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9화. 신의 한 수, 그리고 가면의 균열
성진 그룹의 사활이 걸린 의류 신제품 론칭 쇼를 앞두고...
메인 모델이 잠적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메인 모델이자 성진의 얼굴이었던 톱배우가 상대 경쟁사의 사주를 받고 행사 직전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행사 당일날. 대신 섭외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을 노린 것이다.
이 행사는 단지 의류 신제품 론칭 만이 아니라, 론칭 쇼를 기회 삼아 정재계를 초청해서 성대하게 치뤄지는 행사였다.
하객으로 참석한 수백 명의 언론사와 승준을 포함한 그룹 관계자들은 성진의 망신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조 실장은 사색이 되어 강 회장에게 보고했다.
아마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그룹의 이미지를 해칠려는 함정에 걸린 듯 하였다.
"회장님, 메인 모델이 사라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 론칭 쇼는 물론이고 내일 주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꾸몄지? 조실장?"
"아마도...그룹이 흔들리기를 원하는 쪽일 것입니다."
"흠...그럼 그 쪽인가? 증거를 찾아내도록 해."
"네...알겠습니다. 회장님."
강 회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그때, 분장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늬가 천천히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 회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제가 나갈게요. 서연 상무가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겁니다.
'상속녀가 직접 입는 옷'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이 어디 있겠어요?"
"상무님. 그건?"
"제가 할 수 있어요. 회장님. 저에게 맡겨 주세요. 기필코 성공 시키겠습니다."
"네가 말이냐? 한번도 해보질 않은 네가 말이냐?"
"한번도 해보질 않았다 해서,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철저히 연기처럼 해보겠습니다."
"흠...좋아. 잘 해보거라."
"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좋아. 기대하마."
조 실장이 아직은 그런 큰 행사를 맏길 수 없다며 만류했지만,
강 회장은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겠느냐?"
"네."
단호한 하늬의 대답에 강회장은 하늬의 숨겨진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윽고,
하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론칭할 제품의 콘셉트를 완벽히 분석했다.
연극무대에서 대본을 숙지하고 캐릭터를 분석했던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다.
제품의 콘셉과 이 론칭쇼의 성격을 분석했고,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멘트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그녀는 이하늬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만하고 당당한 상속녀 '강서연'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론칭쇼가 시작되었다.
조명이 켜지고 하늬가 무대에 오르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녀의 워킹은 전문 모델보다 기품 있었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에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서려 있었다.
특히 제품을 설명하는 짧은 스피치에서 하늬는 밤새워 공부했던 프랑스어 전문 용어들을 적재적소에 섞으며 지성미까지 뽐냈다.
행사에 참석한 하객들은 하늬와 제품을 번갈아 보며...마치 마법에 빠진 듯 행사에 몰입되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하늬의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화려한 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런칭쇼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이어진 정재계 인사들과 만찬에서도 단연코 화재는 강서연이라는 인물이었다.
하늬는 연신 자신에게 말걸어 오는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얼굴을 익히고 명함을 주고받아,
성진의 차기 주인공으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 행사 이후,
알수 없는 범인의 방해 공작을 비웃듯, 성진의 주가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늬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능력이 출중한 재벌가의 상속녀의 사업 수완에 대해 찬사가 이어졌다.
론칭 쇼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 강 회장은 홀로 위스키를 마시며 하늬를 불렀다.
"다 죽어가는..판을 살려냈구나. 이 성진에 최악의 하루가 될 뻔한 위기를...
너의 그 담력, 그리고 사람들을 압도하는 그 기운...타고 났구나.
넌 가짜치고는 지나치게 우아해. 진짜가 너의 반이라도 닮았었으면 좋았을 것을..."
"과찬이십니다. 회장님."
"그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강 회장은 하늬를 처음으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대우하며 서재의 상석을 내주었다.
하늬의 비즈니스 능력을 강 회장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강 회장의 그 인정은 독이 든 성배와 같았다.
강 회장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하늬가 짊어져야 할 가짜 인생의 무게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때, 무대 화장을 지우지 못한 채 피곤에 절어 있는 하늬에게 승준이 천천히 다가왔다.
오늘의 주인공 강서연.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또 다시 느끼게된 대단한 하루였다.
고생했다고 위로를 하고자 하늬에게 다가왔다.
하늬의 고단한 얼굴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반짝이가 별처럼 붙어 있어다.
그는 하늬의 뺨에 묻은 반짝이를 떼어내 주려 손을 뻗었다.
하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탁자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 옷감 사이로 드러난 하얀 살결.
