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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Author: 빅비58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7 08:19:33
엘로이즈는 끝까지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손이 굳어 있었다. 마침내 클레르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작게 이어졌다.

"...언니. 정말... 어머니, 아버지도 나 싫어하시고...언니도 나 싫어할 거야?"

"아니야. 그 영애가.. 괜히 심술 부린거야."

"아니야.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고 웃어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고.. 어머니도.. 항상 나만 보면 한숨 쉬셨고... 방금도 아버지가 나 조심성없다고 혼내신 것도..."

"아니야."

엘로이즈가 조금 더 빠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두 분 다. 너가 걱정돼서 그러신거야. 네가 다칠까봐, 또 남들이 함부로 말할까봐. 그래서 엄하게 말씀하시는 거지."

"...나.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 아니야."

엘로이즈의 눈이 멈췄다. 클레르는 울먹이는 얼굴로 계속 말했다.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 볼 때 어떤 눈 하는지는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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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1화

    대신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바로 일주일 전.자신과 부인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날. 그 길을 지나갔다. 분명히 지나갔다. 같은 산길이었다. 창밖으로 보였던 풍경까지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길, 숲, 산비탈, 그리고...대신의 눈이 가늘어졌다.'...없었다.'사과나무. 그런 나무는 없었다. 적어도 마차 바로 옆으로 쓰러질 만큼 길 가까이에 서 있던 거대한 사과나무라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더구나 마부의 말대로라면, 오래되고 늙은 나무였다. 수십 년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법한 거대한 나무. 그런데.'...바로 일주일 전에는 사과나무 자체가 없었다.''일주일 만에...''그 정도 크기의 나무가 갑자기 생겨났다고?'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 생각이 닿았다.루시안.오늘 두 딸을 태운 마차를 몰았던 마부. 사고가 난 직후 상황을 설명한 사람. 그리고, 사과나무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말한 사람.'...저 마부가.'대신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홀 한쪽.다른 하인들보다 조금 뒤쪽에 서 있는 늙은 마부에게로. 루시안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침통한 얼굴, 죄책감에 짓눌린 듯한 표정. 언뜻 보면 자신이 모시던 어린 아가씨를 지키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늙은 하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신의 눈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거짓말을 하는 건가.'그 순간. 루시안의 눈이 아주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루시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정말 찰나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대신은 보았다. 그 짧은 흔들림을.그러나 대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다시 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등 뒤로 모아둔 손은 어느새 꽉 쥐어져 있었다.'...확인해 봐야겠군.'그때."...클레르."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신의 시선이 움직였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30화

    엘로이즈의 얼굴에서 억지로 짓고있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사아아.노란 후레지아 꽃밭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나 아름답게. "...클레르?""...클레르.""클레르...?"엘로이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클레르. 장난치지 마.""...""클레르.""눈 떠봐.""클레르...!!""눈 떠봐!!!"동생의 뺨을 감싼 손이 미친듯이 떨렸다."클레르!! 언니 여기 있잖아!!"아무리 불러도 클레르의 눈은 다시 뜨이지 않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아니야... 아니야..."한 번. 두 번. 현실 자체를 계속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결국,"클레르으으으!!!"엘로이즈의 울음 섞인 절규가 산속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쓰러진 동생의 곁에서 울었다. 평생 단 한 번도 부모 앞에서조차 크게 울어본 적 없던 아이가. 예법도, 체면도, 가문의 이름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도 전부 잊어버린 채, 그저 동생의 이름만 계속 불렀다."클레르...""클레르... 제발...""눈 떠봐...""...언니가 잘못했어..."바람이 다시 한 번 불었다. 노란 후레지아들도 다시 흔들렸다.조금 떨어진 곳. 루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르...!"엘로이즈가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노란 후레지아 꽃들이 가득 피어난 바로 앞에서, 끝내 동생과 함께 꽃 한 송이 꺾어보지 못한 채.그날 밤.드 로베르 저택 안.저택 전체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넓은 홀 양옆으로 하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그 가운데, 작은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관 주변에는 수많은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흰 꽃과 보라색 꽃.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후레지아가 놓여 있었다. 클레르가 좋아했던 꽃. 낮에 유난히 꺾고싶어했던 꽃.그 꽃들에 둘러쌓인 채, 클레르는 관 안에 조용히 누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9화

    "아가씨!!"산속을 울리는 비명에 황급히 고개를 들은 루시안은 다급하게 안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발이 흙바닥을 거칠게 밟았다. 조금 전까지 마력을 다루던 손을 황급히 감춘 채 마차 쪽으로 달려갔다. 마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에 놀란것처럼."아가씨!! 괜찮으십니까?!"그러나 마차 가까이 다가간 순간, 루시안의 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부서진 마차. 산산이 갈라진 천장. 그리고 길 위, 클레르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연한 크림색 드레스는 흙먼지와 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금빛 머리카락 사이에는 파란 리본들이 풀어진 채 흩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붉은 피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루시안의 표정이 흔들렸다. 마차 안에는 엘로이즈가 있었다. 다친곳은 보이지 않았고,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었다. 손은 아직도 허공을 향해 뻗어져 있었다. 조금 전, 클레르의 손을 붙잡으려 했던 그 자세 그대로. 눈은 열린 마차 문 너머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클...""...클...""...클레르...?""....클레르!!!"엘로이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드레스 자락이 부서진 마차 문 조각에 걸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계단을 제대로 밟지도 못한 채 거의 굴러 떨어지듯 땅으로 내려와 그대로 동생에게 달려갔다.엘로이즈는 클레르의 옆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손이 허공을 헤맸다. 어디를 만져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엘로이즈의 손이 클레르의 뺨으로 향했다."클레르!!""눈 떠.""클레르!! 눈 떠!! 언니야!!"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린 듯 다급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아가씨,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대로 여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서 작은 아가씨를 모시고 돌아가야 합니다."루시안은 그렇게 말하며 클레르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심스럽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8화

