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가문의 가장 거대하고 엄숙한 문이 열렸다.대한민국늬 학계와 재계를 뒤흔드는 서씨 가문,그 가문의 기둥이자 명문대인 한국대 교수인 서지완 교수의 약혼녀인 겅수아가 서씨 가문의 대종회( 모든 지파의 종친회 총모임)가을 정기 월례회에정식으로 첫발을 내딛고 인사하는 날.상북동 본가 대연회장은 대대로 정,재계와학계의 정상을 지켜온 가문의 어르신들과 각 종파의 종친들로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목숨보다 아끼는 종회 수장인 지완의 아버지서충현 대감의 날카로운 눈빛이 연회장 상석에서 번뜩이고 있었다.수아는 한 여사와 서지우의 손길을 거쳐완벽한 명문가 영애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최고급 크림색 원피스는쌍둥이를 임신한, 6개월이 되어가는 제법 부풀어 오른 그녀의 배를우아하게 감싸고 있었다.눈부신 다이아몬드 티아라와 목걸이가 그녀의 단아함에 화려함을 한 스푼 얹어더할나위없이 고급스런 자태였지만,수아의 심장은 터질 것 처럼 마구 뛰며 주저앉고 있었다.자신의 형편과 몸에 맞지 않은 화려한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릴리 처럼 12시가 되면 다 사라질 인질로 이 자리에 서 있자니 불편함에 속이 울렁거렸다.가문의 허울 좋은 방패 뒤에 숨겨진 자신의 보잘것 없고 비루하다 못해 천박한 과거가,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아 조마조마 했기 때문이다."수아야, 긴장할 것 없다. 이 어미가 네 뒤에 있으니 너는 어깨 펴고, 허리 세우고, 당당하게.. 예쁜 미소만 지으면 된단다."한 여사가 수아의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을 꼬옥 잡아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든든한 시어머니, 한 여사의 따스함에 수아가 간신히 숨이라도 쉬고 있는 그 때,그레이 수트에 검정 두루마기, 검정 옥스퍼드슈즈로당당히 걸어오는 두루마기 깃 안쪽 명품 실크 스카프..안경 너머로 빛나는 냉철한 눈빛의 서지완 교수가 다가왔다.안경 너머 서늘하게 가라앉은 그의 시선은 수아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자태에 완전히 매료되어 독점과 소유의 욕구를 가득 담고 있었다.시완은
교외 나들이에서 돌아온 그날 밤,성북동 본가 지완의 침실에는 잔뜩 가라앉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수아는 침대에 누워 낮에 카페 구석에서 썬글러스를 끼고 자신을 감시하던 지완의 황당하고도 집요한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밉고 짜증나면서도...자신을 향한 안달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남자의 서투른 행동이가슴 한 구석을 자꾸만 가지럽히고 있었다.스윽.샤워를 마침 지완이 가운 차림으로 들어와 어김없이 수아 옆 침대에 걸터 앉았다.그의 손에는 오늘도 튼살 방지 크림이 들려 있었다.지완은 낮의 미행 사건에 대해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은 채,묵묵히 수아으 잠옷을 걷어 올리고 둥근 배 위에 따뜻하고 큰 손을 올렸다.쿵쾅 쿵쾅. 콕 콕,두 아이의 일정한 심박과 태동이 다시 한 번 지완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이란성 쌍둥이여서인지 다른 임산부보다, 주수보다도 훨씬 부풀어 오른 배,그 아름다운 살결을 어루만지는 지완의 손길은...낮의 거칠고 유치했던 질투가 무색할 만큼 부드럽고 섬세해서 애틋한 느낌이었다."...... 낮에.. 그 카페 직원 놈이 너에게 미인이라고 했을 때,내 연구소의 모든 권력을 둥원해서라도 그 가게를 폐업시키고 싶었다..."지완의 낮게 가라앉은 본심이 빗소리 사이로 툭 터져 나왔다."교수님......... ""의무나 계약이라는 단어로는 이제... 지금의 내 감정을 포장하는 것이 이제 한계에 부딪힌 것 같군. 난 네가 나의 시야에서 단 한순간만 사라져도 미칠 것 같다. 강수아."여전히 '사랑한다'는 명확한 고백은 없었다.하지만 자신의통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아저씨의서툰 고백이었다.지완의 고개가 숙여지며 수아의 목덜미와 쇄골에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애를 태우며 살결을 탐하는 이 은밀한 밤, 몸의 대화는...서로를 향한 오해의 결박 속에서도 거역할 수 없는 중독이 되어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가고 있었다.서로를 미치도록 갈망하면서도 자존심과 상처 때문에진심을 꽁꽁 가두어 두고
