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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20:21:23

쾅!!

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약간의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

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살짝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

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요. 맞지는 않았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부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카일.'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

'...너도 죽는다. 이해했지?'

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떨렸다. 말해야 한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엘로이즈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사람. 아무것도 모른 채 서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보고있는 그 눈.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응. 괜찮아."

엘로이즈의 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이라는 걸.

그 시각 철문 밖, 마차 위.

카일 로웬은 여전히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마차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 공기는 아주 미세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흐름. 묘지 안쪽에서 실린 바람의 길. 그 위로 실린 소리들.

"...괜찮아요." "맞지는 않았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끊어진 문장들이 얇게 스치고 지나갔다. 카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흠."

그의 시선이 묘지 안쪽 사과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방금 전의 감각이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꺾였다. 분명히 떨어졌다. 그리고 분명히, 죽어야 했다. 그런데,

"빗나갔다."

"이상하군. 사과에는, 마법이 잘 스며드는데. 열매는 쉽게 반응한다. 껍질도, 속도, 전부. 그런데 어째서.. 저 나무에는 내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거지."

"막혔다."

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묘지 안쪽. 그 안에 있는 세 사람. 그중 한사람.

"저 계집."

엘로이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분명히 그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있었다. 내 마법을 밀어낸 다른 힘이."

"...찾아야겠군. 무엇이 내 마법을 막았는지. 그리고.. 그걸 없애야 한다."

결정은 이미 끝나 있었다. 바람이 멈췄다. 아니, 멈춘것처럼 조용해졌다.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그저 기다리는 마부. 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묘지 바깥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미 그 안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묘지 안.

바람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른 풀들이 서로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엘로이즈는 앞에서 걷고 있었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고, 흐트러짐은 없었다. 그 옆에서 부인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손은 가볍게 얹혀 있었지만, 놓지 않았다.

"정말 괜찮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하렴."

"...네. 괜찮아요."

엘로이즈가 짧게 대답했다. 부인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손을 아주 조금 더 단단히 얹었다. 두 사람의 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시선은 낮게. 발걸음은 맞춰서.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하지만 그녀의 안쪽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너도 죽는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을만큼 낮게.

'...아가씨...'

숨이 짧게 끊겼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앞을 향했다. 엘로이즈의 등으로. 그림 하일드의 눈이 흔들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속으로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가씨는... 제게 유일하게... 눈이 또렷하다고... 말씀해주신 분이셨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거울 앞. 자기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했던 순간.

"...생각보다 눈이 또렷하네."

그 목소리. 그 시선. 그림 하일드의 눈이 떨렸다.

'앞으로는... 거울도 가끔... 봐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는데.'

'다들...'

그녀의 머릿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겹쳐졌다.

"틀리지 마라." "말하지 마라." "눈에 띄지 마라." "역할만 해라."

'규칙대로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절... 유일하게 사람처럼 대해주셨던 분인데.'

'저는... 제가 죽는 게 두려워서...'

'아가씨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아주 약하게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유지했다. 정확하게. 흐트러짐 없이. 그저하녀로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마지막 문장은 거의 숨처럼 흩어졌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는 엘로이즈가 아무것도 모른 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부인의 손이 얹혀 있었고, 햇빛은 여전히 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부인의 시선이 움직였다. 고개가 살짝,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뒤로 돌아갔다.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걷고있는 아이. 부인의 눈이 가라앉았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그 시선 안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측정. 판단. 그리고 결정.

그녀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게.

'조금만 더 다듬으면... 쓸 수 있다.'

'어서 빨리... 진행해야겠어.'

그 문장은 완전히 정리된 결론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끝난 일이었다. 부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바로 세웠다. 손은 여전히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고,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묘지의 길은 끝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아래에서, 이미 누군가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끼이익. 철문이 열렸다. 묘지 안의 공기가 바깥으로 조금 흘러나왔다.

엘로이즈가 먼저 걸어나왔다. 걸음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고, 시선은 곧았다. 그 옆에 귀족 부인이 있었다. 손은 아직도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 나왔다. 세 사람의 걸음이 그대로 이어져 마차 앞에 멈췄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고, 바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안장 위. 카일 로웬은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기다리고 있던 마부. 아무 표정도 없고,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하지만 그의 시선이 살짝 움직였다.

엘로이즈.

그녀가 마차 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아주 짧게.정말 짧게 그녀를 훔쳐보았다. 눈동자가 스치듯 움직였다. 그리고멈췄다.

목.

