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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Auteur: 서린화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에는 고요함만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금영은 몸을 돌렸다.

배경천 또한 따라서 떠났고, 방 안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금영은 눈썹을 살짝 내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그쪽을 오라버니로 여기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가 탕약을 들고 돌아왔다.

“아가씨, 따뜻할 때 드세요. 손 원판께서 아가씨가 빨리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몸에 좋은 약재를 더 많이 넣으셨다고 하셨어요.”

해수는 그렇게 말하며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황후마마께서 정말 아가씨가 많이 걱정되시나 봐요.”

그러나 약그릇을 바라보는 금영의 표정은 조금도 밝지 않았다.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고? 날 걱정하는 마음에?’

약을 먹지 않아도 어차피 한 번 앓고 나면 지나갈 병이었다. 스스로가 그리 허약한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고작 한증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진단이 내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도는 분명했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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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103화

    서 황후는 두 사람의 아첨을 듣자 더욱 의기양양해졌다.“배금영이 아무리 수를 써서 폐하의 마음을 사로잡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본궁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복만은 어찌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서 황후는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본궁이 서씨 성을 타고난 덕에 태후마마께서 이토록 감싸 주시니, 그 계집이 무슨 수로 본궁을 당해 내겠느냐?”서 황후가 이토록 기고만장해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그동안 금영에게 워낙 호되게 눌려 지냈기 때문이다.생각해 보면 예전의 서 황후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제법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하지만 금영이 입궁한 뒤로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속이 뒤집히고 마음이 조급해졌으니, 이런 순간에까지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서 황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명했다.“본궁이 입을 옷을 하나 골라 오너라.”그러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오늘은 본궁이 직접 폐하를 찾아가 서봉전으로 모셔 오겠다!”이번 일로 배금영과 황제의 사이가 틀어졌다.게다가 자신은 억울하게 모함당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그렇다면 황제도 이제는 자신을 조금쯤 가엾게 여길 터였다.오늘만큼은 황제도 황후인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실 것이 분명했다!환옥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예, 마마!”서 황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그 분홍빛 옷으로 가져오너라!”“그해 폐하께서 태자비를 간택하시던 날, 본궁은 살구꽃 수를 놓은 분홍빛 옷을 입고 있었지. 폐하께서 바로 그 차림의 본궁을 간택하셨느니라…….”그렇게 말하는 서 황후는 정작 황제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태자비로 선택했는지 까맣게 잊은 듯했다.어쨌든 그날을 떠올리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마치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어느 아침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처럼 말이다.서 황후는 정성껏 새로 단장했다.역시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의 낯빛부터 달라지는 모양이었다.한동안 눈에 띄게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102화

    황제는 그 시각 현청전으로 향하고 있었다.곁에서 따라 걷던 손복안이 나직이 여쭈었다.“폐하, 그토록 원 귀비마마를 마음에 두고 계시면서 어찌 정작 마마께는 그 마음을 알리지 않으시옵니까?”황제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손복안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이 어찌나 깊고 어두운지 도무지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손복안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소인이 잘못했사옵니다.”황제가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이냐?”손복안이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소인이 감히 폐하의 속뜻을 함부로 헤아렸사옵니다.”황제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짐의 속을 제법 잘 헤아렸구나. 허나 다음부터는 함부로 짐의 속을 짐작하지 말거라. 또 그런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손복안은 얼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예, 예! 소인, 폐하의 너그러우신 처분에 감사드리옵니다.”황제의 말은 곧 손복안의 짐작이 맞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황제가 금영에게 화가 난 것은 분명했다.당분간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화가 났을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금영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노여움을 삭이지도 못한 와중에 위명을 소녕전으로 보내 지키게 하지 않았는가.금영이 ‘총애를 잃었다’는 소문을 듣고 누군가 그 틈을 타 그녀를 업신여기거나 괴롭히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써 둔 것이 분명했다!그토록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모르다니.참으로 금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황제에게 이토록 사람다운 감정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생각해 보면 그랬다.황제는 오랜 세월 지존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손복안은 그런 황제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 온 사람이었다.세월이 흐르면서 손복안은 때때로 황제가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지경이었다.황제는 마치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희로애락과 욕망을 모조리 내려놓은 석상 같았다.언제나 공명정대하고, 강직하고, 사사로운 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이었다.무슨 일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101화

