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정은 싸늘한 눈빛으로 공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공수이는 문창정이 손을 쓰자 아주 강렬한 압박감이 정수리 위에서 전해지는 걸 느꼈다.그러나 공수이는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저한테 투항하라고요? 꿈 깨요!”“이렇게 죽음을 자초한다면 내가 그 꿈을 기꺼이 이뤄주마!”’문창정은 말을 마친 뒤 손을 들어 공수이를 향해 움직였다.파멸적인 위압감이 전해졌다.쿠구궁!상공의 소용돌이 속에서 검은색 불꽃이 일렁이면서 갑자기 사슬 8개가 나타났다.사람 팔뚝만큼 두꺼운 검은색 사슬들에서는 검은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그것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공수이의 두 손과 두 발을 묶었다.“음? 이건...”어마어마한 마기를 뿜어대는 검은색 사슬에 묶이자 공수이는 순간 이상함을 눈치챘다.검은색 사슬이 그의 체내에 있는 칠살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젠장, 감히 내 기운을 흡수해?”공수이는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고 버둥대면서 검은색 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근처에 있던 세 종문의 사람들은 공수이가 문창정의 검은색 사슬에 묶이는 걸 본 순간 다들 흥분했다.“역시 문창정 선배님이시군요. 단번에 저 발칙한 놈을 제압하셨어요!”현문 도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 문창정 선배님은 백여 년 전 이미 후3품 절정에 달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 명불허전입니다!”만불종의 살심스님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사부님께서 그러셨죠. 문씨 일가는 절대 얕보면 안 된다고. 지금 보니 모두 사실이었네요!”자운각의 젊은 주인 현지욱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공수이가 문창정의 여덟 사슬에 묶이는 순간 정태웅은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수이 동생... 내가 구해줄게!”정태웅은 그를 구해주려고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날아가자마자 문창정이 소매를 움직였고 정태웅은 저 멀리 날아갔다.“풉!”정태웅은 입에서 피를 토했고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했다..“태웅 형님...”정태웅이 자신을 구
공수이가 팔부동천의 실력을 선보일 때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동천의 기운이 공수이의 몸에서 하나둘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팔부 동천이 나타난 순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기운들까지 모조리 팔부의 기운에 뒤덮이는 것만 같았다.“이 자식! 감히 체내의 혈맥을 희생하여 억지로 팔부 동천을 개시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게냐?”문창정이 갑자기 호된 목소리로 공수이에게 말했다.공수이는 이미 온몸이 빨갰다.피부도 붉은색이었고 심지어 동공까지 붉은색이었다.“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 모두 나와 함께 죽게 할 겁니다.”공수이는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쓰지 않았다.오늘 그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첫 번째는 종문을 처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칠수방의 미녀들을 보는 것이었다.칠수방의 미녀들은 이미 보았으니 이제 이 자리에 있는 종문의 사람들을 전부 처단하면 끝이었다쿵!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한 동천의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 저택 전체가 핏빛으로 되었다절그럭, 절그럭.공수이의 몸을 휘감고 있던 검은색 사슬도 공수이가 팔부 동천을 완전히 열자 부서지기 시작했다..“세상에, 팔부 절정이라니! 다들 물러나요...”현문의 구진철은 팔부 절정의 기운이 하늘과 땅을 뒤덮는 걸 느낀 순간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현문뿐만 아니라 자운각, 만불종 사람들도 전부 뒤로 물러났다.그들은 팔부 동천의 위압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어르신... 저희는 어떡해요?”칠수방의 미녀들은 서둘러 그들을 이끌고 온 안희정에게 물었다.안희정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팔부 동천을 시전한 공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팔부 동천은 아주 파멸적이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다들 얼른 피해!”“하지만 그러면 저 스님은 어떡해요?”차비연은 공수이가 걱정되었다.“그것까지 신경 쓸 새는 없어. 팔부가 열렸으니 이 공간은 저 스님이 혼자 지배하게 되. 여기 있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거야!”안희정은 그렇게 말한 뒤 빠르게 철수했다.차비연은 비록
상대가 되지 않았다.공수이는 팔부 동천까지 열었는데도 여전히 문창정의 상대가 되지 않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공수이는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는 오늘 싸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죽으면 어떠한가?“하하, 이 자식. 이제 안 되겠지?”현문 쪽에서 공수이가 점점 밀리는 걸 보게 된 손형재는 흥분을 참지 못했다.다른 만불종, 자운각도 세기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어디서 나타났을지 모르는 스님이 팔부 동천을 열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정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에게는 문창정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들 모두 오늘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역시 문씨 일가의 가주님답네요! 팔부 절정까지도 제압할 수 있다니 대단해요!”자운각의 현지욱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그래요. 비록 문씨 일가는 종문이 아니지만 우리 종문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졌죠. 오늘 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네요!”만불종의 살심스님도 말했다.이 순간 모든 종문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오직 칠수방의 미녀들만이 다들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공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큰일이에요. 