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아주 거대한 코끼리의 허상이 윤구주의 뒤에서 나타났다.구음만상결!구양이 기라면 구음은 힘이었다.윤구주는 설국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흡수한 뒤 처음으로 이 무시무시한 공법을 시전한 것이었다.이 공법을 쓰자 윤구주가 마치 신처럼 보였다.그는 주먹을 들어 허공에 있는 검은색의 거대한 손을 쳤고, 곧 거대한 코끼리의 호상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비록 대비수인은 소림의 금지술이긴 하지만 윤구주의 구음만상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폭발음이 구용산에 널리 울려 퍼졌다.대비수인은 그 자리에서 파괴되었고 무시무시한 여파는 산봉우리를 뒤흔들었다.현문의 창현진인은 윤구주의 공격에 멀리 날아가서 쓰러지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선조님!”창현진인이 피를 토하자 옆에 있던 세 대장로는 전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근처에 있던 세 종문의 제자들 모두 깜짝 놀랐다.겨우 윤구주의 공격 두 번에 현문의 창현진인이 중상을 입을 줄은 몰랐다.“강해요. 진짜 너무 강한데요?”먼 곳에서 칠수방의 여자들은 윤구주의 듬직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았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우리 여제님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요!”다른 여자가 말했다.“아니, 눈치채지 못했어? 구주왕은 별로 힘을 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단번에 팔부 동천 대원만 경지인 창현진인을 쓰러뜨렸어.”“그 말은 구주왕이 우리 여제님보다 더 강할 거란 뜻인가요?”“그럴지도 모르지.”“세상에, 너무 멋진데요? 만약 저런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매일 시중을 들어도 좋아요.”“하하, 꿈 깨! 그럴 일은 없으니까!”여자들은 윤구주의 말도 안 되는 실력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구용산 쪽, 윤구주가 구음만상결을 시전하는 순간 창현진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그는 팔부 동천 대원만 경지로 곧 있으면 진정한 구오 지존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그동안 그는 구오 지존이 되기 위해 줄곧 폐관 수련했다. 그런데 폐관 수련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윤구주 같은 상대를 마주하게 될 줄은
벌써 적선술을 쓰다니, 윤구주의 살기가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탓하려면 감히 윤씨 일가를 건드린 문씨 일가를 탓해야 했다.감히 윤구주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를 건드리려고 했으니 윤구주가 가만히 있겠는가?무시무시한 적선술의 출현과 동시에 윤구주의 온몸이 흰빛에 둘러싸였다.윤구주는 마치 군신처럼 보였다.그를 둘러싼 절정의 기운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하늘과 땅을 일그러뜨릴 듯한 절정의 기운이 나타남과 동시에 팔부 동천 대원만 경지에 다다른 찬형진인은 눈가가 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어떻게 기운이 이렇게 강할 수가 있지... 아니! 이건 절정의 기운이 아니야. 이건 지존의 기운이야! 설마...”무시무시한 생각이 창현진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윤구주의 몸에서 지존의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 구용산 전체가 윤구주의 기운으로 뒤덮였다.지존의 기운은 강한 결계를 형성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물처럼 모든 사람들을 걸려들게 할 것만 같았다.세 종문의 사람도, 현문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다.다들 윤구주가 내뿜는 지존의 기운에 둘러싸였다.“이놈! 감히 홀로 우리 모두를 상대하려는 거냐?”장검을 든 현문의 한 선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더니 장검을 휘둘렀다. 서늘한 기운이 검날에서 느껴지면서 그 기운들은 순식간에 수많은 검의 허상을 만들어내면서 윤구주를 공격했다.현문 선조가 한기로 공격하자 윤구주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오른손을 휙 움직였다.쿵!지존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회색의 거대한 손이 상대의 검날을 쥐었다.“이럴 수가!”윤구주를 공격했던 현문의 선조는 그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겁을 먹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물러나려고? 물러날 수 있겠어?”거대한 회색 손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곧 검이 부서졌다. 무시무시한 힘 때문에 현문 선조의 팔도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그러나 그는 부러진 팔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빠르게 물러났다.그는 도망쳐야 했다.반드시 살아야 했다.그가 뒤로 멀리 몸을 물리는 순간, 갑자기 사
