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손가락 마디마다 스며든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음식물 썩는 악취.
수진은 브로커에게 1억 원이 입금되는 순간,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지저분한 동네와 관짝 같은 지하실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수진에게 그리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느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도 지금 수진의 수중에 있는 금액으로는 그저 지금보다 아주 조금 나은 집을 소개할 뿐, 영원히 이 낡은 동네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
수진은 피곤한 다리를 뻗으며 습기로 눅눅해진 지하 단칸방 구석에 앉아, 손바닥 위에 놓인 영롱한 보석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진이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귀금속. 핑크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영원한 사랑' 라인의 첫 번째 작품임을 증명하는 '01'이 각인된 반지였다. 한때 자신의 특별한 신분을 증명해 주던 희대의 주얼리였다.
‘그래, 나
손가락 마디마다 스며든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음식물 썩는 악취.수진은 브로커에게 1억 원이 입금되는 순간,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지저분한 동네와 관짝 같은 지하실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수진에게 그리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어느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도 지금 수진의 수중에 있는 금액으로는 그저 지금보다 아주 조금 나은 집을 소개할 뿐, 영원히 이 낡은 동네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수진은 피곤한 다리를 뻗으며 습기로 눅눅해진 지하 단칸방 구석에 앉아, 손바닥 위에 놓인 영롱한 보석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도진이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귀금속. 핑크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영원한 사랑' 라인의 첫 번째 작품임을 증명하는 '01'이 각인된 반지였다. 한때 자신의 특별한 신분을 증명해 주던 희대의 주얼리였다.‘그래, 나한테는 이게 있었어. 이것만 팔면…… 적어도 이 동네에서 벗어날 수 있어.’하지만 음지의 명품 매장을 찾아간 수진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뿐이었다.“손님, 이거 강도진 대표가 소장하던 라인 아닙니까? 지금 시장에 강 대표가 한수진 씨 버렸다는 소문 싹 다 돌았습니다. 이거 괜히 사들였다가 CB 쪽 법무팀한테 발목 잡히면 우리만 날아갑니다. 안 사요.”밀수 보석상 그 누구도 강도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이 반지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버림받은 여자에게 남아 있는 장물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세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결국 수진이 선택한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고객 정보를 팔아치웠던 블랙마켓 브로커.[장물 특성 감안해서 최대 1억 8천입니다. 각인 지우고 해외 세탁하는 비용 빼면 이것도 많이 드리는 겁니다. 시가 3억이든 5억이든 지금 당신 상
CB 대표실.도진은 면세점 참패의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초조함을 감추듯 담배 연기를 깊게 마셨다. 잿빛 연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며 공중에 어지럽게 흩어졌다.“이탈리아 펠레 로사 쪽 원단 수급, 확실한 거지? 선급금까지 배로 얹어줬으니 이번 컬렉션 일정엔 1분 1초도 차질이 없어야 해. 면세점 패배는 이번 프리미엄 라인으로 한 방에 덮는다.”“네,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펠레 로사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원단 가공업체라 제이아우라 같은 신생 브랜드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곳입니다. 원자재만 제때 들어오면 판세를 뒤집는 건 시간문제입니다.”정지상 실장의 보고에 도진은 그제야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원자재 공급만큼은 완벽하게 수급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치명적인 패배 뒤에 찾아올 완벽한 반격의 기회. 도진은 자신이 쥔 이 카드가 판을 뒤엎을 절대적인 치트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도진의 눈이 책상 위에 흐트러진 신규 라인 시안들을 향하자마자 다시 서늘하게 굳어졌다.탁!도진이 시안집을 책상 위로 거칠게 던져버렸다.“원자재는 완벽한데, 문제는 디자인이야! 작년보다 디자인이 형편없잖아! 원단이 아무리 최고급이면 뭐 해, 옷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정 실장, 당장 이유 찾아와!”도진의 날카로운 불호령에 정지상 실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문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실무진 쪽을 확인해 보니, 지난 시즌 대비 메인 디자이너들의 공백이 큰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과거 한수진씨가 전 디자인 총괄로 있던 시절, 그녀에게 부당한 대우와 공적 훔치기를 당했던 베테랑 디자이너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이직한 여파입니다.”