    "꺄악!!"지붕이 크게 흔들리고, 마차 전체가 옆으로 기울며 거칠게 요동쳤다. 엘로이즈와 클레르는 동시에 몸의 균형을 잃었다."뭐야...!"엘로이즈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콰직!!클레르의 머리 위 마차 천장이 산산이 갈라지며 굵은 사과나뭇가지 하나가 그대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뭇가지는 클레르의 등을 그대로 관통했다."....윽!!"클레르의 몸이 충격과 함께 그대로 굳어 버렸다.엘로이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클레르?"그때. 우지직.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과나뭇가지가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부러지기 시작했다. 클레르의 등을 관통한 채 박혀 있던 나뭇가지 역시 그대로 부러졌고, 갈라진 천장과 열린 마차 문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클레르의 몸은 등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꽂힌 채 그대로 마차 밖으로 휩쓸려 나갔다."클레르!!"엘로이즈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서로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 짧은 순간에 모두 담겨 있었다."잡아...!"엘로이즈의 손끝이 간신히 닿을 듯 다가갔다. 하지만 한순간 늦었다. 손가락 끝만 스친 채, 클레르의 손은 엘로이즈의 손을 빠져나갔다."...안 돼!!"엘로이즈의 절박한 외침과 함께, 클레르의 몸은 그대로 마차 밖으로 떨어졌다.끼이익!루시안은 마치 예상치 못한 사고라도 난 것처럼 다급히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들이 크게 울음소리를 내며 걸음을 멈췄고, 마차도 겨우 멈춰섰다."이.. 이게 무슨..."겉으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급히 마차를 돌아보았다.마차 안.엘로이즈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아직도 방금 전 클레르의 손이 자신의 손끝을 스쳐 지나간 감각이 남아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시선이 열린 마차 문 너머로 향했다."..."길 위에는 클레르가 쓰러져 있었다. 금빛 머리는 모두 흐트러져 있었고, 연한 크림색 드레스는 먼지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엘로이즈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7화

    마차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돌길은 어느새 흙길로 바뀌었고, 바퀴는 부드럽게 흙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르의 눈이 크게 반짝였다. 설렘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산 진짜 예쁘다!!"엘로이즈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반짝였다.숲 사이로는 맑은 계곡물이 은빛으로 반짝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생 과일 나무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쥐저기고 있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재빠르게 오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엘로이즈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미소지었다"...그래. 예쁘네.""언니! 저기 참새도 있어!""우와! 다람쥐다!""저 계곡도 엄청 시원해보인다!!"클레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꾸밈도, 망설임도 없었다. 좋으면 좋다고, 예쁘면 예쁘다고, 그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아이였다.엘로이즈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잠시 부러운 듯한 눈빛이 스쳤다.'언니도 너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 생각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한편, 마차 밖.안장 위에 앉은 루시안은 묵묵히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도 푸른 숲과 햇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의 눈에 조금도 아름답게 들어오지 않았다.루시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구나.'루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묵묵히 마차를 몰았다.마차는 더욱 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26화

    잠시 후. 드 로베르 저택 앞마당. 따뜻한 햇살이 돌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두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로이즈는 은은한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색감은 그녀의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옆에는 연한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곱게 땋은 금빛 머리에 파란 리본을 단 클레르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파란 리본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클레르의 얼굴에는 꽃밭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택 앞에는 검은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다. 말들은 숨을 내쉬며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차 앞에는 늙은 마부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 로웬.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루시안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엘로이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차에 오르기 전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온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얼굴에는 어딘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의 눈빛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긴 엘로이즈는 클레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클레르는 밝게 웃으며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오르다가 몸을 홱 돌려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언니! 우리 가면 후레지아 꽃 많이 따와서 꽃병에 예쁘게 장식해놓자! 언니 방에도 놓고 내 방에도 놓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래, 그래. 일단 타. 조심히." "응!" 클레르는 신이 난 듯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엘로이즈도 뒤이어 조용히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자리에 앉자, 루시안은 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철컥. 작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마부석으로 걸어가 안장 위에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7화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ㅡ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말은 조용했지만, 아까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결이였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ㅡ" 잠깐 말을 멈췄다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6화

    마부의 말이 끝난 뒤에도 마차는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계속 이어졌다.그림 하일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은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지만 손끝에 힘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었다.그때,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대신 말이다..."고삐를 쥔 손을 살짝 비틀었다."겉으로 보기엔 참 점잖지."짧은 웃음."말도 조용하고, 체면도 챙기고."잠시 후"근데 그런 인간일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그

  •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5화

    거울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잠시 맞물려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 안에 또렷하게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웃는 방법을 천천히 떠올리는 사람처럼.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지금... 웃은거야?" 그림 하일드는 잠깐 당황한 듯 눈을 내렸다. 엘로이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너 웃는 거..."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처음 보는 것 같아." 그 말은 놀림도 아니었고 비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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