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밤이 깊어질수록 눈은 더욱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눈송이는 마당과 지붕을 천천히 덮으며 낮에 남아 있던 흔적들을 조금씩 감추고 있었지만 진안은 그 눈이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의 시선은 창밖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담장 너머로 이어진 나무들 또한 눈을 뒤집어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진안은 그 고요함을 믿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분명히 기척이 있었다.구간에서 집 쪽으로 이어진 발자국은 아직 선명했으며 자신이 밖으로 나갔을 때 들렸던 발소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그리고 자신이 멈추자 상대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그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했다.진안은 천천히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세린은 방 안쪽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밖을 보고 있어요?”진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아까부터 계속 그러고 있잖아요.”“볼 것이 있어서 그렇소.”세린은 의아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눈과 어두운 담장뿐이었다.“저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진안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게 다행이오.” “왜요?”“보이는 거리에 있다면 너무 가까운 것이니까.”세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진안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다면 자신 역시 상대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으며 지금처럼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내어줄 수 있었다.“오늘 밤에는 밖으로 나오지 마시오.”“진안은요?” “필요하면 나갈 것이오.”“그럼 저만 안 나가라는 거잖아요.” “그렇소.”세린은 조금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게 공평해요?”진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공평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안전한 일을 찾는 것이오.”세린은
마구간에서 집을 향해 이어진 발자국을 바라보는 순간, 진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희게 쌓인 눈 위로 새겨진 발자국은 아직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았고, 발자국 안쪽에도 눈이 다시 내려앉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은 흔적이었다.진안은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곧장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았다.대신 처음 흔적이 생긴 위치부터 바라보았다.마구간 문.말 네 마리가 있는 안쪽.그리고 마구간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길.시선이 천천히 그 사이를 오갔다.무언가 이상했다.어제 발견한 흔적은 마구간 주변에서 끊겨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마구간 안쪽에서부터 집을 향해 발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상대가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면, 왜 굳이 오늘은 마구간 안까지 들어온 것일까.진안은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첫 번째 발자국의 깊이를 살폈다.발 전체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그러나 두 번째 발자국은 첫 번째보다 얕았다.세 번째는 다시 깊었다.진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걸음이 일정하지 않았다.단순히 걷는 사람이 아니었다.무언가를 확인하면서 걸었던 흔적에 가까웠다.그는 발자국 옆의 눈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눈이 무너지는 정도를 확인한 뒤, 다시 발자국 안쪽을 살폈다.“……조금 전이군.”뒤에서 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뭐가요?”진안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이 발자국.” 세린이 가까이 다가왔다.하지만 진안은 그녀가 너무 가까이 오지 않도록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세린이 멈췄다. “왜요?”“흔적을 밟으면 안 되오.”그 말에 세린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발자국이 얼마나 선명한지 알 수 있었다.“누가 왔던 거예요?”진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발자국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이어갔다.어젯밤 담장 너머에서 보았던 그림자.담장 바깥의 희미한 발자국.마구간 근처에서 발견했던 흙자국. 검은 실밥.그리고 오늘 새롭게 나타난 발자국.각각 따로 놓고 보면 아무것도
하진이 떠난 뒤에도 집 안에는 그의 흔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따뜻한 차가 담겨 있던 찻잔과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방 안의 공기, 그리고 조금 전까지 이어졌던 대화의 여운이 조용한 집 안에 남아 있었지만, 세린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다.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저 문밖으로 사라진 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아주 얇은 안개처럼 마음 한쪽에 내려앉아 있었다.세린은 그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찻잔을 하나씩 정리했다.“오늘은 눈이 더 많이 내리려나 봐요.”창가에 서 있던 이모가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세린도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하늘은 어느새 짙은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굵어져 지붕과 담장 위에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그러게요.” 세린이 작게 대답했다.그때였다. 사각.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세린의 손이 멈췄다.눈 위를 밟는 소리였다.그녀는 잠시 움직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사각.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세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눈발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마당 끝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누가 밖에 있나?”이모가 묻자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그녀가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가려던 순간—진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의자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세린이 그를 돌아보았다.진안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그러나 세린은 알 수 있었다.저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무언가를 듣고 있었다.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진안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며 그의 긴 머리카락을가볍게 흔들렸다.그는 한동안 마당을 바라보았다.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하얀 눈발 사이로 나무와 담장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있었다.진안은 말없이 마당을 훑었다.하진이 걸어간 흔적이 있었다.그러
