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지현은 김태하와 함께 실제 선물까지 확인했다. 서운혁은 정말 목록에 있는 것들을 전부 보낸 상태였다.두 사람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강지현의 휴대전화에 서운혁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내용은 짧았다.[새 보금자리로의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두 분의 백년해로를 기원합니다. 서운혁.]강지현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김태하도 자연스럽게 화면을 봤다.“너한테 꽤 정성을 보이네.”김태하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강지현은 아주 옅은 질투를 느꼈다.“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날 상대로 뭔가 해 보려는 거라면 무조건 소용없어.”강지현은 김태하의 팔을 살며시 끼며 당당하게 말했다.서운혁이 사업을 하든 감정을 들이밀든 그녀에게는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다만 감정 문제라면 정말 이상하긴 했다.‘서운혁이 좋아하는 사람은 백하린 아니었나?’강지현이 백하린을 조심하라고 경고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갈 리도 없었다.“소용없는 건 알아. 그래도 그 인간이 너한테 마음이라도 품는다면...”김태하는 강지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낮게 말했다.“기분 더럽지.”그의 눈에 순간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마치 소유권을 선언하듯 강지현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답장할 가능성을 처음부터 없애 버렸다.강지현은 김태하의 품 안에 기대며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남편은 기분 나쁘면 안 돼.”부드럽고 살짝 장난기 어린 말에 김태하도 더는 굳은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웃었다.최동윤은 아직 난처한 표정이었다.“대표님, 사모님. 그럼 저 물건들은...”“받아.”강지현이 말하기도 전에 김태하가 결정했다.“상대가 정성껏 보냈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 없지.”“토지는 일단 남겨 두고. 나머지는 우리도 필요한 게 없으니까 결혼식 답례 행사 때 추첨 선물로 써.”말은 대범했지만 누가 들어도 질투가 조금 섞여 있었다.강지현은 그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평소엔 온화한 얼굴에 은근히 드러난 심술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저렇게 비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강지현은 사람들과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은주희와 지순옥을 바라보며 마음이 훈훈해졌다.“무슨 생각 해?”김태하는 강지현이 멍하니 있는 걸 발견하고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저녁 연회는 야외 캠핑과 바비큐 형식으로 준비되어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 은주희는 도우미들과 함께 정원에 음식을 계속 내놓았고 손님들은 하나둘 도착해 정원 중앙 호수 앞의 축하 전광판에 서명과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한 폭의 낭만적인 풍경 같았다.강지현은 한쪽 그네에 앉아 미소 지으며 뒤에서 다가온 사람의 팔을 잡았다.“네 생각했어.”“그래? 겨우 2분 안 봤는데 벌써 보고 싶었어?”김태하가 작게 웃으며 옆으로 돌아와 의자를 끌어 앉았다.그는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강지현에게 건넸다.강지현이 조금 전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주방에서 아직 다 끓이지 못한 상태였다. 김태하는 직접 가서 기다렸다가 제일 먼저 한 잔을 받아 왔다.“그럼. 2분은커녕 1분만 안 보여도 보고 싶어.”강지현은 달콤하게 말하면서 컵을 받는 척 김태하의 뼈마디가 선명한 손을 일부러 두 손으로 한번 쓸었다.대놓고 남편을 놀리는 손길이었다.김태하는 이제 강지현의 장난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갑자기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의 입술 가까이 몸을 숙였다.“그렇게까지 보고 싶다니, 지금 바로 그리움을 풀어 줘야겠네.”“...김, 김태하.”강지현은 얼굴이 붉어져 얼른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걸 눈빛으로 알렸다.하지만 김태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을 겹쳤고 혀끝마저 거침없이 파고들려 했다.“대표님, 사모님!”바로 그때 최동윤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강지현은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막 따라온 뜨거운 밀크티가 바닥에 한가득 쏟아졌다.최동윤도 눈앞의 장면을 보고서야 또 하필 타이밍 나쁘게 끼어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돌아서려 했지만 김태하가 불러 세웠다.“거기 서.”김태하의 목소리는 차
