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국 비사의 패배와 죽음으로 이 치열한 싸움이 끝을 맺었군요. 이런 살벌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총대장 테츠잔은 어쩐 일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마치 야츠키가 어디로 피신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묘한 여유까지 풍기네요. 과연 테츠잔의 속내는 무엇일지, 다음 화도 꼭 기대해 주세요! 🌸
제 28화 요새 상층부의 집무실, 벽류진의 주인인 테츠잔은 창밖으로 구름 아래를 굽어보며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영주에게 서신을 보낸 지 벌써 열흘이 넘었으나 그 어떤 회신도 돌아오지 않았다.곁을 지키던 미츠키가 소리 없이 다가와 한 쪽무릎을 꿇었다. "전령이 늦습니다."미츠키의 보고에 테츠잔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회색빛 하늘을 응시했다. 독수리를 띄웠음에도 소식이 없다는 것은 이미 요새 밖의 세상이 변하고 있거나 영주가 이 요새를 버렸다는 불길한 징조였다. 테츠잔은 창틀을 꽉 움켜쥐었다. 요새의 위기가 내부의 심장부에서부터 갉아먹히고 있음을 직감했다. 무사들의 기강은 눈에 띄게 흐려졌고 복도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는 평소와 다르게 끈적이고 비릿했다. 마치 누군가 요새 전체에 거대한 덫을 놓은 듯한 기묘한 압박감이 테츠잔의 어깨를 짓눌렀다."직접 내려가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출발하면 사흘 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아니다. 네가 자리를 비우면 이 안의 늑대들을 누가 통제하겠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동안 요새의 경계를 더 강화해라."테츠잔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벽류진의 무사들은 이미 야츠키라는 이름의 독에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야츠키라는 도깨비가 들어온 이후 이 요새는 더 이상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숨을 쉬고, 꽃을 가꿀 뿐이었지만 그것이 무사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자극이 되고 있었다.그녀의 자유를 뺏은 대신 최소한의 존중을 베풀고자 했으나 그것이 결국 늑대들의 우리 안에서 그녀를 더 위험하게 노출시키는 꼴이 될 줄은 몰랐다.렌은 복도를 순찰하며 조금씩 무너져가는 질서를 뼈저리게 느꼈다. 전우들의 눈빛은 예전의 냉철함을 잃고 탁하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시온의 처소를 지나다 멈춰 섰다.과거 전장에서 피를 나누던 강인한 동료 시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엔 야츠키의 체온을 갈구하며 망상에 빠진 병자만이 있을 뿐이었다.'시온,신지로,
제 27화시온의 열병은 며칠째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낮이면 신지로가 처소를 찾아와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손가락으로 그의 맥을 짚었다. 신지로ㅏ 는ㄱ열을 내리는 지혈제와 쓴 탕약을 건네면 시온은 늘 그랬듯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였지만,그의 온 신경은 밤을 기다리는 데 쏠려 있었다.밤이 깊어지면 약속처럼 야츠키가 처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대야에 찬물을 받아 수건을 적셨다. 요새 밖의 밤공기는 칼날처럼 서늘했지만처소 안은 시온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로 숨이 막힐 듯했다."시온님, 또 열이 많이 오르네요. 왜 이렇게 잘 안 내려가는지 모르겠어요."야츠키는 수건을 짜서 그의 이마에 얹었다. 도깨비인 그녀의 체온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낮았다. 서늘한 손끝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시온의 몸은 짜릿하게 반응했다. 그는 겉으로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절세 미인님이 직접 저를 돌보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어서 나아야 할 텐데…이렇게 걱정해주시니 제가 빨리 낫지 않고는 못 배기겠군요."시온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야츠키는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기괴한 갈망을 읽지 못했다. 그녀에게 시온은 오직 '자신을 지켜줄 가장 확실한 성벽'이자 '회복시켜야 할 자산'일 뿐이었다. 야츠키는 시온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열기를 식힐 려고 애썼다.'빨리 회복하셔야 해요, 시온. 당신이 강해야 내가 이 요새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그녀는 시온이 자신 때문에 아프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치료를 핑계로 그를 살려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온은 그녀의 그 손길을 받으며 속으로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아아, 나의 야츠키. 당신은 내가 왜 아픈지 모르는군요. 당신의 그 서늘한 체온이 내 살갗을 파고들 때마다 내 이성은 완전히 타버리고 있습니다.’시온의 환상 속에서 야츠키의 손길은 이미 간호가 아니었다. 땀에 젖은 침대 위에서,그는 야츠키가 자신의 골반 위에 올라타 유연한 허리짓으
