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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7 13:09:01

거울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잠시 맞물려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 안에 또렷하게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웃는 방법을 천천히 떠올리는 사람처럼.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지금... 웃은거야?"

그림 하일드는 잠깐 당황한 듯 눈을 내렸다.

엘로이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너 웃는 거..."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처음 보는 것 같아."

그 말은 놀림도 아니었고 비난도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걸 발견한 사람의 조용한 감탄에 가까웠다. 그림 하일드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방 한쪽에서 하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향했다.

하녀장은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서 있었다.

"이제 아침 식사하러 가실 시간입니다."

엘로이즈는 거울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노란 리본. 정돈된 머리.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 잠깐. 아주 잠깐. 그녀의 시선이 다시 거울 속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엘로이즈는 가볍게 말했다.

"가자."

식당 안.

긴 테이블 위에는 이미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은식기는 어제와 같은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창가로 들어온 햇빛이 식탁 위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오늘도 상석에는 대신이 앉아 있었다. 오늘도 그의 오른편에는 부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손은 포개져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식당 문이 열렸다. 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왔다. 걸음은 일정했고 고개는 곧았다. 그 반 걸음 뒤에서 그림 하일드가 따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의자 뒤 정해진 자리에 멈췄다. 엘로이즈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궁정 대신의 시선이 딸에게서 다시 그림 하일드로 옮겨졌다.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그림 하일드의 얼굴 위에 잠시 더 머물렀다. 의심인지, 확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엘로이즈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잠시 후 궁정 대신이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딸을 바라보았다.

"어서 먹자."

"네, 아버지."

식사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식탁 위에는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오갔다. 대신은 천천히 빵을 잘라 접시 한쪽에 놓았다. 그러다 마치 일정 하나를 떠올린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엘로이즈."

"네, 아버지."

"오늘은... 네 동생의 기일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엘로이즈의 포크가 접시 위에서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눈썹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살짝 움직였다. 입가가 살짝 굳었다. 인상이라 부르기엔 너무 짧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그 표정은 사라졌다. 엘로이즈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이미 평소처럼 담담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보는 눈이 많은 날이다."

부인의 손도 포크 위에서 잠시 멈췄다. 엘로이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당 안의 공기가 아주 얇게 굳었다. 귀족 부인의 눈이 잠깐 남편에게 향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로이즈는 잠시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포크를 다시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대신은 다시 빵을 집었다. 엘로이즈는 다시 포크를 들어 빵을 천천히 잘랐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하지만, 방금 오간 말들이 이 집안의 공기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점심 무렵.

저택의 앞마당에는 마차 한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검은 차체는 이미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마부는 이미 자리에서 고삐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들은 조용히 발을 굴렀다. 부인과 엘로이즈가 함께 묘지로 가는 시간이었다. 집 안에서는 소란 없이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녀들은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고, 문은 필요할때만 열리고 닫혔다.

그림 하일드는 엘로이즈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엘로이즈에게 마차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복도 끝 엘로이즈의 방문 앞에 다다르자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하녀장이었다. 벽에 기대지도 않고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하녀장님."

"마차는 준비됐나."

"네. 마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오늘은... 돌아가신 둘째 아가씨의 기일이다."

그림 하일드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래서 부인과 아가씨께서 무덤에 다녀오실 거다."

복도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녀장은 말을 이어갔다.

"드 로베르 가문에서는 해마다 이 날 직접 묘지를 찾는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단단한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하녀장은 다시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너도 같이 간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아가씨의 시녀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하녀장이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 하일드는 조용히 기다렸다.

"거기 가서는 조용히 있어라."

하녀장의 눈이 조금 더 좁아졌다.

"말하지 마라. 눈에 띄지도 마라. 아가씨 곁에 서 있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몇마디를 더 보탰다.

"걸을 때는 항상 아가씨의 뒤에서 걸음을 맞춰라."

하녀장의 시선이 잠시 그림 하일드의 발끝에 머물렀다.

"앞서지도 말고, 뒤쳐지지도 마라."

"네."

그림 하일드에게는 이미 익숙한 규칙이었다.

하녀장은 그제야 문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 엘로이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방 안에는 낮빛이 가득했다. 엘로이즈는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검은 외출 드레스 위에 얇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장갑이 들려 있었다. 거울 앞에 서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에게 닿았다.

"마차 준비됐어?"

"네, 아가씨."

"그래. 그럼 가자."

엘로이즈가 먼저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림 하일드는 반 걸음 뒤에서 따랐다. 하녀장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 앞마당에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여정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드 로베르 가문의 또 하나의 보여지는 장면이 될 예정이었다.

앞마당, 마차 앞.

마부는 자리에서 고삐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마차 앞으로 걸어갔다. 망토의 자락이 걸음에 맞춰 가볍게 흔들렸다. 마차 문 앞에 멈춘 그녀는 손을 뻗어 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자, 마차 안에는 이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엘로이즈를 보자 부드럽게 말했다.

"왔구나. 어서 타렴."

"네, 어머니."

그녀는 천천히 마차에 올라탔다. 드레스 자락이 조심스럽게 정리되었고, 부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림 하일드는 마부 쪽으로 걸어갔다. 마부는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같이 가는 건가."

