송서윤은 문고리를 꽉 움켜쥐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고영훈의 곁에는 허연수가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나긋하게 입술을 가까이 댄 채,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훈 오빠, 언니가 좋아? 아니면 내가 좋아?”

고영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고 허연수는 이미 답을 아는 듯, 기분 좋게 웃었다.

모니터로 보던 것과 달리, 눈앞에서 남편의 배신을 직접 확인하는 건 또 다른 고통이었다.

송서윤은 더는 견딜 수 없어 문을 밀치고 들어가 단호하게 물었다.

“여기서 다들 무슨 짓을 하는 거죠?”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2. 20. AM. 12:47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2화

    고영훈은 심건모의 멱살을 놓더니 허둥지둥 송서윤에게 다가가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그는 송서윤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벽에 기대어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과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실망과 분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송서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고영훈의 심장을 파고들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내 몸이 안 좋으면.” 그녀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나랑 이혼하면 그만이었어. 나를 속이고 내 뒤에서 바람을 피울 게 아니라.”“고영훈, 넌 나한테 상처를 줬고 우리 결혼 생활을 배신했어. 하준이를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게 만든 건 전부 네 잘못이야.”“내 몸이 안 좋다는 건 그저 너의 사욕을 위해 찾아낸 핑계일 뿐이야.”“아니야. 서윤아.” 고영훈은 특수경찰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심건모가 송서윤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떼어냈고 감정을 억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깜빡했어요.”“응.”심건모가 다른 쪽 손을 펴보였다. 송서윤의 휴대폰이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송서윤은 심건모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는 심건모보다 더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운이었다.송서윤이 휴대폰을 집으려던 찰나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조심해. 물 닿지 않게 하고.”심건모가 송서윤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고 그의 손바닥에서 손을 빼낸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송서윤은 녹음기를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영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송서윤이 수영을 가로막았다. “증언 전날 밤에 왜 사라진 거죠? 지금은 왜 고영훈이랑 같이 있는 거고요? 고영훈이 협박했나요?”수영은 송서윤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가 잘못 본 거예요. 고 대표님은 킬러와 같이 있지 않았어요.”수영은 정말 송서윤이 싫었다. 왜 남의 마음은 아예 보지 않는 걸까.고영훈이든 심건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1화

    동봉우는 자리에 앉아 모든 상황을 예리하게 지켜보았고 정계 인사들은 앞다투어 심건모에게 말을 건넸다.그는 시종일관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며 가끔 응답했다. 대화는 늘 관심 밖의 주제에 머물 뿐 핵심에 닿는 법이 없었다.이때 종업원의 안내로 피부과 과장이 들어왔다.“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심건모가 덤덤하게 말했다.피부과 과장은 황송해하며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아주었다. “사모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자꾸 벌어지면 흉터가 남아서 보기 흉해질 수 있어요.”고영훈은 촉촉한 송서윤의 눈동자가 심건모와 마주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보니 오늘 아침 학교 정문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랐다.고영훈은 초조하게 다가가 물었다. “내가 아침에 다치게 한 거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룸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송서윤은 고영훈을 상대하는 대신 심건모의 손을 꼭 잡았고 심건모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안에 가두어 감싸안았다.그때 고영훈은 초라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는 결국 자리로 돌아갔다.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아진시 정통 요리들이었다.동봉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별미를 좀 맛보게나.”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송서윤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눈앞에 놓였다.그녀는 무척 맛있게 식사를 이어갔다.심건모는 송서윤의 곁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심건모가 입을 열었다. “맛있어?”그는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와 분홍빛 입술에 남은 마지막 디저트, 크림케이크의 흔적을 가만히 응시했다.“네. 맛있어요.” 송서윤이 나직하게 답했다.“나도 좀 맛볼까?” 심건모가 다시 물었다.“네?”송서윤이 심건모에게도 케이크 한 조각을 챙겨주려던 찰나였다.송서윤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심건모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10화

    송서윤은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손을 댈 가치조차 없어.” 심건모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채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손만 아프잖아.”그의 숨결이 조금씩 그녀의 입술에 닿았고 그녀의 마음까지 닿으려 애쓰는 듯했다. 시선은 그녀의 눈동자에 머물렀고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낮아졌다. 그녀가 들을까 봐 겁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어주길 바라는 듯한 목소리였다.심건모가 말했다.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래.”송서윤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툭 떨어진 눈물이 입을 맞추고 있던 그의 입술 위로 떨어졌다.키스는 부드럽고 애틋했으며 동시에 씁쓸했다.한바탕 정적이 흐른 뒤였다.“왜 울어?”“그만 울어.”심건모는 송서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밥은 먹었어?”송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선배는요?”“선배한테 밥 사줘야 하는데.” 송서윤이 차 문을 열려 하자 심건모가 말렸다. 지금은 안 된다.심건모의 시선이 붉게 달아오른 송서윤의 얼굴에 머물렀다. 너무나 가냘프고 고왔다.“왜 소 교수에게 밥을 사려는 거야?”“아까...” 송서윤은 이정희와 그 한약 그릇을 떠올리더니 눈동자가 흔들렸다. “노트북이 합선돼서 타버렸는데 마침 선배가 와서 도와주셨거든요.”“당연히 사줘야죠.”심건모의 품에 안겨 있던 송서윤은 노트북을 꺼내 두 사람 사이에 펼쳐 보이며 웃었다. “다행히 제가 끌 때 인터페이스를 숨겨두는 습관이 있어서 아까 성범이랑 여수진한테 지뢰 찾기 시스템을 들킬 뻔했는데 빠져나갔어요.”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물론 봤어도 알아내진 못했겠지만요.”심건모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소 교수가 널 찾아온 용건이 뭐야?”“밥 먹자고요.” 송서윤이 회상하며 답했다.“참 한가한 사람이군.”심건모는 나직이 한마디 하고는 송서윤을 안아 옆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 내려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9화

