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연인들의 성지이자, 요즘 인스타와 블로그에서 핫한 라이브 카페 JULY에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출연진들이 하나같이 비주얼이 좋고 가창력 좋기로 소문난 이곳에서도 금요일 저녁 프라임 타임대를 책임지는 솔로 우석의 무대였다.
후렴에 들어서자 굵은 울대가 격렬히 오르내리고, 감성이 충만한 목소리가 카페 안을 가득 메웠다.
절로 귀에 감겨오는 멜로디. 어쩌면 원곡보다 더 곡 해석을 잘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의 무대는 달콤했다.
오늘도 그 노래에 홀려 감탄에 마지않는 젊은 여성팬들이 저마다 핸드폰 카메라를 집어 들었을 정도로.가게에 대한 포스팅이 늘어만 가는 걸 실시간으로 목도한 전직 현(賢) 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이자 지금은 카페 JULY의 사장 태성이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옆엔 그의 사촌 한결도 함께였다.
“노래를 저렇게 잘하는데 배우 지망생이야.”
“와우, 저건 뭐 얼굴이 연예인 해야겠는데? 형, 절대로 옆에 가지 마라. 완전 오징어 되겠다.” “오징어 좀 되면 어떠냐. 가게 매출 올려주는데. 실력도 좋아. 한예종 출신. 낮엔 소극장 공연도 하는데 얼굴 천재에 완전 노력파. 대관해주는 소극장 주인이 또 내 지인인데 우석이 나오는 날이랑 아닌 날 매출 차이가 엄청나.”노래를 마친 우석이 땀에 젖은 이마를 쓸며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야. 덕분에 오늘도 만석. 기분이다. 여기 싹 다 내가 쏜다!”
태성이 흡족하게 웃으며 버드와이저 병을 건넸다.
우석은 그 실없는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옆자리에 동석한 낯선 얼굴의 남자를 흘끗 보았다.
푸른 조명을 제대로 받은 그 눈빛이 심연처럼 깊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
“아, 여긴 내 사촌, 서한결. 대학병원 교수시다. 너도 오늘 얼굴 트고 아픔 찾아가. 아,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댔나?” “초면에 소개가 너무 투머치한데!”한결이 농담 섞인 웃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서한결입니다. 고막이 살살 녹던데요? 가수로 나가셨어도 대성하셨을 것 같은데…….”
또 그 얘기다.
늘 듣던 말이었다.
아직도 왜 이런 데서 노래를 하느냐, 왜 가수가 아니냐.마음 쓸 것 없다. 우석은 담담히 웃었다.
그때 태성이 슬쩍 끼어들었다.
“어우, 우석이 아이돌 연습생 제의도 엄청 받았지! 그런데 이쪽에서 깠어. 우석이가 싹 다 거절한 거라고.”
“배우 지망생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거절하신 겁니까. 연기하시게?” “아뇨. 그냥 상황이 좀…… 사정이 있어서요.”거짓말 하긴 싫고 곤란한 상황은 피하고 싶은 우석에게 타이밍 좋게 핸드폰이 울렸다.
단영이었다.
「내일 두 시까지 집으로 갈게」
짧은 문장하나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보아하니 이제야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들어가 쉬고 간만에 늦잠 좀 자고 나오려는 거지. 이제는 얼추 단영의 패턴이 읽혀졌다. 기막히게도 헤어지고 나서야 그렇게 됐다.“두 시까지, 집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우석의 표정을 태성은 놓치지 않았다.
“왜? 애인하고 데이트라도 있어? 딱 애인 생각하는 표정인데?”
우석은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지금 일어나도 되죠?”
미련없이 일어서는 우석을 아쉽다는 듯 태성이 붙잡았다.
“야, 술은? 내가 쏜다니까?”
“쏘긴 형은 맨날 뭘 쏴요. 됐으니까 페이나 좀 올려줘요. 아님, 나 다른 데 갑니다!” “어허, 의리 없이 그럼 안 되지. 우리 사이에 그간의 정이 있는데.”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우석은 가게를 나섰다. 흡사 동경하는 우상이라도 떠난 것처럼 우석이 떠나자 카페 안의 공기도 허전해졌다.
그만큼 우석이 빠져나간 자리의 여운은 컸다.한결도 묘한 기분을 느꼈다. 우석이 문을 나선 순간 다른 이들처럼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뭐야? 너도 가게? 금요일 밤인데?”
“소개팅 있어.” “이 밤중에?” “여잔 밤에 만나야지.”태성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한결은 벌써 웃으며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간만에 소개팅인데 무지막지하게 예뻤으면 좋겠다.”
