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주 대표님... 출발할까요?”비서도 차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주단우가 왜 차를 세웠는지 단번에 이해했다.평소 대표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몇 년 동안 곁에서 일한 비서는 주단우의 성격을 잘 알았다.작은 억울함도 참지 못하고 손해를 입으면 반드시 몇 배로 돌려주는 사람이었다.여자에게도 인정사정없기로 유명했다.그런 사람도 결국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하필 현 팀장에게는 모든 걸 내줘도 아무런 대답을 받지 못하다니.“가.”한참 뒤 주단우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시선을 거두자 어두운 차 안에서도 안색이 무척 나빠 보였다.그래도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걸렸다.‘다행이야. 송준호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서...’...한편 강지현 쪽에서는 김태하의 가족들이 노르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오는 길에 김태하가 응급처치 끝에 고비를 넘겼고 중환자실에서 개인 병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나마 다행인 소식에 모두의 팽팽했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하지만 강지현의 퉁퉁 부은 눈과 안색을 보자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가 다시 커졌다.담당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좋게만 보이던 시험 투약 결과가 갑자기 뒤집혔다.오늘 검사에서 김태하의 여러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아직 신약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해 약물의 급격한 반응으로 병이 악화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다 순조롭다고 하지 않았어요?”은주희가 다급하게 담당 의사를 추궁했다.강지현은 눈빛이 퀭한 채 앉아 있었다.은주희가 오기 전 이미 똑같이 물었다.그때는 은주희보다 더 심하게 무너져 울부짖었다.현재 검사 결과는 김태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종양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약물 자극으로 인한 악화 속도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게다가 약이 너무 강해 당분간 김태하의 몸으로는 수술도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악화한다면 남은 시간은... 길어야 반년이었다.“죄송합니다. 저희가 병의 악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지나치게 낙관했
송준호는 현다영을 앞으로 당겨 손을 잡았다.손바닥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이게... 내 전 재산이야.”송준호가 현다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전부 14.6억이야. 해원시 집값도 알아봤어. 네 눈이 너무 높지만 않다면 신혼집 하나랑 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거야.”송준호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천천히 알아 가자고 했던 사람이 행동만큼은 벌써 앞서 나가고 있었다.공회가 생기기 전에는 목숨을 걸고 일해도 겨우 입에 풀칠했다. 공회가 권력자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고 임지태의 신임까지 얻은 뒤에야 이만큼 모을 수 있었다.원래 이 돈은 송준호가 노후에 쓸 마지막 재산이었다.현다영과 함께 살기로 하기 전에는 그 돈으로 세계를 구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가 노후를 준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둘의 미래를 생각하니 충분할 줄 알았던 돈이 턱없이 적어 보였다.송준호는 부모가 없지만 현다영에게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었다.현다영이 가진 것 없는 자신을 기꺼이 선택했다 해도 생활 수준까지 낮추게 할 수는 없었다.남들이 누리는 것은 현다영도 빠짐없이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앞으로 생활비는 신분 정리가 끝나는 대로 해원시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벌 거야. 하지만 얼마나 벌 수 있을지 아직 모르잖아... 당장은 같이 살면서 지출도 늘 테니까 계획을 세웠어.”“적어도 네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 많이 들면 안 되니까. 안 그러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다영이 끼어들었다.“혹시 오빠가 많이 먹어서 생활비가 늘어나면 제가 버리고 갈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참 속마음이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정말 귀엽기도 했다.어젯밤에 송준호가 워낙 많이 먹으니 강지현에게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해야겠다고 한마디 농담한 게 전부였다.그런데 송준호는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잔 듯했다.아침부터 생활용품값과 현다영의 한 달 생활비, 지출 항목까지 하나하나 물었다.무슨 일을 하려나 싶었는데 혼자 걱정하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내 몫 때문에 지출이 늘지