제 25화벽류진의 공기는 야츠키의 체취가 섞인 매화 향기로 서서히 매료되어 갔다. 무사들은 사냥을 나가서도 그녀의 살냄새를 쫓았고, 제어할 수 없는 본능에 시달리며 하나둘씩 이성을 잃어갔다.야츠키는 요새의 꽃이었고, 무사들은 그녀의 향기에 취해 스스로 목줄을 매는 짐승들이었다.신지로의 연구실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야츠키는 그가 건네려던 '체액이 섞인 영양 주사'를 조용히 밀어냈다.그녀의 거절은 단호했다. "신지로님, 그런 건 만들지 마세요. 내 몸에 당신의 것들이 섞이는 순간 당신들도 나도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신지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아쉬운 듯 체념의 태도를 보였다. 야츠키가 방을 나선 뒤, 그는 실험대 위에 멍하니 기대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엔 아직도 미약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너는 독약이 아니라, 이 삭막한 곳에서 나만을 살게 하는 유일한 생명의 꽃이다."그는 그녀를 손에 넣지 못하는 대신, 그녀가 자신의 영양분을 먹고 피어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체념조차도 야츠키를 향한 비틀린 소유욕의 또 다른 형태였다.그 시각, 시온의 처소는 야츠키에게 바칠 과일과 꽃으로 가득했다. 시온은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지적인 보호자를 연기했다. "야츠키 아가씨, 이 과일은 계곡 너머에서 가장 달콤한 것입니다." 시온이 다정하게 건네면, 야츠키는 웃으며 꽃을 받았다. 하지만 시온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에도 속으로는 기괴한 망상에 젖었다. 그가 처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웠을 때, 이성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야츠키가 비사에게 당했던 순간을 상상했다. 야츠키의 하얀 살결이 비사의 거친 손길에 짓눌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수치심과 쾌락으로 젖어 들어가는 장면을. "하아..... 야츠키, 그놈이 너를 어떻게 탐했는지 내 몸으로 다 기억해내겠다." 시온은 자신의 몸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환상 속에서 야츠키는 시온의 밑에서 헐떡이며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그녀의 가는 허리가 그의 자극
제 23화 새벽의 한기가 가시지 않은 계곡 정원, 옅은 안개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야츠키는 길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남자의 향 그리고 몸 위를 덮고 있는 짙은 색의 겉옷. 미츠키의 것이었다.야츠키가 몸을 일으키자, 미츠키가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늘 그림자처럼 자신을 감시하고, 관전만 하던 그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몸은 …... 괜찮으십니까?"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벽류진에 끌려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야츠키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차갑고 거리감 있는 태도만을 고수해왔기에 , 안색에 깃든 묘한 애정과 걱정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미츠키님..?""곧 총대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그전까지는 여기 계시는 게 좋겠군요. 당신이... 추위에 떠는 것을 원하지않으니."그 말 속에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야츠키는 요새의 붕괴가 머릿속을 스쳤다. 광기에 찬 비사의 손길, 그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렌과 비사가 싸웠습니다. 피를 싫어하는 당신을 위해 제가 잠시 피신시켰을 뿐입니다."미츠키의 대답은 간결했다. 야츠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지우산도, 자신을 지켜줄 수단도 없는 상황. 여기서 도망칠 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렌을 향한 걱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를 잃으면 자신은 정말로 고립된다. 야츠키는 결심했다. "저는 벽류진으로 돌아가겠어요."미츠키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가 예상한 그녀의 반응은 공포에 질려 숨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츠키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미츠키는 말없이 그녀를 부축했다. 하지만 지친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야츠키를 보며 주저 없이 그녀를 공주님 안기식으로 들어 올렸다.요새로 돌아가는 길, 야츠키는 미츠키의 품 안에서 차분하게 생각했다.