    서지원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사진이 모두 삭제된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특수경찰이 그녀의 귓가에 차갑게 경고했다.“허가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촬영한 사진은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서지원을 지나쳐 곧장 차 주변을 에워쌌고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차단했다.서지원은 방금 송서윤을 안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꼿꼿하고 건장한 체구, 송서윤을 감싸안은 팔목에서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고 힘을 줄 때마다 손등에 핏줄이 드러나며 팽팽한 긴장감과 섹시함이 넘쳐흘렀다.무심하고 소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의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송서윤을 바라볼 때만큼은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온몸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그가 송서윤의 새 남편인 모양이었다.서지원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고영은에게 듣기로는 송서윤이 고영훈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대단한 권력자와 결혼했다고 했다.서지원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면 TV에서 보던 것처럼 기품은 있어도 늙고 못생긴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영훈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남자일 줄이야.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영훈이 송서윤이 재혼했는데도 그녀를 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서지원의 마음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송서윤이 대체 뭐라고 내로라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사랑한단 말인가.서지원의 시선이 소주원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또 한 명 더 있네!’소주원이 다가가려 했지만 특수경찰에게 제지당했다.차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안전유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음 처리까지 완벽했다. 차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럼에도 소주원은 포기하지 못한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 안.묘한 기류가 감돌며 실내 온도가 끊임없이 상승했다.심건모의 키스는 애틋하면서도 다정했고 동시에 절제되어 있었다.송서윤은 정신을 잃은 채 그의 부드러움에 빠져들었다.심건모는 입술을 떼고 그녀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8화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들더니 짝 하고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서지원은 자신이 때린 소주원의 얼굴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선배, 괜찮아?” 송서윤이 걱정스레 소주원을 살폈다.소주원은 뺨을 문질렀다. 사실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송서윤이 걱정해 주자 내심 기분이 좋아 조금 더 문질러 보였다.“너 미쳤어?”“아직도 네가 고고한 사장 부인이라도 되는 줄 아니? 너만 사람을 때릴 수 있고 너는 맞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예전에 네 비위를 맞춰준 건 다 영훈이의 체면을 봐서였어.”서지원은 송서윤을 향해 악에 받쳐 말을 쏟아냈다. “예전에 나랑 영훈이 사이를 망쳐놓더니 이제는 나랑 민호 씨 사이까지 망치려 들어?”“경고하는데 민호 씨 근처엔 얼씬도 마. 안 그러면 나도 더 이상은 안 봐줘!”서원 그룹은 무너지기 직전이고 고영훈이 서지원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민호는 그녀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남자였다.송서윤은 대꾸 대신 곧바로 서지원의 뺨을 갈겼다. 서지원이 멍해진 틈을 타 다시 한번 뺨을 내리쳤고 서지원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송서윤은 바닥에 쓰러진 서지원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서지원은 양 볼을 감싸 쥔 채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송서윤을 쳐다봤다.그랬다. 예전의 송서윤은 손찌검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연달아 손을 올리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드럽기만 했던 그녀였다.그래서 그들 모두가 마음 놓고 송서윤을 속여왔던 것이다.“나를 협박해?” 송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말 못 알아들었니?”“매달리는 건 이민호 쪽이야!”“능력이 있으면 이민호가 내 근처에 못 오게 잘 간수해 봐.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않게.”소주원은 송서윤이 자신 때문에 서지원을 응징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송서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서윤아, 네 손에서 피가 나.”그제야 송서윤은 레이저 흉터 제거 수술을 받았던 손가락을 떠올렸다. 레이저 치

  • 가장 가까운 배신   제407화

    “서윤이의 실력으로는 로봇 시스템은커녕 어떤 시스템도 해킹할 수 없어요.”“하지만 여수진 씨를 이겼잖아요.” 성범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수진은 성범이 개발한 로봇 시스템을 단 몇 초 만에 뚫을 능력이 전혀 없었다. 성범은 송서윤이 여수진을 두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요행이나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럴 리가요. 분명 부정행위였을 거예요.” 서지원은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그 순간, 송서윤이 다가와 서지원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 안의 모든 사람이 일순간 조용해졌다.서지원은 한쪽 뺨을 감싸 쥔 채 송서윤을 노려보았다. “네가 뭔데 나를 때려?”송서윤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명예를 더럽힌 대가치고는 가벼운 줄 알아.”“명예를 더럽혀?” 서지원이 비웃었다. “너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네 실력을 내가 모를 줄 아니? 예전에 영훈이가 오냐오냐해주고 다들 네 비위를 맞춰주니까 정말 네가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 서지원이 비웃으며 조롱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소문 들었어. 이제는 권력자가 뒤를 봐주는 사모님이 됐다며? 그래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다 네 비위를 맞춰줄 줄 알았니?”“꿈 깨!”“경원시에서는 아무리 대단해도 네 멋대로 할 수 없어.”서지원의 말을 들은 성범과 여수진은 서로 눈을 맞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서윤이 그렇게 대단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지원은 송서윤을 아예 진흙탕 속으로 처박으려는 듯 점점 더 심한 말을 내뱉었다.송서윤은 서지원이 이토록 추악하게 변했을 줄은 몰랐다. 과거의 실낱같은 정마저도 완전히 타버려 재가 되었다.“누가 감히 내 동생을 괴롭히나?”그때, 귓가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이민호가 지팡이를 짚으며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이산 그룹의 로봇 시범 운영일이었기에 주인인 그가 현장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