최종 입점 브랜드 표결 당일 아침. 신한성 면세점 대회의실 전면 전광판에는 심사위원 10인의 이름 대신 숫자만이 차갑게 떠올라 있었다.심사위원석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CB가 제안한 'CB 르 카페' 중심의 확실한 여성 VVIP 동선과, 제이아우라가 던진 '옴므 융합 & 글로벌 옴니채널'이라는 파격적인 블루오션. 양측의 명분이 너무나 팽팽했기에, 무기명 투표를 앞둔 심사위원들의 속내도 갈수록 복잡해졌다.도진은 정장 매무새를 정돈하며 단상 아래의 지수를 훑어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아무리 파격적인 기획이라도 면세점의 보수적인 내부 위원들은 안전빵을 택하게 되어 있어. 1층의 디저트 라운지와 여성 주얼리 파이는 당장 내일부터 눈에 보이는 현금 창구니까.’도진의 계산대로, 신한성 면세점 내부 임원진으로 구성된 보수파 위원 4명은 이미 CB 쪽으로 마음을 완전히 기울인 상태였다.바로 그때, 심사위원석 한가운데 자리한 유럽계 수석 바이어 엘레나가 손을 들었다.“표결에 들어가기 전, 제이아우라 측에 마지막 확인을 하나 하고 싶군요.”엘레나의 시선이 지수에게 향했다.“제이아우라의 남성 파인 주얼리 라인이 가진 아우라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남성 주얼리가 여성 주얼리만큼이나 현장에서 VVIP들의 실질적인 구매욕을 자극할 수 있는지, 그 실물 감각을 심사위원단에 증명할 수 있습니까?”CB 측 임원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남성 주얼리 시장의 구매력과 실물 착용감에 의문을 던지는 결정적인 질문이었다.하지만 지수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수가 고개를 차분히 숙이며 손짓하자, 민철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옻칠 케이스를 들고 엘레나 앞으로 다가갔다.“증명해 드리죠.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는 게 빠를 테니까요.”지수의 말에 엘레나는 케이스 안에 담긴 제이아우라
두 사람 사이에 일촉즉발의 스파크가 튀는 가운데, 신한성 면세점의 최상위 입점 심사위원들과 유럽계 수석 바이어 엘레나를 비롯한 글로벌 바이어들이 들어서며 마침내 입점 브리핑이 시작되었다.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것은 도진이었다. 도진은 괜히 CB의 수장이 아니었다. 그는 면세점의 생리와 여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시작부터 대형 스크린에 화려한 3D 매장 조감도를 띄우며 좌중을 압도했다.“신한성 면세점 프라임 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면세점의 상징성과 여성 VVIP의 집객력입니다. CB는 듀플렉스 1층 전체를 A국 최고 명장 파티시에와 협업한 하이엔드 디저트 & 샴페인 라운지 ‘CB 르 카페’로 꾸밀 것입니다.”심사위원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최근 해외 최상위 명품 하우스들이 도입해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플래그십 카페’ 콘셉트를 면세점 최초로 프라임 존에 이식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1층에서 오감을 사로잡아 면세점을 찾은 모든 여성 고객을 흡수한 뒤,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2층에서 CB만의 독보적인 여성 파인 주얼리와 하이엔드 워치를 선보일 것입니다. 휴식과 쇼핑이 완벽히 결합된 이 듀플렉스 라운지는 신한성 면세점 전체의 매출을 견인할 확실한 앵커 스폿이 될 것입니다.”도진은 정곡을 찌르는 완벽한 상업적 제안을 던졌다. 1층의 화려한 디저트와 2층의 눈부신 보석. 엘레나 수석 바이어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입꼬리가 승리감으로 오만하게 올라갔다.그러나 이어 단상으로 걸어 나간 지수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수는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을 켰다. 스크린에 떠오른 타이틀을 확인한 순간, 도진과 심사위원들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J-AURA HOMME & BEAUTY : 글로벌 VVIP를 위한 맞춤
A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한성 면세점’의 신규 도심 명품관 입점 공고가 뜨자, 재계 전체가 크게 요동쳤다. 명품관의 얼굴이자 브랜드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상위 ‘듀플렉스 메인 프라임 존’ 입점권을 두고 벌이는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의 총력전이었다. 면세점 전체의 동선과 시선을 한눈에 지배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랜드마크 스폿이었다.제이아우라 회장실. 신한성 면세점의 입찰 안내서를 가만히 훑어보던 이지수의 눈빛이 깊어졌다.“제이아우라도 이제 판을 키울 때가 되었네요.”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던 박진우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CB가 ‘검은 태양’으로 주가를 올리더니 이번 입점전에 사활을 걸 거라는 정보가 들어왔어. 도진이는 이번 프라임 존을 발판 삼아 CB의 화려한 부활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할 거야.”