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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20:21:23

쾅!!

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

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

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요."

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

"맞지는 않았어요."

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하마터면ㅡ"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

"...큰일 날 뻔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

"...이상하네."

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카일.'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

'...너도 죽는다. 이해했지?'

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말해야 한다. 이건ㅡ 사고가 아니다. 하지만ㅡ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엘로이즈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사람. 아무것도 모른 채 서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보고있는 그 눈.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결국 나온 말은 그것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녀의 목소리.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의 말투. 엘로이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짧은 대답.

"괜찮아."

엘로이즈의 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이라는 걸.

그 시각 철문 밖, 마차 위.

카일 로웬은 여전히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마차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 공기는 아주 미세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흐름. 묘지 안쪽에서 실린 바람의 길. 그 위로 실린 소리들.

"...괜찮아요." "맞지는 않았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끊어진 문장들이 얇게 스치고 지나갔다. 카일의 눈이 아주 천천히 가늘어졌다.

"...흠."

짧은 숨. 그의 시선이 묘지 안쪽 사과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방금 전의 감각이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꺾였다. 분명히 떨어졌다. 그리고ㅡ 분명히, 죽어야 했다. 그런데ㅡ

"...빗나갔다."

카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고삐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공기가 다시 반응했다. 흩어져 있던 바람이 얇게 모였다가, 다시 풀렸다. 확인하듯. 되짚듯.

"...이상하군."

그의 눈동자가 조금 더 깊어졌다.

"사과에는ㅡ 마법이 잘 스며드는데."

그는 사과나무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열매는.. 쉽게 반응한다."

짧은 정적.

"껍질도, 속도, 전부."

손끝이 아주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나무 전체로 확장되었다. 줄기, 가지, 뿌리.

"어째서.. 저 나무에는 내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거지."

카일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막혔다."

짧은 한 마디. 확신에 가까운 음성. 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묘지 안쪽. 그 안에 있는 세 사람. 그중 한사람.

"저 계집."

엘로이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분명히 그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내 마법을 밀어낸... 다른 힘이."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낙하 직전. 공기의 흐름이 틀어진 순간. 그 짧은 찰나의 빛. 카일의 손이 고삐 위에서 천천히 쥐어졌다.

"...찾아야겠군."

낮고 단단한 목소리.

"무엇이 내 마법을 막았는지."

잠시 침묵.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걸 없애야 한다."

말은 짧았지만, 결정은 끝나 있었다. 바람이 멈췄다. 아니, 멈춘것처럼 조용해졌다.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그저 기다리는 마부. 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묘지 바깥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미 그 안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묘지 안.

바람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른 풀들이 서로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엘로이즈는 앞에서 걷고 있었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고, 흐트러짐은 없었다. 그 옆에서 부인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손은 가볍게 얹혀 있었지만, 놓지 않았다.

"정말 괜찮니."

부인의 목소리는 낮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하렴."

엘로이즈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짧은 대답.

부인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손을 아주 조금 더 단단히 얹었다. 두 사람의 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그보다 반 걸음 뒤ㅡ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시선은 낮게. 발걸음은 맞춰서.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하지만 그녀의 안쪽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ㅡ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너도 죽는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을만큼 낮게.

'...아가씨...'

숨이 짧게 끊겼다.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앞을 향했다. 엘로이즈의 등으로. 그림 하일드의 눈이 흔들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속으로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처음으로 분명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가씨는...'

잠시 멈췄다. 목 안쪽이 막힌 듯.

'제게—'

그녀의 손이 조금 더 굳었다.

'유일하게...'

숨이 아주 얇게 이어졌다.

'눈이 또렷하다고... 말씀해주신 분이셨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거울 앞. 자기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했던 순간.

"...생각보다 눈이 또렷하네."

그 목소리. 그 시선. 그림 하일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앞으로는...'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거울도 가끔... 봐도 된다고.'

