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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입양1

Author: 릴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4 17:00:07

지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A국으로 돌아왔다. K국이 안온한 휴식처였다면, A국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그리고 그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기 전, 지수에게는 반드시 끝내야 할 마지막 숙제가 남아있었다.

“보육원으로 가주세요.”

지수는 비서 민철에게 행선지를 알려주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세 살배기 예인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해맑게 웃는 모습, 가지 말라며 붙잡던 간절한 눈빛, 헤어짐의 아쉬움을 애써 참아내던 표정까지. 아이의 모든 순간이 심장 깊은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민철의 목소리에 지수는 길었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도진과 이혼하고 자신의 브랜드인 ‘제이아우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예인이를 보지 못한 터였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낯선 차량에 호기심을 보이며 웅성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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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잔인한 축복   208화 회의실의 불협화음

    CB 대회의실.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이번 컬렉션의 첫 단추인 '시즌 컨셉 및 주제 선정 회의'가 한창이었다.프로젝터 화면에는 유명 해외 브랜드에서 억대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해 온 신임 수석 디자이너 찰스 킴이 준비한 무드보드(Mood Board)와 대형 키워드들이 떠 있었다.[주제: Neo-Vanguard (새로운 전위)]화려하고 파격적인 실루엣, 과감한 비대칭 절개선, 그리고 거친 트위드가 매치된 무드보드를 보며 찰스 킴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이번 시즌의 주제는 '새로운 전위'입니다. 뉴욕 트렌드 쇼의 핵심 기류를 반영했죠. 아방가르드한 절개선과 거친 트위드 매치가 시청자들과 바이어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을 겁니다."회의실 안의 모든 디자이너가 찰스 킴의 명성에 눌려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석에 앉아 있던 도진의 미간은 갈수록 깊게 패어 들어갔다. 도진은 펜을 든 손가락으로 툭, 툭, 정적을 깨며 탁자를 두드렸다."찰스."도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좋아. 다 좋은데, 너무 유행을 따라가지 마. 난 이번 기회에 CB의 색에 당신들의 개성을 한 스푼 더하길 바라는 거지, 이렇게 주제부터 전부 뒤집고 싶은 게 아니야."도진이 무드보드를 가리키며 차분하지만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 가장 잔인한 축복   207화 정당한 승부

    햇살이 투명하게 비쳐 드는 제이아우라의 대표실.서류를 검토하던 지수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진우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어제부로 강도진이 목매달고 있던 유럽의 핵심 원자재 기업, 우리 쪽으로 인수 절차 완전히 끝났습니다."진우의 싱거운 듯 담담한 말에 지수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유럽 명품 브랜드들조차 원단을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는 세계 최고의 직물 기업이었다. 진우는 탁자 위로 두툼한 서류철 하나를 가볍게 밀어주며 나지막이 덧붙였다."내 사인 하나면 당장 CB 쪽에 들어가는 다음 시즌 원단 납품을 무기한 지연시키거나 아예 취소해버릴 수 있어. 피를 말려 죽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이죠. 지수 씨 생각은 어때?"서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지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아뇨, 진우 씨. 납품은 계약대로 진행해 주세요.""역시 당신이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았어."진우는 다시 펠레로사의 서류를 챙겼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호기심 어린 빛이 감돌고 있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한 길을 갔으면 하는 내 욕심도 있었어."진우의 말에 지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강도진이 사람을 버리고 짓밟는 그 오만함과 이기심은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하지만……."지수의 눈동자에 서늘하면서도 명확한 불꽃이 일었다."그 사람이 디자인을 보는 안목과 사업가로서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각만큼은 진짜예요. 그래서 제가 CB가 힘들 때 도와준 것이기도 하고요. 그 점만큼은 인정했었으니까요. 만약 원자재를 틀어막아서 이기면, 강도진은 평생 '내가 디자인에서 진 게 아니라 더러운 자본 싸움에서 밀린 것뿐'이라고 핑계를 댈 거예요."지수는 진우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진우의

  • 가장 잔인한 축복   206화 보이지 않는 방패

    지수의 시야에서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현수야! 현지야! 예인아!"밀려드는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아이들의 작은 정수리가 완전히 묻혀버린 것을 깨달은 순간, 지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어떡해…… 진우 씨, 어떡해요! 애들이…… 애들이 사라졌어요!"지수는 심장이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듯한 극심한 패닉에 빠져 비틀거렸다. 손끝이 벌벌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눈앞이 하얗게 노이즈처럼 일렁였다. 세상이 온통 무너져 내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지수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며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버렸다.그때, 진우의 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 지수의 떨리는 어깨를 강하게 감싸 안았다."지수 씨, 정신 차려요. 괜찮습니다. 나 좀 봐요."진우의 낮고 서글서글하지만 굳건한 목소리가 지수의 귓가를 울렸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빠르게 보안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이것 좀 봐요. 애들 폰에 미리 위치 추적 프로그램을 깔아뒀습니다. 화면 보세요. 멀지 않은 곳에 다 같이 모여 있어요."화면 속, 반짝이는 푸른 점들이 놀이공원 중앙 광장 벤치 쪽에 멈춰 서 있었다. 지수는 그제야 막혔던 숨을 터뜨리며 참았던 눈물을 훔쳐냈다.진우의 손을 꼭 잡고 달려간 벤치에는, 도망친 수진을 놓치고 길을 잃어 울먹거리며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세 아이가 모여 있었다.지수는 주저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한꺼번에 품에 끌어안았다."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아이들의 작은 몸을 끌어안은 지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진심 어린 온기와 떨림을 느낀 현수와 현지, 예인이도 지수의 목을 꼭 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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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잔인한 축복   204화 돌아갈 수 없는 둥지

