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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6 17:28:06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 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

대신의 답은 짧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

"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

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오르려는 마음이 누구를 밟고 지나가느냐지."

"우리 애를 밟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모르오. 하지만. 우리 애는 사람을 너무 쉽게 곁에 두오. 외로움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지."

부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동생을 잃은 뒤로 딸이 조용해졌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 덕에 요즘은 조금은 웃는 것 같습니다."

"웃게 만드는 자가 항상 좋은 자는 아니오."

촛불이 짧게 탔다. 대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녀장은?"

"이미 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내일부터는 그 아이의 동선과 접촉을 하녀장이 더 세밀히 관리하게 하시오."

"감시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확인하라는 말이오."

대신은 차갑게 말했다.

"확인은 의심이 아니라 책임이오."

그는 문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우리 애는 가문의 얼굴이오. 얼굴 곁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촛불과 부인만 남았다.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야욕이라..."

그녀의 기억 속에서 저녁 식탁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서 있던 아이. 그 얼굴 어디에 야욕이 있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궁정 대신이 괜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시각.

작은 하녀 방에서 그림 하일드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살롱의 시선.

저녁 식탁의 시선.

그리고, 아가씨가 잠시 자신을 오래 바라보던 눈. 그녀는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그녀에게 욕심은 없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런데도 어쩐지, 오늘 하루는 저택 전체가 자신을 한 겹 더 얇게 재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당겨 덮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생각했다.

'틀리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인지, 다짐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잠시 후.

저택의 복도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부인은 촛대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불꽃이 작게 흔들릴 때마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하녀들이 묵는 방들이 나열되어있는 복도는 주인들의 공간보다 더 어둡고, 더 좁았다. 그녀는 그림 하일드의 방문 앞에 멈췄다. 잠시 손을 올렸다가,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이 숨처럼 열렸다.

작은 방 안에는 가구 몇 개와 좁은 침대, 그리고 달빛뿐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이불을 단정히 덮고 누워 있었다. 두 손은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마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단정해진 아이처럼.

부인은 문간에 서서 그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잠든 얼굴은 낮에 보았던 얼굴보다 훨씬 더 어려보였다. 경계도 없고, 조심스러움도 없고, 그저 작은 아이였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야욕이 있소.'

남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저 얼굴에 무엇이 숨겨져 있다는 걸까.'

촛불이 조금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의 속눈썹이 아주 조금 떨렸지만 깨지는 않았다. 부인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복도를 걸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 가문, 드 로베르 가문. 오래된 귀족 가문.

사람들은 전통과 권위, 선망의 상징이라 부른다. 궁정 대신을 배출한 집안. 왕의 곁에 선 집안. 흔들림 없는 가문.

하지만 그 내막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편은 궁정 대신이다. 계산적이고, 차분하고, 언제나 한 수 앞을 읽는 사람. 겉으로는 품위와 절제를 말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항상 하나였다.

'보여지는 것.'

왕 앞에서의 체면. 궁정에서의 입지. 다른 귀족들의 시선.

그는... 부인도, 자식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부로 여긴다. 딸들이 항상 우아해야 하는 이유도, 항상 총명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이 성공해야 그의 체면도 서고, 그의 자리도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더 높은 자리. 그가 아직 말로 꺼내지 않은 그 다음 자리. 그 길에 방해가 될 사람들은 남편은... 미리 치워버리는 사람이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부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 창문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둘째 딸아이를 잃었던 날도 이렇게 조용했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더 단단해졌고, 더 계산적이 되었다. 첫째 딸아이를 향한 눈빛은 걱정보다 기대가 많았다.'

그때 남편이 낮게, 분명하게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얼굴 곁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그 문장은 부탁이 아니었다. 명령도 아니었다. 원칙이었다. 가문의 얼굴에 금이 가지 않게 하라는, 냉정한 원칙. 귀족 부인은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그 말 속에는 딸아이의 행복도, 감정도, 두려움도 들어있지 않았다. 들어있는 건 오직 가문의 이름과 자신의 자리 뿐이었다. 그림 하일드가 정말 흠집이 될까. 아니면... 딸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줄 손이 될까.'

부인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택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완벽하게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누군가는 이미 누군가를 흠집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저택의 공기는 밤보다 더 얇고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복도의 바닥을 길게 가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리본 상자와 빗을 정리한 쟁반을 들고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속도도, 숨도 일정했다.

하지만 방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하녀장이었다. 팔짱을 끼지도, 기대지도 않은 채 정확히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림 하일드는 한 걸음 앞에서 멈췄다.

"하녀장님."

"왔구나."

하녀장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마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림하일드는 조용히 기다렸다.

"오늘부터 너와 아가씨의 접촉을 더 세밀히 관리하라고."

"관리... 말씀이십니까."

"아가씨의 일정은 하녀장을 통해 전달한다. 단독으로 대화하는 시간은 줄인다. 필요 이상의 체류는 하지 않는다."

하녀장은 짧게 끊어가며 말했다.

"아가씨의 방에 들어갈 때는 하녀장과 함께 들어간다."

복도는 조용했지만 그 말은 규칙처럼 또렸했다. 그림 하일드는 잠시 침묵했다. 어젯 밤, 아가씨의 질문.

'고아원에선... 어떤 걸 배웠어?'

그리고,

'넌... 누가 빼앗아도 괜찮은 아이구나.'