마침 육운성이 이런 일에 능숙했다. 강지현은 육운성에게 부탁해 송준호의 M국 신분을 새로 만들고 국내 입국 비자까지 마련해 줬다. 앞으로 조건만 갖추면 해원시에 정착할 수 있었다.새 신분이 생기자 송준호는 바로 휴대전화를 샀다.가장 먼저 저장한 연락처는 현다영이었다.송준호는 현다영을 재촉하지 않으려고 다정한 문자를 보냈다.[아래층 마트에서 생필품 좀 사고 있을게. 늦어도 기다릴 테니까 서두르지 마.]문자를 보자 현다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컴퓨터를 끄고 일어났다.그런데 주단우의 사무실을 지나칠 때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마침 비서가 바쁜 걸음으로 나오는 참이었다.“주 대표님 아직 퇴근 안 하세요?”현다영이 무심코 물었다.비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오늘 일이 많아서 아마 늦으실 거예요.”“야근한다고요? 몸은 괜찮으시대요?”현다영이 미간을 찌푸렸다.비서도 한숨을 쉬었다.“힘드실 것 같아요. 예전 상처도 안 나았는데 새로 다치기까지 하셨잖아요. 회사 일도 많고... 말려도 안 들으세요. 요즘 정말 무리하세요.”“새로 다쳐요? 언제 또 다치셨는데요?”현다영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비서도 말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주단우는 새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특히 현다영에게는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아, 제가 처리할 결재가 곧 마감이라서요. 현 팀장님, 먼저 가 볼게요!”현다영이 붙잡으려 했지만 비서는 재빨리 달아났다.현다영은 의문만 가득 안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주상 그룹 맞은편 작은 마트에서는 송준호가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밝은 실내에 선 큰 체격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현다영은 보자마자 마음이 따뜻해졌다.초봄이 됐지만 날씨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 밤에는 꽤 쌀쌀했다.송준호는 여전히 얇게 입고 있었다. 연한 파란색 맨투맨에 청바지 차림이었다.몸에 딱 붙는 민소매와 재킷을 벗으니 단단한 체격도 전처럼 두드러지지 않았다. 살벌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오히려 단
그런데 주단우의 오기가 발동했다.지금은 모든 권한을 쥐고 있으니 직원들이 반대해도 결정을 강행할 수 있었다. 굳이 강지현을 내세워 힘을 얻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현다영이 적절한 순간에 강지현의 뜻을 대신 전해 주었다.주단우는 괜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꽤 기분이 좋았다.강지현과 일하다 보면 동료와 나란히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자신이 단순히 강지현의 부하 직원이 아니라 주상 그룹을 떠받치는 한 축이 된 듯했다.이런 책임감은 예전에 엄경미 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 주상 그룹도, 강지현도, 김태하도 무사할 거야.”업무 이야기를 마치고 주단우가 불쑥 낮게 현다영을 위로했다.현다영이 바라보니 주단우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그 담담한 한마디가 더 큰 위로가 됐다.현다영은 평소 눈치가 빠르고 일도 잘했지만 쉽게 불안해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특히 친구들 일에 쉽게 마음을 졸였다.강지현이나 주상 그룹에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보다 더 두려웠다.“네.”현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단우를 바라보는 눈에도 믿음이 깃들었다.“주 대표님, 고마워요.”“뭘 고마워해. 내가 할 일인데.”주단우는 서류 정리를 마치고 손목시계를 봤다.“이제 퇴근할 시간이네. 송준호 씨 기다리겠다. 얼른 가.”“그걸... 어떻게 아셨어요?”현다영은 깜짝 놀랐다. 주단우가 송준호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을 줄 몰랐다.“강지현한테 들었어.”주단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끝내 현다영을 쳐다보지 않았다.말을 마치고 일어나려던 주단우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급히 움직였는지 덩치 큰 몸이 휘청하며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재빨리 탁자 모서리를 붙잡았다.현다영은 놀라 곧바로 다가가 주단우를 부축했다.주단우는 양팔로 탁자를 짚고 버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새하얬다. 그 짧은 순간 이마에 식은땀까지 송골송골 맺혔
