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고민하던 수안이 사람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대장로님, 몇몇을 데려가 뒷산에 폐관 수련 중이신 전 문주님을 모셔와요. 이장로님, 사람들을 시켜 그 용필이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찾는 즉시 데리고 와요. 저는 그동안 여기서 시간을 끌도록 할게요. 전갈문 운명이 걸린 일이니,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동하길 바라요.”꽤나 그럴싸한 명목이었지만, 사실 수안은 속으로 자신만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네, 문주님!”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녀가 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염구준은 별장 깊은 속으로 들어가며 점점 더 강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거의 저항할 틈도 없이 당하거나 도망치기 일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기어이 전갈문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하지만 모두 떠난 듯, 그 사이에 모두들 떠나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은 눈을 감고 서서히 기운을 주변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진 강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 녹지대 쪽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금색 빛을 띤 한 독총이었다. 저들도 염구준이 최소 전신 경지에 있다는 것을 알 텐데, 독충을 꺼내 들다니, 의아했다. 그는 더 가까이로 다가가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독충, 아니 독전갈이 어딘가로 빠르게 도망치는 것이 느껴졌다. “재밌네. 날 유인하려 들어?”염구준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독전갈을 따라갔다. 전갈이 향한 방향은 바로 뒷산, 전 문주가 폐관 중인 곳이었다. 수안은 시간을 벌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염구준을 유인해 전 문주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잠시 후, 염구준은 전갈의 안내에 따라 뒷산, 대나무가 우거진 숲에 도착했다. 그 숲 가장 깊은 곳, 대장로는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돌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저희 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적이 왔습니다. 전 문주님, 부디 도와주십시오.”사람들이 간절히 외쳤지만, 돌문
연달아 주먹이 세번 내리쳐지자, 돌문이 쩌저적 갈라지며 사방으로 파편들이 튀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 예상했던 대로 아수라였다. 뒤섞인 사람과 짐승들의 시체, 사방을 돌아다니는 벌레들, 토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역겨운 냄새, 그리고 살기… 동굴 속 노인은 산 사람과 짐승들을 이용해 벌레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을. “큭큭,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들어주지.”전 문주가 뼈만 남은 듯한 기괴한 몸을 들어내며 섬뜩하게 웃었다.“겨우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려고 다른 사람을 희생하다니, 정신 나갔군.”염구준이 살기어린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정의를 지키고 싶다면, 그럴만한 능력부터 갖춰야지. 어디 한번 네 실력을 보여봐라!”전 문주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쏘아진 일격!쾅하고 주먹과 주먹이 부딪혔다. 전 문주가 아무리 빨라도 결코 염구준과 비교할 수는 없는 법! 그의 공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염구준은 그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발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연달아 쾅쾅쾅, 포대를 내리치듯 전 무준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전 문주는 반격하고 싶었지만, 염구준은 전혀 그에게 기력을 모을 틈을 주지 않았다. 전신 경지에 있는 고수가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기만 하다니, 전 문주는 이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상대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대가였다. 염구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 문주를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높이 뛰어올라 양손을 굳세게 마주잡으며 전 문주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전 문주는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생길 정도로 처박히며 온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쿨럭!”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대장로가 놀라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비록 지금 자리에 물러난 상태였지만, 전 문주는 오랫동안 무리안을 휘어잡고 있던 강자였다. 그런데 이토록 허무하고도 처참하게 당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
그렇게 마지막 한방과 함께 전 문주는 온몸이 넝마가 된 채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피를 토해내며 말도 안 된다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당신, 반보천인이었군요.”이때, 한 연인이 나타났다. 바로 자취를 감췄던 현 문주, 수안이었다. “스승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좋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저 놈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전 문주가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하지만 속으론 아무리 둘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반보천인에겐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건 수안을 방패삼아 도망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정말 교활하기 짝이 없는 계략이었다.염구준은 수안 어깨에 올려져 있는 벌레는 보고 곧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수안이 바로 그를 이쪽으로 이끈 그 전갈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티 내지 않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수안은 몇 번 신호흡한 뒤, 천천 전 문주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스승님, 괜찮으세요?”