같은 시각.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일식집의 밀실.윤서희는 얼음이 가득 담긴 언더락 잔을 흔들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지우의 비자금 협박과 지완의 철저한 외면으로 사교계에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한 그녀는,이제 이성의 끈을 잃어버리고 파멸의 덫을 준비하고 있었다.스윽.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짙은 화장과 천박한 짝퉁 명품으로 치장한 중년여성.수아가 잠시 일했던 지방 도시 의 마담이었다."윤 상무님, 여기까지 직접 다 부르시고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마담이 담배를 물며 늙은 여우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서희는 혐오감과 경멸을 숨기지 않은 채,거액의 수표가 든 봉투를 테이블 위로 툭 그녀 쪽으로 던졌다."강수아. 그 년이 지금 명문가 영애 행세를 하며 서지욱 교수의 약혼녀로 사교계에 데뷔했어. 심지어 쌍둥이까지 임신했다더군.""어머나! 고 맹랑한 기집애가 도도하게 굴더니, 아주 제대로 출세를 했네.. 대단하다, 강수아."마담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윤서희는 잔을 내려놓으며 독사처럼 차갑게 속삭였다."다음 주에 서씨 가문의 대종회와 학계 원로들이 모두 모이는 정식 사교 모임이 열려.. 그 자리에 내가 직접 등장 할거야. 강수아가 네 밑에서 홀복 입고 탬버린 치며 아저씨들 품에 안기던 도우미였다는 증거 사진과 장부를 ,그 고고한 어르신들 눈앞에 집어 던지자고."윤서희의 음흉하고 잔혹한 음모..아무리 서지완과 서지우형제가 뒤에서 신분 세탁을 하고 방패로 감싸도,가문의 명예와 학자로서의 품위를 목숨보다 아끼는 서씨 가문의 수장인 서지완의 아버지와 원로들 앞에서 과거가 실시간으로 폭로 되면,수아는 그 자리에서 뼈도 못 추리고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뒷감당은 내가 할테니, 넌 그 화려한 가면을 아주 제대로 벗겨주기만 하면 돼."윤서희의 눈에 서린 독기각 어두운 밀실을 가득 채웠다. 수아를 완벽하게 파멸시키고 서지완의 세계를 무너뜨릴 잔인한 덫의 은밀한 계략이,두 사람이 함께하
교외의 한적하고 통유리창이 아름다운 베이커리 카페.수아는 한 여사와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도련님, 서지우와 함께 마주 앉아서 오랜만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서울에서의 숨 막히는 압박감과 지완의 지독한 집착에서 벗어나맘껏 들이키는 신선한 공기가 달콤하기까지 했다.한 여사는 수아의 앞접시에 유기농 딸기 타르트를 부지런히 잘라 놓아주며마치 딸을 대하듯 다정하게 머리를 넘겨 주었다."속상할 때는 이렇게 단 것을 먹어줘야해. 그래, 수아야. 이거 먹고 그 미련맞은 놈은 머리속에서 싹 지워버려라.""네, 어머니. 감사해요,정말."수아가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며 미소를 짓는데카페 구석에서 기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니, 보였달까?구석진 자리에 검은색 수트를 입고 커다란 보잉 선글라수를 낀 채신문을 거꾸로 들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안경을 벗었음에도 숨겨지지 않는 날카로운 턱선과 자로 잰 듯한 완벽한 핏,누가 보아더 이 장소와 안 어울리는 시지완 교수였다.어머니에게 등짝을 맞고 본가에 홀로 버려진 장남. 그가 수아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수트 채로차를 몰아 미행해 따라 온 것이다."어라? 저기 구석에 왠 잘생긴 스토커가 하나 앉아 계시네? 형수님, 저 아저씨 누군지 아세요?"서지우가 팝콘을 씹듯 마른 입맛을 다시며 킥킥 거렸고 턱짓을 했다.수아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 보았다가...선글라스 너머로 느껴지는 집요한 시선에 사레가 들렸다.그때, 젊고 훈훈하게 생긴 카페 직원이 수아의 테이블로 다가와 따뜻한 루이보스 티를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임산부 이신것 같아서 카페인 없는 차로 서비스 드리는 겁니다. 엄마가 미인이시라 아기들은 좋겠어요. 저절로 눈이 가네요."직원의 다정한 멘트와 미소에 수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라고 답하자,구석 자리에서 꽈창 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 왔다.서지완이 들고 있던 유리 컵을 악력으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놈아! 네가 대학교수지, 뒷골목 깡패더냐? 어디서 주먹질이야, 주먹질이!"성북동 안채에서 한 여사의 날카로운 호통과 함께철썩! 