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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6 17:28:06

귀족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

"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

대신의 답은 짧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

귀족 부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오르려는 마음이 누구를 밟고 지나가느냐지."

잠시 침묵.

귀족 부인은 남편을 오래 보았다.

"우리 애를 밟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정확했다.

대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애는 사람을 너무 쉽게 곁에 두오."

그의 시선이 문 쪽으로 잠시 향했다.

"외로움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지."

귀족 부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동생을 잃은 뒤로 딸이 조용해졌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 아이 덕에 요즘은 조금은 웃는 것 같습니다."

대신의 얼굴이 굳었다.

그 한 문장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웃게 만드는 자가 항상 좋은 자는 아니오."

촛불이 짧게 탔다. 대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녀장은?"

"이미 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내일부터는 그 아이의 동선과 접촉을 하녀장이 더 세밀히 관리하게 하시오."

귀족 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감시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확인하라는 말이오."

대신은 차갑게 말했다.

"확인은 의심이 아니라 책임이오."

그는 문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우리 애는 가문의 얼굴이오."

잠시 멈추었다.

"얼굴 곁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촛불과 귀족 부인만 남았다.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야욕이라..."

그녀의 기억 속에서 저녁 식탁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서 있던 아이. 그 얼굴 어디에 야욕이 있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궁정 대신이 괜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시각.

작은 하녀 방에서 그림 하일드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살롱의 시선.

저녁 식탁의 시선.

그리고—

아가씨가 잠시 자신을 오래 바라보던 눈. 그녀는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그녀에게 욕심은 없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런데도 어쩐지, 오늘 하루는 저택 전체가 자신을 한 겹 더 얇게 재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당겨 덮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생각했다.

'틀리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인지, 다짐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잠시 후.

저택의 복도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귀족 부인은 촛대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불꽃이 작게 흔들릴 때마다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하녀들이 묵는 방들이 나열되어있는 복도는 주인들의 공간보다 더 어둡고, 더 좁았다. 그녀는 그림 하일드의 방문 앞에 멈췄다. 잠시 손을 올렸다가,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이 숨처럼 열렸다.

작은 방 안에는 가구 몇 개와 좁은 침대, 그리고 달빛뿐이었다. 그림 하일드는 이불을 단정히 덮고 누워 있었다.

두 손은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마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단정해진 아이처럼.

귀족 부인은 문간에 서서 그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잠든 얼굴은 낮에 보았던 얼굴보다 훨씬 더 어려보였다.

경계도 없고, 조심스러움도 없고ㅡ 그저 작은 아이였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야욕이 있소.'

남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저 얼굴에 무엇이 숨겨져 있다는 걸까.'

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의 속눈썹이 아주 조금 떨렸지만 깨지는 않았다. 부인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복도를 걸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 가문ㅡ 드 로베르 가문. 오래된 귀족 가문.

사람들은 전통과 권위, 선망의 상징이라 부른다.

궁정 대신을 배출한 집안.

왕의 곁에 선 집안.

흔들림 없는 가문.

하지만ㅡ

그 내막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편은 궁정 대신이다. 계산적이고, 차분하고, 언제나 한 수 앞을 읽는 사람. 겉으로는 품위와 절제를 말하지만ㅡ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항상 하나였다.

'보여지는 것.'

왕 앞에서의 체면. 궁정에서의 입지. 다른 귀족들의 시선.

그는... 부인도, 자식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부로 여긴다. 딸들이 항상 우아해야 하는 이유도, 항상 총명해야 하는 이유도ㅡ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이 성공해야 그의 체면도 서고, 그의 자리도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ㅡ

더 높은 자리. 그가 아직 말로 꺼내지 않은 그 다음 자리. 그 길에 방해가 될 사람들은 남편은... 미리 치워버리는 사람이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귀족 부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 창문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둘째 딸아이를 잃었던 날도 이렇게 조용했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더 단단해졌고, 더 계산적이 되었다. 첫째 딸아이를 향한 눈빛은 걱정보다 기대가 많았다.'

그때ㅡ 남편이 낮게, 분명하게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얼굴 곁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그 문장은 부탁이 아니었다. 명령도 아니었다. 원칙이었다. 가문의 얼굴에 금이 가지 않게 하라는, 냉정한 원칙. 귀족 부인은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그 말 속에는 딸아이의 행복도, 감정도, 두려움도 들어있지 않았다. 들어있는 건 오직 가문의 이름과 자신의 자리 뿐이었다. 그림 하일드가 정말 흠집이 될까. 아니면... 딸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줄 손이 될까.'

귀족 부인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택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완벽하게 조용했다.

하지만ㅡ

그 조용함 속에서 누군가는 이미 누군가를 흠집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저택의 공기는 밤보다 더 얇고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복도의 바닥을 길게 가르고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리본 상자와 빗을 정리한 쟁반을 들고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속도도, 숨도 일정했다.

하지만ㅡ

방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하녀장이었다. 팔짱을 끼지도, 기대지도 않은 채 정확히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림 하일드는 한 걸음 앞에서 멈췄다.

"하녀장님."

하녀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왔구나."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마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림하일드는 조용히 기다렸다.

