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ir

제4화

Autor: 안이슬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기억과 현실이 뒤엉키자, 진지희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괴로웠다.

진지희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죽을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억제대는 이미 한계까지 팽팽하게 조여져 있었다.

진지희가 저항할수록 더 피부를 파고들었고, 이내 가로세로로 얽힌 상처가 생겨났다. 피가 전기치료 의자의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몇 사람이 달려들어 진지희를 짓누르며 꼼짝도 하지 못하게 억지로 붙잡았다.

마치 송곳으로 변한 것처럼 전류가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곧장 파고들더니, 순식간에 온몸을 관통했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진지희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자, 입안 가득 비릿한 쇠 맛이 번졌다.

“아악! 아악!”

꼬박 24시간이 지나자, 처절한 비명은 점점 가느다란 숨소리로 변해 갔다.

전기치료로 기절하면 찬물을 끼얹어 깨우고 또다시 전기치료를 했다.

그렇게 한 차례, 또 한 차례 잔혹한 고통이 반복됐다.

마침내 전기 치료실이 핏빛으로 물들고 나서야 진지희는 아버지의 병실로 내던져졌다.

그런 뒤 휴대폰을 진지희의 얼굴에 내던졌다. 강렬한 통증에 여자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보니,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이미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고, 각종 의료 장비도 다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진지희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면서 화면에 허나영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누렇게 바랜 일기장 사진이었다.

그 일기장은 진지희의 일기장이었고 아래에는 이런 글이 덧붙어 있었다.

[오빠가 이걸 쓰레기인 줄 알고 태울 뻔했는데, 내가 아주 친절하게 남겨 뒀어.]

[원래 네가 제일 기대했던 게 오빠랑 남극에 가서 오로라를 보는 거였구나? 정말 공교롭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맞혀 볼래?]

그러고는 수십 장의 사진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진 속에는 하나같이 유명훈과 허나영이 오로라 아래에서 서로 기댄 채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유명훈은 심지어 소행성 하나를 사서 ‘유애나’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유명훈이 허나영을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한때 진지희가 일기장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던 소망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로라를 보는 것,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소행성 하나의 이름을 짓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은 허나영의 것이 되어 버렸다.

진지희는 무감각하게 휴대폰 화면을 꺼 버리고 아버지를 돌보는 데만 집중했다.

유명훈이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진지희는 해외의 한 요양병원과 연락한 뒤 온라인으로 인수 절차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허나영이 보내오는 자랑 섞인 메시지는 끊임없이 계속 들어왔다.

남극을 떠난 뒤, 두 사람은 차례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칠레의 이스터섬, 리우의 예수상까지 찾아갔다.

일기장에 적혀 있던 그 모든 소망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한 곳에 도착할 때마다, 진지희는 자신과 유명훈 사이의 추억을 조금씩 태웠다.

협의이혼 서류를 받아 든 날, 진지희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사진 한 무더기를 모조리 태웠다.

눈앞의 화로에서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뭐 하는 짓이야?”

유명훈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뛰어 들어오더니 진지희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이제는 더는 연기하기가 힘들어? 돈을 벌 수 없게 되니까 이런 것들까지 눈에 거슬리는 거야?”

진지희는 그대로 튕겨 나가듯 쓰러졌다. 등이 대리석 기둥에 거세게 부딪히며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그 바람에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지면서, 입안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진지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이런 걸 남겨 두면, 허나영이 보고 눈엣가시처럼 여길 수도 있는데 그건 겁 안 나?”

말을 마친 진지희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비틀거리면서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멍하니 진지희를 한참 바라보던 유명훈은 문득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진지희가 야위었다는 걸 깨달았다.

몸에 걸친 헐렁한 옷은 진지희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이 힘없이 흔들렸다.

마치 살짝만 건드려도 그대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유명훈의 심장이 갑자기 꽉 조여들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유명훈은 빠르게 진지희를 따라가 허리를 감싸안았다.

“진지희! 내가 졌어. 그러니까 그만하면 안 돼?”