"네."

마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림 하일드는 천천히 발을 올려 마부 옆 자리에 올라탔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마부가 고삐를 잡아 당겼다. 말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가 자갈을 밟으며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마차 안.

바퀴가 굴러가는 진동이 마차 안으로 잔잔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장갑을 낀 손이 무릎 위에 조용히 올려져 있었다.

부인은 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물었다.

"엘로이즈."

엘로이즈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가도... 괜찮겠니."

짧은 질문이었다. 마차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의 그림자가 창문을 가볍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어머니."

"그래. 다행이구나."

마차가 길을 따라 천천히 흔들렸다.

부인은 창문을 한 번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덤은 이미 정리해 두었다. 꽃도 새로 두라고 했어."

잠시 침묵. 그리고 조금 더 낮게 덧붙였다.

"...클레르가 꽃을 좋아했었지."

마차 밖.

마차는 돌길 위를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반복되었다. 말들은 일정한 속도로 걸었고 마부는 고삐를 느슨하게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엔 여전히 그림 하일드가 앉아 있었다. 등은 곧게 세워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잠시 후, 마부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림 하일드를 힐끗 바라보았다.

"너. 아가씨께 돌아가신 동생이 있다는 얘긴 들어봤겠지."

"...돌아가신 둘째 아가씨가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말들이 고개를 흔들며 걸었다.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궁금하지 않냐."

마부의 말이 공기위에 잠시 남아 있었다.

말발굽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그림 하일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오늘 첫째 아가씨의 시중을 들기 위해 온 겁니다."

마부가 조금 고개를 돌렸다.

그림 하일드는 앞을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

"둘째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게 아닙니다."

"그래? 말은 똑바로 하네."

잠시 후, 마부는 낮게 덪붙였다.

"근데 말이다."

고삐를 조금 고쳐 잡았다.

"너... 이 가문 사람들 너무 믿지 마라."

말들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마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지. 전통 있는 귀족 가문. 궁정 대신 집안."

그는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마부를 바라봤다. 마부는 고삐를 쥔 손을 조금 움직였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입꼬리를 피식 올렸다. 그가 낮게 말했다.

"둘째 아가씨..."

잠시 말을 멈췄다.

"사고로 돌아가셨단 얘긴 들어봤겠지."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대답없이 마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부는 앞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마차를 타고 어딜 가시던 날이었다."

말발굽이 돌을 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마차 사고였지."

그는 담담하게 덪붙였다.

"그 마차를 몬 마부가..."

고삐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을 마쳤다.

"...우리 아버지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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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로이즈는 잠시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죄송해요..."하고 웃어 넘겼을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클레르는 달랐다. 너무 조용했다. 엘로이즈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클레르..." 클레르의 어깨가 움찔했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은 잠시 더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아이. 테이블 위에 번진 소스. 굳어버린 손끝. 그는 낮게 혀를 찼다. "쯧." 그리고 냅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부인이 눈을 들었다. "왜, 더 안 드시고요?" "입맛이 없어졌소." 대신은 아무 말도 더 하지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식당 안은 더 조용해졌다. 클레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크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술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레르... 아버지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면..." 말이 거기서 멈췄다. 클레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큰 눈 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울음을 참고있는 얼굴.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부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클레르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한숨에는 피곤함과 복잡한 감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부인은 결국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 위를 조용히 스쳤다. "...먼저 일어나마." 그녀는 잠시 두 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곧 문이 조용히 닫혔다. 덜컥. 이제 식당 안에는 엘로이즈와 클레르 둘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한동안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고있는 동생. 평소처럼 밝게 웃지도 못하고, 포크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모습. 엘로이즈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9화

    덜컥. 살롱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다시 조용함이 내려 앉았다. 복도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만 길게 깔려 있었다. 클레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전 넘어졌던 자세 그대로. 작은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하녀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네스가 서 있던 자리. 부드럽게 웃던 얼굴. 다정했던 목소리. '언니분까지 영애를 창피해하시고,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클레르의 손이 떨렸다. "...아가씨?" 하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클레르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수건.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새하얀 천. 조금 전까지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천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꾸깃. 하얀 천이 손안에서 천천히 구겨졌다. 하녀의 얼굴이 더 굳었다. "...작은 아가씨,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진짜.." "...네?" "내가 진짜로... 언니를 창피하게 만들어?" "아가씨..." "내가 자꾸 뛰어다녀서...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언니도...나 싫어하게 되는 거야?"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복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클레르의 금빛 머리카락 끝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점점 더 작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드 로베르 저택의 식당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벽 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식당 안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엘로이즈는 평소처럼 단정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화

    그날 아침 식사 시간.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잠시 후.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궁정 대신.왕의 곁에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화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귀족 부인은 소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화

    돌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프롤로그

    주요 등장인물 소개 그림 하일드 : 고아원 출신의 귀족가 하녀, 훗날 사악한 왕비,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온 소녀. 고아원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다. 쓸모 없는 아이는 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고, 항상 조용히 있었고, 항상 문제되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귀족가에 들어온 뒤, 그 규칙은 더 정교해진다. 틀리지 않는 법.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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