“쳇, 어디 하늘에서 폭탄이나 떨어져라.”태성이 저주의 말을 퍼부었지만 한결은 개의치 않았다. 시간은 많다. 하룻밤 폭탄 처리반쯤 기꺼이 해줄 작정이었다.
기업 봉사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현지에서 강제 의료 봉사를 나섰다가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이틀이었다. 돌아올 때 교수직만 담보하지 않았어도 절대 응하지 않았을 제안.
가끔 영화에서 보면 아프리카에도 호텔이 있고, 카페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던데 하필 그가 있던 곳은 오지 중의 상 오지였던지라 동네 원주민들을 제외하고 여자는 구경 조차 하지 못했다.그마저도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기에는 현재 유부녀이거나, 유부녀였거나, 머잖아 유부녀일 예정의 여인들이었기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비록 이혼이라는 결점은 있지만, 나름의 취향이란 게 있는 몸이기에.그날 밤.
저녁을 먹기에도 애매하고 커피를 마시기에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늦은 열 시, 드디어 약속장소의 문이 열렸다.
한결의 눈동자가 일순 커다래졌다.카페 안에 혼자 있는 남자는 오직 그가 유일했기에, 여자의 걸음은 그대로 그의 테이블 앞에서 멈춰 섰다.
“서한결 씨? 맞죠? 오늘 소개팅 나오신 분.”
끄덕.
한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자를 마주한 순간, 한결은 숨이 가빠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전신을 덮쳤다.그녀의 첫인상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녀가 들어섰을 때, 카페 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아마 저에 대해 다 듣지 못하고 나오셨을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묘하게 울림이 있었다.
“결혼, 이혼 경력 있고 열 살 된 딸이 있습니다. 감당, 안 되시겠죠?”
심지어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커피는커녕 물 한 모금 삼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가 내내 한결의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한결은 홀린 듯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주선자 연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났어요? 예쁘죠? 내가 우리 단영이처럼 예쁜 애를 또 못 봤네. 걔는 안 씻어도 예뻐. 세수 안 하고 머리 떡져도 노메이크업에 이 안 닦아도 예쁠 애야. 그냥 예뻐.
“야, 너는 인마!”
-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오빠 혹시 까였어요?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10시 소개팅. 5분도 안 지났잖아. 서한결 씨 설마?
뚝.
전화가 끊어졌다. 어이없지만 웃음이 터졌다.시작도 전에 여자의 정면 돌직구 고백에 눈만 끔벅거리다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여버린 꼴이었으니.
한결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오래도록 머물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씨X. 감당, 하고 싶어지게 예쁘네.”
긴 하루였다. 이른 시간 출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겠다는 단영을 달래고 우석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잠이든 수아의 곁에는 어두운 안색의 희수가 앉아 있었다. “미안. 내가 좀 늦었네. 내일은 일찍 들어올게.” 부러 멋쩍은 미소를 짓곤 애교를 부리며 수아를 번쩍 안아 드는데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희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임 여사, 지금 울어?”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셨다. 우석은 정색을 하며 희수의 앞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 있구나? 혹시 어디 아파?” 희수의 앞에 바짝 얼굴을 마주댄 우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맑고 선한 눈동자, 절대 나쁜 짓 같은 건 못 할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희수의 얼굴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우리?” 우석의 눈빛에 일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무슨 일인데? 왜 그러는 건지 좀 말해 보지?” 어려운 얘기였지만 말을 꺼내야만 했다. 희수는 간신히 운을 떼었다. 쉽지 않은 얘기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힘겹게 흘러나왔다. 희수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헤어진 게 우석에게 변변한 기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우려했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그래서 식당이든 커피숍이든 우석에게 작은 가게라도 마련해주고 싶어 남아 있던 아버지의 유산과 살고 있던 집을 담보해 대출을 받으려 했다는 말도 꺼내 놓았다. 그런데 그만 그게 잘못되어 버렸다는 황망한 결론이 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주변보다 시세가 말도 안 되게 저렴했을 때 의심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대출금은 다 날린 거야?” 우석이 정신을 차리려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어떡하지, 우석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 희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우석은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동안 겉돌기만 하던 시간을 거스르고 이제야 조금씩 서로를 마
