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
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
빛은 늘 아름다웠다.
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
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
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되, 궁의 눈에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옷. 머리에는 자녕궁에서 받은 작은 붓 모양 비녀가 꽂혀 있었다. 월령은 그것을 보았으나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서윤은 방어할 것이다.
방어하는 아이는 귀를 닫는다.
청아는 월령 옆에 앉아 작은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심 부인께 올릴 약재 목록과, 혹시 서윤이 속이 불편해질 때 먹일 매실정과가 들어 있었다. 청아는 궁에 간다는 사실보다, 매실정과가 눌려 모양이 망가질까 더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청아."
월령이 낮게 불렀다.
"예."
"너무 꼭 안고 있으면 정과가 숨을 못 쉰다."
청아는 깜짝 놀라 보따리를 조금 풀었다.
"정과도 숨을 쉽니까?"
"아마 네 손에서는 쉬어야 할 거야."
서윤이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은 뒤에 스스로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월령은 그 웃음을 못 본 척했다.
마차는 남운로 초입을 지나 궁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종이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떤 등에는 연꽃이 그려졌고, 어떤 등에는 장수를 비는 수자문이 촘촘히 오려 붙어 있었다. 쌀을 사러 나온 여인들은 등 앞에서 잠시 멈춰 서다가, 곧 빈 바구니를 내려다보고 지나갔다.
월령은 창밖을 보며 마음속으로 길을 그렸다.
남운로.
회암역.
북문로.
내수사 수레가 빠진 동쪽 길.
경성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거리 아래에는 수많은 길이 엉켜 있었다. 권력은 늘 대로로 다니지 않는다. 때로는 약재 수레 밑, 종이등 꾸러미 사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숯가마니 속에 몸을 숨긴다.
궁문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
위지헌은 없었다.
그 사실에 월령은 먼저 안도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안도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있으면 숨이 조여 오고, 없으면 길이 갑자기 넓어져 발을 헛디딜 것 같았다.
궁녀가 나와 예를 갖췄다.
"태후마마께서 심서윤 아가씨를 기다리십니다."
서윤의 손이 궁첩을 쥐었다.
월령은 약속대로 문밖에 섰다.
자녕궁의 바깥 전각에는 낮은 향이 깔려 있었다. 독고 태후가 좋아하는 향이었다. 너무 무겁지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았다. 오래 머물수록 옷자락에 남아 사람의 몸이 궁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주는 향.
서윤은 들어가기 전 월령을 보았다.
"언니."
"응."
"정말 문밖에만 계실 거죠."
그 말에는 부탁과 경계가 함께 있었다.
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부르기 전에는."
서윤은 입술을 다물었다.
부를 수 있다는 말이 아이의 눈 안에서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 아이는 아직 모른다.
부르는 것도 선택이라는 것을.
서윤이 안으로 들어간 뒤, 월령은 회랑 기둥 곁에 섰다. 청아는 조금 뒤에, 궁녀들이 오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자리에 섰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러나 발 한 걸음 안쪽부터는 다른 세계였다.
태후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부드럽고 늙지 않은 목소리.
"서윤이라 하였지."
월령은 눈을 내리깔았다.
서윤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작게 했거나, 문 안쪽 향에 묻혔을 것이다.
"네 이름을 쓰는 손이 곱다 들었다."
이름.
월령은 손끝을 소매 안에 접었다.
태후는 같은 곳을 다시 눌렀다.
"이름은 귀히 여겨야 한다. 남이 불러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어디에 놓을지 알아야지."
서윤의 숨이 작게 들리는 듯했다.
월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 있기로 했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문안의 말은 칼처럼 흘러나왔다.
"심월령은 네게 다정하더냐."
청아의 눈이 커졌다.
월령은 손끝을 더 세게 접었다.
서윤의 대답은 오래 나오지 않았다.
태후가 웃었다.
"다정한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사람은 자기가 악한 줄 먼저 알게 된다. 그래서 다정함은 때로 벌보다 잔인하지."
월령의 목 안쪽이 마른 듯했다.
서윤이 아주 작게 말했다.
"언니는... 저를 기다려 주십니다."
그 대답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윤이 고른 말이었다.
월령은 속눈썹을 내렸다.
태후는 잠시 침묵했다.
