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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20:21:23

쾅!!

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

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살짝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

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요. 맞지는 않았어요."

"하마터면..."

부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

"...큰일 날 뻔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카일.'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

'...너도 죽는다. 이해했지?'

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떨렸다. 말해야 한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엘로이즈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사람. 아무것도 모른 채 서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보고있는 그 눈.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응. 괜찮아."

엘로이즈의 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이라는 걸.

그 시각 철문 밖, 마차 위.

카일 로웬은 여전히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마차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 공기는 아주 미세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흐름. 묘지 안쪽에서 실린 바람의 길. 그 위로 실린 소리들.

"...괜찮아요." "맞지는 않았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끊어진 문장들이 얇게 스치고 지나갔다. 카일의 눈이 아주 천천히 가늘어졌다.

"...흠."

그의 시선이 묘지 안쪽 사과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방금 전의 감각이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꺾였다. 분명히 떨어졌다. 그리고 분명히, 죽어야 했다. 그런데,

"...빗나갔다."

카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고삐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공기가 다시 반응했다. 흩어져 있던 바람이 얇게 모였다가, 다시 풀렸다. 확인하듯. 되짚듯.

"...이상하군. 사과에는, 마법이 잘 스며드는데."

그는 사과나무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열매는.. 쉽게 반응한다. 껍질도, 속도, 전부. 그런데."

그의 시선이 나무 전체로 확장되었다. 줄기, 가지, 뿌리.

"어째서.. 저 나무에는 내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거지."

카일의 눈썹이 움직였다.

"...막혔다."

짧은 한 마디. 확신에 가까운 음성. 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묘지 안쪽. 그 안에 있는 세 사람. 그중 한사람.

"저 계집."

엘로이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분명히 그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내 마법을 밀어낸... 다른 힘이."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낙하 직전. 공기의 흐름이 틀어진 순간. 그 짧은 찰나의 빛. 카일의 손이 고삐 위에서 천천히 쥐어졌다.

"...찾아야겠군. 무엇이 내 마법을 막았는지. 그리고.. 그걸 없애야 한다."

결정은 이미 끝나 있었다. 바람이 멈췄다. 아니, 멈춘것처럼 조용해졌다.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그저 기다리는 마부. 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묘지 바깥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미 그 안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묘지 안.

바람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른 풀들이 서로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엘로이즈는 앞에서 걷고 있었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고, 흐트러짐은 없었다. 그 옆에서 부인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손은 가볍게 얹혀 있었지만, 놓지 않았다.

"정말 괜찮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하렴."

"...네. 괜찮아요."

엘로이즈가 짧게 대답했다. 부인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손을 아주 조금 더 단단히 얹었다. 두 사람의 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시선은 낮게. 발걸음은 맞춰서.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하지만 그녀의 안쪽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너도 죽는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을만큼 낮게.

'...아가씨...'

숨이 짧게 끊겼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앞을 향했다. 엘로이즈의 등으로. 그림 하일드의 눈이 흔들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속으로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가씨는... 제게... 유일하게... 눈이 또렷하다고... 말씀해주신 분이셨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거울 앞. 자기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했던 순간.

"...생각보다 눈이 또렷하네."

그 목소리. 그 시선. 그림 하일드의 눈이 떨렸다.

'앞으로는... 거울도 가끔... 봐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는데.'

'다들...'

그녀의 머릿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겹쳐졌다.

"틀리지 마라." "말하지 마라." "눈에 띄지 마라." "역할만 해라."

그림 하일드의 손이 떨렸다.

'규칙대로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절... 유일하게... 사람처럼 대해주셨던 분인데.'

그녀의 발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가 다시 맞춰졌다.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그대로. 하지만 가슴 안쪽은 점점 더 조여왔다.

'저는... 제가 죽는 게 두려워서...'

그 말이 끝나지 못한 채 잠깐 멈췄다. 그리고 조금 더 낮게 이어졌다.

'아가씨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 문장은 거의 부서지듯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아주 약하게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유지했다. 정확하게. 흐트러짐 없이. 그저하녀로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마지막 문장은 거의 숨처럼 흩어졌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는 엘로이즈가 아무것도 모른 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부인의 손이 얹혀 있었고, 햇빛은 여전히 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부인의 시선이 움직였다. 고개가 살짝,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뒤로 돌아갔다.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걷고있는 아이. 부인의 눈이 가라앉았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그 시선 안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측정. 판단. 그리고 결정.