“떠날 사람은 붙잡아도 못 붙잡아. 천해 그룹이 작정하고 우리를 노린다면 돈으로 맞서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주단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이참에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있고.”모두 놀랐다. 현재의 위기 앞에서 주단우가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현다영만은 그 뜻을 곧바로 이해했다.강지현이 주상 그룹을 주단우에게 맡긴 건 현명한 판단이었던 모양이다.인재 영입 제안은 천해 그룹이 주상 그룹 핵심 인력을 흔들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했다. 연봉 경쟁을 벌인다면 일부는 붙잡을 수 있겠지만 회사 전체가 동요할 터였다.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천해 그룹이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지 않아도 주상 그룹이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주단우는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 주되, 회사를 향한 신뢰와 책임감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었다.여러 조건을 따져 보고도 남는 사람은 더 믿을 만할 것이다.당장은 인력을 잃을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핵심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다른 직원들까지 휘둘릴 일도 줄어들 터였다.모두 침묵하자 현다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주 대표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지현 언니랑 통화했는데요. 지금 주상 그룹의 대표이사는 주 대표님이니 모든 일은 주 대표님 판단에 따르라고 했어요.”현다영이 강지현의 뜻까지 전하자 일은 무리 없이 통과됐다.뒤이어 주단우는 천해 그룹의 신약 관련 발표에 대응할 업무도 몇 가지 지시했다.현재 자신들은 노출돼 있지만 상대의 속내는 알 수 없었다. 상대의 패를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주단우는 반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바깥에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홍보도 당분간 조용히 진행하되 앞으로 비용을 줄일 방안을 새로 마련할 생각이었다.신약은 모두 특수 의약품이라 주상 그룹의 가격도 이미 낮은 편이었지만 포장과 외부 협력 비용은 더 줄일 여지가 있었다.국민을 위한 의약품을 만들겠다는 주상
다음 날 해원시를 뒤흔든 대형 경제 뉴스가 퍼졌다.Y국 왕실 투자자가 해원시에 천해 그룹을 설립했고, 설립과 동시에 전국의 굵직한 대형 사업 여러 건을 거액에 따냈는데, 분야는 제약과 에너지에 집중돼 있다는 내용이었다.국내에서, 그중에서도 해원시에서 이 두 분야를 주도하는 기업은 주상 그룹과 미래 그룹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미래 그룹이 막 수주한 신에너지 사업은 천해 그룹이 하위 협력사를 가로채며 차질을 빚었다. 주상 그룹의 신약과 경쟁할 제품도 천해 그룹이 먼저 발표해 한 달 앞서 출시할 전망이었다.업계의 거물들도 천해 그룹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서둘러 움직였다.천해 그룹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자본금이 2조가 넘고 Y국 왕실 기금이 전액 출자했다는 사실을 곧 공개했다.천해 그룹 대변인은 언론에 Y국 왕실 기금이 해원시의 기업 환경과 시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세계 수준의 연구개발 기술과 자본 운용 방식을 들여와 현지 기업과 함께 시장을 키우고 상생하겠다고 밝혔다.듣기에는 그럴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속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목표를 정해 두고 남의 밥그릇을 빼앗으러 온 것이었다.소식이 퍼지자 업계가 술렁였다.그날 오후 주상 그룹과 미래 그룹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더욱 눈길을 끈 건 천해 그룹이 막 준공한 미터 금융센터에 들어섰다는 사실이었다.그곳은 미래 그룹 본사와 주상 그룹 제약 사옥 사이였다. 꼭대기 층 통유리창에서 두 대기업의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업계에서는 사옥의 위치에도 숨은 뜻이 있다고 해석했다....저녁 무렵 주상 그룹 꼭대기 층 회의실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주단우는 상석에 앉아 태블릿으로 천해 그룹 관련 뉴스를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오늘 프로젝트 협상을 마치고 연락받았는데, 천해 그룹이 투자자를 모집한다고 공개한 신약 몇 가지가 주상 그룹이 막 개발을 끝내고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기밀 프로젝트와 겹쳤다.주단우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임원 전원과 연구개발 부서 핵심 인력까지 긴급회의에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