    “소녕전은 잘 지키고 계십시오!”손복안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위명에게 손복안의 반만큼이라도 눈치가 있었더라면, 올해 하반기까지 봉급이 깎이는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손복안이 떠나고 나서야 위명은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소녕전으로 돌아갔다.그 무렵 금영은 해수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자리에 앉아 있었다.해수는 금영의 풀이 죽은 모습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에 나직이 위로했다.“마마, 이번 일로 너무 속 끓이지 마시옵소서. 노비가 보기에는 폐하께서 노여워하시기는 했어도 여전히 마마를 마음에 두고 계시옵니다.”해수는 말을 이어 갔다.“게다가 우리에게는 아기 황자마마도 계시지 않사옵니까? 아기 황자마마가 계시는 한, 폐하께서도 언젠가는 노여움을 푸실 것이옵니다.”하지만 그 말도 금영에게는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했다.“자식 덕에 어미도 귀해진다지만, 이 후궁에서는 어미가 총애를 잃으면 황자라 해도 예전처럼 귀한 대접을 받기 어려운 법이지.”황제에게는 염아 말고도 아들이 있지 않은가.해수는 몇 마디 더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금영이 넋을 놓은 듯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그저 조용히 쉬게 해 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해수는 발소리마저 죽이며 살금살금 물러났다.수라간에 가서 금영이 드실 음식을 좀 가져올 생각이었다.오늘은 온갖 소동으로 한나절을 꼬박 보낸 탓에 금영이 점심 수라도 거른 상태였다.그런데 어느새 저녁 수라를 올릴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해수가 미처 밖으로 나가기도 전이었다.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위명과 정면으로 쾅 부딪치고 말았다.말 그대로 두 사람이 제대로 맞부딪친 것이다.해수는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들었다.눈앞에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위명을 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너 여기 뭐 하러 왔어?”황제가 자기 마마의 속을 그토록 상하게 해 놓았는데, 그 심복이라는 자가 여기는 또 왜 찾아온단 말인가?설마 황제의 명을 받들어 또 무슨 듣기 싫은 말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100화

    금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눈빛은 깊고도 어두워 도무지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처음 만났을 때와 꼭 같은 모습이었다.그때도 황제는 이처럼 냉엄하고, 인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금영은 잠시 말없이 황제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길을 내리깔았다.그러고 보니 요즘 자신이 황제의 총애만 믿고 지나치게 대담하게 행동했던 것 같았다.마음이 너무 조급했다.하루라도 빨리 서 황후에게 묵은 원한을 갚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여비가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금영은 자신과 여비가 피맺힌 원한으로 맺은 맹약만큼은 결코 깨지지 않으리라 믿었다.그런데 그토록 굳게 믿었던 맹약이 서 황후와 태후의 손에 이리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이었다.무엇보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생각해 보면 서 황후는 오랫동안 중궁의 자리를 지켜 온 사람이었다.태후 역시 선황제 시절 온갖 후궁의 암투를 헤치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이 아닌가?그런 이들에게 숨겨 둔 패가 하나도 없을 리 없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잘못은 따로 있었다.이번 일에 너무 성급하게 나섰다는 것.심지어 황제의 총애까지 이용해 황제를 서봉전으로 이끌지 않았던가.지금 황제의 심정이 어떨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혹시 자신도 다른 여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고, 마음을 거두려는 것은 아닐까?금영은 입궁한 뒤 서 황후와 수없이 맞서 싸웠다.사실 돌이켜 보면 크게 이겼다고 할 만한 적은 별로 없었다.하지만 황제의 마음을 얻는 것이 승리의 대가였다면, 금영은 매번 이긴 셈이었다.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끝에는 늘 황제와 서 황후의 사이가 한층 더 멀어져 있었다.그리고 황제는 그만큼 금영을 더욱 총애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오늘 협방전에서 황제는 태후와 서 황후가 보는 앞에서 일단 사건을 덮고 금영을 지켜 주었다.그럼에도 금영은 느낄 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9화