자운각의 젊은 주인 현지욱은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끝장이야. 오늘 우리 모두 죽을 거야!”현문의 한 제자가 두려움에 떨면서 외쳤다.“구주왕이 그랬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겠다고요. 그러면... 저희까지 죽이는 거 아니에요?”만불종 쪽의 한 스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구주는 현문의 선조를 죽인 뒤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현진인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이제 너희들 차례야. 오늘 내가 말했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죽일 거라고.”윤구주의 목소리는 칼 같았다.그의 살기는 구용산을 전부 뒤덮었다.윤구주가 정말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겠다고 하자 창현진인의 얼굴이 심하게 떨렸다.“구주왕, 정말로 우리 6대종문과 철천지원수가 될 생각인 거야? 우리와 싸운다면 화진의 무도는 너로 인해 무너질 거야!”창현진인이 호통을 치자 윤구주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무너진다고? 당신들은 감히 문창정 그 노인네와 결탁하여 우리 윤씨 일가를 괴롭혔어. 심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까지 감금해 뒀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어?”“구주왕, 우리 네 명은 이제 막 폐관을 마치고 나왔는데 어떻게 윤씨 일가와 네 할머니를 괴롭힐 수가 있겠어? 이... 이건 모함이야!”키가 작은 현문의 선조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의 말은 사실이었다.현문의 네 선조는 이제 막 폐관을 마치고 나와서 윤구주의 할머니가 감금당했다는 걸 전혀 몰랐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런 건 상관없었다.현문의 네 선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윤구주의 실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몸을 낮추면서 윤구주에게 이런 말을 하는 대신 일찌감치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래서 그가 말했다.“쓸데없는 말은 그만해! 오늘 이 상황은 당신들이 자초한 거야.”윤구주가 패기 넘치게 말하자 세 선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러나 조금 전 윤구주가 손쉽게 현문의 선조를 한 명 죽였던 것을 떠올리면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적선의 기운이 천주검에 주입되자 흰색 빛이 천주검에서 뿜어져 나왔다.이 순간 천주검은 마치 선검이 된 듯했다.쿵!무시무시한 적선의 기운을 품고 있는 천주검이 흑화정을 향해 날아들었다.창현진인은 그 순간 빠르게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고 곧이어 검은색 불꽃이 불타오르면서 검은색 화룡이 되었다.화룡은 울음을 토해내면서 윤구주의 천주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막을 수 없었다.펑!굉음이 허공에서 들려왔다.아우...곧이어 비참한 절규가 들렸다. 화룡은 천주검 때문에 반으로 갈라졌다.“큰일이야...”창현진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검은색의 화룡이 윤구주에 의해 파괴되자 질겁하면서 빠르게 흑화정을 거두어들이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늦었다.적선의 기운을 품은 천주검이 다시 휘둘러지는 순간 굉음과 함께 흑화정이 허공에서 부서졌다.흑화정이 부서지자 창현진인은 입에서 피를 왈칵 토했다.“창현진인!”창현진인이 부상을 당하자 다른 두 선조가 일제히 나서서 윤구주를 공격했고, 윤구주는 주먹을 휘둘렀다.무시무시한 힘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거대한 코끼리의 허상이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그것은 구음만상결이었다.코끼리의 괴력이 두 현문의 선조를 공격했고 퍽 소리와 함께 두 선조는 일제히 멀리 날아갔다. 그들은 저 멀리 날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젠장, 너무 강해! 창현진인과 두 명의 선조가 힘을 합쳤는데도 상대가 되지 않아! 설마... 이미 팔부 동천 이상의 실력인 걸까? 설마 전설 속 구오 지존인 걸가?”윤구주가 세 선조를 쓰러뜨리자 살심스님이 참지 못하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구오 지존 경지? 저게... 바로 전설 속 절정 지존이라니!”자운각의 현지욱은 그 말을 듣고 덜덜 떨었다.구오 지존 경지라니!그것은 절정 중에서도 전설에 속했다.그 경지는 이미 수백 년간 나타나지 않았다.그런데 윤구주가 바로 그 전설 속 구오 지존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지존의 기운... 조금 전의 기운은 지존의 기운이었어. 정말로 구오 지존이었어!”이때 한 현문