"기다림이 길면 마음은 지친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네가 먼저 문을 열면, 기다리는 사람도 편해지지 않겠느냐."
청아가 월령의 소매 끝을 살짝 잡았다.
월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바로 그때, 전각 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났다.
월령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감송향이 향로 냄새를 가르고 다가왔다.
위지헌이었다.
그는 자녕궁 회랑 끝에 섰다. 검은 장포는 낮에도 빛을 먹는 듯했고, 옥관 아래로 내려앉은 눈빛은 서늘했다. 궁녀들이 허리를 숙였고, 내관들은 말없이 물러났다.
그는 월령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같은 회랑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문 안쪽의 말이 조금 멀어졌다.
월령은 그를 보지 않았다.
보면 흔들릴 것 같았다.
"문밖에만 있겠다더니."
위지헌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닿았다.
"문밖입니다."
"문턱에 너무 가까운 문밖이지."
월령은 그제야 그를 보았다.
위지헌의 시선은 그녀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 소매 안에서 세게 접은 손가락. 그는 그것을 보았고,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
감송향이 더 선명해졌다.
"숨은 작게 쉬어라."
그가 말했다.
"안에서 네 숨이 들리면, 태후는 그것도 글로 읽는다."
월령은 당황해 숨을 멈췄다.
위지헌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멈추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낮게 덧붙였다.
"천천히."
그 말이 이상하게 우스워질 뻔했다.
이런 곳에서, 이런 때에,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월령은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살구꽃 향은 거의 나지 않을 만큼 희미했으나, 감송향 아래에서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문 안에서 태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서윤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부드러웠다.
"네가 언니를 편하게 해 주고 싶다면, 네 손으로 한 가지 글을 써 보거라."
월령의 눈빛이 변했다.
위지헌도 들었다.
문 안에서 궁녀가 작은 상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붓이 놓이고, 종이가 펼쳐지는 소리. 서윤의 숨이 흔들렸다.
월령은 움직이려 했다.
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소매 끝 가까이에서 멈췄다. 닿지는 않았다.
"아직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지금 들어가면, 그 아이는 네 뒤에 숨은 아이가 된다."
위지헌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 아이가 쓰지 않겠다고 말할 기회를 남겨라."
"못하면요?"
"그러면 네가 들어간다."
월령은 그를 보았다.
"정말 기다려도 됩니까."
"확실한가?"
그가 되물었다.
"네가 지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그 아이를 위한 것인지, 네가 견디기 어려워서인지."
월령의 숨이 막혔다.
잔인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물음이었다.
월령은 문 안쪽을 보았다.
서윤아.
부를 수 없었다.
문 안에서 붓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났다.
한 획.
두 획.
그리고 멈춤.
서윤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마마."
태후가 물었다.
"왜 멈추느냐."
"이 글은... 제가 써도 되는 글입니까."
월령의 손끝이 떨렸다.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태후는 웃었다.
"무엇이 두려우냐."
"제 이름으로 남는 글이 아닌 듯합니다."
서윤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제 손은 제 이름에 먼저 닿아야 합니다."
회랑 밖 등불 장인들이 세우던 낮은 등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월령은 눈을 감을 뻔했다.
서윤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남의 손에서 빼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후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문 안에서 찻잔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그 말을 누가 가르쳤느냐."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태후마마."
그의 목소리는 회랑을 가로질렀다.
문 안쪽이 조용해졌다.
"섭정왕이오."
태후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다.
"문밖까지 바람이 많군요."
"봄바람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위지헌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황실의 글은 예관이 보는 자리에서 쓰는 것이 법입니다. 어린 여식에게 사사로이 글을 청하시면, 호부가 또 종이를 세게 됩니다."
허도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태후는 알아들었다.
긴 침묵 뒤, 태후가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서윤아."
문이 열렸다.
서윤은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
손에는 붓물이 묻어 있었으나, 종이는 들고 있지 않았다.
월령은 약속을 지켰다.
서윤이 나오기 전까지 문밖에 있었다.
서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 아이는 월령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위지헌은 이미 두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의 향은 가까웠다가, 다시 멀어졌다.
궁문을 나서는 길, 경성의 종이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등불을 켰다. 빛은 이른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어둠을 미리 불러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서윤은 마차 안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
"언니."
"응."
"제가 오늘 잘한 걸까요."
월령은 서윤을 보았다.
