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진은 비즈니스를 위한 미팅 중에도, 지현과 지수가 들어간 룸에서 도무지 신경을 뗄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얼음물만 들이켜던 그때, 닫혀 있던 그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진은 반사적으로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나섰다.
예상대로 지수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선 참이었다. 도진은 급하게 지수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거칠게 팔을 잡아채 근처의 비어 있는 룸으로 밀어 넣었다.
“아……!”
지수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팔목을 무자비하게 악력으로 가라앉히는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도진이 자신을 빈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방금 전까지 지현과 나누며 행복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시커먼 불쾌함으로 뒤덮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지수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질투와 추악한 소유욕으로 눈이 붉게 물든 도진은 지수의 팔을 잡은
CB 그룹 자체 세공 총괄 팀과,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유명 외주 세공소 세 곳으로 긴급히 보냈던 남미 에메랄드 원석의 교차 검증 결과와 가공 완료 실물이 드디어 하나씩 본사 대표이사 집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A 바이어 측이 보내온 20% 수율 보고서를 보며 '그쪽 세공사들의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원석 컷팅 레이아웃을 잘못 잡은 탓'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던 강도진의 마지막 희망은, 며칠에 걸쳐 쏟아져 들어온 감정서들과 실물 보석 상자 앞에서 사정없이 짓밟히고 말았다.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감정 보고서들을 하나씩 들춰보았다.[CB 내부 세공 총괄팀 1차 감정서: 원석 내부 미세 균열(Fissures) 및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던 내포물 분포 심각. 보석급 컷팅 진행 시 최종 수율 19.4% 판정.][해외 전문 세공소 B사 감정서: 에메랄드 원석 특유의 결정 결함으로 인한 가공 손실 극대화. 예상 수율 20.1% 수준.][국내 대표 보석가공소 C사 감정서: 평균 수율 18.7%. 세공 공정비 및 위험 부담 감안 시 상업적 가치 대폭 하락.]어느 세공소를 거쳐도 결과는 잔인할 정도로 일관되었다. 한결같이 20% 내외라는 처참한 수치만이 붉은 날인과 함께 감정서 하단에 박혀
시크릿룸을 채운 묵직한 중압감과 정적 속에서, 이지수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전면 유리창 쪽에서 걸어 나와 마호가니 테이블 상석에 우아하게 앉았다.채권자들 역시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맞은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록 전파 차단과 갤러리 같은 인테리어에 잠시 위축되긴 했으나, 그들은 금융계의 뼈굵은 거물들이었다.외부에 비친 CB 그룹은 찰스의 폭로와 여론 악화로 리스크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불안하긴 하지만, 여전히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대형 호재를 쥐고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아직 도진의 개인 자산이 바닥나 회사 비상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내부 파산 위기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CB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완벽한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믿으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제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이지수 대표. 직설적으로 말하겠소. 우리가 오늘 여기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CB 그룹의 채권을 넘겨 달라는 해외 투자자들의 연락이 쇄도했소.""맞습니다. CB 그룹이 아무리 흔들린다 한들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쥐고 있는 기업이오. 거래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우리 채권단에게 있다는 뜻입니다."거만한 목소리들이 방 안을 울렸지만, 지수는 그들의 말에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지수는 그저 다기(茶器)를 집어 들고, 평소 즐기는 어린 찻잎으로 떫은맛이 적고 우아한 향이 일품인
정지상이 산산조각 난 태블릿 파편을 조용히 주워 담아 나간 뒤, 싸늘한 정적이 감도는 집무실에서 강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 화면 속 자산 현황표를 멍하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남미 에메랄드 광산 측에서 요구한 추가 자금을 보내기 위해 그룹 재무팀과 개인 자산 관리인에게 명의로 된 모든 계좌와 유휴 자산을 끌어모으라 지시한 결과가 스크린 위에 띄워지고 있었다.숫자를 하나씩 확인해 내려갈 때마다 도진의 안색에서는 핏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푸르스름한 흙빛으로 변해갔다."……이게 끝이라고? 내 개인 자산과 부모님 명의의 채권까지 다 합친 게 겨우 이것뿐이야?!"도진은 목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에 거친 손길로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단추가 튕겨 나갔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남미 에메랄드 광산 지분을 매입하고 현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천문학적이었지만,
