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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Penulis: 빅비58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28 20:09:56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

그의 시선이 다시 철문으로 향했다.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마부의 머릿속에 그림 하일드의 얼굴이 아주 잠깐 떠올랐다.

놀란 눈. 숨이 막히던 순간.

그래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던 표정.

마부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너라도... 내 마지막 푸념을 들어줘서 고마웠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정리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마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마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 저도 오늘 저 첫째 계집을 죽이고... 당신 곁으로 갈게요."

마부, 아니,'카일 로웬'은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삐를 정리했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 마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안에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끝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그 시각, 묘지 안.

바람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른 풀들이 서로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걷고 있었다.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정해진 속도. 흔들림 없는 걸음. 그 옆에선 부인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시선은 낮게. 발걸음은 맞춰서.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묘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줄지어 선 묘비들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 하나의 묘지가 보였다. 다른 묘지들보다 더 정돈되어 있고, 누군가가 자주 손을 보는듯한 자리. 묘지 주변에는 신선한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얀 꽃, 옅은 분홍빛 꽃, 막 시들기 시작한 꽃과 방금 가져다 놓은 듯 생기가 남아있는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엘로이즈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부인은 그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뒤로 옮겼다.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따라오는 아이. 발걸음은 정확했고,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존재감조차 스스로 낮추고 있었다. 마치 이 공간에 있지 않는 사람처럼. 부인의 눈이 아주 잠깐 가늘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생각했다.

'...우리 애와... 조금만 더 맞추면... 될 것 같은데.'

그 생각은 확신도 아니고, 경계도 아니었다. 그저 가능성을 재는 사람의 조용한 판단이었다. 그 사이 묘지 앞에 다다랐다. 꽃들 사이로 드러난 묘비에 '클레르 드 로베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람이 한 번 스쳤다. 꽃잎이 흔들렸다. 세 사람의 걸음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엘로이즈는 꽃들 사이로 드러난 이름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클레르 드 로베르. 돌 위에 새겨진 글자는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은 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주변에 놓인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엘로이즈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가 들고있었던 꽃다발이 시야 아래로 내려왔다. 옅은 노란빛을 머금은 꽃들.

후레지아.

막 피어난 듯한 생기가 남아 있었고, 은은한 향이 바람을 타고 퍼졌다. 엘로이즈는 잠시 그 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클레르. 잘 있었어...?"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들렸다. 엘로이즈는 무릎을 살짝 굽혔다. 드레스 자락이 조용히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후레지아 꽃다발을 묘지 앞에 내려놓았다. 이미 놓여 있던 꽃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손을 떼기 전 아주 잠깐, 꽃잎 하나를 손끝으로 정리했다. 흐트러지지 않게. 그녀는 다시 입을 천천히 열었다.

"...후레지아. 너가 제일 좋아하던 거잖아. 장미꽃보다.. 이걸 더 좋아했었잖아."

바람이 다시 한 번 불었다. 꽃잎이 살짝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묘비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그 날도, 이렇게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마차 안.

엘로이즈는 창가 쪽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 클레르가 앉아 있었다. 클레르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창밖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부드럽게 내려 앉았다. 옅은 금빛이 감도는 밝은 머리. 결이 고와서 빛을 받으면 거의 투명하게 번졌다. 얼굴은 아직 어린 기운이 남아 있었고, 둥글게 살아있는 윤곽 위로 잘 웃는 입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은 엘로이즈보다 조금 더 크고, 빛을 더 많이 담는 눈이었다. 무언가를 보면 그대로 드러나는 눈. 숨기지 못하는 눈. 클레르는 창밖을 보다가 갑자기 몸을 더 앞으로 기울였다.

"언니, 저기 봐."

"...뭔데."

"꽃."

엘로이즈의 눈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클레르는 창밖을 가르키며 웃고 있었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눈동자가 더 또렷하게 빛났다.

"저거 후레지아 아니야?"

엘로이즈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마차 밖, 길가에 노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클레르의 눈이 반짝였다.