그녀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게.

'조금만 더 다듬으면...'

부인의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쓸 수 있다.'

그 말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도구를 판단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생각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짧고, 더 분명하게.

'어서 빨리...'

그녀의 시선이 한 번 더 그림 하일드에게 닿았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걷고 있는 아이.

'...진행해야겠어.'

그 문장은 완전히 정리된 결론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끝난 일이었다. 부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바로 세웠다. 손은 여전히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고,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묘지의 길은 끝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아래에서, 이미 누군가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끼이익. 철문이 열렸다. 묘지 안의 공기가 바깥으로 조금 흘러나왔다.

엘로이즈가 먼저 걸어나왔다. 걸음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고, 시선은 곧았다. 그 옆에 귀족 부인이 있었다. 손은 아직도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 나왔다. 세 사람의 걸음이 그대로 이어져 마차 앞에 멈췄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고, 바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안장 위. 카일 로웬은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기다리고 있던 마부. 아무 표정도 없고,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하지만 그의 시선이 살짝 움직였다.

엘로이즈.

그녀가 마차 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아주 짧게.정말 짧게 그녀를 훔쳐보았다. 눈동자가 스치듯 움직였다. 그리고멈췄다.

목.

엘로이즈의 목 위.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목걸이. 카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짧은 생각.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한 장식. 카일은 귀족들이 흔히 두르는 그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아까.그 순간.낙하 직전. 비틀렸던 궤도. 그리고, 번졌던 빛.

카일의 손가락이 고삐 위에서 움직였다.

'겉으로는 그냥 귀족들의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뭔가 거슬렸다.'

그의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었다. 엘로이즈가 마차 앞에 멈췄다. 부인이 먼저 올라타려는 순간, 카일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보이지 않게. 아주 작게. 허공을 향해 뻗었다. 공기가 반응했다. 아주 미세하게, 흐름이 정렬되었다. 바람이 아니라, 힘. 집중된 의지. 그것이 한 점으로 모였다.

목걸이. 진주. 그 중심을 향해, 조용히. 잡아당겼다.

'—당겨라.'

보이지 않는 힘이 목걸이에 닿았다. 순간, 진주가 아주 살짝 빛났다. 햇빛과는 다른 빛. 짧고, 얇고, 하지만 분명한 반짝임. 그리고,

툭.

힘이 밀려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걸이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흔들림조차 없었다. 카일의 손가락이 멈췄다.

'...안 먹힌다.'

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조금 더 강하게. 힘을 모았다. 이번에는 더 또렷하게. 더 분명하게. 쥐어당겼다.

하지만 다시. 진주가 한 번 더 반짝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막혔다. 카일의 손이 천천히 멈췄다. 고삐 위에서 힘이 풀렸다. 그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역시. 저 목걸이가, 저 계집을... 지켜준 거다.'

그 생각이 완전히 자리 잡았다. 흔들림 없이, 의심 없이, 결론처럼.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마부.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목표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저걸 먼저 없애야 한다.'

마차 앞.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발을 올리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그 모든 걸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때, 카일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번엔 그림 하일드에게로. 카일의 눈이 또 다시 움직였다. 방금 전, 마차 위에서 숨이 막혀오던 순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모습.

그리고, 묘지 안에서.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아이.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겁에 질려 있군.'

짧은 판단. 정확했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래서, 더 낫다.'

그는 다시 한 번 엘로이즈 쪽을 스치듯 보았다. 목. 진주. 빛. 그리고, 다시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아이.

'저 아이. 저 아이라면, 가까이 갈 수 있겠지.'

하녀. 항상 곁에 서 있는 존재. 의심받지 않는 위치. 가장 가까운 자리. 카일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손이 닿을 수 있다.'

목걸이. 저 진주. 직접. 가장 자연스럽게. 그의 입가가 더 올라갔다. 이번에는, 계산이었다.