그녀의 시선이 바닥으로 더 깊이 떨어졌다.

'그렇게— 말씀해주셨는데.'

짧은 정적. 바람이 한 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흔들렸다.

'다들...'

그녀의 머릿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겹쳐졌다.

"틀리지 마라." "말하지 마라." "눈에 띄지 마라." "역할만 해라."

그림 하일드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규칙대로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절—'

숨이 흔들렸다.

'유일하게...'

목이 잠깐 막혔다.

'사람처럼 대해주셨던 분인데.'

그녀의 발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가 다시 맞춰졌다.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게. 그대로. 하지만 가슴 안쪽은 점점 더 조여왔다.

'저는...'

그녀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감겼다.

'제가 죽는 게...'

짧은 숨.

'두려워서—'

그 말이 끝나지 못한 채 잠깐 멈췄다. 그리고 조금 더 낮게 이어졌다.

'아가씨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 문장은 거의 부서지듯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을 아주 약하게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유지했다. 정확하게. 흐트러짐 없이. 그저— 하녀로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마지막 문장은 거의 숨처럼 흩어졌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는 엘로이즈가 아무것도 모른 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부인의 손이 얹혀 있었고, 햇빛은 여전히 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부인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고개가 살짝,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뒤로 돌아갔다.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걷고있는 아이. 부인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그 시선 안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측정. 판단. 그리고 결정.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게.

'조금만 더 다듬으면—'

부인의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쓸 수 있다.'

그 말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도구를 판단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생각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짧고, 더 분명하게.

'어서...'

짧은 숨.

'빨리—'

그녀의 시선이 한 번 더 그림 하일드에게 닿았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걷고 있는 아이.

'...진행해야겠어.'

그 문장은 완전히 정리된 결론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끝난 일이었다. 부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바로 세웠다. 손은 여전히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고,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묘지의 길은 끝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아래에서, 이미누군가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끼이익— 철문이 열렸다. 묘지 안의 공기가 바깥으로 조금 흘러나왔다.

엘로이즈가 먼저 걸어나왔다. 걸음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고, 시선은 곧았다. 그 옆에 귀족 부인이 있었다. 손은 아직도 엘로이즈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반 걸음 뒤.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따라 나왔다. 세 사람의 걸음이 그대로 이어져 마차 앞에 멈췄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고, 바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안장 위. 카일 로웬은 고삐를 쥔 채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기다리고 있던 마부. 아무 표정도 없고,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하지만 그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엘로이즈.

그녀가 마차 쪽으로 걸어오는 순간, 아주 짧게.정말 짧게—

그녀를 훔쳐보았다. 눈동자가 스치듯 움직였다. 그리고ㅡ 멈췄다.

목.

엘로이즈의 목 위.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목걸이. 카일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저거.'

짧은 생각.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한 장식. 카일은 귀족들이 흔히 두르는 그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아까.그 순간.낙하 직전. 비틀렸던 궤도. 그리고— 번졌던 빛.

카일의 손가락이 고삐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겉으로는...'

생각이 낮게 이어졌다.

'그냥 귀족들의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동자가 조금 더 깊어졌다.

'아까부터—'

짧은 숨.

'뭔가... 거슬렸다.'

그의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었다. 엘로이즈가 마차 앞에 멈췄다. 부인이 먼저 올라타려는 순간— 카일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보이지 않게. 아주 작게. 허공을 향해— 뻗었다. 공기가 반응했다. 아주 미세하게—흐름이 정렬되었다. 바람이 아니라— 힘. 집중된 의지. 그것이 한 점으로 모였다.

목걸이. 진주. 그 중심을 향해— 조용히. 잡아당겼다.

'—당겨라.'

보이지 않는 힘이 목걸이에 닿았다. 순간— 진주가 아주 미세하게 빛났다. 햇빛과는 다른 빛. 짧고, 얇고— 하지만 분명한 반짝임. 그리고—

툭.

