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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 잘 듣는 동네 개처럼

Autor: 엘리 지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12 18:28:28

긴 하루였다. 

 이른 시간 출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겠다는 단영을 달래고 우석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잠이든 수아의 곁에는 어두운 안색의 희수가 앉아 있었다. 

 “미안. 내가 좀 늦었네. 내일은 일찍 들어올게.”

 부러 멋쩍은 미소를 짓곤 애교를 부리며 수아를 번쩍 안아 드는데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희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임 여사, 지금 울어?”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셨다. 우석은 정색을 하며 희수의 앞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 있구나? 혹시 어디 아파?”

 희수의 앞에 바짝 얼굴을 마주댄 우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맑고 선한 눈동자, 절대 나쁜 짓 같은 건 못 할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희수의 얼굴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우리?”

 우석의 눈빛에 일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무슨 일인데? 왜 그러는 건지 좀 말해 보지?”

 어려운 얘기였지만 말을 꺼내야만 했다. 희수는 간신히 운을 떼었다. 쉽지 않은 얘기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힘겹게 흘러나왔다.

 희수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헤어진 게 우석에게 변변한 기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우려했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그래서 식당이든 커피숍이든 우석에게 작은 가게라도 마련해주고 싶어 남아 있던 아버지의 유산과 살고 있던 집을 담보해 대출을 받으려 했다는 말도 꺼내 놓았다.

 그런데 그만 그게 잘못되어 버렸다는 황망한 결론이 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주변보다 시세가 말도 안 되게 저렴했을 때 의심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대출금은 다 날린 거야?”

 우석이 정신을 차리려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어떡하지, 우석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

 희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우석은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동안 겉돌기만 하던 시간을 거스르고 이제야 조금씩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됐는데, 어쩌면 단영에게 가는 그 걸음이 더뎌질지 모른다는 예감이 우석을 한없이 불안하게 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우석은 주문처럼 되뇌었다.

 반드시 꼭 그래야만 했다.

 

 “그러니까 임 여사는 울지 말고, 지금처럼 수아 좀 잘 챙겨줘.”

 그리고는 애써 담담한 모습으로 수아의 방을 찾았다. 우석은 잠든 수아 옆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단영을 닮은 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마치 거짓말 같다. 

 불과 몇 분 전까지도 행복한 기분을 물씬 끌어안고 돌아왔는데 난데없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의 나이 열일곱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물려주고 가신 집과 유산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특별히 부족할 것 없이 오늘까지 평탄하게 잘 살아온 가정이었다.

  큰 욕심 없이 절약이 몸에 배어있던 희수는 알뜰살뜰 살림을 잘 꾸려왔고, 우석 역시 성실히 제몫을 해내며 생활력 하나만큼은 강한 아들로 잘 살아왔다.

 예고 재학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상금과 장학금을 타는 것은 물론 일찍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집에서 주는 용돈 한 번 받은 적 없이 이날 입때껏 자신의 학비까지 충당해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얼마든지 아껴가며 잘 살 수도 있는 가정이었다. 

 그랬기에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졌다, 말하는 희수를 보며 우석이 느낀 허탈감은 더욱 컸다.

 ‘나 내 저울에 너 올려둘 거야. 충분히 재볼 거고, 무엇보다 결국엔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거야.’

 가장 먼저 단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영에게만큼은 절대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태성의 얼굴도 떠올랐다. JULY의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십년을 알아 왔던 사람. 심성이 넉넉하고 유해 평생 같이 가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다.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우석은 선뜻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우석은 밤이슬이 내려앉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한참동안 가만히 네모난 프레임 밖 세상을 응시했다. 

 ‘네가 그동안 기획사로부터 받은 숱한 러브콜들을 거절한 이유. 나는 다 알지.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말은 못 하지. 그래도 우석아. 그동안 세상 많이 변했다. 너무 너만 다 포기하고, 양보하려 들지 말아. 때때로 욕심낼 건 욕심내고 갖고 싶은 게 있음 갖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한 번뿐인 인생이라. 

 우석은 그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밤사이 긴 고민과 번뇌의 끝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각, 샷을 추가한 진한 에스프레소를 들고서 단영도 분주히 병동을 찾았다. 

 혹시나 출근길에 전화가 오려나, 우석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면서 지금도 두근거리는 간밤의 기억도 상기시켰다. 

 스테이션에 가보니 먼저 출근한 간호사가 힐긋 눈길을 주며 먼저 출근한 한결이 부지런히 짜놓은 오더를 건넸다.

