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8화. 완벽한 무대장치
어느날, 강 회장은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강 회장은 하늬를 서재로 불러 아주 차가운 미션을 던졌다.
그것도 그룹의 난제 중에 난제였던 리조트 사업.
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로 만드는 리조트 사업이었다.
하지만, 몇년째 중단된 문제가 있었으니...
리조트 부지에서 제일 중요한 곳에 명문가 종갓집이 있었고, 그 어르신이 꿈쩍도 안한다는 것이었다.
그룹의 임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땅을 매각하라고 설득을 시도했으나, 이룰 수가 없었다.
옹고집도 이런 옹고집이 없었다.
그 종갓집 땅이 뭐라고. 거액을 준다고 해도 꿈적을 안하다니.
그래서,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볼겸 불가능한 미션을 강회장은 생각해내었다.
[성진그룹이 추진 중인 리조트 부지의 종갓집 어르신을 설득하라는 것.]
그런데 종갓집이 하필 리조트 부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의 땅들은 이미 매입했으나, 오직 종갓집 만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종갓집만 놔두고 개발할 수도 없었다.
강 회장의 머릿속을 고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해결 불가능한 미션을 주기로 한 것이다.
실패하면 하늬의 엄마는 당장 병원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강 회장에게 하늬는 그저 도망간 서연을 대신해 욕받이가 되어줄 '정교한 가짜'일뿐이었다.
"네가 가진 그 미천한 연기력으로 그 노인을 속여봐라. 아니. 설득해봐.
서연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네가 해낸다면, 네 엄마의 생명 연장도 고려해 보지."
"약속...약속 하시는 건가요?"
"그래. 당연하지. 내 말을 못 믿는게냐?"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약속 꼭 지키시길 바랄게요."
강 회장의 목소리는 비정했다.
강 회장이 말한 해결 불가능한 미션.
하늬는 기필코 미션을 성공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며칠후,
하늬는 그 모욕감을 삼키며 종갓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한주 그룹의 승준이 도착해 냉철한 수치로 어르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승준은 하늬를 돕기 위해, 먼저 어르신을 설득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하늬는 승준과 어르신 사이의 팽팽한 대치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저 어르신의 표정은...뭔가...사연이 있는 듯 해보였다.
'강서연이라면 돈으로 매수하려 했겠지. 하지만 이하늬라면...'
과거 하늬는 연극 배우 시절,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연기하기 위해 몇 달간 시골에서 노인들의 습성을 관찰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성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할머니의 감정적인 연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하늬는 느낀 그대로 할머니에게 진실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녀는 서연의 화려한 코트를 벗어던지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말없이, 마당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어르신과 갑갑한 답답한 대화를 하던 승준이 그러한 서연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강서연?"
"..."
하늬는 대답 대신 어르신에게 다가가,
그가 평생 지켜온 땅의 흙을 만지며 그 땅에 얽힌 '정서적 가치'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어르신, 여기 리조트가 들어서면 어르신이 자식처럼 키운 이 나무들은 어떻게 되나요?
전 돈보다 이 풍경이 성진의 이름으로 남길 바래요."
"나무???"
"네. 저는 어르신이 이곳 종갓집이 그냥 집이 아닌 것을 깨달았어요. 이 낡아보이는 집은...어르신의 인생이 담긴 곳이란 것을요.
어르신이 나고 자라고 자녀가 나고 자라고 손주들이 나고 자라고, 마당의 나무는 그러한 모습을 지켜봐왔고....
어르신. 제가 약속드릴게요.
이 종갓집을 그대로 옮겨드릴게요. 그 추억이 담긴 이 장소를 보존하도록 하겠습니다."
등을 돌려 앉아 있던 어르신이 하늬의 말에 고개가 돌려졌다.
"그게...가능한거요? 아가씨?"
""네. 저는 성진 그룹의 후계자입니다. 저의 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늬는 밤새워 외운 리조트 조감도를 수정해,
종갓집의 원형을 보존하는 '문화재형 리조트'라는 즉석 애드리브를 던졌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연기였지만, 하늬의 그 진정성 있는 태도에 어르신의 마음이 움직였다.
하나같이 어르신에게는 돈으로 접근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종갓집 어르신이...큰 돈을 바라는 탐욕에 찌든 노인으로 밖에 생각을 안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늬에게서는 그러한 탐욕의 눈이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하늬의 행동행동 하나하나가 진심을 담아서 보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에게는 이 종갓집이...세월이 담긴...자식들이 태어나고...앞마당에서 뛰어놀고 자랐던...
자신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강서연이 아닌 이하늬의 마음의 울림은 느꼈던 것이다.
'이 어르신의 눈은...이 종갓집이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곳이구나...'
결국, 승준도 포기했던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승준은 하늬를 쳐다보며 어르신이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고맙네. 아가씨. 남들은 내가 돈에 미쳐있다고 했지만...난 이곳을 없앨 수가 없었다네.