힘이 밀려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목걸이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흔들림조차 없었다. 카일의 손가락이 멈췄다.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안 먹힌다.'

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조금 더 강하게. 힘을 모았다. 이번에는 더 또렷하게. 더 분명하게. 쥐어당겼다.

하지만—

다시. 진주가 한 번 더 반짝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막혔다. 카일의 손이 천천히 멈췄다. 고삐 위에서 힘이 풀렸다. 그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역시.'

낮은 목소리가 속으로 흘렀다.

'저 목걸이가—'

그의 시선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엘로이즈. 그녀의 목. 그 위에 걸린 진주.

'저 계집을... 지켜준 거다.'

그 생각이 완전히 자리 잡았다. 흔들림 없이, 의심 없이, 결론처럼. 카일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삐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마부.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목표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저걸—'

짧은 숨.

'먼저 없애야 한다.'

마차 앞.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발을 올리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그 뒤에서 그 모든 걸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때, 카일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번엔 그림 하일드에게로. 카일의 눈이 또 다시 미세히 움직였다. 방금 전, 마차 위에서 숨이 막혀오던 순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모습.

그리고— 묘지 안에서.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아이.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겁에 질려 있군.'

짧은 판단. 정확했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래서— 더 낫다.'

그는 다시 한 번 엘로이즈 쪽을 스치듯 보았다.

목. 진주. 빛. 그리고— 다시 그림 하일드.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아이.

'저 아이.'

생각이 낮게 흘렀다.

'저 아이라면—'

그의 손가락이 고삐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가까이 갈 수 있겠지.'

하녀. 항상 곁에 서 있는 존재. 의심받지 않는 위치. 가장 가까운 자리. 카일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손이 닿을 수 있다.'

목걸이. 저 진주. 직접. 가장 자연스럽게. 그의 입가가 더 올라갔다. 이번에는— 계산이었다.

'저 아이가—'

짧은 숨.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더 숙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순종적인 마부.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다음 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 저 아이의 위치. 저 아이의 공포. 저 아이의 선택. 전부 계산 안에 들어와 있었다. 카일은 알고 있었다. 겁먹은 사람은—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마차 앞.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리에 앉고 있었고,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어딘가에서, 이미 다른 의도가 끼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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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또 시작이구나.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였다."...글쎄요..."엘로이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는..."말끝은 부드러웠다.하지만 이네스는 그 틈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이네스는 천천히 이어갔다."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이네스의 눈이 조금 휘어졌다."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0화

    저택 안.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귀족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엘로이즈."부드러운 목소리였다.엘로이즈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네, 어머니."짧은 대답.부인은 그녀를 한 번 더 살폈다. 얼굴. 숨. 걸음. 그리고 묘지에서의 일. 사과나무. 떨어진 가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부인의 손이 아주 가볍게, 엘로이즈의 어깨에 닿았다."괜찮니."짧은 질문. 하지만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단정했다.부인은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많이 놀랐을 텐데."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 더 낮게."들어가서 쉬렴."그 말은 배려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결정이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묻지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9화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ㅡ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올리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시선은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옆에 있는 시선은 느껴지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그림 하일드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침묵.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씨익. 소리 없는 웃음. 짧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은 웃음. 그림 하일드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이 그대로 굳어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찰싹.짧은 소리."...가자."낮은 목소리.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ㅡ 바퀴가 굴러갔다. 자갈 위를 밟으며 일정한 리듬으로. 마차가 다시 길 위로 나아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차는 조용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말들은 고개를 흔들며 걸었고, 바람은 옆을 스치듯 흘러갔다.안장 위의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히 굳어져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너."짧은 한 음절.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굳었다. 숨이 한 번, 얕게 끊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주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맞지는 않았어요."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하마터면ㅡ"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큰일 날 뻔했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이상하네."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카일.'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너도 죽는다. 이해했지?'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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