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안혜슬이 강하율을 부른 건 가족들이 그녀가 출근을 못 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그 말을 들은 강하율은 기가 막혔다.“그게 무슨 말이야? 왜 출근을 못 하게 해?”“아빠가 이제 돈도 많은데 내가 호텔에서 객실 청소하는 거 사람들이 알게 되면 창피하니까 하지 말래.”안혜슬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강하율이 되물었다.“그럼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면 생활비는 얼마나 준대?”안혜슬은 차갑게 웃었다.“안 준대. 집에 있으면 밥 한 그릇만 더 챙겨주면 되니까 돈도 아끼고 얼마나 좋냐던데. 게다가 나한테 앞으로 우리 엄마랑 새언니랑,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까지 모시고 살래.”강하율은 금방 이해했다.“평생 노예로 부려 먹겠다는 거네.”“너... 네 말이 맞아. 앞으로 내가 딸을 낳으면 내 딸까지 이 집안의 노예로 살게 될지도 몰라. 나는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안혜슬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바라봤다.사실 안혜슬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고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어쩌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비슷한 처지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다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도 말이다.안혜슬의 생각을 읽은 강하율이 물었다.“내가 대신 얘기해 줄까?”“응. 너도 나름 관리자잖아. 한마디만 해줘. 나는 절대 이 일자리를 잃을 수 없어.”“알겠어. 일단 네 엄마랑 얘기해 볼게.”그러나 다시 둘러봤을 때 김지현은 보이지 않았다.대신 안진웅이 술을 돌리면서 은근슬쩍 가죽 치마를 입은 여자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안혜슬이 말했다.“엄마는 아마 저쪽 주방에서 물을 끓이고 있을 거야. 같이 가자.”그녀는 강하율을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김지현은 멍하니 서 있다가 물이 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급히 불을 끄려고 하다가 손을 데고 말았다.안혜슬이 바로 달려가 손을 잡았다.“엄마, 괜찮아요?”“괜찮아.”김지현은 웃으면서 덴 부위에 된장을 발랐다. 그건 시골에서 쓰는 민간요법이었다
“안혜슬, 거기서 뭐 해? 얼른 가서 물이나 가져와!”안진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그때 안혜슬의 오빠 안형신이 뒤를 돌아보더니 강하율을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강하율은 그동안 안혜슬의 부모님만 봤었지, 안형신을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두 사람은 처음 만난 셈이었다.안형신의 시선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강하율은 당연히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안혜슬의 집에서 굳이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었다.강하율이 안혜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너희 아빠가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할까?”“우리 아빠는 여자면 다 좋아해. 과부한테도 들이대는 사람인데, 뭐. 예전에 우리 마을에 발 마사지를 해주는 곳이 있었거든? 내가 거기서 아빠를 봤다고 했더니 엄마는 전혀 믿지 않으셨어.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안혜슬은 엄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걸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언젠가는 무너질 게 뻔했다. 그때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망가질지도 몰랐다.안혜슬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엄마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다.그때 가죽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안진웅에게 다가갔다.“진웅 오빠, 오랜만이에요.”“누구신지...”안진웅이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를 훑어봤다.“어머,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예전에 이 마을에 살았었던 양 씨네 집 막내딸이에요. 어렸을 때 오빠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는데 그 뒤로 시집을 갔죠.”“너였구나.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이렇게 예뻐질 줄은 몰랐는데.”안진웅이 말했다.여자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오빠는 여전하시네요. 저는... 이혼했어요. 그래서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어요.”“앞으로는 여기서 살려고?”“아니요. 보름 정도 있다가 일을 시작하려고요. 오빠는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지만 저는 아니거든요.”말을 마치고 여자는 웃으며 자리를 떴으나 안진웅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강하율은 안혜슬의 집에 처음 온 게 아니었다.안혜슬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안혜슬의 오빠가 서른이 넘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 한 이유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안혜슬의 오빠와 아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무도 자신의 딸을 안혜슬의 오빠와 결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다른 마을 사람을 소개받았다.안혜슬의 말에 의하면 안혜슬의 오빠와 결혼할 여자는 다른 마을 사람이고, 꽤 예쁘장한 데다가 겨우 20대 초반이며 남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그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안혜슬의 오빠와 영상통화를 두 번 한 뒤 곧바로 결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했다.김지현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원래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그녀의 가족들이 여자의 남동생을 위해 집을 사주고 싶어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은 애초에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면 왜 영상통화를 두 번이나 했냐고 여자를 압박했다고 한다.그렇게 조건이 맞춰지자 그 여자도 결혼을 받아들였다.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안혜슬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안혜슬은 그녀를 직접 만나보려고 했지만 상대는 안혜슬을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다.아마 안혜슬과 안혜슬의 오빠를 한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강하율은 벌떼처럼 모인 사람들을 본 순간, 안혜슬의 가족에게 곧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안혜슬이 강하율을 붙잡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짜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보통 당첨되면 남들 모르게 조용히 돈을 쓰잖아. 그런데 저렇게 다 떠벌리고 다니는 데다가 사람들을 불러서 밥까지 사다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혜슬의 아빠가 당첨금액이 적힌 판넬을 들고 돌아왔다.“자자, 다들 들어오세요! 조금 있다가 다 같이 밥 먹어요! 오늘은 내가 쏩니다!”“안진웅, 너 정말 대단하다. 진짜 당첨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좋겠어. 앞으로 잘 나가겠네. 우리 잊으면 안 된다.”“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서로 잘 지내보자고.”안