저 스님 곧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그러게요! 몸이 아주 핏빛이 됐는데요!”“휴, 저렇게 귀여운 스님인데... 아쉽게 됐어요... 오늘 죽겠네요.”미녀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싸우고 있는 공수이를 바라보았다.쿠구궁!저택 중앙,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면서 허공에 서 있던 문창정이 검은색 검을 휘둘러 다시 한번 공수이의 금강 법을 베는 것이 보였다.철컥!엄청난 공격이었다.검이 닿는 순간 공수이의 몸을 지키고 있던 금강 법이 부서졌고 심지어 공수이 등 뒤의 대지에 30여 미터는 훌쩍 넘을 듯한 긴 검흔이 생겼다.퍽!공수이는 공격 때문에 멀리 날아가서 코와 입에서 피를 토했다.“수이야...”공수이의 다친 모습을 본 정태웅은 눈에서 피눈물을 흘렸다.그는 일어나서 공수이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조금 전 문창정의 공격에 심하게 다친 상태라 두어 걸음 걷
“저 자식, 이제 죽었겠죠.”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마지막 전투를 바라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겠죠. 이 세상에 우리 종문을 제외하고 팔부 절정까지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자식은 편을 잘못 골랐죠.”만불종의 살심스님이 말했다.“우리 종문과 싸우려고 했으니 죽어 마땅하죠.”자운각의 현지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문창정이 선보인 거대한 검은색 손이 공수이를 일격에 죽이려던 순간, 갑자기 윙 소리와 함께 흰 빛이 하늘을 갈랐고 곧이어 하늘에 검 하나가 나타났다.그것은 비검이었다.그 비검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았는데 이 순간 검의 기운으로 주변의 모든 기운을 뒤덮었다.비검이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생명력을 잃었다.무시무시한 흰색 비검은 문창정이 만들어낸 거대한 손을 꿰뚫었다.그 비검이 나타나는 순간, 감미로운 목소리가 갑자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린 스님 한 명을 상대하다니, 너무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아주 허스키한 목소리였다.그러나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고막이 터질 것처럼 아프고 온몸이 차갑게 굳었다.“누구야?”자신이 만들어낸 검은색의 거대한 손이 비검에 파괴되자 문창정은 버럭 화를 내면서 음산한 눈빛으로 저택 밖을 바라보았다.다들 누군가 검 하나로 문창정의 검은색 큰 손을 없애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저택 입구 쪽에는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에 흰옷을 입은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손에 복사꽃 가지를 들고 등에 나무로 된 검집을 메고서 그들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저 사람은 누구죠?”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흰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비록 온화하고 우아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공간 전체가 그의 기운으로 뒤덮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특히 그에게서는 어마어마한 검기가 느껴졌다.검기로 인해
문창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에 피범벅이 된 공수이를 바라보았다.함지우는 고개를 들어 공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괴롭히는 걸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그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종문 사람들도 전부 호기심이 들었다.“함지우 씨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 자식은 아주 오만방자합니다. 오늘 우리 문씨 일가 저택에 멋대로 쳐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종문의 절정 강자 여러 명을 죽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 종문에서는 오늘의 모욕을 그저 참아야 합니까?”문창정이 입을 열었다.“맞습니다. 서요산도 6대종문 중 하나가 아닙니까? 이런 망할 놈이 건방을 떠는 걸 그냥 보고 계실 겁니까?”이때 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말했다.함지우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비록 여러분들 말이 다 맞지만 저는 여럿이서 한 명을 괴롭히는 모습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 스님과 인연이 있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함지우 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자식과 무슨 인연이 있단 말입니까?”문창정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오늘 함지우가 화진 최고의 서요산 검종 출신이 아니었다면 문창정은 벌써 그를 공격했을 것이다.함지우는 싱긋 웃더니 고개를 돌려 온몸이 피로 물든 공수이를 바라보았다.“저들이 우리의 관계를 묻는데 네가 직접 얘기하겠니?”피투성이가 돼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공수이는 힘겹게 눈가의 피를 닦으면서 함지우를 바라보았다.함지우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공수이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악... 변태인 그쪽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눈앞이 까매져서 그대로 기절하여 털썩 쓰러졌다. 힘이 다 빠져서일 수도 있었고, 정혈을 너무 많이 흘려서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공수이는 기절했고 기절한 공수이를 바라보며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함지우는 공수이가 기절한 뒤 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탄