나의 인생이 담긴 곳이거든. 꼭 약속대로 보존해주게. 부탁하네."
"네. 어르신. 약속. 그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강서연. 도대체 파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전에 내가 알던 강서연이 아닌 것 같아.'
소식을 들은 강 회장은 하늬를 다시 불렀다.
그는 하늬를 기특해하는 대신,
오히려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알 수 없는 희열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제넘게 독단적인 수정을 가하다니...
하지만 결과는 좋군. 조 실장, 이 물건이 생각보다 쓸모가 있겠어.
연기가 아니라 진짜 뱀의 혀를 가졌어."
"네. 회장님."
"사업을 돈만으로는 하는게 아니란 걸 잊고 살았구만. 하하하"
강 회장에게 하늬는 여전히 '물건'이었고,
하늬는 그런 회장의 태도에 더욱 자괴감을 느끼며 엄마를 위해 이 연극을 완벽하게 끝내겠다고 다짐한다.
승준 역시 차 안에서 하늬의 뒷모습을 보며 혼란에 빠진다.
'분명 가짜 같은데, 그 노인을 설득할 때의 그 눈빛은 왜 진짜 같았지?'
'오만한 강서연의 눈빛이 아니었어...그게 뭐지?
내가 느낀 따스함은??'
승준의 기억 속에 있는 강서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한 하늬의 따스한 모습이 내심 싫지 않은 승준이었다.
제13화. 박제된 공주의 반격성진 그룹 회장 자택에 있는 강 회장 서재의 불빛은 새벽이 깊도록 꺼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조 실장이 가져온 치앙마이의 사진을 아주 천천히, 한 장씩 넘겼다. 그의 표정은 호수처럼 고요했지만, 사진과 서류를 쥔 손끝에는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그리고, 한장의 사진을 들어올렸다.이하늬와 판박이로 닮은 이가 망원렌즈로 찍혀 있었다."서연이가... 서연가 살아 있었군."강 회장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분노보다는 허망함, 그리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핏줄에 대한 지독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어렸을때부터 해달라는 것은 무조건 해주었다.해를 따달라면 해를 따오고, 달을 따달라면 달을 따오고...그랬던 것이 서연이를 망친 것 같아, 독이 된 것 같아 심한 자괴감이 드는 강 회장이었다.차곡차곡 그룹의 일을 맡겼다면, 이렇게 무책임한 아이가 안되었을 것을...'내가...너를...이리 만들었구나...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다음날 성진 그룹 회장실에 출근한 강 회장이 조 실장을 불렀다.강 회장은 한동안 창밖을 초점없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긴 침묵이 흘렀다.그때 조 실장이 말했다.조 실장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직감했다.어제 진짜 강서연의 존재를 보고했기에 그와 관련돼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회장님, 당장 경호팀을 보내 실종 신고된 상무님을 모셔올까요?""흠..."조 실장의 물음에 강 회장은 창밖의 무표정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단순히 사랑하는 딸을 찾는 아버지가 아니었다.그는 무너져가는 성진 그룹이라는 제국의 마지막 성벽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설계자였다.피 보다는 그룹의 생명을 더 중히 여기는 이성론자였다.지금 성진 그룹은 창립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야심차게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한 투자가 몇년째 빛을 못 보고 있는 상황에서,그룹의 자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지금 한주 그룹과의 빅딜이 성사되질 않으면, 성진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였던 것
제12화.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서 성진 그룹의 승리로 끝난 MOU 기술 협약식 이후, 승준은 차가운 침묵으로 하늬를 대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예우를 갖추기 위
제11화. 체스의 말, 사냥터의 꽃 성진 그룹 회장실 강 회장의 집무실. 강 회장과 조 실장이 나즈막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10화. 붉은 연기하늬에게 찾아 온 절체절명의 위기.승준의 손가락 끝에 묻어난 검붉은 파운데이션. 정적이 감도는 대기실 안에서 승준의 서늘한 시선이 하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꿰뚫었다. 하늬의 심장은 폭주하는 엔진처럼 날뛰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여기서 무너지면 엄마도, 자신도 끝이었다.“서연아, 설명해 봐. 이 상처가 왜 네 손가락 끝에서 지워지는 거지?”"네? 그건?"승준이 묻어난 검붉은 파운데이션 자국을 보여주며 압박해 왔다. 하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음을 다잡으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조소와 서러움이 뒤섞인 기이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오히려 승준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찢어진 드레스 자락을 더 크게 찢어발겼다.“후련해? 내 추한 바닥을 확인하니까 속이 시원하냐고! 승준싸”"뭐?"하늬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승준이 주춤했다.하늬는 거울 앞에 놓인 클렌징 워터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미친 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반쯤 번져 있던 가짜 흉터가 닦여나가며 매끄럽고 하얀 살결이 드러났다.“그래, 이거 가짜야! 내가 직접 그렸어. 잘 봐.만족해?”"그렸다고?"승준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직접 그렸다니, 그게 무슨···.”