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333 화

Author: 윤아
길고 당당한 체구의 남자가, 깨끗하게 닦인 통유리창 앞에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제나는 숨이 멎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불과 일주일 남짓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왜인지 몇 년은 지난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발소리를 들은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경후의 정제된 이목구비는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검은 눈동자는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먹빛 바다 같아, 한 번 마주치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조용히 제나를 응시했다. 고귀한 기품이 묻어나는 얼굴엔 특별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눈빛만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94 화

    흑암처럼 어두운 경후의 눈은 달빛 아래 깊은 우물처럼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그는 제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얇은 입술을 열었다.“계속 당신을 도와주던 그 남자... 대체 누구야?”경후가 묻는 건 그 일이었다.제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맹세할 수 있어. 나도 정말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심지어... 이름도 몰라.”“만난 적은 있어?”제나의 눈 밑으로 망설임이 스쳤다.지금은 모든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 정체 모를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 단서도 없었다.제나는 지난번에 나타났던 남자가 정말 그 정체 모를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93 화

    “네.”제나의 숨이 가볍게 멎었다.이어 고개를 들어 경후를 바라보았다.“진심이야?”경후의 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설마 당신은 그냥 해 본 말이었어?”“아니.”제나는 경후를 올려다보며 망설이다가 물었다.“정말 이제 신경 쓰이지 않아?”“뭐가?”제나는 입술을 열었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경후는 제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제나를 품에 끌어안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냥 묻어두자.”경후의 목소리는 물처럼 맑고 서늘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92 화

    경후는 제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얼마 전까지는 기억을 되찾는 일에 꽤 신경 썼잖아. 그런데 요즘은 병원에 가겠다는 말도 안 하더라... 이제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은 거야?”제나의 기색이 미세하게 변했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경후가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런데 당신이 이미 혼자 몇 가지는 떠올린 것 같아.”제나의 마음이 서늘해졌다.경후는 제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제나와 눈을 맞춘 경후의 검은 눈동자는 먹물처럼 짙었고, 속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방금 당신이 말했지. 그 독은 당신이 먹인 게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91 화

    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제나는 모든 일이 조금 허무했고 우습기까지 했다.“괜찮아?”경후의 목소리가 제나의 생각을 다시 끌어올렸다.“괜찮아.”제나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그냥 갑자기 몇 가지 일이 떠올랐어.”“그래?”경후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뭐가 떠올랐는데?”제나의 동공이 희미하게 흔들렸다.“예전 일들이야.”그녀가 며칠 동안 의식을 잃은 뒤 과거의 기억 몇 가지를 떠올렸다는 사실은... 경후도 알고 있었다.경후가 제나를 바라보았다.“예전의 어떤 일?”제나의 속눈썹이 조용히 내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90 화

    병실 안, 제나는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이 잠든 사람 같았다.의사가 제나를 살펴보았지만, 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자극을 받은 탓이라고 했다.경후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하음을 바라보았다.“제 아내한테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음은 고개를 숙였다.“제가 아는 일은 많지 않아요. 그저 차 대표가 하제나 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지 말했을 뿐이에요. 하제나 씨는 기억을 잃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지난 몇 년 동안 하제나 씨만 억울했다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889 화

    “왜죠?”하음이 말했다.“차 대표가 처음 차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차씨 가문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차 대표를 반기지 않았어요.”“차 대표는 모두에게 밀려났죠. 차씨 가문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다른 사람들과 재산을 두고 다투게 된 사람인데 누가 환영하겠어요?”제나는 경후의 친부모가 경후에게 다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럼 경후의 친부모님은요? 경후는 그분들의 친아들이잖아요. 그런데도 반기지 않았다는 건가요?”하음이 비웃듯 웃었다.“그것도 전부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643 화

    한참 숨을 고른 끝에 제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 어떻게 돌아온 거야?”제나의 질문 끝에, 경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짧은 불쾌감이 스쳤다.“여기 내 집인데, 오면 안 돼?”제나는 그 순간 머리가 번쩍 깨는 느낌을 받았다.“아니... 난 그냥...”“그냥 뭐?”“아무것도 아니야.”오늘 제나가 이혼합의서를 건넸을 때, 경후는 별다른 반응도 없었고 반대하는 기색도 없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둘 사이의 정리는 이미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서류 처리뿐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610 화

    은주는 제나를 바라보았다. 미간이 서서히 좁아지면서 목소리도 차갑게 가라앉았다.“지금 뭐 하는 거야?”제나는 냉랭하게 대꾸했다.“내가 뭐 하려는지 궁금하면 네가 좋아하는 친구 노유미한테 직접 물어봐.”은주는 시선을 유미에게로 옮겼다.“이게 무슨 말이야?”유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억울함을 호소했다.“나도 모르겠어! 은주야, 네가 직접 봤잖아. 나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하제나가 다짜고짜 들이닥쳐서 난리 치잖아.”“아마도 요즘 네가 차 대표님이랑 자주 어울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너한테는 아무 말도 못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625 화

    유미는 줄곧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유미의 분노는 다시 임계점까지 차올라 있었다.유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은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하제나, 아직도 원하는 보상 수준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맞춰볼게.”제나는 은주를 바라보았다.“노유미 씨의 가벼운 사과 한마디와 하은주 씨의 보상으로, 연주자의 명성과 작업실의 손실이 전부 지워진다고 생각하시나?”은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작업실 망가진 부분 배상은 두 배

  •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644 화

    제나는 핸드폰 화면을 보자마자 거의 심정지가 올 뻔했다.경후가 보낸 답장은 단 하나의 기호였다.[?]제나는 즉시 손가락이 튀어 나가듯 답장을 보냈다.[우리 언제 절차 밟으러 가냐고?]두 시간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네 시간이 지나도 메시지 창은 여전히 조용했다.해가 완전히 저물 무렵에서야, 경후의 답이 더디게 도착했다.[요즘 바빠.]제나는 곧장 되물었다.[언제 시간이 나는데?]하지만 이번엔 그 어떤 답도 오지 않았다.제나가 잠들 때까지도, 메시지창은 고요하기만 했다.‘혹시 진짜 바쁜 건가?’제나는 시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