    손가락 마디마다 스며든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음식물 썩는 악취.수진은 브로커에게 1억 원이 입금되는 순간,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지저분한 동네와 관짝 같은 지하실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수진에게 그리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어느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도 지금 수진의 수중에 있는 금액으로는 그저 지금보다 아주 조금 나은 집을 소개할 뿐, 영원히 이 낡은 동네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수진은 피곤한 다리를 뻗으며 습기로 눅눅해진 지하 단칸방 구석에 앉아, 손바닥 위에 놓인 영롱한 보석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도진이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귀금속. 핑크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영원한 사랑' 라인의 첫 번째 작품임을 증명하는 '01'이 각인된 반지였다. 한때 자신의 특별한 신분을 증명해 주던 희대의 주얼리였다.‘그래, 나한테는 이게 있었어. 이것만 팔면…… 적어도 이 동네에서 벗어날 수 있어.’하지만 음지의 명품 매장을 찾아간 수진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뿐이었다.“손님, 이거 강도진 대표가 소장하던 라인 아닙니까? 지금 시장에 강 대표가 한수진 씨 버렸다는 소문 싹 다 돌았습니다. 이거 괜히 사들였다가 CB 쪽 법무팀한테 발목 잡히면 우리만 날아갑니다. 안 사요.”밀수 보석상 그 누구도 강도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이 반지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버림받은 여자에게 남아 있는 장물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세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결국 수진이 선택한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고객 정보를 팔아치웠던 블랙마켓 브로커.[장물 특성 감안해서 최대 1억 8천입니다. 각인 지우고 해외 세탁하는 비용 빼면 이것도 많이 드리는 겁니다. 시가 3억이든 5억이든 지금 당신 상

  • 가장 잔인한 축복   203화 젖줄을 거머쥐다

    CB 대표실.도진은 면세점 참패의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초조함을 감추듯 담배 연기를 깊게 마셨다. 잿빛 연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며 공중에 어지럽게 흩어졌다.“이탈리아 펠레 로사 쪽 원단 수급, 확실한 거지? 선급금까지 배로 얹어줬으니 이번 컬렉션 일정엔 1분 1초도 차질이 없어야 해. 면세점 패배는 이번 프리미엄 라인으로 한 방에 덮는다.”“네,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펠레 로사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원단 가공업체라 제이아우라 같은 신생 브랜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곳입니다. 원자재만 제때 들어오면 판세를 뒤집는 건 시간문제입니다.”정지상 실장의 보고에 도진은 그제야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원자재 공급만큼은 완벽하게 수급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치명적인 패배 뒤에 찾아올 완벽한 반격의 기회. 도진은 자신이 쥔 이 카드가 판을 뒤엎을 절대적인 치트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도진의 눈이 책상 위에 흐트러진 신규 라인 시안들을 향하자마자 다시 서늘하게 굳어졌다.탁!도진이 시안집을 책상 위로 거칠게 던져버렸다.“원자재는 완벽한데, 문제는 디자인이야! 작년보다 디자인이 형편없잖아! 원단이 아무리 최고급이면 뭐 해, 옷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정 실장, 당장 이유 찾아와!”도진의 날카로운 불호령에 정지상 실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문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실무진 쪽을 확인해 보니, 지난 시즌 대비 메인 디자이너들의 공백이 큰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과거 한수진씨가 전 디자인 총괄로 있던 시절, 그녀에게 부당한 대우와 공적 훔치기를 당했던 베테랑 디자이너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이직한 여파입니다.”

  • 가장 잔인한 축복   5화 D-14

    7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영양제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지수는 배아 이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도진에게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없었다.지숙 역시 먼저 손을 내밀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지수의 귓가에 가정부의 은밀한 전화 통화 소리가 드려왔다."네 사모님 진짜라니까요. 그 여자가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분명 다른 남자가 생긴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장님은 방치할수는 없는 거죠 . 네 ,맞아요 제가 어떻게 사모님께 거짓말을 할

  • 가장 잔인한 축복   4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4

    도진과 전화를 마친 지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익숙한 번호가 아닌,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른 번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실장인 혹시 오늘 CB 그룹과 투자 회의가 잡혀 있나요? "라고 물었다. " 네 사장님. 오늘 오후에 미팅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동사랑이 있으신가요?지수의 입가에 서늘안 미소가 번졌다. 도진이 그토록 화를 내며 중요하도고 외쳤던 미팅은 역시나 지수의 RV인벤스먼트와의 미팅이었다. " 네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미팅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대신 계약서에 싸인은 하지말고

  • 가장 잔인한 축복   3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3

    도진은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옷을 갈아입기 우해 집에 들어왔다.주방에서는 가정부가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수가 현관까지 뛰어나와 "여보 왔어?"라며 겉옷을 받아 들었을 시간이었다. 밤새 고생했다며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둔 욕조로 그를 안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거실은 적막했고 욕조는 차갑게 비어 있었다." 이 사람, 어디 갔어요?" 도진의 물음에 가정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사모님은 주무시는지 방에서 안 나오시네요."그말을

  • 가장 잔인한 축복   2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2

    지수는 도전에게 연락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119를 불렀다. 하지만 출산이 임막한 임산부처럼 부푼 배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무리였다. 지수는 필사적으로 옆방에 잠든 가정부를 불렀다."아줌마 아줌마...! 하아, 남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문트에 타고 넘고오는 가정부의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이것이 이 집에서 지수의 위치였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고용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철저한 그림자 같은 아내.지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K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오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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