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나 일하는 곳 처음 와 보지? 한 번 구경할래?”
그날 밤, 단영은 처음으로 우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JULY를 찾았다.
단영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손님맞이 단장을 마친 라이브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태성은 놀라움이 넘어서 경탄해 마지않는 시선으로 그런 단영의 모습에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나 처음 본다. 맞지? 그…….”
처음으로 우석이 가게에 데려온 여자였다.
우석과 함께 등장한 단영을 도무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태성이 말을 잇지 못하고 호칭을 고르는 새 우석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무대 위 기타가 놓인 스툴 앞에 앉았다.“나 여기서 노래해. 옆에선 소극장 공연도 하고 있고.”
우석은 그동안 밤마다 늦었던 이유를 변명이라도 하듯 기타를 둘러매며 중얼거렸다.
“어우, 우석이 노래 잘해요. 완전 가수! 가수! 우리 카페 스타죠. 스타!”
그러나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려 기를 쓰는 태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영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난 번에 명함 받아둔 걸 전해주려 그랬는데…… 내가 어디다 뒀더라?”
태성이 주머니며 카운터 앞을 부산하게 뒤적거리는 동안, 기타 튜닝을 마친 우석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형, 나 그런 거 안 받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좀 받지? 아니, 받아야 돼, 너!”태성은 여기저기서 찾아낸 하나도 아니고 수 개의 기획사 명함을 단영에게 건넸다.
막 기타 연주를 시작한 우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얼결에 명함을 받아든 단영의 눈이 이게 뭔가 싶어 휘둥그레지자 태성은 자기가 마치 우석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떠들어댔다.“막 스무 살이나 됐을까. 어디서 기가 막히게 잘생긴 놈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온 거예요. 그땐 아직 가게가 자리도 잡지 않았을 땐데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했죠. 노래 같은 거 못해도 무대에 그냥 세워 놓기만 해도 완전 그림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실력은 더 기가 막히네? 보니까 한예종 학생이래. 키 크지, 잘생겼지, 학벌 좋지, 성실하지! 그렇게 십 년을 같이 했어요. 그러니 저한테 이 건물 반은 우석이가 세워준 거나 다름없어요.”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오픈 시간이 되자 가게 안에는 순식간에 손님들이 들어찼다.
“그동안 기획사 러브콜도 참 많이 받았어요. 이 명함이 막, 내 눈앞에서 막 캐스팅 제의가 막…… 근데 그걸 다 거절해버리네. 본인은 이유가 있다는데 그 이유가 뭔지 혹시 그쪽은 알까요?”
가볍게 말을 꺼내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 가선 장난기 따위가 조금도 실리지 않은 눈이었다.
진중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태성은 그 이유를 꼭 알고나 있는 것처럼,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듯이 단영을 빤히 보며 물었다. 단영은 그 대답을 찾듯 무대 위에서 막 노래를 시작한 우석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럼. 해야지, 생각. 충분히 고민하고 이것저것 재 봐. 늙다리 교수도, 나도 네 저울 위에 올려놓고 충분히 숙고하고 재 봐. 그런 다음 선택해. 기다릴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결국 이별하고 나서야 해온 남자.
그런 주제에 아무 때고 찾아와 보고 싶단 말을 잘도 하는 이 뻔뻔스러운 남자가 지금 자신을 보며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있다. 꿰멘 손가락을 감싼 붕대가 몹시 불편할 텐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주는 훌륭했고, 목소리는 감미롭다.
‘내가…… 자신 있어서 이러는 것 같아? 아닌데. 나 지금 무지하게 떨리고 불안한데……. 혹시 너무 늦었을까 봐, 그래서 더 미안하고 불안한데…….’
거짓말처럼 귀에 생생한 우석의 고백!
시간이 멈춘 듯 단영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손엔 조금 전 태성이 주고 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획사 명함을 가득 쥔 채다.
‘그동안 기획사 러브콜도 참 많이 받았어요. 이 명함이 막, 내 눈앞에서 막 캐스팅 제의가 막…… 근데 그걸 다 거절해버리네. 본인은 이유가 있다는데 그 이유가 뭔지 혹시 그쪽은 알까요?’ 어쩌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지난날, 매일 같이 어린 수아를 돌보며 하루가 저물 때마다 막막했던 자신의 시간처럼 누군가를 책임지고 지켜야 했을 우석의 시간들은 얼마나 버거웠을까.