“괜찮….”전 문주가 하던 말을 멈추고 허리춤을 바라봤다. 어느 사이 그의 허리에 비수가 깊게 꽂혀 있었다. 범인은 수안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연달아 몇 번 더 그에게 칼침을 놓았다. 전 문주는 뜻밖에 상황에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수안을 바라봤다. 이제 그에겐 반격할 기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이때, 장도들도 상황을 눈치채곤 충격 받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문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복수다!”수안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오직 이 날을 위해 모든 치욕을 견디고 또 견뎠다. “설마, 기억난 거야?”전 문주가 곧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억나냐니? 나는 처음부터 기억 잃은 적 없어. 그저 네 놈한테 속아넘어가는 척 연기한 것뿐이지.”수안이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어린 나이에 감쪽같이 날 속이다니, 대단하구나.”전 문주가 감탄하는 듯하더니, 이내 비꼬았다. “그럼 나랑 잘 때도 꽤 고통스러웠겠네?”“죽어!”수
수안이 모질게 행동한 것은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널 죽일 이유는 없다. 난 그저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다."염구준은 손을 쓰지 않았다.그는 용하국의 수호신였기에 무리안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나에게는 손을 쓰기조차 더럽다는 건가요?"수안은 자신의 몸이 싫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살아남았으면 새롭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잘 살도록 해."염구준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이토록 협박을 받으면서도 전갈문이 사람을 내놓지 않는 것을 보니 용필은 여기에 없는 듯했다."선생,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수안이 깍듯하게 물었다."염구준이다!""염 선생, 만약 제가 용필에 대해 알게 된다면 즉시 알릴 겁니다."염구준의 한마디에 살 용기를 얻은 수안은 감격했다.-"거봐! 크게 배팅하라고 했는데 고집 부리더니 졌구먼!""하하, 오늘은 좀 되는 날인가 보네. 많이 땄어!""이 봐! 동생! 돈 필요하지 않아? 50만 원 혹은 100만 원이라도 뒤집을 수 있어."여기는 ‘필승’, 무리안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박장이었다.장 내에는 다양한 사람들로 섞여 있어 정보 수집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염구준은 바로 이점을 노렸다."거슬리게 굴지 말고 게임 하지 않을 거면 빨리 꺼져." 한 건달이 욕설을 퍼부으며 염구준에게 다가왔다.건달은 한 시간 동안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염구준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그를 무시하며 대꾸하지 않았다.무시당했다!화가 난 건달은 손에 든 막대기를 들어 염구준의 머리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분명히 살의를 담은 한방이었다.현장의 다른 사람들은 태연하게 바라보면서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이런 상황은 ‘필승’에서 너무나 흔했고 한 사람 정도 시체가 되어 나가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쾅!막대기가 내려꽂히는 순간, 하나의 실루엣이 휙- 하고 내동댕이쳐졌다. 그것은 벽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누군가를 죽이려 했다면, 똑같이 당할 각오도 했어야지
"당신 혹시 용하국 사람인가?"염구준이 한 번 더 확인했다."용하, 청해 사람입니다."익숙한 고향 말투에 여자는 재빨리 대답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자비를 베풀어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염구준이 뱉은 차가운 두 글자에 그녀는 희망을 가졌다."놔라!"건달은 염구준의 말을 곧잘 따랐다. 전갈문 전 문주를 죽인 사람이다. 그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저기 선생, 저 여자가 내 돈을 빚졌어. 서로 지켜야 할 선은 지키자고."도규환의 얼굴이 어두웠다."선을 넘겠다면?"염구준은 도규환을 바라보며 도발했다."후!"숨이 가빠지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난 도규환이지만 손을 쓸 엄두는 내지 못했다.도규환이 움직이지 않자 염구준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이 여자가 얼마를 빚졌는지 말해봐. 내가 갚아줄게."그의 말에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20억, 네가 나섰으니, 한자리는 지워줄게. 2억만 주면 돼."도규환은 미소를 지으며 가격을 불렀다.돈만 받을 수 있다면 체면은 상관없었다.그들의 뻔한 수법을 잘 알고 있었던 염구준은 허를 찔렀다."원금을 말하는 거야.""800만 원이에요."여자는 급히 대답했다.이건 사채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약탈이었다.염구준은 500만 원을 건네며 모욕했다."여기 500만 원. 남는 건 팁이다."피를 빨아먹는 인간도 아닌 것들에겐 예의를 갖출 필요 없다."그래, 데려가. 그리고 다시는 내 구역에 오지 마."도규환은 꾹 참았다.오늘, 그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염구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떠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는 오히려 옆에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또 다른 용하국 사람들도 여기에 갇혔나요?""네. 약 오십 명 정도이고 모두 지하실에 있어요."여자는 작은 철문을 가리켰다.큰일이다!안 좋은 예감에 도규환은 부하에게 사람을 더 불러오도록 했다.한 명 정도는 별거 아니지만, 전부를 놓아주면 큰 손해였다.이들은 모두 돈줄이었기 때문이다."쳐다보고