    황제가 처분을 나중으로 미룬 것은 결국 이번 일의 파장을 최대한 줄이려는 뜻이었다.하지만 금영은 알고 있었다.이 일이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황제가 자신을 벌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도, 서 황후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비록 여비가 지어낸 거짓 혐의라 해도, 서 황후로서는 모처럼 금영의 약점을 잡은 셈이 아닌가?조만간 조정에서도 자신을 겨냥한 움직임이 일어날 터였다.후궁의 여인들은 정사에 관여할 수 없었다.하지만 조정의 대신들이 상소를 올려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청한다면?그때 황제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그런 생각이 들자 금영은 마음이 불안해졌다.황제가 자신을 아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금영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밖에서 손탁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납시오!”금영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황제가 전각 안으로 들어섰을 때, 수수한 옷차림의 금영은 이미 전각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황제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물처럼 차갑게 굳은 얼굴로 금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이게 무슨 짓인가?”금영이 나직이 대답했다.“신첩이 죄를 지었사오니, 부디 폐하께서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그 말을 들은 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렇다면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자네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인가?”금영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신첩이 폐하께 폐를 끼쳐 곤란하게 해 드렸사옵니다.”황제는 그 말을 듣고도 다시 물었다.“또 없나?”금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여비가 황후마마를 고발한 일은 사실 신첩도 알고 있었사옵니다. 또한 여비가 그 일을 진행하도록 힘을 보태기도 했사옵니다.”말을 마친 금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제 와 황제에게 무엇을 더 숨길 수 있겠는가?사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사태가 이토록 커졌으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98화

    금영은 여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결국 몸을 일으켜 밖으로 물러났다.모두가 떠나고 나자 여비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곁에 있던 자운이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마마, 대체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으시기에 원 귀비마마께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옵니까?”“노비가 보기에도 원 귀비마마는 마음씨가 고운 분이옵니다. 어쩌면 마마를 위해 나서 주실지도 모르지 않사옵니까?”“설령 원 귀비마마께서 해결해 주지 못하셔도 폐하께서 계시지 않사옵니까?”자운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의아함이 가득 묻어났다.여비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몹시 잠겨 있었다.“자운아, 더는 묻지 마라. 이번 일은 본궁이 원 귀비마마께 못 할 짓을 한 것이다.”*서봉전.서 황후와 태후는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서 황후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초췌한 기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생기가 넘쳐흘렀다.“어마마마! 역시 어마마마의 수완은 따라갈 자가 없사옵니다. 어마마마께서 살짝 손만 쓰셔도 후궁의 여인들을 모두 합친들 상대가 되지 않는군요!”서 황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다.예전 같았으면 태후 앞에서 이토록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아무리 눈치 없는 서 황후라도 알 수 있었다.태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설령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태후는 기어이 감싸 줄 터였다!태후가 친정 식구들을 각별히 여긴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하지만 서가를 위해 이 정도까지 나서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서 황후는 말을 하면서도 손에 든 찻잔을 태후에게 공손히 받쳐 올렸다.“어마마마, 차를 드시옵소서.”태후는 찻잔을 받아 들고 서 황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이제 속이 좀 후련한가?”서 황후가 곧장 대답했다.“어마마마께 숨김없이 말씀드리자면, 배금영이 입궁한 뒤로 신첩은 단 하루도 속이 편한 적이 없었사옵니다! 게다가 현 귀비까지 후궁에서 사사건건 신첩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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