좀처럼 보여 주지 않던 부드러운 태도에 진지희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

심장이 거칠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면서 유명훈의 뒷말을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허나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 누가 나를 따라오고 있어. 나 너무 무서워. 빨리 와서 구해 줘...]

유명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진지희를 놓은 뒤 곧바로 돌아섰다.

“나영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금방 갈게!”

마당이 다시 텅 비고 나서도 진지희는 여전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몸에는 아직 유명훈의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한참 뒤, 진지희는 낮게 웃음을 흘리고는 손을 들어 자기 뺨을 세게 후려쳤다.

짝 하는 맑고 선명한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진지희, 진짜 꼴좋네. 어떻게 또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지?”

‘괜찮아. 어차피 이틀만 지나면 아버지를 데리고 완전히 떠날 테니까.’

그렇게 다짐한 진지희는 그날도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막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에게 거칠게 잡아당기면서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아이스 커피가 얼굴에 그대로 끼얹어지자, 눈가가 따끔거리면서 아팠다.

이윽고 유명훈의 모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에 끼얹은 차가운 커피처럼 차갑고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

“너 사람을 시켜서 감히 나영이를 납치하게 해?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 잊었어?”

Continúa leyendo este libro gratis
Escanea el código para descargar la App

Último capítulo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6화

    허나영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는 지금 모든 걸 다 가졌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가져서는 안돼?”“분명히 유명훈이 자기 입으로 말했어. 영원히 나한테 잘 대해 주겠다고. 그런데 왜 결국 나를 이런 꼴로 만든 거야?”“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지금 이런 거지꼴로 살게 됐으니 너도 잘 살 생각은 말아!”말을 마친 허나영은 품에 폭탄을 안은 채 진지희를 향해 달려들었다.진지희는 황급히 몸을 돌리면서 달아났다. 막 허나영에게 붙잡힐 것 같던 순간, 유명훈과 배상헌이 갑자기 나타났다.두 사람이 함께 달려들어서 완전히 미쳐버린 허나영을 제압하고 진창에 사정없이 눌렀다.더러운 흙탕물이 허나영의 얼굴을 뒤덮었는데도, 여자는 여전히 쉬지 않고 저주를 퍼부었다.허나영이 완전히 제압된 것을 확인하자, 배상헌은 곧바로 몸을 돌려서 달래듯 진지희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유명훈은 눈을 들더니 서로 기대고 있는 두 사람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유명훈은 진지희가 배상헌에게 느끼는 의지와 감정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질투로 미칠 것만 같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아직 과거를 완전히 정리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그랬기에 다시 진지희에게 다가가 마음을 얻을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까지도.유명훈은 애써 몸을 일으키고 멀리서 진지희를 바라보았다.“나는 너를 한 번 놓쳤어. 두 번은 절대 없을 거야. 지희야, 마지막으로 하루만 더 기다려 줘. 모든 걸 완전히 정리하고 다시 돌아올게.”“나는 정말 너를 놓을 수가 없어.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딱 한 번만.”진지희는 시종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빛에도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유명훈의 가슴은 칼로 저미는 듯 아팠지만, 그래도 사람을 시켜서 허나영을 데려가게 한 뒤 힘겹게 몸을 돌려 떠났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사고가 일어났다.허나영이 갑자기 미친 듯이 몸부림치더니,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사람의 손목을 강하게 물었다. 그 사람이 고통에 손을 놓는 순간, 허나영은 품에서 단검 한 자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5화