 “오단영 선생님! 서한결 교수님이 여기, 이 주제로 PubMed에서 관련 논문 찾아 초록 작성해 놓으시래요. 그리고 이건 교수님께서 작성해 놓으신 논문인데 오탈자, 오류 확실히 보고 교정해 놓으시라고 하셨고요, 참. 휴가 상신은 반려하신대요.”

 벌써 두 번째 반려였다. 

 

 “교정은 언제까진데요?”

 퇴근하면 수아에게 가보려했더니. 단영이 참담한 심정으로 묻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날아왔다.

 “당연히 퇴근 전까지지. 끝마치지 못하면 퇴근 따윈 없는 거고.”

 “이거 사내 괴롭힘으로 게시판에 글 올려도 되나요?”

 

 “해 봐. MZ! 논문 작성 노하우도 심어줄 겸, 지도교수로서 후배 의학도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는 건데 그걸 그렇게 고깝게 받으면 다른 과 인턴들은 뭐라고 할지 나도 궁금하니까.”

 그 말에 단영이 얼굴을 홱 붉히며 발끈했다. 

 “교수님 혹시 저 좋아하세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결을 뚫어져라 보며 단영이 내쏘자 순간 뜨끔한 한결이 짓궂게 대답을 피해갔다. 

 “평소 이런 식으로 남자를 꼬시나?”

 “아뇨, 교수님 지금 하시는 행동이 괜히 고무줄 끊고, 스커트 들추고, 구닥다리 고전에서나 볼 법한 수작 같아서요. 교수님 말씀하시는 것처럼 전 MZ라 그런 고전, 완전 별로거든요.”

 “호오, 그래?”

 “다시 상신 올리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번에는 반려 아닌, 승인 부탁드립니다.”

 단영은 부러 보라는 듯 직각으로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했다. 그리곤 막 밀려들기 시작한 스트레쳐로 자리를 옮겼다.

 정신없이 일하다 밥 먹을 새도 없이 한 쪽에서 불어터진 컵라면을 삼켜가며 한결의 논문도 살폈다. 그러면서도 내내 우석이 서 있던 복도에, 출입문에, 혹여나 전화가 걸려오진 않을까 핸드폰을 의식했다.

 “무슨 놈의 논문이 봐도 봐도 줄지가 않아.”

 이미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본래가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는 삶이긴 하지만 피로로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지도교수의 논문 오탈자 검토까지 평소의 두 배나 되는 업무량을 소화해 내려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고개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급기야 랩실 한 쪽에서 꾸벅꾸벅 졸기에 이르렀는데, 유리문 밖에서 한결이 그런 단영을 빤히 지키고 서 있었다. 

 “교수님, 안 들어가세요?”

 지나가던 스텝이 한결을 의식하곤 물었다. 한결은 혹시라도 단영이 깰까, 여전히 시선은 한 곳에 고정한 채 다급히 검지를 입으로 갖다대었다. 

 “그렇지. 피곤하겠지. 아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거다.”

 남들은 수련의 생활만으로도 바쁠 시간에, 일터까지 쫓아오는 전 남편과의 연애에, 육아에, 지도교수와의 밀당까지!

  아니, 이런 걸 밀당이라 표현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직장에서 오랜 시간 같이 있는 자신과의 신경전이 결코 편할 리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시멘트 벽의 냉기가 느껴지는 듯 단영이 잠결에 어깨를 움츠렸다. 한결은 순간 가운이라도 가서 덮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신의 가운을 조심스레 덮어 주곤 그걸 알아챌 때까지 그 앞에 잠자코 서 있어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저녁이나 함께 먹자고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상념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실행하기도 전, 가운 속에 있던 단영의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단영은 피로에 지쳐 겨우 눈을 뜨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해지자 방금 전까지 무너져가던 얼굴이 놀랍도록 환해졌다.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눈동자가 촉촉해지며, 뺨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돌았다. 

 마치 초여름의 햇살이 문득 창을 뚫고 들어온 듯 전혀 다른 생기를 띠고 있었다. 

  우석이었다. 

 단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표정을 감추려 했지만 그 달콤한 미소는 고스란히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결의 심장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교수님 혹시 저 좋아하세요?’

 설마 했는데. 

 역시, 그랬나.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렸나.

 마음이 덜컥하는 와중에도 그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끌리듯 더 똑똑히, 더 집요하게 그녀의 표정을 담았다.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 가슴이 쓰라렸다.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에 기막히게도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그 마음은 어느새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게 만들었다. 

 같이 있고 싶다. 지금! 

 저 여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상대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괜스레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손이 가 닿았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전화를 끊으며 무심결에 문 쪽으로 향하던 시선이 커다래졌다. 한결은 눈도 떼지 않고 그런 단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이끌리듯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단영이 한결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들어서…….”

