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그 믿음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용했다.
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피 묻은 옷 위로 떨어졌다.
처음 지하에 끌려왔던 열일곱 살의 자신이 떠올랐다.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누군가 손을 내밀면 붙잡고 싶어 하던 어린아이였다.
강시혁은 그 손을 잡아 준 사람이었다.
그가 건넨 따뜻한 물 한 컵, 발목을 다쳤을 때 의무실로 보내 주었던 일, 번호 대신 이름을 불러 주었던 순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 기억들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자 숨을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모두 거짓이었을까.
한때는 진심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한 순간이 단 한 번쯤은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가능성이 리아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죽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훨씬 잔인했다.
“시혁아…….”
그녀는 텅 빈 처형장에 대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한테 왜 그랬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행반장은 지루하다는 듯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끝났으면 시작하지.”
그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기하고 있던 경비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손에는 검은 가죽 가방이 들려 있었다.
리아는 그 가방을 알고 있었다.
훈련소에서 누군가 심문을 받으러 끌려갈 때마다 집행반이 들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가방이 철제 탁자 위에 놓이는 소리를 듣자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었다.
경비원은 안에서 두꺼운 가죽끈을 꺼냈다.
“아직 집행 명령은 유효합니까?”
집행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확인만 끝내면 돼.”
리아는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그녀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처리해야 할 물건 하나를 앞에 두고 절차를 확인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그 순간 리아는 자신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강시혁은 오지 않을 것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끝내야 했다.
그러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죽고 싶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리아는 살고 싶었다.
아직 이름도 찾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내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곳에 팔아넘긴 남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리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리는 여전히 떨렸고, 손목은 찢어질 듯 아팠다.
다만 그녀는 더 이상 강시혁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
집행반장은 리아의 턱을 잡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누구와 함께 움직였어?”
리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혼자 했어요.”
“그 말은 이미 들었어.”
남자가 손에 힘을 주자 턱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기록실을 열고 자료를 옮긴 사람이 너 하나뿐이라는 걸 믿으라고?”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행반장은 그녀를 놓아주고 경비원에게 손짓했다. 잠시 뒤 경비원이 금속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낡은 상자였다.
모서리가 찌그러져 있었고, 뚜껑에는 마른 피처럼 보이는 검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럼 이건 알아보겠군.”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훈련생의 번호표 몇 개와 찢어진 옷자락, 오래된 머리끈이 들어 있었다.
리아는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놓인 물건에서 시선을 멈췄다.
붉은 실.
손목에 묶을 수 있을 만큼 짧은 실이었다.
여러 번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 붙인 듯 매듭이 세 군데나 남아 있었다.
리아의 심장이 거칠게 내려앉았다.
그 실을 차고 다니던 사람을 알고 있었다.
다른 훈련생들이 작은 장신구 하나조차 빼앗기는 곳에서, 그 사람만은 끝까지 붉은 실을 버리지 않았다.
교관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손목을 감쌌고, 실이 끊어지면 밤새 다시 묶었다.
리아는 왜 그렇게까지 지키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이것까지 잃으면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릴 것 같아서.’
리아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교관들은 다른 시설로 옮겼다고 했다.
리아는 믿지 않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 실이 지금 처형장에 있었다.
“어디 있어요?”
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집행반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관심이 생기나?”
“이걸 어디서 났어요?”
남자는 붉은 실을 집어 들었다.
실 끝에 말라붙은 피가 묻어 있었다.