'저 아이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더 숙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순종적인 마부.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다음 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 저 아이의 위치. 저 아이의 공포. 저 아이의 선택. 전부 계산 안에 들어와 있었다. 카일은 알고 있었다. 겁먹은 사람은,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마차 앞.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리에 앉고 있었고,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서, 이미 다른 의도가 끼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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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로이즈는 끝까지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굳어 있었다. 마침내 클레르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작게 이어졌다. "...언니. 정말... 어머니, 아버지도 나 싫어하시고...언니도 나 싫어할 거야?" "아니야." 엘로이즈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영애가.. 괜히 심술 부린거야." "아니야.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고 웃어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고.. 어머니도.. 항상 나만 보면 한숨 쉬셨고... 방금도 아버지가 나 조심성없다고 혼내신 것도..." "아니야." 엘로이즈가 조금 더 빠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두 분 다. 너가 걱정돼서 그러신거야. 네가 다칠까봐, 또 남들이 함부로 말할까봐. 그래서 엄하게 말씀하시는 거지." "...나.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 아니야." 엘로이즈의 눈이 멈췄다. 클레르는 울먹이는 얼굴로 계속 말했다.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 볼 때 어떤 눈 하는지는 나도 알아..."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식당 안 공기가 아주 조용히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동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자가 아주 작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클레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클레르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 툭. 엘로이즈의 손이 조용히 클레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클레르의 몸이 아주 작게 움찔했다. "...클레르. 너 언니 눈 똑바로 봐."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언니 말 못 믿겠어?" 클레르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선 너머로, 엘로이즈의 얼굴이 보였다. 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언니는 거짓말 안 해." 그녀가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0화

    엘로이즈는 잠시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죄송해요..."하고 웃어 넘겼을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클레르는 달랐다. 너무 조용했다. 엘로이즈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클레르..." 클레르의 어깨가 움찔했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은 잠시 더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아이. 테이블 위에 번진 소스. 굳어버린 손끝. 그는 낮게 혀를 찼다. "쯧." 그리고 냅킨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부인이 눈을 들었다. "왜, 더 안 드시고요?" "입맛이 없어졌소." 대신은 아무 말도 더 하지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식당 안은 더 조용해졌다. 클레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크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입술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레르... 아버지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면..." 말이 거기서 멈췄다. 클레르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큰 눈 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울음을 참고있는 얼굴.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부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클레르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한숨에는 피곤함과 복잡한 감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부인은 결국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 위를 조용히 스쳤다. "...먼저 일어나마." 그녀는 잠시 두 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곧 문이 조용히 닫혔다. 덜컥. 이제 식당 안에는 엘로이즈와 클레르 둘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한동안 말없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고있는 동생. 평소처럼 밝게 웃지도 못하고, 포크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모습. 엘로이즈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9화

    덜컥. 살롱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다시 조용함이 내려 앉았다. 복도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만 길게 깔려 있었다. 클레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전 넘어졌던 자세 그대로. 작은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하녀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네스가 서 있던 자리. 부드럽게 웃던 얼굴. 다정했던 목소리. '언니분까지 영애를 창피해하시고,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클레르의 손이 떨렸다. "...아가씨?" 하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클레르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수건.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새하얀 천. 조금 전까지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천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꾸깃. 하얀 천이 손안에서 천천히 구겨졌다. 하녀의 얼굴이 더 굳었다. "...작은 아가씨,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진짜.." "...네?" "내가 진짜로... 언니를 창피하게 만들어?" "아가씨..." "내가 자꾸 뛰어다녀서...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언니도...나 싫어하게 되는 거야?"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복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클레르의 금빛 머리카락 끝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점점 더 작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드 로베르 저택의 식당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벽 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식당 안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엘로이즈는 평소처럼 단정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7화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ㅡ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말은 조용했지만, 아까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결이였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ㅡ" 잠깐 말을 멈췄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6화

    마부의 말이 끝난 뒤에도 마차는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계속 이어졌다.그림 하일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은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지만 손끝에 힘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었다.그때,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대신 말이다..."고삐를 쥔 손을 살짝 비틀었다."겉으로 보기엔 참 점잖지."짧은 웃음."말도 조용하고, 체면도 챙기고."잠시 후"근데 그런 인간일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그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5화

    거울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잠시 맞물려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 안에 또렷하게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웃는 방법을 천천히 떠올리는 사람처럼.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지금... 웃은거야?" 그림 하일드는 잠깐 당황한 듯 눈을 내렸다. 엘로이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너 웃는 거..."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처음 보는 것 같아." 그 말은 놀림도 아니었고 비난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4화

    귀족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 대신의 답은 짧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 귀족 부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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