"저거 진짜 좋아하는데. 난 장미보다 저게 더 좋아."

"...그래."

"언니는 장미 좋아하잖아."

"그냥, 무난하니까."

"난 싫어."

클레르는 웃으며 말했다. 입가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억지로 만든 웃음이 아니라, 그저 기분이 좋으면 바로 드러나는 웃음.

"너무... 보여주기 같아."

그 말이 끝난 직후, 마차가 갑자기 흔들렸다.

덜컹.

바퀴가 돌을 잘못 밟은 듯 차체가 크게 기울었다.

엘로이즈의 몸이 순간 앞으로 쏠렸다.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

마차가 통제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속도가 붙었다. 바퀴가 돌을 튕겨내며 거칠게 흔들렸다. 엘로이즈의 손이 의자 손잡이를 꽉 잡았다. 몸이 계속 밀렸다. 문 쪽으로.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그 틈이 점점 벌어졌다. 바람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엘로이즈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때,

"언니!"

클레르의 목소리.

다음 순간, 몸이 강하게 밀렸다. 엘로이즈의 시야가 흔들렸다. 자기 몸이 안쪽으로 튕겨 들어갔다. 대신 다른 무게가 문 쪽으로 쏠렸다.

찰나. 눈이 마주쳤다.

클레르였다. 밝던 눈이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대로 몸이 바깥으로 밀려났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바람이 한 번 크게 휘몰아쳤다. 그리고,

"클레르!"

엘로이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손은 닿지 않았고, 몸은 잡히지 않았고,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차가 멈췄을 때, 엘로이즈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손이 떨렸고, 숨이 이어지지 않았다. 문은 열려 있었고, 바깥에는 부서진 흔적과,피와,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클레르가 있었다.밝았던 머리카락이 흙 위에 흩어져 있었고, 아까까지 웃고 있던 얼굴은 너무 조용하게 멈춰 있었다.

"...언니."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기억이 만들어낸 것인지 지금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묘지.

엘로이즈의 눈이 아주 천천히 돌아왔다. 후레지아 꽃다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잠시 떨렸다. 하지만 곧 멈췄다. 표정은 이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묘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속으로 되뇌었다.

'...그날. 넌... 망설이지 않았지.'

바람이 스쳤다. 꽃잎이 한 번 더 흔들렸다. 엘로이즈의 시선은 여전히 묘비 위에 머물러 있었다. 후레지아 꽃잎이 바람에 다시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아주 작게.

"그날... 나만 아니였으면..."

"...넌 지금도..."

그 문장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더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하지 않았다. 엘로이즈의 손이 미세히 떨렸다가 다시 멈췄다.

그 순간, 옆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닿았다. 부인의 손이었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가볍게 한 번. 천천히 토닥였다. 말은 없었다. 위로도, 설명도, 설득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표시처럼. 엘로이즈는 그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대로 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이미 다시 정리되어 있었다. 아주 단정하게.

그 모든 모습을 조금 뒤에서 그림 하일드가 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정해진 자리에 서 있었지만, 시선은 완전히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 안쪽이 묘하게 불편하게 조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집에서의 감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걸.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엘로이즈의 시선이 묘비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손에 남아 있던 미세한 떨림도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니.. 또 올게. 그때까지... 잘 있어."

그 말은 약속처럼 남았다.

엘로이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레스 자락이 조용히 정리되었다.

귀족 부인의 손도 그제야 어깨에서 떨어졌다. 두 사람은 잠시 더 묘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다시 걸음이 이어졌다.

엘로이즈가 앞에서 걷고, 그 뒤를 부인이, 그보다 반 걸음 뒤에서 그림 하일드가 따랐다. 묘지 안쪽 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 나갔다. 바람이 한 번 더 스쳤다. 꽃잎이 살짝 흔들렸고,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다.

그때, 귀족 부인의 시선이 한쪽으로 옮겨갔다. 묘지 가장자리. 그곳에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크지 않은 나무였지만, 가지마다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햇빛을 받아 윤기가 돌았다.