지금 와 돌이켜보니 이틀에 한 번, 사나흘에 한 번 집에 들어올 때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곤에 절어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던 것 같다.
삶의 무게, 가장의 버거움!
스무 살 때부터 그런 것들에 치여 왔던 거였나. ‘막 스무 살이나 됐을까. 어디서 기가 막히게 잘생긴 놈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온 거예요.’낮엔 학교로, 밤엔 아르바이트로, 학교생활도 해야 하고 생업도 이어가야 했으니 정말 버거웠겠다.
분명 그랬겠다. 다른 데 눈을 돌리고, 다른 것들에 관심을 두어서가 아니라 너의 시간들은 그렇게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느라 빠듯하게 흘러갔겠구나, 헤어지고 나니 이제야 깨달음이 왔다.그렇게 깨닫고 보니 눈물이 났다.
눈물을 훔치고 보니 무대를 마친 우석이 어느새 단영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내 무대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아냐.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어디? 어디 봐.”핑계김에 꺼낸 말인데도 우석은 한 뼘도 채 되지 않을 거리로 다가와 단영의 눈을 후 불어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태성도 마실 걸 권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만치 잊어버린 채 두 연인에게서 헤어짐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왜?
왜 헤어졌을까? 둘이 저렇게 예쁜데 왜?“그만 들어가 봐도 되죠?”
“어엉, 그럼 되지. 돼.”어차피 오늘은 금요일 밤도 아니었다.
제 순서가 아님에도 무대에 올라주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 태성은 우석을 만나면 주려고 준비했던 봉투를 단영에게 내밀었다.“아, 그리고 이건 우석이 주려고 준비한 보너슨데요 그러니까 그쪽 성함이…….”
“단영이. 오단영.”이름을 물어오는 태성에게 우석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네. 단영 씨 다 쓰세요.”
얼결에 태성에게 봉투를 받아든 단영이 어쩔 줄 몰라하며 봉투를 우석에게 다시 내밀자 우석은 조금 전 태성으로부터 받은 명함들이 들어있는 단영의 가방 속으로 쏙 넣어주었다.
“이걸로 그때 말한 여행가면 되겠다. 형이 너한테 주는 거면 그 정도는 될 거야.”
우석은 단영을 에스코트해 가게를 나서며 칭찬 받고 싶은 어린 아이마냥 괜히 뿌듯해했다.
그 모습이 지난 날 스무살 언저리의 우석을 보는 듯해 단영의 얼굴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더니 단영은 곧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나 내 저울에 너 올려둘 거야.”
단영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속엔 무겁게 눌러 담은 결심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우석을 보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감정에 휘둘려 후회할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단영은 스스로의 무게추를 단단히 붙잡은 채, 눈앞의 남자를 시험하듯, 그러나 동시에 기댈 수 있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충분히 재볼 거고, 무엇보다 결국엔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거야.”
우석은 단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서서히 조여왔다.
두렵지만 안도가 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그 선택이 네가 아닐 수도 있어. 너와 나 사이에 수아가 있다고 내 선택이 무조건 너는 아니라는 소리야”
그녀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날카롭게 스쳤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바로, 단영이 지금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단영의 말이 점점 솔직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너랑 연애도 할 거고, 잠도 잘 거야.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단영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 어딘가에는 오랜시간 눌러온 갈망과 떨림이 번지고 있었다.
우석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가슴은 이미 뜨겁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단영이 끝내 작은 숨을 몰아쉬며 내뱉은 말.“그러니까 지금은…… 키스부터.”
우석은 미처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말보다 더 확실한 대답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온몸을 끌어당기는 충동과 애틋함이 뒤섞여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마치 자석처럼 맞부딪혔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눈빛에 실려 서로를 향해 흘러넘쳤다.단영의 가슴 속은 오래된 그리움과 아직은 확인되지 않은 설렘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우석은 그 모든 감정을 감싸 안듯 천천히, 그러나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단영은 숨결이 흔들렸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고,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이 고요히 닫혀버린 듯했다.