 미처 마치지 못한 일들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런데 한결에게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연애 그거, 어차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볼 수 있는 거 아냐?”

 “네, 그게 무슨……?”

 단영은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이 남자가 지금 농담을 하는 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연애만 해. 그쪽이든 이쪽이든 연애만. 다시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단영이 황당하다는 듯 한결을 보았다. 그러자 한결은 방금 자신이 한 말이 결코 실언이 아니라는 듯 눈꼬리를 내려뜨리며 웃었다. 

 기막히게도 그로서도 처음 지어보는 표정이었다. 

 꼭 말 잘 듣는 동네 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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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12. 말 잘 듣는 동네 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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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9. 내가 그 말에 설레기라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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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8. 나 좀 치료해주라

    ‘술 한 잔 할래?’ 한 마디에 득달같이 달려와주는 고마운 벗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버리고만 단영은 심장병 환자처럼 여전히 상기된 두 뺨을 어쩌지 못한 채 자신의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벌써 세 잔째였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단영이 소주 세 잔을 연거푸 마신다는 것은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뜸 들여 준 것 같은데? 자, 말하라! 뭐가 문제야?” 그녀가 이혼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도 이쯤 술이 들어간 뒤였다. 연두의 재촉은 집요했다. “설마 너 연우석 때문은 아니지?” 친구이기 이전에 같은 여자였다. 덩달아 가슴이 갑갑해져 오는 연두가 잔을 드는데 그 순간 단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좋대.” 갑작스런 고백에 연두의 두 눈도 휘둥그레 커졌다. “헐. 이제와서?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어? 설마 그 말에 흔들려서 지금 이러고 있는거야?” “이해 안 되지. 이해 못할 거야 넌. 나 역시 이런 내가 이해가 안되는 걸. 이제 와서 이런 말 아무 소용 없다는 거 아는데…….” 후회! 뒤늦은 회환! 단영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깊었다. 단영은 연달아 술을 들이켰다. 쓴맛을 악무는 그 입매가 너무 씁쓸해보여서 연두는 잠시 안쓰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나 연우석 좋아해. 진짜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힘들었고, 그래서 더 겁이 나. 여전히 그 애를 보면 설레는 내가 겁이 나 죽겠어. 나 어떡하니.” 무너지는 친구를 보며 연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이내 원망이 차올랐다. “이 바보야! 그럴 거 뭐하러 독하게 이혼은 해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너 진짜!” “연두야. 나 말이야. 나 있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석이랑 살면서…… 한 번도 여자인 적 없었어.”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연우석…… 날 한 번도 안지 않았거든

  • 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7. 내가 널 이러라고 보내 준 줄 알아?

    「미안해. 내일은 못 갈 것 같아.」 금요일 밤 JULY에서의 무대를 모두 마치고 내려와 핸드폰을 확인하던 우석의 표정이 굳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태성이 슬며시 스트레이트잔을 건네자 우석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드디어 터질 게 터진 건가.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직감적으로 우석의 문제를 알 것 같았던 태성이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그럴 거면 합의해주지 말지 그랬어.”태성의 한 마디에 우석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형이…… 어떻게?”형이 이혼 이야기를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던 사실을 태연히 짐작하고 먼저 말을 꺼내오는 태성의 모습에 우석은 말없이 잔을 매만졌다. “어떻게 모르냐. 널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태성은 우석의 빈 잔에 독한 럼주를 다시 채우며 다시금 말을 건넸다.“네가 그동안 기획사로부터 받은 숱한 러브콜들을 거절한 이유. 나는 다 알지.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말은 못 하지.” “형!” “그래도 우석아. 그동안 세상 많이 변했다. 너무 너만 다 포기하고, 양보하려 들지 말아. 때때로 욕심낼 건 욕심내고 갖고 싶은 게 있음 갖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정작 당사자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진심을 태성은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런두런 꺼내놓았다. “솔직히 후회되지?” “후회는 무슨.”그동안 한 번도 서로 간에 꺼내 놓지 않은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솔직히 좀 놀랐어. 이렇게 쉽게 갈라설 줄이야.” 그건 우석도 마찬가지였다. 몰랐다. 이렇게 쉽게 헤어질 줄은. 우석은 독한 술을 한 모금 입에 가져가며 단영이 이혼 얘기를 꺼내던 때를 떠올렸다. ‘이혼하자.’ 너무나 일상적인 말투여서 저도 모르게 흠칫 당황해버리고 말았던 그 날.‘뭐, 뭘해?’ ‘이제…… 그만하자고.’ 재차 담담한 투로 일관하는 단영을 보면서 우석은 그때 깨달았다. 그 말이 오랜 시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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