그 말이 아주 얇게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짧고 단정한 대답. 하녀장은 그 얼굴을 살폈다. 당황이나 억울함 같은 것을 찾듯. 그러나 그림 하일드의 표정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그저 배운대로.

하녀장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문이 열렸다. 방 안은 아침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아가씨는 화장대에 앉아 있었다. 거울 앞에 곧게 앉은 모습은 아침부터 흐트러짐이 없었다. 햇빛은 거울을 스쳐 그녀의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하녀장을 거쳐 그림 하일드에게 닿았다. 잠시, 아주 잠깐.

"오늘부터 하녀장이 같이 있을거야. 괜찮지?"

"네, 아가씨."

잠시 후.

그림 하일드는 노란 리본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밝은 색. 햇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빛이 도는 리본이었다.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돈한 뒤, 리본을 끼워 넣었다. 각도는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 왼쪽으로.

매듭을 정리하고 손을 떼자 노란 리본이 아가씨의 흑발 위에서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그림 하일드는 한 걸음 물러섰다.

"다 매었습니다."

아가씨는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녀장의 시선이 두 사람을 동시에 훑었다. 그리고 아가씨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마음에 들게 매줬네."

그 말에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풀렸다. 하지만 아가씨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과 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가 함께 비쳤다. 아가씨의 시선이 천천히, 거울 속 그림 하일드에게로 옮겨갔다. 잠시. 그리고,

"그림 하일드."

"네, 아가씨."

"잠깐... 거기 서 있어 봐."

그림 하일드는 조금 당황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아가씨가 덧붙였다. 하녀장이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그림 하일드는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바로 뒤, 거울이 정확히 비치는 자리에 섰다.

"고개 좀.. 들어볼래?"

그 말은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게 거울은 항상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가씨의 머리를 빗기며 비친 옆모습을 잠깐 봤을 뿐. 정면으로 자신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고아원에서는 애초에 거울이 없었다. 있다 해도 아이들이 들여다볼 자리는 아니었다. 자기 얼굴을 확인하는 일은 그곳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 있었다. 작고, 마른 얼굴. 빛을 거의 받아본 적 없는 피부. 조심스러운 눈.

그리고, 아가씨의 뒤에 서 있던 그 아이가 아니라, 아가씨와 나란히 같은 틀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얼굴. 그림 하일드는 숨을 아주 잠깐 멈췄다. 낯설었다. 이렇게 선명하게 자기 얼굴을 보는 게. 아가씨는 거울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생각보다... 눈이 또렷하네."

그 말이 칭찬인지 평가인지 알 수 없었다. 하녀장은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가씨는 리본을 한 번 더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이 집에 오기 전엔 거울 자주 봤어?"

"...아니요."

"그렇구나. 그럼... 오늘부터는 가끔 봐도 되겠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림 하일드는 처음으로 자기 얼굴과 아가씨의 얼굴이 한 프레임 안에 함께 들어와 있다는 걸 또렷하게 인식했다. 노란 리본은 아가씨의 머리 위에서 빛났고, 그림 하일드의 눈은 그 옆에서 조용히 빛을 받아 더 또렷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가씨, 아니, '엘로이즈 드 로베르'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아주 천천히 그림 하일드의 눈과 마주쳤다. 엘로이즈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처음으로 낯선 흥미가 아주 얇게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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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었고, 바퀴는 부드럽게 흙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르의 눈이 크게 반짝였다.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산 진짜 예쁘다!!"엘로이즈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였다.숲 사이로는 맑은 계곡물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생 과일 나무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쥐저기고 있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엘로이즈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미소지었다"...그래. 예쁘네.""언니! 저기 참새도 있어!""우와! 다람쥐다!""저 계곡도 엄청 시원해보인다!!"클레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꾸밈도, 망설임도 없었다. 좋으면 좋다고, 예쁘면 예쁘다고,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아이였다.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부러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언니도 너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 생각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한편, 마차 밖.안장 위에 앉은 루시안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푸른 숲과 햇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의 눈에 조금도 아름답게 들어오지 않았다.루시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루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았다.마차는 더욱 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6화

    잠시 후. 드 로베르 저택 앞마당. 따뜻한 햇살이 돌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두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은은한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그녀의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옆에는 연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땋은 금빛 머리에 파란 리본을 단 클레르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클레르의 얼굴에는 꽃밭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택 앞에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 말들은 숨을 내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차 앞에는 늙은 마부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 로웬.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루시안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로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차에 오르기 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온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어딘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긴 엘로이즈는 클레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다가 몸을 홱 돌려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가면 후레지아 꽃 많이 따와서 꽃병에 예쁘게 장식해놓자! 언니 방에도 놓고 내 방에도 놓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래, 그래. 일단 타. 조심히." "응!" 클레르는 신이 난 듯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엘로이즈도 뒤이어 조용히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루시안은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철컥. 작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부석으로 걸어가 안장 위에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화

    그날 아침 식사 시간.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잠시 후.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궁정 대신.왕의 곁에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화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귀족 부인은 소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1화

    돌은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프롤로그

    주요 등장인물 소개 그림 하일드 : 고아원 출신의 귀족가 하녀, 훗날 사악한 왕비,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온 소녀. 고아원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다. 쓸모 없는 아이는 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고, 항상 조용히 있었고, 항상 문제되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귀족가에 들어온 뒤, 그 규칙은 더 정교해진다. 틀리지 않는 법.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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