“오 선생님 기다린 남자분 꼭 연예인 같아요. 맞죠? 일반인 아니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생겼지? 키도 엄청 크고요!” “난 지난번에 본 적 있지. 그때도 ER에 왔었어. 오 선생님 당직 때. 아마 오 선생님 전 남편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익숙했다. 학교 다닐 때도, 수련의 시절에도, 한결이 호감을 가진 상대는 이상하리만치 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처음엔 그런 관심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구나. 가끔은 그런 관심을 즐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쏠려 있을 때라면. 한 번 마주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인상. 처음 태성의 가게에서 마주했을 때부터 그 남자, 연우석의 몸에는 이상한 여유가 묻어 있었다. 고작 배우지망생 주제에 눈빛은 대담했고, 상대의 속을 꿰뚫듯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는 수십 년씩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그것처럼 만만치 않은 오라까지 풍기고 있었으니까. 한눈에 보아도 매력적인 외모며 분위기는 또 어떠했나.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같은 남자인 한결의 눈에도 첫인상부터 전해지는 느낌이 재수 없게도 차원을 달리했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왜 아직도 일반인으로 남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런데, 그래서 뭐? “거 일들 안 하나? 잠깐이라도 숨 돌릴 틈 있을 때 차트도 정리하고 어? 환자들 상태도 체크하고, 어!?” 애먼 데로 화살이 돌아갔다. 신경질적으로 타이를 풀며 한결은 결국 연두를 호출했다. 엄마 친구 딸인 이유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런 사이.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엄친딸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해 준 탓에 요즘 그의 심사가 이토록 사납다. “바쁘신 교수님께서 이 밤에 어인 일로.” 언제 보아도 털털한 선머슴 같은 연두 앞에서 한결은 대뜸 말을 꺼냈다. “에프터 서비스.” “에고. 단영이 일이라면 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한결은 테
“나 일하는 곳 처음 와 보지? 한 번 구경할래?” 그날 밤, 단영은 처음으로 우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JULY를 찾았다. 단영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손님맞이 단장을 마친 라이브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태성은 놀라움이 넘어서 경탄해 마지않는 시선으로 그런 단영의 모습에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나 처음 본다. 맞지? 그…….” 처음으로 우석이 가게에 데려온 여자였다. 우석과 함께 등장한 단영을 도무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태성이 말을 잇지 못하고 호칭을 고르는 새 우석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무대 위 기타가 놓인 스툴 앞에 앉았다. “나 여기서 노래해. 옆에선 소극장 공연도 하고 있고.” 우석은 그동안 밤마다 늦었던 이유를 변명이라도 하듯 기타를 둘러매며 중얼거렸다.“어우, 우석이 노래 잘해요. 완전 가수! 가수! 우리 카페 스타죠. 스타!” 그러나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려 기를 쓰는 태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영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난 번에 명함 받아둔 걸 전해주려 그랬는데…… 내가 어디다 뒀더라?” 태성이 주머니며 카운터 앞을 부산하게 뒤적거리는 동안, 기타 튜닝을 마친 우석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형, 나 그런 거 안 받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좀 받지? 아니, 받아야 돼, 너!” 태성은 여기저기서 찾아낸 하나도 아니고 수 개의 기획사 명함을 단영에게 건넸다. 막 기타 연주를 시작한 우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얼결에 명함을 받아든 단영의 눈이 이게 뭔가 싶어 휘둥그레지자 태성은 자기가 마치 우석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떠들어댔다.“막 스무 살이나 됐을까. 어디서 기가 막히게 잘생긴 놈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온 거예요. 그땐 아직 가게가 자리도 잡지 않았을 땐데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했죠. 노래 같은 거 못해도 무대에 그냥 세워 놓기만 해도 완전 그림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실력은 더 기가 막히네? 보니까 한예종 학생이래. 키 크지,
