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후가 한 여자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여러 번 벌였고, 차씨 가문과 인연까지 끊으려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인정은 경후를 더 우습게 보았다.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휘둘리는 남자가 무슨 큰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그 뒤 경후가 차씨 가문을 떠나자, 경후에 관한 소식은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경후의 깊고 차가운 검은 눈과 마주하자 인정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차경후의 그 눈빛이... 왜 이렇게 살벌하지?’인정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랐다. 차근수도 인정을 꽤나 오냐오냐해 주었고, 그래서 인정의 성격은 점
“해산물 알레르기?”저녁 식사에 어떤 음식을 올릴지는 각 집안에서 미리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차근수는 무심코 차민균 부부 쪽을 바라보았다.경후가 이렇게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낼 줄은 차민균과 류서윤도 예상하지 못했다.차민균 부부의 낯도 함께 어두워졌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차근수는 그 반응만 보고도 대충 사정을 짐작했다.이어 왕 집사를 불렀다.“경후 쪽 상에 차린 음식은 전부 물리고, 제나한테 먹고 싶은 게 뭔지 물어봐라. 새로 한 상 차리도록 해.”왕 집사는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직원들에게 음식을 치우라고 지
제나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경후가 회사 일을 핑계로 댄 건, 늦은 책임을 전부 자신에게 돌리겠다는 뜻이었다.물론... 실제로 늦어진 이유가 경후이긴 했다. 그래도 차씨 가문의 수많은 사람 앞에서 제나를 감싸 주는 경후의 태도에... 제나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차근수는 제나를 힐끗 보더니 옅게 웃었다.“그냥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자리다. 괜찮아. 일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차근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어서 앉아라.”집안에서 열리는 모임은 호텔 연회와는 달랐다.호텔식 연회는 보통 뷔페처럼 음식을
모두가 형용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 불쾌한 시선으로 경후와 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예전의 제나는 류서윤을 따라 여러 연회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별의별 사람과 일을 겪었다.그때 제나는 아직 어렸다. 류서윤처럼 속을 감추는 법도 몰랐고, 류서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하필 그 사람들이 모두 경후의 친척이었다. 제나는 대들 수 없었고, 억울해도 참고 삼킬 수밖에 없었다.이제 와 다시 이 사람들을 마주하자, 제나의 몸은 본능적으로 굳었다.제나에게 류서윤은 이미 지울 수 없
경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원피스 입지 마. 난 싫어.”“괜찮아. 내가 좋으면 되잖아.”“안 돼.”제나는 깊은 못처럼 가라앉은 경후의 눈을 바라보았다.“내가 꼭 입겠다면?”경후는 눈도 떼지 않고 제나를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오늘은 늦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갈 수도 있겠네.”제나는 멈칫했다.“무슨 뜻이야?”경후의 검은 눈이 가늘어졌다. 희미하게 위험한 기색이 어렸다.그리고 닿을 듯 말 듯 제나의 뺨에 입술을 스치며 낮게 속삭였다.“여보, 아직도 날 유혹하고 싶어?”이번에는 제나도 알아
“안 돼... 읍!”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나의 목소리는 경후의 키스에 완전히 묻혔다.오늘 밤 가족 모임에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참석하려고, 제나는 메이크업에만 꼬박 두 시간을 들였다.그런데 지금 경후는 제나의 화장을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찌익-옷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제나는 잠시 멍해졌다.곧이어 제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내 원피스!”하지만 경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키스가 빗발치듯 쏟아졌다.함께 지낸 시간이 이토록 긴데, 제나가 경후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안 돼...
“제나 씨, 이리 와요.”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첼로 현이 울리듯 깊고 매혹적인 음색이 귀를 사로잡았다.제나는 단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미스터 강’임을 알아차렸다.의심이 섞인 시선을 품은 채, 제나는 ‘미스터 강’이 앉아 있는 구석으로 걸어갔다.어두운 조명 아래, 태진은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무심한 듯한 여유로움 속에서도 기품이 스며 있었다.제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강...”그러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불쑥 뻗어와 제나를 곁으로 끌어당겼다.제나는 깜짝 놀
한 사람의 인간관계는 그 사람 자체를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다.적어도 지금까지 본 바로는, 이 ‘강태진’이라는 남자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제나는 태진을 도와야 할지 망설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 사이 태진과 연주는 이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연주는 원래 성격이 밝고 외향적인 편이라 낯가림이 없었다.태진 역시 눈치가 빠르고 대화 센스가 좋아, 두 사람은 금세 분위기를 맞춰갔다.태진은 제나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낮게 속삭였다.“제나 씨, 결정은 내렸나요?”제나는 문득
제나는 일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 경후를 돌보면서도 동시에 옷 디자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그렇지만 이 기간에는 작업실에 나가는 날이 거의 없었다.또 한 주가 흘렀을 무렵, 제나는 연주의 전화를 받았다.[제나 언니, 지금 시간 좀 돼요?]연주는 경후가 다쳐서 제나가 병원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동안은 전화하지 않고, 카톡으로만 하루에 한 번 안부를 전하는 정도였다.그런 연주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제나는 연주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바로 느꼈다.“연주야, 무슨
거울 속 여인은 선명한 레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실루엣에, 정성 들여 완성된 화장이 더해져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게다가 눈빛은 자연스럽게 유려했고, 우아한 기품 속에 감출 수 없는 매혹이 배어 있었다.제나의 뒤에 서 있던 연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외쳤다.“완벽해요. 진짜 최고예요!”제나는 평소 이렇게 과감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잘 입지 않았다.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어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렸다.“너무 튀는 거 아니야?”이 드레스는 다름 아닌 연주의 작품이었다.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