귀족 부인의 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그리고 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올해도 사과가 참 탐스럽게 열렸구나."

"...클레르가 사과를 참 좋아했었지."

바람이 가지를 스쳤다. 사과 하나가 조금 흔들렸다. 엘로이즈의 발걸음이 잠깐 멈춘 듯했지만 곧 다시 이어졌다.

그림 하일드는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보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묘지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진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철문 밖.

마차 옆에 서 있던 마부, 아니, 마부의 탈을 쓴 마법사, 카일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기다리는 마부였다. 고삐를 느슨하게 쥔 손, 흐트러짐 없는 자세, 움직임 없는 시선.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모습.

하지만 그의 손끝이 조금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가 고삐 위에서 아주 느리게 눌렸다가, 다시 풀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 공기가 반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 주변에서 아주 천천히 모이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공기층이 마치 끌려오듯, 그의 주변으로 정렬되었다. 카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호흡을 아주 느리게, 일정하게 내쉬었다. 그 숨결이 그대로 바람의 방향이 되었다.

흐름이 하나로 이어졌다. 묘지 안쪽에서 철문을 향해, 그리고 그를 향해. 자연스럽게 부는 바람처럼 보였지만 그 흐름은 흩어지지 않았다. 양쪽으로 새지 않았다. 좁게, 가늘게, 그러나 끊기지 않고 정확히 이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카일의 손가락이 한 번 더 움직였다. 그 순간 바람이 조금 더 압축되었다. 흐름이 얇아지고, 밀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그 위로 소리가 실려왔다.

"...사과를..." "...클레르가..." "...좋아했었지..."

처음에는 흐릿했다. 바람에 흩어진 단어 조각들이었다. 하지만 카일의 손이 고삐를 쥔 채 틀어졌다. 그에 따라 바람의 흐름이 한 번 더 정리되었다. 흩어지던 소리가 한 줄로 모였다. 이어졌다. 또렷해졌다. 문장이 완성되었다.

카일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바람은 그의 앞에서만 작게 맴돌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후.

카일의 입가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그래. 당신 둘째딸이 좋아하던 게... 사과였다고."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묘지 안쪽, 사과나무로. 카일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움직였다. 쥐었다가 풀었다. 그 짧은 동작과 동시에 바람의 성질이 바뀌었다. 부드럽게 흐르던 공기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퍼져 있던 흐름이 하나의 방향으로 강하게 잡아당겨졌다.

"...그럼, 둘째가 좋아하던 걸로 첫째도 보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의 손이 고삐 위에서 천천히 닫혔다. 그와 동시에 묘지 안쪽의 바람이 쥐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공기를 움켜쥔 것처럼. 흐름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자연이 아니라, 의지에 따라. 정확하게. 사과나무 한 그루를 향해.

묘지 안.

엘로이즈와 부인, 그리고 그림 하일드는 사과나무를 지나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은 일정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때.

나뭇잎 하나가 혼자서 흔들렸다.

사각. 아주 작은 소리.

그림 하일드의 눈이 위로 움직였다.

사과나무.

햇빛을 받고 있는 가지들 사이에서 한 줄기의 흐름이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움직임. 그 바람은다른 곳과 달랐다. 한 방향으로만 좁게, 정확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가지 하나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흔들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 계속 비틀렸다. 삐걱. 소리가 났다. 나무가 내는 소리라기엔 너무 인위적인 소리. 억지로 힘을 주어 꺾는 것 같은 소리였다. 가지가 점점 더 휘어졌다. 그 위에 달려 있던 사과들이 흔들렸다. 하나가 떨어졌다.

툭.

작은 소리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 다음.

휙.

보이지 않는 힘이 한 번 더 당겨졌다.

가지의 중심이 순간적으로 틀어졌다.

그리고,

툭.

짧고, 결정적인 소리. 끊어지는 소리였다. 그 다음 순간,

쾅!!