"오늘은 네 손이 네 이름을 먼저 생각했어."
서윤의 눈이 젖었다.
"그럼 잘한 거야."
청아가 옆에서 매실정과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럼 잘한 사람은 정과를 먹어도 됩니다."
서윤은 울다가 웃을 뻔한 얼굴이 되었다.
월령도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마차 안에 작은 온기가 있었다.
그러나 경성의 등불 아래, 자녕궁의 종이는 아직 태워지지 않았다.
태후는 그 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늦게, 심가 대문에 궁의 내관이 다시 섰다.
이번에는 자녕궁의 궁첩이 아니었다.
황제의 어보가 찍힌 조서였다.
심가 여식은 다음 날 예부에 출석하여,
궁중 내지 유출과 호부 군량 장부 조작 혐의에 관해 진술하라.
위명서는 언제나 알맞은 때에 왔다. 너무 이른 듯하지만 무례라 말하기 어려운 시각. 너무 걱정스러운 듯하지만 속셈이라 몰기 어려운 얼굴. 황자의 신분으로 장군가의 문 앞에 서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음. 심가의 대문 앞에는 이미 하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 물을 뿌리던 아이는 물동이를 놓은 채 얼어 있었고, 늙은 문지기는 허리를 숙였으나 눈은 조심스럽게 위명서의 뒤쪽을 보았다. 황자의 뒤에는 호위 둘과 내관 하나뿐이었다. 많은 사람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배려처럼 보였다.월령은 그 배려가 더 무서웠다. 소문은 손이 적을수록 더 날래게 움직일 때가 있다."이른 걸음이었습니다." 위명서가 심도윤 대신 마중 나온 둘째 숙부에게 말했다. "그러나 밤새 심가 안에 흉한 말이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둘째 숙부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께서 걱정해 주실 일이 아닙니다." "심가는 나라의 북문을 지킨 집입니다. 그 집 여식의 이름이 흔들리면, 백성들도 나라의 마음을 의심하겠지요."위명서는 북문이라는 말을 참 부드럽게 했다. 그 말은 늘 심가의 자랑을 어루만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목에 걸리는 줄처럼 느껴졌다.월령은 조금 뒤에 서 있었다. 서윤은 나오지 않았다. 한씨도 방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원당에서 상황을 듣고, 월령에게 사람을 너무 많이 들이지 말라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의 말은 짧았지만 정확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집은 집이 아니게 된다.위명서의 시선이 월령에게 닿았다. "심 아가씨."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예를 갖췄다. 황자가 장군가의 딸에게 보이는 지나친 예. 모르는 사람은 감동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숨이 차가워진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 "놀라셨겠지요." "아직 놀랄 일이 많아, 어느 것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말은 부드러웠다. 가시도 없었다. 그러나 위명서의 눈빛이 아주 잠깐 멈췄다. "심 아가씨께서는 가끔 아주 어린 얼굴로 어려운 말을 하십니다." "어렵게 들렸
한씨는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서원당 옆 작은 방에는 따뜻한 물이 놓였고, 청아가 급히 데운 죽도 한 그릇 놓였다. 이번 죽은 타지 않았다. 청아는 그것을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상 위에 올렸다."이번에는 바닥까지 살아 있습니다."그녀가 낮게 말했다.은호가 이불 속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제가 봐도 됩니까.""너는 이제 감별관이니?""어제 제가 맞았습니다."청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은매가 아주 작게 웃었다.그 웃음은 눈물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웃음이었다.월령은 그 작은 소리를 마음에 담았다. 밤새 편문 앞에서 본 것들, 한씨의 무너진 얼굴, 서윤의 떨리던 손, 잘린 붓끝에 묻은 예부의 붉은 실이 아직 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청아는 죽의 바닥을 확인했고, 은호는 그 확인을 다시 확인하려 했다.그 사소함 덕분에 아침은 겨우 아침다웠다.서윤은 한씨 곁에 앉아 있었다.어머니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 대신 이불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붙잡고 있었다. 한씨는 그 손을 보았고, 보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서윤아."한씨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서윤의 어깨가 움찔했다."예, 어머니."그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어제와 달랐다. 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꾸민 어른의 말이 아니라, 다칠까 봐 조심하는 딸의 말이었다.한씨는 오래 침묵했다."어미가 너를 아낀다."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예.""그 말로 네가 다친 것이 없어지지는 않겠지."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한씨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밤새 울지 않은 눈은 오히려 더 붉었다."나는 네가 뒤에 서는 것이 싫었다. 내가 평생 그렇게 서 있었으니, 너는 앞으로 가길 바랐다."그녀의 시선이 월령을 향했다가 곧 떨어졌다."그러다 네 등을 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서윤의 손이 이불을 더 세게 쥐었다.한씨는 그 손을 보았다."어젯밤 네가 월령이를 사람이라 했지."서윤은 고개를 숙였다."예.""어미는 너도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었다."방 안이 조용