“간단한 처치예요. 봉합, 소독 제가 하겠습니다.” “됐고, 오 선생은 가서 허기나 채우고 오지? 십분만 쉬겠다면서?” 환자 하나를 두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례적일 정도로 ER 내부가 고요했기 망정이지 옥신각신하는 한결과 단영을 잠자코 보던 우석의 눈빛에 일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스페셜 리스트까지는 됐고, 간단한 처치라니 여기, 오단영 선생님에게 받고 싶은데요.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개인적인 친분’ 운운하는 친근한 표현에 한결의 눈빛이 일순 치켜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해 나갔다.“개인적인 친분이라면 나도 좀 있지 않나? 우리, 서로 구면인 것 같은데. 배우 지망생 씨.” 태성의 가게에서였다. 두 사람은 이미 일면식이 있었고, 우석도 한결의 존재가 JULY에서 잠시 스쳤던 남자와 동일인이라는데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우석은 굳이 단영을 사이에 두고 엮이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한결은 먼저 당당히 알은 체를 해왔다. 그 분위기가 묘했다. 단영은 그 틈을 비집고 다가와 우석의 치료에 열중했다.“많이 베었네. 어쩌다 그랬어?” “사과 깎다가. 수아가 사과 먹고 싶대서.” 밥은 왼손으로, 글씨는 오른손으로, 양손을 쓰기는 하나 배트를 잡는다던가 공을 던진다던가 주로 사용하는 손이 왼손이다 보니 우석은 칼질이 몹시 서툴렀다. “어머니께 좀 부탁하지 그랬어.” “잠깐 외출하신 틈에.” “몇 바늘 꿰매야 할 거야. 덧나지 않게 약 잘 챙겨 먹어.” 성가시다는 듯이 얘기하곤 있지만 걱정이 배어있는 말투였다. 우석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고, 단영은 손을 이렇게 다쳐 가지고 와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우석이 얄미워 힐긋 노려보았다. 그렇게 치료와 함께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둘이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줄곧 느껴지던 어색하고도 따가운 시선. 그 눈빛의 출처를 감지한 단영이 고개를 치켜 들었다
‘술 한 잔 할래?’ 한 마디에 득달같이 달려와주는 고마운 벗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버리고만 단영은 심장병 환자처럼 여전히 상기된 두 뺨을 어쩌지 못한 채 자신의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벌써 세 잔째였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단영이 소주 세 잔을 연거푸 마신다는 것은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뜸 들여 준 것 같은데? 자, 말하라! 뭐가 문제야?” 그녀가 이혼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도 이쯤 술이 들어간 뒤였다. 연두의 재촉은 집요했다. “설마 너 연우석 때문은 아니지?” 친구이기 이전에 같은 여자였다. 덩달아 가슴이 갑갑해져 오는 연두가 잔을 드는데 그 순간 단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좋대.” 갑작스런 고백에 연두의 두 눈도 휘둥그레 커졌다. “헐. 이제와서?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어? 설마 그 말에 흔들려서 지금 이러고 있는거야?” “이해 안 되지. 이해 못할 거야 넌. 나 역시 이런 내가 이해가 안되는 걸. 이제 와서 이런 말 아무 소용 없다는 거 아는데…….” 후회! 뒤늦은 회환! 단영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깊었다. 단영은 연달아 술을 들이켰다. 쓴맛을 악무는 그 입매가 너무 씁쓸해보여서 연두는 잠시 안쓰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나 연우석 좋아해. 진짜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힘들었고, 그래서 더 겁이 나. 여전히 그 애를 보면 설레는 내가 겁이 나 죽겠어. 나 어떡하니.” 무너지는 친구를 보며 연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이내 원망이 차올랐다. “이 바보야! 그럴 거 뭐하러 독하게 이혼은 해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너 진짜!” “연두야. 나 말이야. 나 있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석이랑 살면서…… 한 번도 여자인 적 없었어.”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연우석…… 날 한 번도 안지 않았거든
「미안해. 내일은 못 갈 것 같아.」 금요일 밤 JULY에서의 무대를 모두 마치고 내려와 핸드폰을 확인하던 우석의 표정이 굳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태성이 슬며시 스트레이트잔을 건네자 우석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드디어 터질 게 터진 건가.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직감적으로 우석의 문제를 알 것 같았던 태성이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그럴 거면 합의해주지 말지 그랬어.”태성의 한 마디에 우석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형이…… 어떻게?”형이 이혼 이야기를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던 사실을 태연히 짐작하고 먼저 말을 꺼내오는 태성의 모습에 우석은 말없이 잔을 매만졌다. “어떻게 모르냐. 널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태성은 우석의 빈 잔에 독한 럼주를 다시 채우며 다시금 말을 건넸다.“네가 그동안 기획사로부터 받은 숱한 러브콜들을 거절한 이유. 나는 다 알지.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말은 못 하지.” “형!” “그래도 우석아. 그동안 세상 많이 변했다. 너무 너만 다 포기하고, 양보하려 들지 말아. 때때로 욕심낼 건 욕심내고 갖고 싶은 게 있음 갖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정작 당사자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진심을 태성은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런두런 꺼내놓았다. “솔직히 후회되지?” “후회는 무슨.”그동안 한 번도 서로 간에 꺼내 놓지 않은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솔직히 좀 놀랐어. 이렇게 쉽게 갈라설 줄이야.” 그건 우석도 마찬가지였다. 몰랐다. 이렇게 쉽게 헤어질 줄은. 우석은 독한 술을 한 모금 입에 가져가며 단영이 이혼 얘기를 꺼내던 때를 떠올렸다. ‘이혼하자.’ 너무나 일상적인 말투여서 저도 모르게 흠칫 당황해버리고 말았던 그 날.‘뭐, 뭘해?’ ‘이제…… 그만하자고.’ 재차 담담한 투로 일관하는 단영을 보면서 우석은 그때 깨달았다. 그 말이 오랜 시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