실력은 부족했지만, 용기는 가상했다!염구준의 마음속으로 내린 평가였다.왜냐하면 이미 문밖에는 강한 기운을 뿜고 있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제만과 그 일행을 전멸시킬 수 있는 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어라, 제만이네? 이제는 검을 빼 들고 사람을 베려 하는구나."한 남자가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비꼬았다."흥, 대염무관 같은 이상한 생명체는 일찍 뿌리째 뽑아버렸어야 했어."그 남자 옆에는 마치 철탑처럼 큰 키를 자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사람의 힘줄을 끊는 자, 소지.사람을 분해하는 자, 게이츠.두 사람은 여기에서 강력한 실력을 가진 악인이었다. 소지는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사람 손발의 힘줄을 끊을 수 있었고, 엄청난 힘을 진 게이츠는 사람을 두 동강 낼 수 있었다.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제만은 급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빨리, 무관 강자들에게 연락해!""이미 늦었어."소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제만의 목을 향해 손톱을 세웠다.전혀 징조가 없었던 공격이었다.제만도 빠르게 반응하며, 검을 휘둘러 소지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그를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었다.그러나 경험이 풍부했던 소지는 몸을 살짝 젖히면서 손쉽게 피했다. 그리고는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가까이 붙으면 제만은 승산이 없었다.젠장!이 점을 알고 있었던 제만은 낮게 욕설을 뱉으며 장검을 버렸다. 단검으로 방어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소지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여, 병기와 맞부딪히고도 제만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기선 제압에 실패한 제만이라 패배는 시간문제였다."문주님!"함께 온 사람들이 위기를 감지하고 도와주려 했으나, 게이츠가 그들을 막아섰다. 그는 혼자서 모든 사람을 막아섰다.한쪽이 우세를 차지하자, 도규환이 더욱 거만해졌다."실력도 없으면서 영웅 행세나 하고 있으니 자살 행위밖에 더 돼?"슬그머니 도발하고 있는 그의 눈이 염구준을 향하고 있었다.염구준에 대한 것들은 전설일 뿐이라서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본
그는 이 도시에서 감히 자신들을 죽일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다.염구준은 냉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번쩍 들어 두 개의 머리를 떨어뜨렸다."나쁜 놈의 앞잡이는 결코 호인이 아니다."거침없는 그의 행동에 모두가 놀랐다."보채성맹 사람들인데 당신이 어떻게 감히?” 겁에 질린 도규환은 뒷걸음질 쳤다.그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악마였고,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세상에 내가 못 할 일은 없지."폭력을 없애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니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가서 사람들을 구해야지 뭐 하고 있어!” 염구준은 멍하니 서 있는 제만을 일깨워주었다."아, 네!"고개를 끄덕인 제만은 여자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실로 향했다. 그가 받은 충격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거기 서......" 막으려던 도규환은 염구준의 눈빛을 보고 모든 말을 삼켰다.돈과 목숨 중에 목숨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더구나 눈앞에 있는 이 무시무시한 사람은 그들을 매우 싫어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말은 적게 하는 게 상책이다!"사람들을 다 구했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제만이 고문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해자들을 구출했다."드디어 우리가 구출되었어요.""집에 가고 싶고 가족도 보고 싶어요.""당신들이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거 맞죠?"그들은 매우 격양된 상태였지만 오랜 고문으로 인해 마음이 거의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이놈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동포들을 한 번 보던 염구준이 물었다."일단 대염무관으로 데려가고, 나중에 각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제만이 대답했다.무리안에서, 대염무관은 마지막 깨끗한 땅이었다.악이 넘치는 곳의 깨끗한 땅이니만큼 많은 고통을 겪었다."좋다!" 고개를 끄덕이던 염구준은 대염무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선생님, 그럼 우리 함께 대염무관으로 돌아가시죠."제만은 상대가 반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쾅!큰 폭발음와 함께 도규환은 재가 되었다.누군가에게 학대를 가할 때 오늘처럼 자신이 죽을 장소도 없이 끝장날 것을 생각했을까.보채성맹의 서쪽에 위치한 용하 특유의 사합원 건물.대염무관."사람을 구하는 건 그렇다 쳐도 어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까? 보채성맹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 셈이 되었으니 이걸 어찌하면 좋습니까?"말하고 있는 이는 백발노인으로, 대염무관의 둘째 문주 제욱이었다."이미 일어난 일이다. 이제는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자." 주좌에 앉은 사람이 말했다.이름은 제정도, 제만의 아버지이자 현임 무장이다.방금 도규환, 소지, 게이츠가 죽어서 대염무관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모든 무관 고위층이 모여 한창 대책을 논의했다.제만은 무리의 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기다리고 있었다."제가 저지른 일이니 스스로 책임지겠습니다. 저를 넘기세요."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아드님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군요." 제욱이 화를 내며 비난했다."만아, 말 줄여라."제정도는 평온했고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하지만 무장의 위치에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기에 갈등을 심화시킬 수 없었다.아들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이 억울해도 똑같이 참아야 했다.제정도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보채성맹이 반드시 복수하러 올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말해보자."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우리는 그 악마들과 맞설 수 없으니 반드시 사람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대염무관의 백 년의 역사를 우리가 망칠 수는 없으니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그들이 오면 차라리 다 죽여버립시다."의견이 갈렸다. 싸움을 지지하는 이도 있었고, 굴복하려는 이도 있었으며, 중립을 지키려는 이도 있었다.대염무관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염구준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굳이 참견할 생각이 없었던 그는 그저 한켠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