남쪽 편문은 낮에도 어두운 곳이었다.담장이 높고, 늙은 측백나무가 길게 그늘을 드리웠으며, 문 아래 돌계단에는 햇빛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그곳의 흙은 늘 조금 눅었다. 집 안에서 버린 물이 몰래 흘러드는 자리라 했다.밤에는 그 어둠이 더 깊어졌다.등불 하나가 멀리 회랑 끝에서 흔들렸고, 편문 앞에는 사람 그림자 셋이 서 있었다.월령은 걸음을 늦췄다.위지헌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뛰지 마라.혼자 앞서지 마라.그 말을 정치적 수로 이해하려 애썼지만, 몸은 그보다 먼저 기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불안을 꾸짖는 소리가 아니라, 넘치는 물을 손바닥으로 눌러 주는 듯한 소리였다.월령은 숨을 고르게 했다.서윤은 편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잠옷 위에 급히 걸친 외투가 어깨에서 조금 흘러내려 있었다. 머리도 제대로 묶지 못했다. 어른스럽게 꾸민 얼굴이 아닌, 잠을 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 옆에 한씨가 서 있었고, 문밖에는 검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있었다.금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떨고 있었다.문밖의 여인은 고개를 숙였지만, 손은 숙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길고 마디가 굳어 있었다. 붓을 잡은 손이 아니라, 비단 끈과 열쇠를 오래 다룬 손이었다.궁녀의 손.문상궁의 사람."숙모."월령의 목소리는 낮았다.한씨의 어깨가 움찔했다.서윤은 돌아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언니."그 한마디에 죄책감이 먼저 묻어났다.월령은 서윤을 보았다."춥겠다."서윤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입술을 달싹였다."예?""밤공기가 차. 외투를 여미렴."서윤은 손을 들어 외투를 여몄다. 손이 떨렸다.한씨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오늘도 단정했다. 급히 나온 사람치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런 단정함이 오히려 더 절박해 보였다. 무너질 사람은 때로 가장 반듯하게 앉아 무너진다."큰아가씨."한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밤중에 여기까지 오다니, 몸이 상합니다.""숙모께서도 밤중
새벽이 오기 전의 집은 가장 솔직했다.낮에는 예법이 사람을 세우고, 밤에는 두려움이 사람을 눕힌다. 그러나 새벽 직전의 어둠에는 누구도 완전히 서 있지도 눕지도 못한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잠든 척하는 숨이 얇아지고, 깨어 있는 등불은 심지를 낮춘 채 오래 버틴다.월령은 서원당 곁 작은 서실에 앉아 있었다.등불은 낮췄고, 탁자 위에는 서윤의 오래된 글과 허도겸이 보낸 등초, 문상궁의 먹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종이와 먹과 사람의 손. 전부 말이 없는데도, 방 안은 너무 많은 말로 가득 찬 듯했다.그녀는 위조된 글의 마지막 획을 다시 보았다.받겠다.그 끝이 유난히 무거웠다.서윤은 끝을 그렇게 누르지 않는다. 서윤의 글은 끝에 이르면 오히려 가벼워졌다.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손은 마지막에서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이 글은 마지막에서 힘이 들어갔다.누군가 결말을 꼭 눌러 닫은 것이다.마치 도망갈 문을 막듯이."잠을 자지 않았군."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추었다가, 곧 자신을 꾸짖듯 천천히 내쉬었다.위지헌이었다.그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먹색 대창포 자락에는 새벽 안개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고, 젖은 돌을 밟고 온 듯 신 끝이 어두웠다. 감송향이 서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월령은 일어나 예를 갖췄다."왕야.""앉아 있어라."말은 낮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그는 곧 자신이 너무 짧게 말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덧붙였다."네가 일어서면 종이가 날린다."월령은 잠시 멈췄다.그 말이 명령인지 배려인지 구별하지 못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그는 탁자 가까이 오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그녀가 숨을 더 조심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가까웠다. 월령은 그 향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먹을 보았느냐.""예.""무슨 생각을 했지."월령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자녕궁의 종이, 서윤의 글씨, 문상궁의 먹. 세 가지가