해성 그룹과의 입찰 경쟁은 이미 끝났다.‘서운혁이 지금 나를 찾는 걸 보면 또 무슨 문제를 만들려는 건가?’“강지현 씨, 제가... 며칠 뒤 해원시를 떠나요. 혹시 오늘이나 내일 시간 있으시면, 가기 전에 한번 같이 식사할 수 있을까요?”서운혁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조심스럽게 떠보는 듯한 기색과 부탁하는 듯한 낮은 태도까지 느껴졌다.강지현은 어리둥절했다. 바로 옆에 있던 김태하도 상대의 말을 들었다.그의 눈에도 복잡한 빛이 스쳤다.“서 대표님, 저희가 굳이 같이 식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강지현 씨, 이번 입찰에서 제가 떳떳하지 못한 방식을 썼다는 걸 알아요. 저와 해성 그룹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회사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꼭 사과하고 싶어요.”의례적인 인사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하지만 지금 해성 그룹도 뒤처리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서운혁에게 반성하며 나에게 사과할 여유가 있을 리 있나?’강지현이 눈을 몇 번 깜빡이고 가볍게 웃었다.“서 대표님, 마음만 받을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강지현 씨, 그래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강지현이 곧 전화를 끊을 것 같아 보이자 서운혁의 목소리에도 다급함이 섞였다.“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세요.”“그건...”서운혁은 말끝을 흐렸다.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사정이라도 있는 듯했다.강지현도 더는 인내심이 없었다.“서 대표님, 저도 일이 있어서요. 별로 할 말이 없으신 것 같으니 이만 끊겠습니다.”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강지현이 김태하를 올려다봤다.“서운혁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이미 서로 완전히 틀어졌는데 인제 와서 관계를 남겨 두려고 그러는 거지? 사업가답게 정말 잘 숙이기도 하네.”강지현은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없어 서운혁이 사업가 본능 상 미래 그룹과 주상 그룹을 완전히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다.해성 그룹의 해원시 진출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서운혁이
백하린은 서운혁의 눈에 더는 완전한 냉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았다. 격한 분노가 지나자 그녀의 호흡도 조금씩 가라앉았다.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창백한 얼굴은 너무나 무력하고 가련해 보였다.“한 번도 함께 자라지 않은 여동생이 운혁 씨한테 그렇게 중요해요?”서운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작 강지현의 비위를 맞추겠다고 저를 쓰레기처럼 해외에 버리고 혼자 살게 하겠다고요? 차라리 저를 죽여요. 그러면 강지현이 더 만족할지도 모르잖아요.”“...”서운혁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한참 뒤에도 결국 입을 열었다.“앞으로 강지현을 건드리지 않고 하린 씨가 그 애 앞에 다시 나타나지만 않으면, 강지현도 하린 씨를 어떻게 하진 않을 거예요.”“운혁 씨가 틀렸어요.”백하린은 서운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운혁 씨도 잘 알잖아요. 그 여동생을 얻고 싶다면 저랑 계속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걸... 강지현이 운혁 씨를 용서할 것 같아요?”“용서하든 안 하든 전 그 애 친오빠예요.”서운혁은 백하린의 시선을 피했다.그녀의 말은 그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다.“제발...”백하린은 남자가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벌떡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제발 저를 내쫓지 말아요. 전 그냥 운혁 씨의 곁에 있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을 뿐이에요.”“...”서운혁은 잠시 굳었다가 홀린 듯 팔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하지만 마지막 순간 이성을 되찾고 백하린을 밀어냈다. 그는 곧바로 내선 전화로 비서와 경호원을 불렀다.“백하린 씨를 데려가 쉬게 해.”백하린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라 더는 몸부림치지 않았다.서운혁은 그녀를 보자 또 마음이 약해졌다.“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말해요. 합리적인 선에서는 최대한 들어줄게요.”백하린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돌아선 남자를 바라봤다.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뼈를