우석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체온은 따뜻했고,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단단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코끝이 먼저 스치고, 느리게 입술이 포개졌다.단영은 예상치 못한 열기에 몸을 떨었다.
그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석이 숨을 고르고 다시금 고개를 기울였다.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한 번 더 깊고도 길게 입술을 겹쳐왔다. 열기가 묻어난 감각이 단영을 휘감았다.입술 끝에 번지는 열기와 숨결이 서로의 틈새로 스며들고, 단영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치 더는 놓지 말아 달라는 것처럼. 두 사람의 사이의 공기는 어느 새 달콤하면서도 절절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그리고 그 순간, 귓가에 스며든 우석의 목소리가 낮고 깊게 울렸다.
“오늘 밤, 같이 있자.”
그 한 마디가 단영의 가슴으로 진하게 파고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눈가에 맺혔고, 목은 콱 막혀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우석은 알았다.
떨리는 숨결과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긴 하루였다. 이른 시간 출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겠다는 단영을 달래고 우석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잠이든 수아의 곁에는 어두운 안색의 희수가 앉아 있었다. “미안. 내가 좀 늦었네. 내일은 일찍 들어올게.” 부러 멋쩍은 미소를 짓곤 애교를 부리며 수아를 번쩍 안아 드는데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희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임 여사, 지금 울어?”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셨다. 우석은 정색을 하며 희수의 앞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 있구나? 혹시 어디 아파?” 희수의 앞에 바짝 얼굴을 마주댄 우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맑고 선한 눈동자, 절대 나쁜 짓 같은 건 못 할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희수의 얼굴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우리?” 우석의 눈빛에 일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무슨 일인데? 왜 그러는 건지 좀 말해 보지?” 어려운 얘기였지만 말을 꺼내야만 했다. 희수는 간신히 운을 떼었다. 쉽지 않은 얘기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힘겹게 흘러나왔다. 희수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헤어진 게 우석에게 변변한 기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우려했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그래서 식당이든 커피숍이든 우석에게 작은 가게라도 마련해주고 싶어 남아 있던 아버지의 유산과 살고 있던 집을 담보해 대출을 받으려 했다는 말도 꺼내 놓았다. 그런데 그만 그게 잘못되어 버렸다는 황망한 결론이 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주변보다 시세가 말도 안 되게 저렴했을 때 의심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대출금은 다 날린 거야?” 우석이 정신을 차리려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어떡하지, 우석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 희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우석은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동안 겉돌기만 하던 시간을 거스르고 이제야 조금씩 서로를 마
“오 선생님 기다린 남자분 꼭 연예인 같아요. 맞죠? 일반인 아니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생겼지? 키도 엄청 크고요!” “난 지난번에 본 적 있지. 그때도 ER에 왔었어. 오 선생님 당직 때. 아마 오 선생님 전 남편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익숙했다. 학교 다닐 때도, 수련의 시절에도, 한결이 호감을 가진 상대는 이상하리만치 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처음엔 그런 관심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구나. 가끔은 그런 관심을 즐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쏠려 있을 때라면. 한 번 마주하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인상. 처음 태성의 가게에서 마주했을 때부터 그 남자, 연우석의 몸에는 이상한 여유가 묻어 있었다. 고작 배우지망생 주제에 눈빛은 대담했고, 상대의 속을 꿰뚫듯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는 수십 년씩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그것처럼 만만치 않은 오라까지 풍기고 있었으니까. 