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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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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엘리 지

#1. 우린 헤어졌다

Author: 엘리 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0 18:41:12

헉, 헉, 헉, 헉!

 새벽 네 시. 차가운 공기가 휘몰아치는 복도의 끝, 단영은 숨도 고르지 못하고 ER을 향해 내달렸다. 연이어 밀려드는 스트레처와 보호자들의 불안한 목소리, 모니터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경보음이 주말이라 더욱 정신 없는 응급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단영 선생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단영은 헐레벌떡 걸음을 멈췄다. ER 담당 간호사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가와 반색하며 말했다.

 “28세 남자 환자구요, 삼십 분 전부터 복통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보호자 성함이 오단영 선생님으로 되어 있는데요?”

 “뭐라고요?”

 당직의를 보조하느라 환자차트를 받아들던 단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한 가지. 

 설마.

 단영은 시트를 홱 들췄다. 순간, 환한 조명 아래에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트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복부를 움켜쥔 채 끙끙 앓던 우석이었다.

 가슴 속에서 쿵 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잠시 눈앞이 아뜩했다. 하지만 애써 걱정을 누르며 단영은 차갑게, 그러나 떨리는 눈빛으로 우석을 향해 쏘아붙였다. 

 “내가 왜 네 보호자니?”

 “아윽, 너무 아파. 그러지 말고…… 배가 너무 아파 단영아!”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단영은 냉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곧 그녀의 손끝이 우석의 하복부를 사정없이 눌렀다. 우석이 악 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눈물이 맺힌 듯한 눈가가 단영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여기는 안 아프고?”

 연이어 하복부를 꾹꾹 눌러대자 우석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신음을 삼키며 단영을 노려보았다.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밤새 얼마나 고통을 참았을까. 하지만 다행히 심각한 건 아니다. 물론 정확한 건 CT를 찍어봐야겠지만. 

 단영은 은근슬쩍 밀려드는 걱정을 누르고 부러 더 차갑게 말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 해드려요?”

 “야, 오단영!”

 그 순간 위급 환자 조치를 마친 당직의가 다가와 상황을 물었다. 단영은 기계적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반발성 압통이 있습니다. 충수돌기염 의심됩니다. 급성인 것 같고요.” 

 

 당직의가 단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차트를 넘기다 약간의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이 환자 보호자가 오 선생이야? 둘이 무슨 사이야?”

 단영이 담담히 대답했다. 

 “전 남편……입니다.”

 말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어머, 오 선생, 결혼했었어? 아니, 결혼하고 이혼도 했었어? 

 아무리 요즘 세상이 넷 중 한 쌍이 이혼하고 전체 혼인 건수 대비 이혼 건수가 9.3 퍼센트나 된다지만 서른도 되기 전에 결혼과 이혼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이 통계상으로 얼마나 있을까. 

 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ER이라지만 오늘의 공기는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얼결에 개인사를 오픈하게 된 뒤에도 단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히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만 매달렸다. 

 그녀의 예상대로 우석은 급성 충수돌기염 진단을 받아 응급으로 수술에 들어가고 또 회복실로 옮겨졌다. 

 그렇게 우석이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퇴근 길에 우연히 마주쳐버린 그와 하필이면 지나치게 거리가 가까웠던 터라 피할 길이 없었던 단영이 며칠 새 핼쓱해진 얼굴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가는 거야? 잘 가!”

 “한 번은…… 올 줄 알았는데.”

 우석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단영의 가슴도 순간 울컥했지만 곧 죽어도 자존심에 몇 번이나 병실 앞에까지 갔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고 응급 호출에 불려 나갔었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었다. 단영은 그렇게 믿었다.

 “수아 보러는 올 거지?” 

 “주말에 오프 냈어.”

 “그래, 몸조심하고. 그리고 단영아 혹시…….” 

 혹시 뭐?

 대화가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하마터면 다음 말이 궁금해 먼저 물어볼 뻔했던 순간, 단영은 재빨리 멈춰 있던 택시에 올라 문을 닫았다. 

 “잠깐만 단영아! 잠깐만!”

 문을 잠그고 출발을 재촉하는 동안에도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우석이 창문을 두드리며 달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이제는 더 이상 차창을 두드리며 달려오는 우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가 잠시 신호를 받고 정차했을 때, 기사아저씨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긴 하다만 애인하고 싸웠어? 하기야 멀끔하게 생긴 놈들이 인물값들을 하지. 보니까 키도 훤칠하니 보통 멀끔한 게 아니구먼. 아가씨가 속 좀 썩었겠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순간 저도 모르게 우석을 두둔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단영은 기가 차 헛웃음을 삼켰다.

 띠릭.

「볼 거야?」

 연두였다. 오프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알고 소개팅 확인차 메시지를 보내온 거였다.

「남자는, 남자로 잊는 것이라네 친구.」

「인생 짧다. 셋 중 하나 이혼하는 세상에 실연의 상처 따위에 허덕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알았으니까 문자 그만 보내. 나 택시 안이야. 멀미나.」

「으이구 예쁜 것! 장소랑 시간, 문자로 보낼게. 그럼, 파이팅 하자고.」

  단영은 답을 미루다가 결국 덧붙였다.

 「참, 주말은 안 돼. 수아 보러 가야 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야 오단영! 가지 말고 수아를 불러. 따로. 밖에서 만나라고 밖에서!

 “수아가 집으로 오라고 했어. 내가 가야 해.”

 - 수아가 못 걷는 젖먹이도 아니고 왜 꼭 집으로 가는데? 그럼 그 자식 또 볼 거 아냐! 그럴 거면 이혼을 왜 했니? 집만 나왔지 한집에 살 때랑 뭐가 다른데? 아니지! 너희들 한집에 살 때보다 더 자주 보지 않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연두의 말은 반박이 무색하게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했다. 연우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헤어진 지금,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택시비를 계산하려 카드 지갑을 꺼낸 순간,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언제 끼워 넣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한 장의 사진.

 

 아기 수아를 안고 앳된 얼굴로 서 있던 자신과, 옆에서 서툰 미소를 짓고 있던 우석. 바로 그곳에도 우석이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스르륵 사진을 쓸었다. 

 가슴 한 구석이 따끔따끔 저려왔다.  

 우린 헤어졌다. 

 그 사실이, 아직도 아픈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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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8. 나 좀 치료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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