그곳에는 전에 하늬가 위기를 넘기기 위해 그려 넣었던 '붉은 가짜 흉터'가 땀과 마찰에 의해 반쯤 지워져 번져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의심을 가득 담은 승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번진 붉은 얼룩을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렀다.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검붉은 파운데이션.
"서연아, 상처가... 번지네? 마치 화장품처럼."
"...네?"
"이게 뭐지?"
"그...그건..."
승준의 나직한 목소리에 하늬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회장의 인정을 받은 최고의 날,
하늬는 가장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순간 하늬는...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행사를 신경쓰느라...가짜 흉터가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하늬에게 찾아왔다.
제13화. 박제된 공주의 반격성진 그룹 회장 자택에 있는 강 회장 서재의 불빛은 새벽이 깊도록 꺼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조 실장이 가져온 치앙마이의 사진을 아주 천천히, 한 장씩 넘겼다. 그의 표정은 호수처럼 고요했지만, 사진과 서류를 쥔 손끝에는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그리고, 한장의 사진을 들어올렸다.이하늬와 판박이로 닮은 이가 망원렌즈로 찍혀 있었다."서연이가... 서연가 살아 있었군."강 회장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분노보다는 허망함, 그리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핏줄에 대한 지독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어렸을때부터 해달라는 것은 무조건 해주었다.해를 따달라면 해를 따오고, 달을 따달라면 달을 따오고...그랬던 것이 서연이를 망친 것 같아, 독이 된 것 같아 심한 자괴감이 드는 강 회장이었다.차곡차곡 그룹의 일을 맡겼다면, 이렇게 무책임한 아이가 안되었을 것을...'내가...너를...이리 만들었구나...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다음날 성진 그룹 회장실에 출근한 강 회장이 조 실장을 불렀다.강 회장은 한동안 창밖을 초점없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긴 침묵이 흘렀다.그때 조 실장이 말했다.조 실장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직감했다.어제 진짜 강서연의 존재를 보고했기에 그와 관련돼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회장님, 당장 경호팀을 보내 실종 신고된 상무님을 모셔올까요?""흠..."조 실장의 물음에 강 회장은 창밖의 무표정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단순히 사랑하는 딸을 찾는 아버지가 아니었다.그는 무너져가는 성진 그룹이라는 제국의 마지막 성벽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설계자였다.피 보다는 그룹의 생명을 더 중히 여기는 이성론자였다.지금 성진 그룹은 창립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야심차게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한 투자가 몇년째 빛을 못 보고 있는 상황에서,그룹의 자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지금 한주 그룹과의 빅딜이 성사되질 않으면, 성진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였던 것
제12화.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서 성진 그룹의 승리로 끝난 MOU 기술 협약식 이후, 승준은 차가운 침묵으로 하늬를 대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예우를 갖추기 위
제11화. 체스의 말, 사냥터의 꽃 성진 그룹 회장실 강 회장의 집무실. 강 회장과 조 실장이 나즈막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10화. 붉은 연기하늬에게 찾아 온 절체절명의 위기.승준의 손가락 끝에 묻어난 검붉은 파운데이션. 정적이 감도는 대기실 안에서 승준의 서늘한 시선이 하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꿰뚫었다. 하늬의 심장은 폭주하는 엔진처럼 날뛰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여기서 무너지면 엄마도, 자신도 끝이었다.“서연아, 설명해 봐. 이 상처가 왜 네 손가락 끝에서 지워지는 거지?”"네? 그건?"승준이 묻어난 검붉은 파운데이션 자국을 보여주며 압박해 왔다. 하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음을 다잡으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조소와 서러움이 뒤섞인 기이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오히려 승준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찢어진 드레스 자락을 더 크게 찢어발겼다.“후련해? 내 추한 바닥을 확인하니까 속이 시원하냐고! 승준싸”"뭐?"하늬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승준이 주춤했다.하늬는 거울 앞에 놓인 클렌징 워터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미친 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반쯤 번져 있던 가짜 흉터가 닦여나가며 매끄럽고 하얀 살결이 드러났다.“그래, 이거 가짜야! 내가 직접 그렸어. 잘 봐.만족해?”"그렸다고?"승준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직접 그렸다니, 그게 무슨···.”