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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Author: 서린화
금영의 처소를 나온 뒤, 송정희의 발걸음은 한결 무거워졌다.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오히려 연이어 금영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본래 금영의 잘못으로 마무리되어야 했던 저주 인형 사건은, 도리어 배명월에게로 옮겨 갔다.

송정희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으나, 흐름은 좀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그 사이, 의문스러운 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만일 배명월이 직접 인형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진주를 시켜 금영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불리한 선택이었다. 진주의 태도 또한 석연치 않았다. 노비 매매 문서를 요구한 일까지 떠올리자, 그 의문은 더욱 짙어졌다.

송정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배명월의 처소로 향했다.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취옥이 목소리 높이며 알렸다.

송정희는 취옥을 잠시 힐끔 쳐다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배명월에게 두었는데, 배명월은 아무 말 없이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송정희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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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48화

    황제는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걸음을 늦췄다.평소라면 사람의 생사조차 망설임 없이 결정하던 황제였지만, 지금만큼은 낮잠을 자고 있는 아기 황자가 깰까 조심스러웠다.황제는 한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그러는 사이 매서웠던 눈매마저 한결 부드러워졌다.*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뉴월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칠월 보름이 되었다.칠월 보름이면 귀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었다.황제가 궁 안에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엄히 금하고 있다 해도, 이런 믿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이곳은 대량이었다.선황은 생의 전반에는 운명과 사주를 믿었고, 후반에는 초혼술에 빠져 죽은 선 귀비의 혼을 다시 불러들이려 했다.그런 황실에서 사람들이 어찌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른 이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금영 역시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그녀 자신이 실제로 한 번 귀신이 되어 본 사람이었으니까.지난 일 년여 동안 황제의 총애 속에서 부족함 없이 지냈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다 보니 예전의 고통스러운 날들이 조금씩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그래도 금영은 믿었다.이 세상에는 분명 귀신이 존재했고, 죄를 지은 자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온다고.하늘이 자신을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낸 것 역시 영안후부 사람들과 서 황후가 받아야 할 업보 때문일 터였다.지금까지 영안후부의 송정희와 배명월, 배정후는 모두 제 죗값을 치렀다.그리고 서 황후의 차례도…… 이제 머지않았다.날이 완전히 저문 뒤였다.황제는 여전히 현청전에서 정무를 처리하고 있었다.한편 금영과 여비, 림비는 모두 소녕전에 모여 있었다.그때 어디선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뒤이어 짙은 안개가 황궁 전체를 집어삼키기라도 한 듯 사방을 뒤덮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궁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그 시각 금영은 손에 든 찻잔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잔 안에서는 아직 따뜻한 차가 잔잔히 일렁였다.가장 먼저 움직임이 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47화

    해수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며 덧붙였다.“한 사람은 현 귀비마마 곁의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황후마마 쪽 사람이옵니다.”금영이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한 것은 복령의 부친에게 일이 생겼던 그날, 궁을 드나든 사람들의 기록이 모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두 태의가 궁을 나가는 모습을 여러 사람이 직접 보기는 했다.하지만 주회가 뭐라고 했던가.그날 자신이 본 두 태의는 분명 협방전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했다.그런데 두 태의는 여비를 만나지도 못한 채 갑자기 궁을 나갔고, 그 뒤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래서 금영은 애초에 두 태의가 궁 안에서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누군가 두 태의로 변장한 채 서둘러 궁을 빠져나가, 마치 두 태의가 출궁한 뒤 실종된 것처럼 꾸민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허점이 생겼다.두 태의의 출입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을 터였다.그렇다면 정작 두 태의로 변장한 사람의 출입 기록은 어느 한쪽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금영이 알아내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그날 정말 누군가 두 태의를 죽이고 그의 모습으로 변장해 궁을 빠져나가, 두 태의가 출궁한 뒤 사라진 것처럼 꾸며 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실제로 기록이 맞지 않는 사람이 둘이나 나온 것이다.해수가 입을 열었다.“마마,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현 귀비마마 곁에서 시중드는 태감 손인이고, 다른 하나는 서봉전의 이전이옵니다. 마마께서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의심스럽다고 보시옵니까?”그 질문에는 금영도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그래도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가다 보니, 감춰져 있던 진상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금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본궁은 황후 쪽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덧붙였다.“다만 정말 누구인지는 한번 떠보면 알겠지.”해수가 궁금한 듯 물었다.“어떻게 떠보시려는 것이옵니까?”금영의 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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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45화