“남들이 다 깔아놓은 판에서 덩치 싸움을 하겠단 거네요. 강도진 회장다운 선택이에요.”지수는 입찰 서류를 덮으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CB 그룹과 제이아우라, 그리고 강도진과 이지수의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가 그려질 완벽한 무대였다.입찰 기한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주. CB 그룹 본사는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검은 태양’의 폭등세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던 도진은 이번 면세점 입점이야말로 제이아우라를 완전히 눌러버리고 왕좌를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회장님, 이번 프라임 존 입점은 CB 그룹의 전통적 본체인 ‘여성 파인 주얼리’ 라인을 공고히 할 최선의 기회입니다. 유럽 보석상들과의 독점 공급망 정리도 완벽히 끝났습니다.”베테랑 기획 임원진의 보고에 도진은 만족스럽게 턱
CB 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미친 듯이 치솟는 CB 그룹의 주가 차트를 바라보며, 강도진은 최고급 싱글몰트 위스키 잔을 높이 들었다. 얼음이 가볍게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이지수가 세공해 낸 ‘검은 태양’의 첫 번째 피스는 공개되자마자 VVIP 시장을 단숨에 매료시켰고, 이사회와 대주주들의 찬사가 도진의 발밑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언론은 그를 ‘위기를 기회로 바꾼 천재 경영인’이라 칭송했다.“봤냐, 이지수? 박진우? 아무리 날 흔들어봐야 CB는 내 거다. 내가 이 거대한 제국의 절대적인 주인이야!”도진은 붉어진 얼굴로 허공에 잔을 찌르듯 들어 올렸다.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는 오만한 착각, 그 달콤하고 치명적인 승리의 도취감이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제이아우라 최고층 진우의 사무실.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 사이로, 진우는 대형 모니터 세 대를 채운 금융 시장 거래창을 차분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붉은빛을 뿜으며 폭등하는 CB 그룹의 주가 창. 그 곁으로 다가온 지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건네며 물었다.“화면에서 눈을 못 떼시네요. 그렇게 재미있어요?”“응.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돈벌기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중이라.”진우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픽 웃더니, 지수의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혔다. 모니터에는 CB 그룹의 주가가 요동치던 지난 몇 달간의 일봉 차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지수 씨, 그거 알아? 진짜 투자가는 악재에서도 돈을 벌고, 호재에서도 돈을 버는 법이야.”진우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지나온 차트의 마디마디를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첫 번째. 도진이가
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
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
이지현은 비서 슬비가 가져온 서류를 검토하다거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류 봉토 안에는 동생 지수의 처절한 결혼 생활과 강도진의 외도 증거들이 빠곡히 담겨 있었다. "하, 이지수,, 이딴 남자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고 있었던 거야?" 지현은 화가나고 속상한듯 서류를 구기며 슬비를 봤다."박비서님은 지수의 친구이기도 하니 당분간 A국에서 가서 지수 옆에 있어 주실수 있다요? 이건 상사로서 명령이라기 보다는 지수 오빠로서의 부탁입니다. 아 그리고 지수가 부탁한 사람은 이 이사람이 좋겠군요""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날 시어머니에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지수는 K국에 있는 오빠 이지현에게 연락을 했다. " 오빠~ 잘 지내? 너무 오랫만에 연락했지? 실은 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 지금 K국은 아침 6시였다. 지현은 시차도 잊은 채 걸려온 동생의 목소리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우리 공주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 줘야지. 무슨 일인데. 말만해. 오빠가 다 처리해 줄께."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오빠의 음성이 지수는 목이 메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 오빠 나 아이가 생기면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