하진이 집 안으로 들어선 뒤, 숙모는 곧장 난롯가 가까운 자리를 내주었다.“밖이 꽤 춥지요? 이쪽으로 앉으세요.”“감사합니다.”하진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숙모가 따뜻한 차를 내오고, 숙부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세린은 그 옆에 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처음에는 평범한 대화였다.청하의 날씨와 장터 이야기, 겨울이 깊어지면서 길이 얼마나 미끄러워졌는지, 최근 들어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이야기까지.하진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차분하게 대답했다.“청하 쪽은 여전히 사람이 많더군요.”“그렇지. 겨울이 되면 장사하는 사람들도 일찍 문을 닫는다던데.”“예. 해가 짧아져서 그런지 저녁이 되면 금세 한산해집니다.”숙모가 세린을 바라보았다.“세린도 청하에서 꽤 돌아다녔다고 하더라.”“네. 생각보다 볼 게 많았어요.”“말도 데려왔고?”“네. 맡겨두었던 말도 데려왔어요.”“그 말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처음에는 다리를 잘 딛지 못했는데 이제는 꽤 괜찮아요.”숙부가 웃었다.“세린이 말 하나는 참 잘 돌보지.”“숙부님.”“왜 그러느냐. 틀린 말도 아닌데.”숙모가 웃으며 거들었다.“어릴 때부터 말만 보면 하루 종일 마구간에 붙어 있었잖니.” “그건 옛날 이야기예요.”“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세린이 입술을 조금 삐죽였다.“말이 아픈데 어떻게 그냥 둬요.”하진이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말을 꽤 아끼는 모양입니다.”“네.” 세린이 대답했다.“말은 말을 하지 못하니까 더 자세히 봐줘야 해요.”그 순간이었다.방 한쪽에 있던 진안의 시선이 아주 짧게 세린에게 향했다.그리고 곧바로 하진에게로 옮겨갔다.하진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진안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가라앉았다. 세린은 그것을 보았다.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평소보다 조금 강하게. 탁.작은 소리였지만, 세린은 고개를 돌렸다.“진안?” “……왜 그러시오?”“차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점심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하얀 눈송이들은 잿빛 하늘 아래에서 천천히 흩날리며 지붕과 담장, 마당의 나무들 위에 포근한 겨울빛을 내려놓고 있었다.세린은 두꺼운 겉옷의 깃을 여미고 마구간으로 향했다.며칠 전 청하에서 돌아온 뒤로 마구간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탓에, 오늘은 아침부터 말들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이었다.문을 열자 따뜻한 숨결이 희미한 김이 되어 피어올랐다.마구간 안에는 네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서 있었다.세린이 들어오는 기척을 알아챈 듯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말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고,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 앞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잘 있었어?” 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세린은 말의 갈기를 정리해주며 몸 곳곳을 살폈다.다친 곳은 없는지, 발굽은 괜찮은지, 먹이는 제대로 먹었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 듯 작게 웃었다.“다들 괜찮네.” 네 마리의 말 가운데에는 세린이평 소 타고 다니는 말도 있었고, 청하에 맡겨두었다가 얼마 전 데려온 말도 있었다.특히 청하에 맡겼던 말은 한동안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서 있었고 걸음에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세린은 말의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뒤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괜찮은 것 같아.”말은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세린은 웃으며 먹이를 챙겨주었다.그러다 문득 청하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넓은 시장에 늘어서 있던 가게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거리,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찻집과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작은 물길까지.짧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았다.무엇보다 오랜만에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세린은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그때였다. 마구
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마당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처마 끝에는 투명한 고드름이 길게 매달려 있었고, 지붕 위에 내려앉은 눈은 아침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바람이 한 번 불어올 때마다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가볍게 흩어졌다.세린은 이른 시간부터 마구간에 나와 있었다.어제 먼 길을 함께 달려온 두 마리의 말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준 뒤, 말들의 몸을 차례로 살폈다.청하에서 데려온 말은 며칠 전까지 다리를 제대로 딛지 못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없었다.세린은 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이제 정말 괜찮아졌네.”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며칠은 푹 쉬자. 먼 길 다녀왔으니까.”옆에 있던 다른 말도 세린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너도.” 세린은 두 마리의 말에게 번갈아 손을 내밀었다.청하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두 마리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냈지만, 막상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그 시간이 꽤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청하의 넓은 거리와 사람들.겨울 아침마다 피어오르던 가게의 따뜻한 김.시장 안쪽에서 들려오던 상인들의 목소리.그리고 작은 다리 아래로 조용히 흐르던 물소리.생각할수록 다시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을 떠올리면 마지막에는 늘 같은 사람이 생각났다.진안. 세린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어제 집에 돌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떠올랐다.청하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이야기하자 진안은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가끔 질문을 던졌고, 가끔은 세린이 예상하지 못한 말로 받아치기도 했다.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와 대화하는 일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오히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세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정말 같이 가면 좋을 텐데.”“어디를 말하는 거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