“도자!”손형재가 함지우의 검에 목이 꿰뚫린 걸 본 현문의 제자들은 전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장로 구진철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함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감히 우리 도자를 죽인 겁니까?”함지우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였는데 뭐 어쩌실 겁니까?”그의 말 한마디에 구진철은 말문이 턱 막혀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조금 전 죽은 건 현문의 도자였다.앞으로 현문의 정수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인재였다.그런데 서요산 출신의 함지우는 그런 도자를 순식간에 죽여버렸다.이 순간, 현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만불종, 자운각, 심지어 문창정까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들은 서요산 검종이 6종회의에 참석한다고 하길래 그들과 한편인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또 동의하지 않는 분 있습니까?”흰옷을 입은 함지우는 미소 띤 얼굴로 그곳에 서서 사람들에게 물었다.그의 머리 위에서는 흰색 비검이 윙윙거리면서 소리를 냈다.그것은 검선이었다.서요산의 진정한 젊은 검선 말이다.함지우의 무시무시한 검도 기운을 느낀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들 의견이 없는 것 같으니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는 사람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공수이를 잡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를 데리고 떠났다.그렇게 십여 미터를 갔던 함지우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정태웅에게 말했다.“그쪽도 같이 가요.”정태웅은 당황했다.그는 흰옷을 입은 그가 대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공수이를 도운 건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그래서 정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지우와 함께 떠났다.함지우가 정신을 잃은 공수이를 데리고 떠나자 검은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문창정의 뒤에 섰다.“가주님, 정말 그들을 이렇게 보내주실 겁니까?”문창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뒤에야 유유히 대답했다.“검도가 대단해. 서요산에서 백 년 만
함지우가 중얼거릴 때 정태웅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정태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기... 대체 누굽니까? 무엇 때문에 저희를 구한 거죠?”질문을 받은 함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전 함지우라고 합니다. 서요산 출신이죠.”서요산?그 말에 정태웅은 깜짝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란 표정으로 함지우를 바라보았다.“화진 제일의 종문 서요산 검종 출신이라고요?”함지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수이 동생을 아는 겁니까?”정태웅이 다시 물었다.“안다고 할 수 있죠.”함지우는 정신을 잃은 공수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그건 무슨 말이죠?”정태웅은 점점 더 궁금해졌다.“이 스님이 제게 빚을 좀 졌거든요. 그래서 절 제외하면 아무도 이 스님을 건드릴 수 없어요.”함지우는 덤덤히 말했다.“빚을 졌다고요? 무슨 빚을 졌는데요?”정태웅은 서둘러 물었다.정태웅은 똑똑한 사람이었다.그는 눈앞의 온화하고 우아해 보이는 함지우가 사실은 아주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공수이가 그에게 빚을 졌다는 말에 두려워졌다.“사실 제게... 돈을 빚졌습니다.”함지우는 드디어 사실을 얘기했다.‘뭐라고?’“돈이요?”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펄쩍 뛸 뻔했다.윤구주의 형제들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바로 돈이었다.그런데 함지우는 공수이가 그에게 돈을 빚졌다고 했다.잠깐 고민하던 정태웅이 물었다.“얼마나 빚졌습니까?”함지우는 웃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10억이요?”정태웅이 물었고 함지우는 고개를 저었다.“세상에, 설마 100억입니까?”“아뇨. 엽전 하나입니다.”함지우는 웃으며 말했다.‘뭐?’“엽전 하나라고요?”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어이가 없었다.“네. 엽전 하나입니다.”함지우가 말했다.정태웅은 그 말을 듣고 완전히 넋이 나갔다.조금 전 함지우가 돈을 빚졌다고 했을 때 그는 액수가 아주 큰 줄 알았다. 그러나 함지우가 엽전 하나를
“구해주긴 뭘! 그쪽이 절 구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얼른 꺼져요... 어서 꺼지라고요...”공수이는 함지우를 보더니 마치 그가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겁먹은 얼굴로 계속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를 질렀다.“휴. 우리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함지우는 공수이의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탄식했다.“제가 언제 변태인 그쪽을 무서워했다고 그래요? 전 그냥 그쪽을 보고 싶지 않은 것뿐이라고요!”공수이는 씩씩대면서 말했다.“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화가 나 있는 거야? 그럴 필요 없잖아. 그때 그 일은 네 형님을 탓해야지. 그 사람은 날 괴롭혔고 난 그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 너라도 때려야지. 안 그래?”함지우는 당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옆에 있던 정태웅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공수이의 형님이라면 구주왕을 가리키는 걸까?서요산 출신이 함지우가 윤구주를 아는 걸까?정태웅이 굉장히 의아해하고 있을 때 공수이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기등등한 얼굴로 함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변태! 헛소리 좀 하지 말아요! 그렇게 잘났으면 절 찾으러 오지 말고 우리 형님을 찾아가라고요.”함지우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이번에 산에서 내려온 건 네 형님을 찾기 위해서니까.”‘엥?’“정말로 우리 구주 형님을 찾으러 가겠다고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그럼! 내가 왜 그동안 하산하지 않은 건지 알아? 내가 검선이 되는 이날만을 기다렸기 때문이야. 검선이 되어야만 그를 진짜 이길 수 있으니까!”함지우는 자신 있게 말했다.“하!”공수이가 웃음을 터뜨렸다.“몇 번이나 도전해도 실패한 사람이 또 우리 형님에게 도전하려고요? 그래요. 그러면 지금 당장 구주 형님에게로 안내해 줄게요!”공수이는 즐겁게 말했다.“어... 어디 있는지 아는 거야?”함지우는 서둘러 물었다.“당연히 알고 있죠. 우리 구주 형님 앞에 가서 형님에게 도전하겠다고 말할 배짱은 있어요?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