    하지만 진지희는 유명훈의 광기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유명훈은 생방송을 켜고 자신을 사냥개 사육장 우리에 가둔 뒤, 며칠 동안 굶긴 맹견들이 자신의 몸을 물어뜯게 했다.[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다른 사람이 내 아이 다섯을 죽게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제 아이들에게 속죄하겠습니다.]방송 시청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유명훈은 카메라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치 렌즈 너머의 진지희를 바라보는 것처럼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면서.[사랑하는 사람의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만회하고 싶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말을 마친 유명훈은 쇠막대기를 들고 미친 듯이 철창을 두드렸다.일부러 맹견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이었다.방송 댓글 창이 순식간에 도배가 되더니 모두가 유명훈이 미쳤다고 말했다진지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움켜쥔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유명훈은 진지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언제나 착했던 진지희에게 생명과 원한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배상헌은 유명훈이 진지희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곧바로 일을 내버려둔 채 곧바로 돌아왔다.이윽고 진지희의 곁으로 다가간 배상헌이 조용히 휴대폰을 빼앗아서 종료 버튼을 눌렀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해. 지희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응원할 거야.”이와 동시에 맹견 한 마리가 유명훈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면서, 남자의 종아리를 세차게 물어뜯었다.그리고 유명훈은 손에 든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맞섰다.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믿음만이 유명훈의 강렬한 생존 본능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었다.‘나가야 해.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 지희 곁으로 돌아가야 해.’‘그러면 지희는 반드시 나를 용서할 거고, 우리는 반드시 다시 행복해질 거야.’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살점이 한 덩이씩 뜯겨 나가면서 아무렇게나 내던져졌다.철창에도 짚더미에도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4화

    진지희는 배상헌의 보살핌 속에서 차츰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배상헌은 심리 치료 전문가까지 불러서 우울증 치료를 받게 했다.배상헌이 있는 곳은 섬나라였다. 국토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였다. 진지희는 몸을 회복한 뒤 BU그룹에 입사하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에 한 게임 회사에 지원해서 입사했다.지난 몇 년 동안 진지희는 줄곧 유명훈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라는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다.대학때 게임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으로 상을 휩쓸었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진지희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그래도 다시 일에 뛰어드니 다소 버거운 감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진지희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안정감을 느꼈다.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고 진지희와 배상헌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두 사람은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가끔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마치 평범한 연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사실 진지희도 배상헌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막 실패한 결혼을 끝낸 진지희는 그렇게 빨리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배상헌도 서두르지 않았다.두 사람은 모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그러던 어느 날, 진지희가 퇴근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마침 배상헌은 최근 출장 중이었기에, 진지희는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그런데 문득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자, 진지희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다.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도 함께 빨라졌고,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졌다.진지희는 겁에 질려서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희야, 무서워하지 마. 나야!”그 소리에 진지희의 온몸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유명훈이었다.뒤에 있던 유명훈은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3화

    진지희는 갑자기 눈을 떴다.강렬한 질식감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진지희는 가슴을 꽉 움켜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깨어났어요?”문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기품 있고 꽤 젠틀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손에는 진지희의 얼굴을 닦아줄 수건과 물이 담긴 대야가 들려 있었다.“2주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어요. 의사 말로는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무의식 속에 죽으려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던 거고요.”진지희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침대 곁으로 다가온 남자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마치 이런 장면을 이미 수없이 겪어 본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남자는 진지희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부드럽게 웃었다.“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바다에 빠진 당신을 구한 사람, 나예요. 며칠 동안 의식이 없을 때도 계속 곁을 지켰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해줬어요.”진지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마치 사포로 문지른 것처럼 거칠고 쉰 목소리가 나왔다.“고마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물대야를 내려놓은 남자는 진지희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일부러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정말 매정하네요, 후배님. 설마 나를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거예요?”진지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뚜렷한 이목구비에 깊은 눈매를 하고 있었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얼굴선은 마치 신이 조각으로 깎아 놓은 듯 완벽했고, 유명훈보다도 몇 배는 더 잘생겼다.‘이런 남자를 내가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기억이 조금도 안 날 수가 있겠어?’진지희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미안해요. 기억이 안 나서요.”남자는 마침내 웃음을 거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서 진지희에게 내밀었다.“그럼 이건 기억나요?”사진 속에는 산에 올라서 쓰레기를 줍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2화