공수이는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창현진인 등 종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종문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감히 우리 형님을 상대하려고 해요? 솔직히 얘기할게요. 우리 형님은 당시 곤륜에 있으면서 수많은 외국의 절정 강자들을 죽였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수로 우리 형님을 상대해요?”공수이가 계속해 말했다.‘뭐라고? 무도 성지 곤륜?’공수이의 말에 세 종문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창현진인까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네 말은... 구주왕이... 무도 성지 곤륜 출신이란 말이야?”창현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공수이에게 물었다.“이제 알았어요? 우리 형님은 무력으로 천하제일이라서 천하무적이라고 불리는데요?”공수이가 말했다.그의 말에 사람들은 전부 얼어붙었다.그들은 윤구주가 무도 성지 곤륜 출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윤구주의 엄청난 실력을 떠올린 창현진인은 갑자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구오 지존이 될 수 있었던 것이군. 그래서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 될 수 있었던 거였어.”말을 마친 뒤 창현진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윤구주, 우리가 잘못했어. 나는 현문을 대표하여 너에게 사과하겠어. 만약 오늘 우리를 용서해 준다면 네가 시키는 것은 뭐든 하겠어.”창현진인은 윤구주를 향해 용서를 빌었고 윤구주는 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이제 와서 용서해달라고? 늦었어. 당신들은 문창정 그 노인네와 결탁하는 순간부터 죽어야 할 운명이었어.”윤구주는 사실 종문 사람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종문은 아무래도 화진의 3대 서열 중 가장 강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문창정과 결탁하였고 심지어 윤구주의 친할머니를 감금하였다. 그러니 윤구주로서는 그들을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윤구주, 만약 오늘 네가 우리들을 죽인다면 결과는 하나뿐이야. 너와 우리 종문이 싸우는 것이지. 그건 너도 바라는 일이 아닐 텐데. 그렇지 않아? 그리고 우리 현문에서도 일부 선조가 곤륜에서 수련하고
자운각의 선조들이 도착했다.여섯 사람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그들의 살기가 사방을 휩쓸었고 구용산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칠수방의 여자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들의 살기는 사람을 죽일 듯했다.“심상치 않아요. 자운각의 선조들이 도착했어요.”“저 오빠 혼자서 괜찮을까요?”“넷째 언니!”질문을 받은 차비연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여섯 사람은 창현진인 등과 실력이 비슷했다. 특히 검은 뱀을 타고 있는 노인은 창현 진인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만약 일곱 명이 연합한다면 윤구주도 잠깐 물러서야 할 것이다.구용산이 뒤흔들렸다. 종문의 제자들은 살기 때문에 꿈쩍할 수가 없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서늘한 숨을 뱉었다.멀리 떨어져 있는 칠수방의 사람들도 겁을 먹었고 종문의 자제들도 다들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아군조차 겁을 먹었으니 여섯 사람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또 왔네? 자운각의 노인들이었군.”그들을 알아본 함지우는 잠깐 물러났다가 다시 나서려고 했다.“지우야.”윤구주의 눈빛에 함지우는 다시 물러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섯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자운각의 선조들이었다. 윤구주는 그들을 쭉 둘러보았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칠살에 다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팔부 동천 수준이었다. 특히 얼굴이 흉측한 노인은 창현진인보다 실력이 강한 듯 보였다.“저 검은 뱀은 비늘과 날개까지 생겼군. 이제 곧 교룡이 되겠어.”검은 뱀은 절대 좋은 생물이 아니었다. 만약 그것이 구오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세상에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자운각의 선조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창현진인은 당황했다.그는 사실 투항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상황이 뒤집어질 줄은 몰랐다.그러나 창현진인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교활해지는 법이다. 그는 일곱 명의 사람과 뱀 한