제 22화 요새는 밤새도록 이어진 무사들의 필사적인 복구 작업으로 외형을 되찾아가고 있었으나, 그 내부에 고인 피 냄새와 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8인의 정예 무사, 그들은 10살부터 도깨비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검을 쥔 자들이었다. 사람의 몸을 하고 있으나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전투력을 지닌 그들에게 감정이란 사치였다. 그들은 비사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고, 렌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오직 벽류진이라는 거대한 요새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계처럼 움직였을 뿐이다.요새의 복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신음하고 있었다. 시온은 뒤틀린 천장의 지지대를 보강했고, 가란은 무너진 외벽의 잔해를 맨손으로 옮기며 무사들을 독려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고, 누구 하나 비사의 시신이 치워진 자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벽류진이라는 거대한 요새의 질서가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신지로는 야츠키의 흔적을 쫓아 요새를 배회하다 결국 유우에게 제압당했다. 그는 야츠키를 잠시라도 혼자 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울부짖었으나, 유우의 차가운 제압 아래 주술의 힘이 걷히자 점차 이성을 되찾았다. 신지로는 자신의 몸을 떨며 낮게 읊조렸다. "그녀를... 혼자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 오만함이 그 사내놈에게 틈을 주었구나." 그는 비사의 죽음보다, 야츠키가 정결하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었다는 사실에 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차분하게 약재를 정리하며, 다음번에 야츠키를 다시 마주할 때 그녀의 몸을 어떻게 정화할지 계산하고 있었다.한 편, 계곡 정원의 밤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미츠키는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야츠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비사의 광기가 휩쓸고 간 흔적을 씻어내듯, 계곡의 찬 기운을 받으며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야츠키의 숨소리는 고요하게 들렸다. 미츠키는 그 숨소리를 감상하며, 그녀가 세상 그 누구 앞에서도 허락하지 않았던 무방비한 안
제 21화 벽류진의 요새가 붕괴하는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처럼 낮고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렌과 비사의 전투는 복도 끝에서 정점을 찍고 있었다. 렌의 쌍단검은 비사의 살점을 파고들 때마다 차가운 금속음을 냈고, 비사의 검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의 휘두름처럼 벽과 천장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었다.비사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야츠키의 체취가 밴 자신의 손을 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하... 그 계집의 눈동자... 신지로 그놈은 평생 모를 거다. 그 차가운 눈동자가 내 아래서 얼마나 뜨겁게 풀려버렸는지..."비사가 마지막 모독을 뱉는 순간, 렌의 단검이 비사의 목을 정확히 관통했다. 비사는 거대한 벽류진의 늑대답지 않게,비참하고도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렌은 단검을 뽑아내지 못한 채 비사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전투가 끝나자 비로소 요새의 소음이 렌의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 비사의 피가 렌의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렌은 비사의 시신 위에 손을 얹은 채, 격렬했던 전투의 잔상을 지우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야츠키를 연모했던 자신의 마음, 그녀를 능욕한 비사를 죽인 것에 대한 추호의 후회도 없었으나, 동료의 숨통을 끊었다는 무사로서의 참담한 현실은 렌의 가슴을 짓눌렀다.비사가 완전히 숨을 거두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렌은 비로소 단검을 회수했다. 그의 손바닥은 비사의 검에 깊게 베여 붉은 선혈이 낭자했다. 그는 자신의 피와 전우였던 자의 피가 섞이는 것을 보며, 총대장의 질서가 지배하는 이 벽류진에서 자신이 행한 행위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였다.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미츠키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그는 야츠키가 비사에게 당했던 수치를 잊길 바랐다. 미츠키는 아수라장이 된 요새를 빠져나와, 달빛이 차갑게 내려앉는 계곡 정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낮에 신지로가 야츠키를 정성스레 씻기던 장소였다.미츠키는 야츠키를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야츠키의 몸은 지쳐 있었고, 정신은 외부의 소음을 거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