    강현숙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유명훈의 낯빛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연기하지 마. 이 계약서는 줄곧 본가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어.”“그날 지희가 계약서를 가지러 갔을 때, 너는 지희와 생방송까지 하고 있었잖아. 어떻게 모를 리가 있어?”유명훈이 뒤통수를 한 방 맞은 사람처럼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말 한마디 한마디가 독을 바른 화살처럼 유명훈의 심장을 사정없이 꿰뚫는 것 같았다.유명훈은 머릿속에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 보면서 앞뒤를 이어 보려 애썼지만, 이 순간만큼은 멍청이가 된 것만 같았다. 머리가 윙윙 울릴 뿐, 도무지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문득 인터넷에서 이혼하라는 반응이 쏟아졌던 그 인기 댓글에 진지희가 본계정으로 ‘좋아요’를 눌렀던 일이 떠올랐다.그때 유명훈은 진지희가 속 보이는 연기를 한다고 단정했다.이후에도 진지희가 금고에서 상당한 액수의 재물을 가져갔기에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심지어 오늘 파티장에서도, 진지희가 유씨 집안의 돈 때문에 그 계약서의 내용을 지키느라 더 이상 자신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질투하거나 소란을 피우지도 않는 것이라고 여겼다.그런데 알고 보니 진지희는 그 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고, 두 번째 계약서만 가져갔던 것이다.진지희는 진작부터 자신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명훈은 뭔가를 살짝 깨달은 것 같았다. 진지희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지난 세월 동안 자신은 사실 그 여자들 누구와도 진짜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려고 했다.그저 화가 나서, 진지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여자들을 하나둘씩 데리고 다니며 속을 긁었던 것뿐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허나영까지도 그랬다.유명훈이 허나영을 그나마 특별하게 여겼던 것은, 그 눈매가 진지희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대체 왜?’‘왜 지희는 자신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조금도 남기지 않은 채, 이렇게 나의 삶에서 사라져

  • 계약 종료를 통보합니다   제11화

    순간, 유명훈은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그 자리에 그대로 굳은 채 오감이 모두 마비된 듯했다.‘죽었다고?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유명훈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원장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이렇게 큰일을 왜 아무도 나한테 알리지 않았죠?”원장은 유명훈의 기세에 겁을 먹고 목소리를 낮췄다.“그게 사모님께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요. 장인어른은 다른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요양병원으로는 아예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사모님께서 이미 아버님 장례를 치르셨다고...”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유명훈은 눈을 크게 뜬 채 원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원장이 한 말 하나하나는 분명 다 알아들었다.그런데 그 말들을 이어 붙이면, 대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손이 서서히 주먹을 쥐면서 눈에는 핏발이 섰다.순식간에 커다란 손으로 심장을 꽉 움켜쥔 듯했다. 마치 심장이 뛸 틈을 주지 않는 것처럼 가슴이 꽉 막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점점 커지면서, 유명훈의 표정도 서서히 광기에 가까워졌다.‘장인어른이 돌아가셨어.’진지희와 이어져 있던 마지막 끈이 이렇게 끊어진 것이었다.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고, 몸을 가누지 못한 유명훈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마침 도착한 비서가 곧바로 달려와 유명훈을 부축했다.“대표님, 어르신께서 지금 당장 저택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 일로 대표님께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면서요.”사모님 일이라는 말에 유명훈은 한 치도 지체하지 않았다.곧장 비서를 따라 유씨 본가로 향했다.불당에 앉아 있던 강현숙은 유명훈이 들어오자, 도우미에게 서류 한 뭉치를 가져오게 했다.“이것부터 한번 보거라. 전부 B시와 A시의 명문가의 미혼 여자들이야.”“너와 지희가 결혼생활을 포기하기로 했다면, 어서 다른 좋은 여자를 찾아서 유씨 집안의 대를 이어야지.”“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저승에 가서도 네 할아버지를 볼 낯이 없잖아.”유명훈이 벌떡 고개를

Más capítulos
Explora y lee buenas novelas gratis
Acceso gratuito a una gran cantidad de buenas novelas en la app GoodNovel. Descarga los libros que te gusten y léelos donde y cuando quieras.
Lee libros gratis en la app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