“남들은 다 잊었어도 난 못 잊으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그날의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내 몸은 너무 깨끗해서··· 그게 더 소름 끼쳐서!”하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승준의 가슴을 밀쳤다.“의사가 그러더라, 이건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라고. 흉터는 사라졌어도 내 뇌가 그 고통을 기억해서 환상통을 만들어내는 거래. 그래서 그렸어! 차라리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으면 덜 미칠 것 같아서! 내가 미친년 같지? 흉터까지 연기하는 미친년!”"아니. 그게 아니라..."이것은 하늬가 배우 시절 배운 ‘신체 이형 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교묘하게 섞은 고도의 심리 연기였다. 승준
제9화. 신의 한 수, 그리고 가면의 균열성진 그룹의 사활이 걸린 의류 신제품 론칭 쇼를 앞두고...메인 모델이 잠적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메인 모델이자 성진의 얼굴이었던 톱배우가 상대 경쟁사의 사주를 받고 행사 직전 잠적해 버린 것이다.그것도 행사 당일날. 대신 섭외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을 노린 것이다.이 행사는 단지 의류 신제품 론칭 만이 아니라, 론칭 쇼를 기회 삼아 정재계를 초청해서 성대하게 치뤄지는 행사였다.하객으로 참석한 수백 명의 언론사와 승준을 포함한 그룹 관계자들은 성진의 망신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다.조 실장은 사색이 되어 강 회장에게 보고했다.아마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그룹의 이미지를 해칠려는 함정에 걸린 듯 하였다."회장님, 메인 모델이 사라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 론칭 쇼는 물론이고 내일 주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누가 이런 짓을 꾸몄지? 조실장?""아마도...그룹이 흔들리기를 원하는 쪽일 것입니다.""흠...그럼 그 쪽인가? 증거를 찾아내도록 해.""네...알겠습니다. 회장님."강 회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그때, 분장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늬가 천천히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 회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제가 나갈게요. 서연 상무가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겁니다. '상속녀가 직접 입는 옷'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이 어디 있겠어요?""상무님. 그건?""제가 할 수 있어요. 회장님. 저에게 맡겨 주세요. 기필코 성공 시키겠습니다.""네가 말이냐? 한번도 해보질 않은 네가 말이냐?""한번도 해보질 않았다 해서,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철저히 연기처럼 해보겠습니다.""흠...좋아. 잘 해보거라.""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좋아. 기대하마."조 실장이 아직은 그런 큰 행사를 맏길 수 없다며 만류했지만, 강 회장은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할 수 있겠느냐?""네."단호한 하늬의 대답에 강회장은 하늬
제8화. 완벽한 무대장치어느날, 강 회장은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강 회장은 하늬를 서재로 불러 아주 차가운 미션을 던졌다.그것도 그룹의 난제 중에 난제였던 리조트 사업.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로 만드는 리조트 사업이었다.하지만, 몇년째 중단된 문제가 있었으니...리조트 부지에서 제일 중요한 곳에 명문가 종갓집이 있었고, 그 어르신이 꿈쩍도 안한다는 것이었다.그룹의 임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땅을 매각하라고 설득을 시도했으나, 이룰 수가 없었다.옹고집도 이런 옹고집이 없었다.그 종갓집 땅이 뭐라고. 거액을 준다고 해도 꿈적을 안하다니.그래서,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볼겸 불가능한 미션을 강회장은 생각해내었다. [성진그룹이 추진 중인 리조트 부지의 종갓집 어르신을 설득하라는 것.]그런데 종갓집이 하필 리조트 부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주변의 땅들은 이미 매입했으나, 오직 종갓집 만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종갓집만 놔두고 개발할 수도 없었다.강 회장의 머릿속을 고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해결 불가능한 미션을 주기로 한 것이다.실패하면 하늬의 엄마는 당장 병원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강 회장에게 하늬는 그저 도망간 서연을 대신해 욕받이가 되어줄 '정교한 가짜'일뿐이었다."네가 가진 그 미천한 연기력으로 그 노인을 속여봐라. 아니. 설득해봐.서연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네가 해낸다면, 네 엄마의 생명 연장도 고려해 보지.""약속...약속 하시는 건가요?""그래. 당연하지. 내 말을 못 믿는게냐?""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약속 꼭 지키시길 바랄게요."강 회장의 목소리는 비정했다. 강 회장이 말한 해결 불가능한 미션.하늬는 기필코 미션을 성공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며칠후, 하늬는 그 모욕감을 삼키며 종갓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한주 그룹의 승준이 도착해 냉철한 수치로 어르신을 압박하고 있었다.승준은 하늬를 돕기 위해, 먼저 어르신을 설득해보기로 한 것이었다.하늬는 승준과 어르신 사이의 팽팽한 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