하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평생 가문의 간판으로 귀하게 자란 지완이어머니에게 등짝을 사정없이 얻어맞고 있었다.서지우가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가운데,지완은 묵묵히 어머니의 매를 맞으며 서 있었다."너 때문에 놀래서..수아가... 도준이까지 한 밤중에 왔다 갔다며? 수아가 마음이 상해서는 아침도 거르고 방에만 있잖니! 네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하고 차가운 건 알겠는데... 임신한 아이를 그렇게 놀래키고, 가슴에 대못을 박아? 당장 가서 사과하고 기분 풀어주지 못해?""...... 이미 사과했습니다, 어머니.""지금 그게 사과하는 놈 얼굴이냐? 얼음송곳처럼 표족하게.. 쯧쯧.. 이리 얼름 조각상처럼 굳어가지고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한 여사는 혀를 차며 수아의 방으로 가서, 수아를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그리고는 지완을 째려보며 수아의 손을 꼭 잡았다."수아야, 오늘은 이 어미랑 같이 바람이나 쐬러 가자. 저 미련하고 어리석은 놈 얼굴 보고 있으면 태교에 나쁘다. 서지우, 차 대기 시켜라.저 놈은 두고 우리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꾸나.""예, 두 분 마님!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모시겠습니다서지우가 신이 나서 차 키를 흔들었다.수아는 한 여사의 다정한 에스코트에 이끌려 집을 나섰고,혼자 거실에 남겨진 지완은 그렇게 멀어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수아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무언가 텅 빈 것처럼 불안감이 몰려왔다. 가문의 의무라는 핑계로도 붙잡을 수 없는 어머니의 개입 앞에,지완은 자신의 마음이 수아에게 얼마나 중독되어 있는지를 가슴 깊이 실감하며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밤이 지나고,수아는 성북동 침실에서 지완을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지완이 말을 걸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연구실에서도 오직 공적인 서류만 주고 받을 뿐이었다.자기 자존심 때문에 며 모질게 말을 내뱉은 지완은,정박 수아의 싸늘한 침묵 앞에 피가 마르는 기분을 느꼈디.그 밤, 수아의 불편한 드레스 벗는 것을 도우려고 했지만,수아는 거부했다. 쌀쌀맞게 돌아누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다음 날 밤, 지완은 평소의 오만한 태도를 내려놓고 쭈구려 앉아 튼살 방지 크림을 들고 있었다."...... 크림 바를 시간인데, 강수아."수아는 대꾸도 없이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기며 벽을 보고 돌아 누웠다.지완은 안경을 벗어 협탁에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평생 누구에게도 숙여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묘하게 애처롭게 가라앉았다."어제... 연구실에서 주먹을 휘두른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그 놈이 너를 억지로 데려가려 하기에 산모의 신변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어.""신변 보호라구요? 가문의 아이들을 빼앗기기 싫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요?"수아가 서늘한 눈빛으로 돌아누우며 지완을 노려 보았다.지완은 가슴 한복판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추고 수아의 가느다란 발목을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이유가 우멋이든, 네가 나를 향해 그렇게 차가운 눈을 할 때마다.......... 내 통제 장치가 망가지는 기분이 든다. 이건 의무나 계약의 범주를 넘어선 오작동이다."말투는 여전히 학자답게 딱딱했지만, 수아의 허벅지 살결을 문지르는 그의 손길은..지나치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수아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는 서투른 아저씨의 사과였다.수아는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그의 따뜻한 손길과 애매한 고백에 마음이 복잡해지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