“가요.”서운혁이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백하린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예전에 백하린에게 했던 약속과, 그녀가 해성 그룹과 자신 때문에 입은 여러 상처를 생각해 보상할 방법은 제시했다.“하린 씨와 윤후에게 충분한 돈을 줄게요. 둘이 해외로 나가요.”“하린 씨 부모님도 이제 은퇴할 나이에요. 해성 그룹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서경시에서 노후 생활에 문제없도록 해 드릴 거고. 원하면 부모님까지 함께 데려가도 돼요.”그 말을 듣고도 백하린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서운혁이 나를 내쫓겠다고? 해원시도 안 되고 서경시도 안 되고, 이제는 아예 국내에조차 내가 머물 곳이 없다는 건가?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노력은 뭐였지? 또 하나의 우스운 농담이었나?’예전에는 강지현 때문에 가정을 잃었고... 이제 또 강지현 때문에 마지막 남은 행복의 희망까지 사라졌다.‘왜 또 강지현이야!’“운혁 씨... 운혁 씨가 저를 돌봐 주겠다고 했잖아요. 제 과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자고 했잖아요. 세상 남자가 다 이도운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잖아요!”백하린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점점 무너졌다. 결국 서운혁에게 날카롭게 따져 물었다.하지만 서운혁은 예상하였다는 듯 오히려 차분했다.그녀가 분노를 다 쏟아 내고 나서야 차갑게 말했다.“미안해요.”어떤 설명도 없었다. 마치 자신이 백하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한 마디뿐이라는 듯했다.백하린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아팠다.그녀는 옆 테이블에 놓인 과도를 발견하자 벌떡 일어나 칼을 집어 들고 자기 목을 찌르려 했다.서운혁은 재빨리 손잡이를 붙잡고 힘으로 몇 번 제압해 칼을 빼앗은 뒤 멀리 내던졌다.“미쳤어요? 또 이 짓이에요?”“그래요. 저 미쳤어요! 다들 저만 상처 입힐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당신들한테 더 좋은 거 아니에요?”백하린이 거세게 몸부림쳤지만 결국 서운혁이 두 팔을
비서와 탐정사무소 직원들이 동시에 움찔했다.“서 대표님...”“나가라고 했잖아요!”서운혁이 낮게 으르렁거렸다.비서는 더 묻지 못하고 곧바로 탐정사무소 직원들에게 눈짓해 함께 방을 빠져 나갔다.스위트룸 안에는 죽은 듯한 정적만 남았다.서운혁은 홀로 소파에 앉아 있다가 한참 뒤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눈은 종이에 적힌 이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드디어 여동생을 찾았다.그런데 자신은... 이미 그 여동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바로 그때 백하린도 방 앞까지 도착했다.문밖에 서 있는 비서와 탐정사무소 직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탐정사무소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비서에게 따지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서 대표님이 오늘 잔금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우리 대표님이 그 돈 몇 푼 떼먹을 사람 같아요? 분명 당신들 조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죠. 강지현이 누군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요?”“강지현이 누군데요?”비서는 할 말을 잃었다.‘이 사람들은 평소 뉴스도 안 보나?’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백하린이 다가왔다.“무슨 얘기예요? 강지현이 왜 나와요?”비서는 백하린을 한번 바라봤다.최근 서운혁과 백하린의 관계가 다시 조금 가까워져서, 비서는 그녀에게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만큼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별일 아니에요. 백하린 씨, 대표님이 지금 머리가 복잡하셔서요. 찾으실 거면 조금 뒤에 오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탐정사무소 직원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비서가 눈빛으로 강하게 막았다.백하린은 무언가 짐작한 듯 눈빛을 움직이다 들고 온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운혁 씨랑 같이 밥 먹기로 했어요.”말을 마친 뒤 비서의 만류는 무시하고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한참 뒤 안에서 서운혁이 대답했다.그제야 백하린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 안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서운혁은 소파에 앉아 양팔을 허벅지에 얹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이렇게 무너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