"오늘부터 너와 아가씨의 접촉을 더 세밀히 관리하라고."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접촉.

그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그림 하일드의 손가락이 쟁반에서 아주 살짝 힘을 주었다.

"관리... 말씀이십니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녀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가씨의 일정은 하녀장을 통해 전달한다. 단독으로 대화하는 시간은 줄인다. 필요 이상의 체류는 하지 않는다."

짧게 끊어 말했다.

"아가씨의 방에 들어갈 때는 하녀장과 함께 들어간다."

복도는 조용했지만 그 말은 규칙처럼 또렸했다. 그림 하일드는 잠시 침묵했다. 어젯 밤, 아가씨의 질문.

'고아원에선... 어떤 걸 배웠어?'

그리고ㅡ

'넌ㅡ 누가 빼앗아도 괜찮은 아이구나.'

그 말이 아주 얇게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짧고 단정한 대답. 하녀장은 그 얼굴을 살폈다.

당황이나 억울함 같은 것을 찾듯. 그러나 그림 하일드의 표정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그저 배운대로.

하녀장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안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방 안은 아침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아가씨는 화장대에 앉아 있었다. 거울 앞에 곧게 앉은 모습은 아침부터 흐트러짐이 없었다. 햇빛은 거울을 스쳐 그녀의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하녀장을 거쳐 그림 하일드에게 닿았다.

잠시ㅡ 아주 잠깐.

"오늘부터 하녀장이 같이 있을거야."

아가씨가 말했다.

"괜찮지?"

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네, 아가씨."

잠시 후.

그림 하일드는 노란 리본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밝은 색. 햇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빛이 도는 리본이었다.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돈한 뒤, 리본을 끼워 넣었다. 각도는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 왼쪽으로.

매듭을 정리하고 손을 떼자 노란 리본이 아가씨의 흑발 위에서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그림 하일드는 한 걸음 물러섰다.

"다 매었습니다."

아가씨는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녀장의 시선이 두 사람을 동시에 훑었다.

그리고—

아가씨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오늘도..."

부드러운 목소리.

"마음에 들게 매줬네."

그 말에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하지만—

아가씨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과 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가 함께 비쳤다.

아가씨의 시선이 천천히, 거울 속 그림 하일드에게로 옮겨갔다.

잠시.

그리고—

"그림 하일드."

낮게 불렀다.

"네, 아가씨."

"잠깐... 거기 서 있어 봐."

그림 하일드는 조금 당황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아가씨가 덧붙였다. 하녀장이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다. 그림 하일드는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바로 뒤, 거울이 정확히 비치는 자리에 섰다.

"고개 좀.. 들어볼래?"

그 말은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게 거울은 항상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가씨의 머리를 빗기며 비친 옆모습을 잠깐 봤을 뿐. 정면으로 자신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고아원에서는 애초에 거울이 없었다. 있다 해도 아이들이 들여다볼 자리는 아니었다. 자기 얼굴을 확인하는 일은 그곳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 있었다.

작고, 마른 얼굴.

빛을 거의 받아본 적 없는 피부.

조심스러운 눈.

그리고—

아가씨의 뒤에 서 있던 그 아이가 아니라, 아가씨와 나란히 같은 틀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얼굴. 그림 하일드는 숨을 아주 잠깐 멈췄다. 낯설었다. 이렇게 선명하게 자기 얼굴을 보는 게. 아가씨는 거울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생각보다... 눈이 또렷하네."

그 말이 칭찬인지 평가인지 알 수 없었다.

하녀장은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가씨는 리본을 한 번 더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이 집에 오기 전엔 거울 자주 봤어?"

그림 하일드는 거울 속 자기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아니요."

아가씨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렇구나."

잠시 침묵.

"그럼... 오늘부터는 가끔 봐도 되겠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림 하일드는 처음으로 자기 얼굴과 아가씨의 얼굴이 한 프레임 안에 함께 들어와 있다는 걸 또렷하게 인식했다. 노란 리본은 아가씨의 머리 위에서 빛났고, 그림 하일드의 눈은 그 옆에서 조용히 빛을 받아

더 또렷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가씨, 아니, '엘로이즈 드 로베르'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아주 천천히 그림 하일드의 눈과 마주쳤다.

엘로이즈의 미소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처음으로 낯선 흥미가 아주 얇게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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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ㅡ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올리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시선은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옆에 있는 시선은 느껴지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그림 하일드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침묵.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씨익. 소리 없는 웃음. 짧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은 웃음. 그림 하일드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이 그대로 굳어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찰싹.짧은 소리."...가자."낮은 목소리.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ㅡ 바퀴가 굴러갔다. 자갈 위를 밟으며 일정한 리듬으로. 마차가 다시 길 위로 나아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차는 조용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말들은 고개를 흔들며 걸었고, 바람은 옆을 스치듯 흘러갔다.안장 위의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히 굳어져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너."짧은 한 음절.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굳었다. 숨이 한 번, 얕게 끊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주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맞지는 않았어요."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하마터면ㅡ"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큰일 날 뻔했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이상하네."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카일.'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너도 죽는다. 이해했지?'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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