    서 황후는 태자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더는 자신을 위해 변명하거나 사정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서 황후는 이번에는 태자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더구나 자신이 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황제가 벌까지 내린단 말인가.황제가 서봉전으로 온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태자가 서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가는 모습을 본 데다, 손복안에게서 금영 역시 서봉전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발길을 돌려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이제 서 황후에게 벌까지 내렸으니 더는 서봉전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밖으로 향했다.금영도 황급히 여비의 손을 잡아끌고 뒤를 따랐다.사람들이 모두 전각을 빠져나간 뒤에도 태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태자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어마마마, 불효한 소자를 용서하시옵소서. 벌을 내리신다 해도 달게 받겠사옵니다.”서 황후는 답답함과 실망이 뒤섞인 눈빛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본궁이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너를 위해서였거늘, 네가 어찌 본궁에게 이럴 수 있느냐? 폐하 앞에서 본궁을 위해 말 한마디 거드는 것조차 그리 두렵더냐?”하지만 이 일만큼은 태자도 억울했다.예전이라면 서 황후가 황제를 아무리 노하게 했어도 태자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녀를 감쌌을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태자가 서 황후를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다만 이제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계속 서 황후를 두둔하고 서가를 감싼다면, 자신의 태자 자리부터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조씨는 서 황후보다 상황을 훨씬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이제 그만 태자 전하를 곤란하게 하시옵소서. 전하께서 폐하의 신임을 얻고 태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시는 한, 마마께서 무엇인들 얻지 못하시겠사옵니까?”하지만 서 황후의 생각은 달랐다.자신이 황후의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태자가 과연 지금처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겠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44화

    서 황후의 말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밖에서 내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께서 납시오!”황제가 왔다는 말에 서 황후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이내 현실을 깨닫고는 그 웃음도 희미해졌다.황제가 이곳에 온 것은 황후인 자신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금영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곁에는 태자도 함께였다.“폐하를 뵙사옵니다!”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황제는 이미 조정의 일을 모두 처리하고 온 참이었다.게다가 오늘은 태자가 먼저 나서 서가의 수족 하나를 탄핵하는 상소까지 올렸다.덕분에 황제는 서가의 세력을 하나 더 잘라 낼 수 있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태자는 금영을 바라보며 정중히 예를 갖췄다.“원 귀비마마.”금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모습은 더없이 의젓했다.마치 자신과 태자 사이에는 그저 귀비와 태자라는 신분만 존재할 뿐, 지난날의 인연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황제가 자리에 앉자 서 황후는 직접 차를 받들어 올렸다.황제는 찻잔을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내밀지 않았다.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체면을 구긴 서 황후는 어색한 표정을 감추며 결국 찻잔을 내려놓았다.황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짐이 밖에서 들어오는데 서봉전이 제법 떠들썩하더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서 황후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황제는 금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금영아, 네가 말해 보거라.”서 황후는 막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을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지난번 황제가 황후를 폐위할 생각까지 품었던 이후, 실제로 황후의 자리를 빼앗지는 않았지만 서 황후를 대하는 태도는 갈수록 냉담해지고 있었다.그럴 때마다 서 황후는 묘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황제가 사람들 앞에서 황후를 폐위한다는 교지를 내린 적은 없어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자신이 황후가 아닌 것만 같았다.금영이 나직이 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43화

    서 황후는 웃음을 머금은 채 금영을 바라보았다.“어린 나이에 이토록 분별이 있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러니 폐하께서 후궁의 수많은 비빈들을 두고도 오직 너 하나만 총애하시는 것이겠지.”서 황후의 곁에는 품계가 낮은 비빈들도 몇 명 자리하고 있었다.그들은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몸을 사리며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했다.예전의 서 황후라면 이런 낮은 품계의 비빈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현비조차 누르기 어려웠고, 금영은 더더욱 뜻대로 할 수 없었다.그러니 결국 이런 낮은 품계의 비빈들을 상대로 황후로서의 위엄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서 황후의 말을 들은 비빈들의 시선이 일제히 금영에게로 향했다.바로 그때, 곁에 있던 여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황후마마 말씀만 들으면, 마치 원 귀비마마께서 입궁하시기 전에는 폐하께서 후궁의 비빈들을 두루 총애하시기라도 했던 것 같사옵니다.”여비의 한마디에 서 황후의 말만 듣고 금영이 자신들의 총애를 빼앗았다며 괜한 원망을 품으려던 이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러고 보니 그렇지. 원 귀비마마께서 입궁하시기 전에도 폐하께서는 후궁에 거의 발걸음하지 않으셨잖아.’황제가 후궁을 찾더라도 대부분 현비와 여비의 처소에 잠시 들르는 정도였다.그보다 품계가 낮은 이들 가운데서는 안빈이 그나마 몇 차례 더 총애를 받았을 뿐이었다.나머지 비빈들은 애초부터 있으나 마나 한 존재나 다름없었다.서 황후는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여비를 바라보았다.한참 뒤에야 다시 웃음을 지으며 금영에게 물었다.“원 귀비는 어찌 아기 황자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본궁에게도 한번 보여 주지 않고.”그러고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그나저나 참 안타까운 일이야. 여비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더라면 이 아기 황자도…….”서 황후는 일부러 말을 끝맺지 않았다.대신 가엾다는 듯한 눈빛으로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 이제는 마음을 추스르도록 하게. 폐하께서 자네 처소에도 자주 들르시도록 애써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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