굵고 무거운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속도는 빨랐다.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이. 방향은 정확했다. 엘로이즈의 머리 위. 햇빛이 가려졌다.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내려앉았다. 그저 사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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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8화

    "꺄악!!"지붕이 크게 흔들리고, 마차 전체가 옆으로 기울며 거칠게 요동쳤다. 엘로이즈와 클레르는 동시에 몸의 균형을 잃었다."뭐야...!"엘로이즈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콰직!!클레르의 머리 위 마차 천장이 산산이 갈라지며 굵은 사과나뭇가지 하나가 그대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뭇가지는 클레르의 등을 그대로 관통했다."....윽!!"클레르의 몸이 충격과 함께 그대로 굳어 버렸다.엘로이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클레르?"그때. 우지직.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과나뭇가지가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부러지기 시작했다. 클레르의 등을 관통한 채 박혀 있던 나뭇가지 역시 그대로 부러졌고, 갈라진 천장과 열린 마차 문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클레르의 몸은 등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꽂힌 채 그대로 마차 밖으로 휩쓸려 나갔다."클레르!!"엘로이즈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서로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 짧은 순간에 모두 담겨 있었다."잡아...!"엘로이즈의 손끝이 간신히 닿을 듯 다가갔다. 하지만 한순간 늦었다. 손가락 끝만 스친 채, 클레르의 손은 엘로이즈의 손을 빠져나갔다."...안 돼!!"엘로이즈의 절박한 외침과 함께, 클레르의 몸은 그대로 마차 밖으로 떨어졌다.끼이익!루시안은 마치 예상치 못한 사고라도 난 것처럼 다급히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들이 크게 울음소리를 내며 걸음을 멈췄고, 마차도 겨우 멈춰섰다."이.. 이게 무슨..."겉으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급히 마차를 돌아보았다.마차 안.엘로이즈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아직도 방금 전 클레르의 손이 자신의 손끝을 스쳐 지나간 감각이 남아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시선이 열린 마차 문 너머로 향했다."..."길 위에는 클레르가 쓰러져 있었다. 금빛 머리는 모두 흐트러져 있었고, 연한 크림색 드레스는 먼지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엘로이즈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7화

    마차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었고, 바퀴는 부드럽게 흙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르의 눈이 크게 반짝였다.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산 진짜 예쁘다!!"엘로이즈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였다.숲 사이로는 맑은 계곡물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생 과일 나무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쥐저기고 있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엘로이즈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미소지었다"...그래. 예쁘네.""언니! 저기 참새도 있어!""우와! 다람쥐다!""저 계곡도 엄청 시원해보인다!!"클레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꾸밈도, 망설임도 없었다. 좋으면 좋다고, 예쁘면 예쁘다고,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아이였다.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부러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언니도 너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 생각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한편, 마차 밖.안장 위에 앉은 루시안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푸른 숲과 햇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의 눈에 조금도 아름답게 들어오지 않았다.루시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루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았다.마차는 더욱 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6화

    잠시 후. 드 로베르 저택 앞마당. 따뜻한 햇살이 돌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두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은은한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그녀의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옆에는 연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땋은 금빛 머리에 파란 리본을 단 클레르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클레르의 얼굴에는 꽃밭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택 앞에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 말들은 숨을 내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차 앞에는 늙은 마부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 로웬.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루시안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로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차에 오르기 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온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어딘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긴 엘로이즈는 클레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다가 몸을 홱 돌려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가면 후레지아 꽃 많이 따와서 꽃병에 예쁘게 장식해놓자! 언니 방에도 놓고 내 방에도 놓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래, 그래. 일단 타. 조심히." "응!" 클레르는 신이 난 듯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엘로이즈도 뒤이어 조용히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루시안은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철컥. 작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부석으로 걸어가 안장 위에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4화

    귀족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 대신의 답은 짧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 귀족 부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화

    그날 아침 식사 시간.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잠시 후.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궁정 대신.왕의 곁에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화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귀족 부인은 소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화

    돌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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