찰스가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회개 영상과, 그와 동시에 인터넷 전역에 터져 나온 강도진과의 최후 통화 음성 녹음 파일은 전국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첫 번째 공개되었던 파일이 도진도 찰스의 표절을 사전에 알고 방조했다는 증거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파일은 찰스를 사지로 몰아넣은 도진의 가혹한 꼬리 자르기가 그대로 담긴 결정타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쓰고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지는 강도진의 잔혹한 목소리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 헤드라인을 순식간에 도배했고,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던 대중의 민심은 완벽하게 뒤흔들렸다. [단독] '구치소 자살 시도' 찰스 CP, 병실 바닥 무릎 꿇고 사죄… "모든 죄는 내게, 하지만 강도진을 용서 못 해" [사회] 찰스 2차 통화 폭로…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써" 강도진 폭언 정황
CB 그룹이 전 세계 언론에 사내 조사 결과와 함께 공개한 남미 광산의 1차 채굴 결과서는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영롱한 초록빛 원석 수십 킬로그램의 사진과 지질팀의 서명은 자극적이었다.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찰스의 피투성이 이송 소동에서 희귀 에메랄드 노다지로 쏠렸고, 자사주 매입과 맞물려 주가는 10만 원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지전을 이어갔다.그러나 사내 조사 보고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 패션 및 디자인계 내부의 분위기는 서늘하기만 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품 라인을 배출했던 총괄 디자이너가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 뒤에 대표의 표절 방조 음성이 얽혀 있다는 사실은 디자이너 커뮤니티와 명품업계 내부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CB가 발표한 '찰스 개인의 일탈'이라는 사내 조사 보고서를 보며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어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지수의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우는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CB의 에메랄드 컬렉션 [Imperial Emerald: 왕좌의 빛] 정식 사전 예약 개시일에 맞춰, 법원에서 완전히
A국 중앙지방법원에서 직접 판결문을 확인하고 돌아온 제이아우라 대표실에는 정적과 함께 승자의 서늘한 여유가 감돌고 있었다.이지수는 앤티크 프레임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판결문 원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법정에서 강도진의 핏기 없는 얼굴과 이를 악물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지만, 지수의 표정에는 격정적인 환희 대신 당연한 이치를 확인했을 때의 담담함만이 서려 있었다."당연한 결과입니다."지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파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박성재 변호사와 법무팀 팀원들이 감격 어린 얼굴로 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 당연한 결과를 법정에서 깔끔하게 입증해 주신 건 박성재 변호사님과 법무팀 여러분이죠. 그동안 CB의 치졸한 법적 공작을 막아내느라 다들 정말 애쓰셨습니다."지수는 책상 위 서류함에서 사전에 준비해 둔 봉투들을 꺼내 법무팀원들에게 일일이 건넸다. 그 안에는 당초 약속했던 성과금보다 훨씬 넉넉한 액수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
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
아침에 일어난 지수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옆자리를 보았다. 몇일 집에 잘 들어오던 도진은 어젯밤 들어오지 않았다.생리가 시작하기 전에 느껴지는 익숙한 배의 묵직한 불편감에 불안감이 든 지수는 자신의 아랫배를 살살 만지며 제발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과 편하게 강도진을 떠나기 위해 이번에도 실패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양가적인 생각에 웃음이 났다. 잠시 후 오랫만에 슬비를 만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던 중 가정부의 통화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이번에는 사장님께서 가출하신 것 같아요. 집에 안들어 오시네요. 아마 작은
진우가 근무하는 HN은행 근처의 조용한 카페. 진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슬비를 바라보았다. 슬비는 지현의 비서답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진우씨"진우는 서류를 열어보려다가 멈칫하며 슬비를 응시했다."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그리고 이지현태표님의 비서께서 왜 저를 찾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은행은 GS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슬비는 차갑지만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서류봉투를 눈짓했다. 거기에는 슬비가 미리 준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