엘로이즈의 목 위.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목걸이. 카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짧은 생각.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한 장식. 카일은 귀족들이 흔히 두르는 그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아까 그 순간.낙하 직전. 비틀렸던 궤도. 그리고, 번졌던 빛.

카일의 손가락이 고삐 위에서 움직였다.

'겉으로는 그냥 귀족들의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뭔가 거슬렸다.'

그의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었다. 엘로이즈가 마차 앞에 멈췄다. 부인이 먼저 올라타려는 순간, 카일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보이지 않게. 아주 작게. 허공을 향해 뻗었다. 공기가 반응했다. 흐름이 정렬되었다. 바람이 아니라, 힘. 집중된 의지. 그것이 한 점으로 모였다.

목걸이. 진주. 그 중심을 향해, 조용히. 잡아당겼다.

'당겨라.'

보이지 않는 힘이 목걸이에 닿았다. 순간, 진주가 아주 살짝 빛났다. 햇빛과는 다른 빛. 짧고, 얇고, 하지만 분명한 반짝임. 그리고,

툭.

힘이 밀려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걸이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흔들림조차 없었다. 카일의 손가락이 멈췄다.

'...안 먹힌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조금 더 강하게. 힘을 모았다. 이번에는 더 또렷하게. 더 분명하게. 쥐어당겼다.

하지만 다시. 진주가 한 번 더 반짝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막혔다. 카일의 손이 천천히 멈췄다. 고삐 위에서 힘이 풀렸다.

'...역시. 저 목걸이가, 저 계집을... 지켜준 거다.'

그 생각이 완전히 자리 잡았다. 흔들림 없이, 의심 없이, 결론처럼.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마부.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목표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저걸 먼저 없애야 한다.'

마차 앞.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발을 올리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그 모든 걸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때, 카일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번엔 그림 하일드에게로. 카일의 눈이 또 다시 움직였다. 방금 전, 마차 위에서 숨이 막혀오던 순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모습.

그리고, 묘지 안에서.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아이.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겁에 질려 있군. 그래서, 더 낫다.'

그는 다시 한 번 엘로이즈 쪽을 스치듯 보았다. 목. 진주. 빛. 그리고, 다시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아이.

'저 아이. 저 아이라면, 가까이 갈 수 있겠지.'

하녀. 항상 곁에 서 있는 존재. 의심받지 않는 위치. 가장 가까운 자리. 카일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손이 닿을 수 있다.'

목걸이. 저 진주. 직접. 가장 자연스럽게. 그의 입가가 더 올라갔다. 이번에는, 계산이었다.

'저 아이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더 숙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순종적인 마부.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다음 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 저 아이의 위치. 저 아이의 공포. 저 아이의 선택. 전부 계산 안에 들어와 있었다. 카일은 알고 있었다. 겁먹은 사람은,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리에 앉고 있었고,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서, 이미 다른 의도가 끼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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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었고, 바퀴는 부드럽게 흙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르의 눈이 크게 반짝였다.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산 진짜 예쁘다!!"엘로이즈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였다.숲 사이로는 맑은 계곡물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생 과일 나무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쥐저기고 있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엘로이즈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미소지었다"...그래. 예쁘네.""언니! 저기 참새도 있어!""우와! 다람쥐다!""저 계곡도 엄청 시원해보인다!!"클레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꾸밈도, 망설임도 없었다. 좋으면 좋다고, 예쁘면 예쁘다고,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아이였다.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부러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언니도 너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 생각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한편, 마차 밖.안장 위에 앉은 루시안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푸른 숲과 햇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의 눈에 조금도 아름답게 들어오지 않았다.루시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루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았다.마차는 더욱 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6화

    잠시 후. 드 로베르 저택 앞마당. 따뜻한 햇살이 돌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두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은은한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그녀의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옆에는 연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땋은 금빛 머리에 파란 리본을 단 클레르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클레르의 얼굴에는 꽃밭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택 앞에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 말들은 숨을 내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차 앞에는 늙은 마부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 로웬.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루시안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로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차에 오르기 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온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어딘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긴 엘로이즈는 클레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다가 몸을 홱 돌려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가면 후레지아 꽃 많이 따와서 꽃병에 예쁘게 장식해놓자! 언니 방에도 놓고 내 방에도 놓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래, 그래. 일단 타. 조심히." "응!" 클레르는 신이 난 듯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엘로이즈도 뒤이어 조용히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루시안은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철컥. 작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부석으로 걸어가 안장 위에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4화

    귀족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 대신의 답은 짧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 귀족 부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화

    그날 아침 식사 시간.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잠시 후.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궁정 대신.왕의 곁에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화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귀족 부인은 소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화

    돌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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