밤은 쉽게 깊어지지 않았다.심가의 안채에는 등불이 오래 남았다. 서원당 처마 아래 작은 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약방 쪽에도 낮은 불빛이 흔들렸다. 하인들은 평소보다 발소리를 낮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 전체가 숨을 작게 쉬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월령은 목갑 속 먹을 다시 닫았다.문상궁이 두고 간 먹과 같은 냄새.그 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궁의 물건은 여러 손을 지난다. 문상궁이 들고 왔다고 해서 문상궁이 썼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태후의 뜻이라 해도 태후가 직접 먹을 갈았을 리 없고, 위명서가 필요로 했다고 해서 그가 손끝에 먹을 묻혔을 리 없다.궁의 명은 대개 남의 손끝에 묻어 왔다.손끝은 씻기 쉽고, 명은 더 쉽게 사라졌다."언니."서윤이 아주 낮게 불렀다.월령은 고개를 돌렸다.서윤은 아직 붓함 곁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종이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아이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얇게 놓여 있었다. 서윤은 그것들을 다시 접지 못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걸,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요.""있었겠지."월령은 거짓말하지 않았다.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래서 월령은 말을 낮췄다."하녀가 보았을 수도 있고, 숙모께서 보셨을 수도 있고, 글씨를 가르치던 사람이 기억했을 수도 있어.""그럼 제가...""아니야."월령은 서윤의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네가 누군가에게 칼을 준 것이 아니야. 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칼로 갈았을 뿐이야."서윤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이해한 얼굴은 아니었다.하지만 조금 덜 무너진 얼굴이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그때 청아가 조심스럽게 낮은 상 위에 찻잔을 올렸다."차는 아니고 보리물입니다.""왜 그렇게 작게 말하니.""궁에서 차가 나오면 늘 일이 생겨서요."청아는 아주 진지했다."소인은 당분간 차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은호가 작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보리도 볶으면 검습니다."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런 말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을 잃은 아이의 얼굴은 이상하게 어려 보였다. 조금 전까지 찹쌀떡 접시를 들고 어른스러운 말을 고르던 입술은 이제 색을 잃었고,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흔들렸다.방 안에는 눌어붙은 죽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창을 열었는데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불에 닿은 곡식의 냄새는 사람의 옷자락보다 오래 방 안에 머문다. 궁에서 온 글 한 줄도 그랬다. 읽히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곳마다 얇게 달라붙었다.심월령은 기윤이 전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심월령은 황실의 은혜를 달게 받겠다.그 글씨가 서윤의 손과 닮았다고 했다.닮았다.같다고 못 박지 않으면서도, 다르다고도 놓아주지 않았다. 칼보다 얇은 말이었다.서윤의 손끝이 떨렸다."저는 쓰지 않았어요."목소리가 작았다."언니, 저는 정말...""알아."월령은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급한 믿음은 때로 믿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서윤의 손을 보았다. 찹쌀가루가 아직 손톱 가장자리에 희게 끼어 있었다. 궁의 종이를 만진 손이라기보다, 부엌에서 반죽을 조금 망친 아이의 손이었다."네가 쓰지 않은 것 알아."서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런데 왜 제 글씨와 닮았을까요."그 물음에는 두려움보다 더 깊은 부끄러움이 있었다.월령은 그 부끄러움을 알아보았다.서윤은 늘 남의 마음에 드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투, 어른들이 기특하다 여기는 자세, 태후가 눈길을 줄 만한 글씨. 자기 이름을 쓰기 전에 남의 눈이 좋아하는 선을 익힌 아이였다."혹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적이 있어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놀라 숨을 삼켰고, 은매는 은호의 어깨를 조금 더 감쌌다. 기윤은 문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으나, 그 침묵도 들은 사람의 침묵이었다.월령은 서윤을 재촉하지 않았다."어릴 때요. 큰어머니께서 언니 글씨가 곱다 하셨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