“남들은 다 잊었어도 난 못 잊으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그날의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내 몸은 너무 깨끗해서··· 그게 더 소름 끼쳐서!”하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승준의 가슴을 밀쳤다.“의사가 그러더라, 이건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라고. 흉터는 사라졌어도 내 뇌가 그 고통을 기억해서 환상통을 만들어내는 거래. 그래서 그렸어! 차라리 눈에 보이는 상처가 있으면 덜 미칠 것 같아서! 내가 미친년 같지? 흉터까지 연기하는 미친년!”"아니. 그게 아니라..."이것은 하늬가 배우 시절 배운 ‘신체 이형 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교묘하게 섞은 고도의 심리 연기였다. 승준
제9화. 신의 한 수, 그리고 가면의 균열성진 그룹의 사활이 걸린 의류 신제품 론칭 쇼를 앞두고...메인 모델이 잠적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메인 모델이자 성진의 얼굴이었던 톱배우가 상대 경쟁사의 사주를 받고 행사 직전 잠적해 버린 것이다.그것도 행사 당일날. 대신 섭외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을 노린 것이다.이 행사는 단지 의류 신제품 론칭 만이 아니라, 론칭 쇼를 기회 삼아 정재계를 초청해서 성대하게 치뤄지는 행사였다.하객으로 참석한 수백 명의 언론사와 승준을 포함한 그룹 관계자들은 성진의 망신을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다.조 실장은 사색이 되어 강 회장에게 보고했다.아마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그룹의 이미지를 해칠려는 함정에 걸린 듯 하였다."회장님, 메인 모델이 사라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 론칭 쇼는 물론이고 내일 주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누가 이런 짓을 꾸몄지? 조실장?""아마도...그룹이 흔들리기를 원하는 쪽일 것입니다.""흠...그럼 그 쪽인가? 증거를 찾아내도록 해.""네...알겠습니다. 회장님."강 회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그때, 분장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늬가 천천히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 회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제가 나갈게요. 서연 상무가 직접 모델로 나서는 겁니다. '상속녀가 직접 입는 옷'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이 어디 있겠어요?""상무님. 그건?""제가 할 수 있어요. 회장님. 저에게 맡겨 주세요. 기필코 성공 시키겠습니다.""네가 말이냐? 한번도 해보질 않은 네가 말이냐?""한번도 해보질 않았다 해서,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우입니다. 철저히 연기처럼 해보겠습니다.""흠...좋아. 잘 해보거라.""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좋아. 기대하마."조 실장이 아직은 그런 큰 행사를 맏길 수 없다며 만류했지만, 강 회장은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할 수 있겠느냐?""네."단호한 하늬의 대답에 강회장은 하늬
제8화. 완벽한 무대장치어느날, 강 회장은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강 회장은 하늬를 서재로 불러 아주 차가운 미션을 던졌다.그것도 그룹의 난제 중에 난제였던 리조트 사업.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로 만드는 리조트 사업이었다.하지만, 몇년째 중단된 문제가 있었으니...리조트 부지에서 제일 중요한 곳에 명문가 종갓집이 있었고, 그 어르신이 꿈쩍도 안한다는 것이었다.그룹의 임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땅을 매각하라고 설득을 시도했으나, 이룰 수가 없었다.옹고집도 이런 옹고집이 없었다.그 종갓집 땅이 뭐라고. 거액을 준다고 해도 꿈적을 안하다니.그래서, 하늬의 능력을 시험해볼겸 불가능한 미션을 강회장은 생각해내었다. [성진그룹이 추진 중인 리조트 부지의 종갓집 어르신을 설득하라는 것.]그런데 종갓집이 하필 리조트 부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주변의 땅들은 이미 매입했으나, 오직 종갓집 만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종갓집만 놔두고 개발할 수도 없었다.강 회장의 머릿속을 고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해결 불가능한 미션을 주기로 한 것이다.실패하면 하늬의 엄마는 당장 병원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강 회장에게 하늬는 그저 도망간 서연을 대신해 욕받이가 되어줄 '정교한 가짜'일뿐이었다."네가 가진 그 미천한 연기력으로 그 노인을 속여봐라. 아니. 설득해봐.서연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네가 해낸다면, 네 엄마의 생명 연장도 고려해 보지.""약속...약속 하시는 건가요?""그래. 당연하지. 내 말을 못 믿는게냐?""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약속 꼭 지키시길 바랄게요."강 회장의 목소리는 비정했다. 강 회장이 말한 해결 불가능한 미션.하늬는 기필코 미션을 성공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며칠후, 하늬는 그 모욕감을 삼키며 종갓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한주 그룹의 승준이 도착해 냉철한 수치로 어르신을 압박하고 있었다.승준은 하늬를 돕기 위해, 먼저 어르신을 설득해보기로 한 것이었다.하늬는 승준과 어르신 사이의 팽팽한 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