한눈에 보아도 매력적인 외모며 분위기는 또 어떠했나.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같은 남자인 한결의 눈에도 첫인상부터 전해지는 느낌이 재수 없게도 차원을 달리했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왜 아직도 일반인으로 남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런데, 그래서 뭐? “거 일들 안 하나? 잠깐이라도 숨 돌릴 틈 있을 때 차트도 정리하고 어? 환자들 상태도 체크하고, 어!?” 애먼 데로 화살이 돌아갔다. 신경질적으로 타이를 풀며 한결은 결국 연두를 호출했다. 엄마 친구 딸인 이유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그런 사이. 그런데 하필이면 그 엄친딸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해 준 탓에 요즘 그의 심사가 이토록 사납다. “바쁘신 교수님께서 이 밤에 어인 일로.” 언제 보아도 털털한 선머슴 같은 연두 앞에서 한결은 대뜸 말을 꺼냈다. “에프터 서비스.” “에고. 단영이 일이라면 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한결은 테
“나 일하는 곳 처음 와 보지? 한 번 구경할래?” 그날 밤, 단영은 처음으로 우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JULY를 찾았다. 단영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손님맞이 단장을 마친 라이브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태성은 놀라움이 넘어서 경탄해 마지않는 시선으로 그런 단영의 모습에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나 처음 본다. 맞지? 그…….” 처음으로 우석이 가게에 데려온 여자였다. 우석과 함께 등장한 단영을 도무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태성이 말을 잇지 못하고 호칭을 고르는 새 우석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무대 위 기타가 놓인 스툴 앞에 앉았다. “나 여기서 노래해. 옆에선 소극장 공연도 하고 있고.” 우석은 그동안 밤마다 늦었던 이유를 변명이라도 하듯 기타를 둘러매며 중얼거렸다.“어우, 우석이 노래 잘해요. 완전 가수! 가수! 우리 카페 스타죠. 스타!” 그러나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려 기를 쓰는 태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영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난 번에 명함 받아둔 걸 전해주려 그랬는데…… 내가 어디다 뒀더라?” 태성이 주머니며 카운터 앞을 부산하게 뒤적거리는 동안, 기타 튜닝을 마친 우석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형, 나 그런 거 안 받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좀 받지? 아니, 받아야 돼, 너!” 태성은 여기저기서 찾아낸 하나도 아니고 수 개의 기획사 명함을 단영에게 건넸다. 막 기타 연주를 시작한 우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얼결에 명함을 받아든 단영의 눈이 이게 뭔가 싶어 휘둥그레지자 태성은 자기가 마치 우석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떠들어댔다.“막 스무 살이나 됐을까. 어디서 기가 막히게 잘생긴 놈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찾아온 거예요. 그땐 아직 가게가 자리도 잡지 않았을 땐데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했죠. 노래 같은 거 못해도 무대에 그냥 세워 놓기만 해도 완전 그림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실력은 더 기가 막히네? 보니까 한예종 학생이래. 키 크지,
“간단한 처치예요. 봉합, 소독 제가 하겠습니다.” “됐고, 오 선생은 가서 허기나 채우고 오지? 십분만 쉬겠다면서?” 환자 하나를 두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례적일 정도로 ER 내부가 고요했기 망정이지 옥신각신하는 한결과 단영을 잠자코 보던 우석의 눈빛에 일순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스페셜 리스트까지는 됐고, 간단한 처치라니 여기, 오단영 선생님에게 받고 싶은데요.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개인적인 친분’ 운운하는 친근한 표현에 한결의 눈빛이 일순 치켜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해 나갔다.“개인적인 친분이라면 나도 좀 있지 않나? 우리, 서로 구면인 것 같은데. 배우 지망생 씨.” 태성의 가게에서였다. 두 사람은 이미 일면식이 있었고, 우석도 한결의 존재가 JULY에서 잠시 스쳤던 남자와 동일인이라는데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우석은 굳이 단영을 사이에 두고 엮이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한결은 먼저 당당히 알은 체를 해왔다. 그 분위기가 묘했다. 단영은 그 틈을 비집고 다가와 우석의 치료에 열중했다.“많이 베었네. 어쩌다 그랬어?” “사과 깎다가. 수아가 사과 먹고 싶대서.” 밥은 왼손으로, 글씨는 오른손으로, 양손을 쓰기는 하나 배트를 잡는다던가 공을 던진다던가 주로 사용하는 손이 왼손이다 보니 우석은 칼질이 몹시 서툴렀다. “어머니께 좀 부탁하지 그랬어.” “잠깐 외출하신 틈에.” “몇 바늘 꿰매야 할 거야. 덧나지 않게 약 잘 챙겨 먹어.” 성가시다는 듯이 얘기하곤 있지만 걱정이 배어있는 말투였다. 우석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고, 단영은 손을 이렇게 다쳐 가지고 와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우석이 얄미워 힐긋 노려보았다. 그렇게 치료와 함께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둘이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줄곧 느껴지던 어색하고도 따가운 시선. 그 눈빛의 출처를 감지한 단영이 고개를 치켜 들었다
