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양은 모든 계획이 있었으나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째서 내게 태후를 속이고, 번거롭게 강연해의 서신을 받아오라고 하셨던 거지? 강연해가 내게 쓴 서신을, 태후가 진왕에게 쓴 서신을 건네며 증거가 충분하냐고 물었을 때, 그저 말없이 서신을 품속에 넣으셨지. 속으로 나를 비웃었던 게 아니었을까?’“만여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서청잔이 손을 들어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강만여는 정신을 차리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드네.”서청잔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마나 흘렀을까, 강만여는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다.눈을 뜨니 머리 위로 푸른색 휘장이 보였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곳이 바로 자신의 침전임을 깨달았다.그녀는 뻑뻑한 눈동자를 굴리며 일어나 앉으려 했다. 그러나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축 늘어져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자소야.” 그녀가 힘없이 불렀다.침대 곁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한 장의 준수하지만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목소리는 조심스러운 기쁨에 차 있었다. “만여야, 깨어났느냐?”강만여는 자신이 헛것을 보는 줄 알고, 눈을
태후는 지난 일을 회상하며, 긴장감에 온몸이 굳었다. 강만여와 엽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에서 내려,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대전에 문무백관들이 두 줄로 서 있었고, 그들의 관복과 신발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태후는 전각 안에서 강연해를 찾을 수 없었다. 강진일에게 물으려 뒤돌아보았으나, 강진일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태후는 불안감을 느꼈다. 옥계 아래에 우뚝 서 있는 옥색 황포를 입은 남자를 바라보며,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두 형제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는 여전히 구별하지 못했다.“
“네, 자세히 보았습니다. 진정 진왕 전하가 맞습니다.” 엽 상궁이 말했다. “오직 진왕 전하만이 태후 마마께 이토록 모자간의 정이 깊습니다.”태후는 조금 안심하고, 옆에 있는 강만여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 일이 성공한 후에, 내 반드시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황송합니다, 태후 마마.” 강만여는 담담히 감사 인사를 올렸다.태후는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더니, 결국 물었다. “정녕 심장안 말고는 안 되는 것이냐? 진왕의 곁에 머무는 것을 고려해 보지 않겠느냐?”강만여는 그녀를
사흘 후 비 내리는 밤, 자녕궁의 태후는 드디어 천둥번개 속에서 6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진왕을 맞이하였다.진왕은 삿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채, 온몸에 빗물을 맞으며 강만여와 열댓 명의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시위들에 둘러싸여 문 안으로 들어섰다.빗물에 젖은 그의 눈매는 온화함 속에서 몇 가닥의 덧없음을 드러내었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듯 감격에 서려 있었다.“어마마마!”진왕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태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부름이 어찌나 애절하고 애틋한지, 가슴이 저미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붉어진 눈가에는 참았
“부황께서는 짐과 용빈에게 건청궁 밖에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으라 벌하셨고, 돌아가서는 용빈이 짐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며 짐에게 사흘 동안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강만여는 용빈이 바로 기양을 키운 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선황제의 총애받지 못하여 늘 원한에 차 있었고, 수시로 기양을 때리고 꾸짖었다.강만여는 기양의 성격이 이리 사납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이 용빈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어서, 그저 침묵한 채 기양이 계속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기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