“백 년 전 오늘, 윤씨 일가는 우리 자운각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자운각의 주인을 죽였어. 당시 자운각의 주인은 화진에서 보기 드문 귀재였어. 이미 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때 그 복수를 하지 못했는데 윤구주 네가 나타난 거야!”정운은 매우 화가 났다.윤구주는 자운각의 여섯 사람이 왜 자신을 이토록 미워하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창현진인은 눈을 빛냈다. 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자운각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으니 그들은 분명 최선을 다해 윤구주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자운각과 윤씨 일가 사이에 그런 원한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윤구주! 나는 조금 전 너에게 기회를 주었어. 넌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고 많은 업적을 쌓았지. 그러니 당연히 최대한 살생을 하지 않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우리 종문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어. 세상 일이 다 네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아? 오늘 나는 자운각과 합심하여 널 죽이겠어. 얌전히 죽어. 그러면 덜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으면 시체조차 온전히 남겨주지 않을 줄 알아.”창현진인은 자운각의 여섯 사람, 그리고 뱀 한 마리와 협력할 생각이었다. 절정 강자 여덟 명이 함께 싸운다면 그 힘은 대단할 것이다.“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만 지껄이네요. 당신들 중에 좋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군요. 지우 씨, 저 사람들이 먼저 양심 없이 나왔으니 지우 씨도 이제 그만 쉬고 어서 저 마귀 같은 노인들을 죽여야죠!”공수이는 한참을 토하다가 함지우를 재촉했다. 그는 종문 사람들의 행태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당연하지!”함지우는 나서려고 했다가 다시 한번 윤구주의 눈빛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고개를 돌린 윤구주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종문 사람들은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남 탓하는 재주가 정말 뛰어나네. 그래도 진실은 변하지 않아. 당신들은 문창정 그 노인네와 결탁하여 화진의 땅을 나눠 가지려고 했어. 그건 죽을죄야. 오늘 나는 내 가문의 복수와 화진의 복수를 동시에 할 거야. 쓸데없는 얘기는
팔부 동천 수준에 다다랐고 곧 교룡이 될 수 있었던 검은 뱀이 벼락을 맞고 죽었다.사실 그곳에 있는 많은 노인들도 검은 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그런데 그들 중에서 가장 강하던 존재가 윤구주의 일격에 죽어버렸다.검은 뱀은 벼락을 맞고 뼈만 남았다. 금뇌가 사라지자 뱀의 뼈도 재가 되었다. 그 재는 지표면으로 떠올랐고 곧 아주 강한 피비린내가 났다.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지자 그 자극적인 냄새에 종문의 제자들은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이건 저 짐승이 집어삼킨 육체들의 정기야. 사람은 정기로 살아가지.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정기라니, 저 짐승은 그동안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을 거야.”윤구주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살기에 사람들은 섬뜩함을 느껴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아니, 수가 적었네. 평범한 사람들은 정기가 많지 않아. 무인이 그나마 혈기가 왕성한 편이지. 특히 절정 강자들의 혈기는 형태를 갖출 수 있고 세상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어. 이 짐승은 적어도 400년을 살았을 거야. 300년이면 이무기가 될 수 있고 500년이면 교룡이 될 수 있지. 그렇게 오래 살려면 혈기를 집어삼켜서 수명을 늘려야 해. 그러니까 이 짐승은 수백 년간 적어도 수백만 명의 사람을 잡아먹었을 거야.”함지우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서요산은 검은 뱀과 같은 나쁜 것들을 처단하여 세상의 정도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서요산은 요물과 완전히 대립하는 처지였기에 함지우는 갑자기 사람이 달라져서는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걱정하지 마. 오늘 난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거니까. 오늘 전부 죽여버릴 거야.”함지우의 살기가 강한 편이라면 윤구주는 무시무시한 정도였다.윤구주는 이 세상의 유일한 신처럼 느껴졌다. 그가 하는 말은 신의 말씀 같았고 아무도 감히 그를 의심할 수 없었다.“헉!”정운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당황하지 마세요. 그 정도로 강한 건 아닐 테니까요. 구오 지존도 저렇게 강할 수는 없어요. 구주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