‘술 한 잔 할래?’ 한 마디에 득달같이 달려와주는 고마운 벗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버리고만 단영은 심장병 환자처럼 여전히 상기된 두 뺨을 어쩌지 못한 채 자신의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벌써 세 잔째였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단영이 소주 세 잔을 연거푸 마신다는 것은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뜸 들여 준 것 같은데? 자, 말하라! 뭐가 문제야?” 그녀가 이혼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도 이쯤 술이 들어간 뒤였다. 연두의 재촉은 집요했다. “설마 너 연우석 때문은 아니지?” 친구이기 이전에 같은 여자였다. 덩달아 가슴이 갑갑해져 오는 연두가 잔을 드는데 그 순간 단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좋대.” 갑작스런 고백에 연두의 두 눈도 휘둥그레 커졌다. “헐. 이제와서?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어? 설마 그 말에 흔들려서 지금 이러고 있는거야?” “이해 안 되지. 이해 못할 거야 넌. 나 역시 이런 내가 이해가 안되는 걸. 이제 와서 이런 말 아무 소용 없다는 거 아는데…….” 후회! 뒤늦은 회환! 단영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깊었다. 단영은 연달아 술을 들이켰다. 쓴맛을 악무는 그 입매가 너무 씁쓸해보여서 연두는 잠시 안쓰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나 연우석 좋아해. 진짜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힘들었고, 그래서 더 겁이 나. 여전히 그 애를 보면 설레는 내가 겁이 나 죽겠어. 나 어떡하니.” 무너지는 친구를 보며 연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이내 원망이 차올랐다. “이 바보야! 그럴 거 뭐하러 독하게 이혼은 해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너 진짜!” “연두야. 나 말이야. 나 있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석이랑 살면서…… 한 번도 여자인 적 없었어.”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연우석…… 날 한 번도 안지 않았거든
「미안해. 내일은 못 갈 것 같아.」 금요일 밤 JULY에서의 무대를 모두 마치고 내려와 핸드폰을 확인하던 우석의 표정이 굳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태성이 슬며시 스트레이트잔을 건네자 우석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드디어 터질 게 터진 건가.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직감적으로 우석의 문제를 알 것 같았던 태성이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쳤다. “그럴 거면 합의해주지 말지 그랬어.”태성의 한 마디에 우석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형이…… 어떻게?”형이 이혼 이야기를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던 사실을 태연히 짐작하고 먼저 말을 꺼내오는 태성의 모습에 우석은 말없이 잔을 매만졌다. “어떻게 모르냐. 널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태성은 우석의 빈 잔에 독한 럼주를 다시 채우며 다시금 말을 건넸다.“네가 그동안 기획사로부터 받은 숱한 러브콜들을 거절한 이유. 나는 다 알지.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말은 못 하지.” “형!” “그래도 우석아. 그동안 세상 많이 변했다. 너무 너만 다 포기하고, 양보하려 들지 말아. 때때로 욕심낼 건 욕심내고 갖고 싶은 게 있음 갖고…….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정작 당사자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진심을 태성은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런두런 꺼내놓았다. “솔직히 후회되지?” “후회는 무슨.”그동안 한 번도 서로 간에 꺼내 놓지 않은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솔직히 좀 놀랐어. 이렇게 쉽게 갈라설 줄이야.” 그건 우석도 마찬가지였다. 몰랐다. 이렇게 쉽게 헤어질 줄은. 우석은 독한 술을 한 모금 입에 가져가며 단영이 이혼 얘기를 꺼내던 때를 떠올렸다. ‘이혼하자.’ 너무나 일상적인 말투여서 저도 모르게 흠칫 당황해버리고 말았던 그 날.‘뭐, 뭘해?’ ‘이제…… 그만하자고.’ 재차 담담한 투로 일관하는 단영을 보면서 우석은 그때 깨달았다. 그 말이 오랜 시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