“그러면 그 사람들은 저랑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그 돈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거네요?”“맞아. 지금으로선 조윤서일 가능성이 가장 커. 어머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제가 언제 아버지를 보러 오는지는 배윤제만 알아요. 심지어 제가 몇 시에 오는지도 다 알고요.”조윤서와 배윤제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예전에 배윤제가 상처받은 척했던 것도 전부 연기였던 셈이다.배윤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무슨 생각해?”강하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배윤제만 떠올려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아무것도 아니에요.”“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 우리 예상이 맞다면 위증을 시킨 사람도 조윤서일 가능성이 커. 그쪽으로 파고들면 돼.”“네.”강하율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그러자 배윤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부드럽게 눌렀다.“조급해하지 마.”“알겠어요.”그때 안혜슬에게서 전화가 왔다.“엄마가 나한테 연락해서 아빠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했어.”“잠깐. 뭔가 이상한데? 당첨된 사실을 너희 엄마한테 얘기했다고?”강하율이 의아해했다.“우리 엄마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다 알아.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얼른 돌아가야겠어.”“그래. 우리도 당장 그쪽으로 갈게. 절대 흥분해서 실수하지 마.”강하율은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배윤호는 이미 양승아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강하율이 물었다.“저랑 같이 가는 거 시간 낭비 아니에요?”“나 오늘 쉬는 날이야. 여자 친구랑 같이 있을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어.”배윤호는 여자 친구라고 하면서 강하율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강하율은 얼굴이 빨개졌다. 진지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더 당황스러웠다.가는 길에 배윤호는 나해준에게 상황을 알렸다.강하율이 서둘러 말했다.“두 사람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돼요. 그 사람들이 두 분 옷차림이나 나해준 씨가 혜슬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아예 혜슬이를 나해준 씨에게 팔아버리려
강하율은 흥분해서 배윤호의 손을 꽉 잡았다.“우리에게 뭘 알려주려고 한 거죠?”“병실 안에 듣는 귀가 있다는 거.”배윤호가 솔직하게 말했다.“그러면 당장 가서 제거해야죠!”강하율은 아버지가 걱정돼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 병실로 달려가고 싶었다.배윤호가 그녀를 붙잡았다.“우리는 가면 안 돼. 우리 대신 간 사람이 있어.”그가 말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뛰어나왔다.“배윤호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다 확인해 봤는데 도청기가 있었습니다.”의사가 사진을 보여줬다. 강진철의 침대 옆 수납장 근처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바로 제거하면 상대가 눈치챌 수 있어서 일단은 사진만 찍어둔 상태였다.의사가 말했다.“매일 아침 직원이 청소하러 가는데 그때 설치된 것 같습니다.”수납장을 닦으면서 뒷부분에 슬쩍 붙이면 눈치채기 어려운 위치였다.그런데 직원이 강진철을 진짜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은근히 허술하게 설치한 듯했다.강하율이 물었다.“그럼... 우리 아버지가 미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배윤호는 단정 짓지 않았다.“적어도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인 거지.”그는 그렇게 대답한 뒤 의사에게 계속 관찰하되 절대 상대를 자극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강하율은 병실 쪽을 올려다봤다.“아버지가 일부러 연기를 했다면... 무려 10년이나 연기를 한 거잖아요. 왜 그런 걸까요?”“하율아, 너는 그때 겨우 열네 살이었어.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지. 미친 척 연기한 건 아마 살아남기 위해서였을 거야. 그래야 조사할 기회라도 있으니까.”배윤호가 분석했다.강하율은 당장 그 비서의 가족을 찾아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배윤호가 말을 이었다.“당시 사건 기록을 다시 확인해 봤는데 그 목격자라는 사람은 그 비서의 친척이었어. 마침 그 비서의 집 근처에서 살았고.”“맞아요. 그 사람은 볼일이 있어서 비서의 집에 갔다가 상황을 목격했다고 했어요. 비서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서 따라가 봤는데 비서
안혜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미친 거 아니야? 꿈도 꾸지 마. 본인은 능력이 안 되니까 여동생을 팔아먹겠다고?”“우리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집도 다 그래. 딸을 결혼시켜서 받은 돈으로 아들 결혼시키는 건 당연한 거라고.”“꺼져.”안혜슬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분노 때문에 몸이 계속 떨렸다.그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나해준은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았다.강하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늘 이래요. 혜슬이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결혼시키겠다고 협박해요. 예전에 제가 혜슬이를 돕고 싶어서 두 번 정도 돈을 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점점 더 큰 액수를 요구하더라고요. 혜슬이 엄마는 그냥 울기만 하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줄 수가 없었어요.”나해준이 말했다.“내가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네? 잠깐만요.”강하율이 그를 말려고 했다.“도와주려고 그러는 건 알지만... 저는 혜슬이가 진심이 될까 봐 걱정돼요. 저는 혜슬이가 마지막에 혹시라도...”“내가 혜슬이를 갖고 놀려고 하는 것 같아?”“그게 아니라 액수가 너무 크면 혜슬이가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나해준 씨도 혜슬이가 돈을 갚으려고 나해준 씨를 만나주는 것보다는 정말 나해준 씨를 좋아해서 만나기를 바랄 거잖아요.”“강하율, 혜슬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야. 설령 빚 때문에 나랑 만나게 된다고 해도 혜슬이 성격에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야.”나해준은 가볍게 웃었다.그 말을 듣고 강하율은 잠시 멈칫했다.듣고 보니 안혜슬의 성격이라면 절대 어디 가서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죄송해요. 제가 섣부르게 판단했네요.”“걱정하지 마. 나도 선은 지킬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혜슬이 가족들을 상대할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사실 10억이 아니라 1억만 있어도 혜슬이 아빠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굴 거예요.”강하율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