손목의 상처에서도 다시 피가 배어 나왔고, 처형장에서 당한 폭행 때문에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담장 너머에는 평범한 도로가 있었다.가로등 아래로 차량이 지나갔고, 멀리서는 개가 짖는 소리도 들렸다. 훈련소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명령이나 처벌로 이어졌지만, 저곳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밤길을 지나고 있었다.리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열일곱 살에 훈련소로 끌려온 뒤 다섯 해가 지났다. 그동안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고, 살아남기 위해 훈련을 견디는 삶뿐이었다.강시혁은 언젠가 자신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와 함께라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가 준비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처형 명령서였다.리아는 옷 안쪽을 더듬었다.접힌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관리실에서 가져온 처형 명령서 사본이었다. 강시혁의 서명이 남아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했다.그녀는 종이를 꺼내지 않고 옷 안쪽으로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지금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그때 도로 쪽에서 승합차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리아는 반사적으로 담장 뒤에 몸을 숨겼다.차량에는 조직의 표식이 없었지만, 창문을 조금 내린 채 도로 양쪽을 살피는 남자들의 모습은 익숙했다. 훈련소 경비원들이 외부 수색에 나설 때와 다르지 않았다.첫 번째 차량이 지나간 뒤 두 번째 차량이 멈췄다.리아는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낮췄다. 창문 너머에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외곽 도로까지 확인 중입니다. 아직 대상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남자는 잠시 상대의 말을 듣더니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예. 살아 있는 상태로 발견되면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시신 회수 보고는 그대로 유지하라는 지시도 전달받았습니다.”리아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살아 있는 자신을 찾으면서 시신 회수 보고를 유지한다는 말이었다. 그
“죽은 사람이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게 해 주죠.”리아의 말이 끝났지만 검은 차량에서 내린 남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고, 그사이 적치장 위로 불어온 찬바람이 바닥에 흩어진 비닐 조각들을 녹슨 철제 통 사이로 밀어 넣었다.리아는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철제 통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무릎에 체중이 실리자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낯선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남자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살폈다.낡은 점퍼를 걸친 그는 조직의 경비원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도 아니었다. 강시혁의 처형 명령을 알고 있었고, 조직 내부의 사망 처리 기록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무엇보다 리아가 숨어 있는 장소를 정확히 찾아왔다.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계할 이유가 있었다.“강시혁에게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당신이 그 사람의 부하라면 헛걸음한 거예요.”리아가 낮게 말하자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로 내려갔다. 찢어진 바짓단 아래로 피가 흘러 신발 안쪽까지 번지고 있었고, 손목에도 쇠고리에 쓸린 상처가 선명했다.그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도,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차량 쪽으로 고개를 돌려 멀리서 다가오는 불빛을 확인했다.“저 상태로는 오래 못 가겠군.”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그녀의 앞을 막는 대신 적치장 끝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저쪽으로 가면 외곽 도로가 나와. 다만 검문이 시작됐을 거야.”그녀는 그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하면서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내미는 친절을 믿었다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강시혁도 처음에는 그랬다.다른 훈련생들이 그녀를 외면할 때 물을 가져다주었고, 벌을 받은 날이면 상처를 살펴 주었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쌓여 리아는 그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믿었
“전 구역 수색. 집행 대상자 이탈 확인.”리아의 얼굴이 굳었다.그들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무릎이 꺾이면서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멀리서 차량의 전조등이 움직였다.리아는 철제 통 뒤로 몸을 숨겼다.빛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숨을 최대한 낮췄다.차량은 적치장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그제야 리아는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그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담장 너머에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돈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지금 자신에게 남은 것은 찢어진 옷과 다친 몸, 그리고 강시혁의 서명이 찍힌 종이 한 장뿐이었다.리아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눌렀다.이것만은 지켜야 했다.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과 강시혁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그녀는 철제 통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다리에 통증이 몰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내디뎠다.그때 적치장 입구에서 다시 차량의 불빛이 비쳤다.리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검은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차량은 그녀가 숨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멈췄다.잠시 뒤 운전석 문이 열렸다.누군가 차에서 내렸다.리아는 숨을 멈췄다.남자는 서두르지 않았다.마치 이곳에 누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걸어왔다.그녀는 철제 통 뒤로 몸을 더욱 낮췄다.남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그리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와.”리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네가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어.”그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대신 어둠 속에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강시혁이 널 찾고 있다.”리아의 손이 옷 안쪽으로 움직였다.서명이 남은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그녀는 그것을 움켜쥐었다.남자는
리아는 숨을 멈췄다.그들의 발소리가 관리실 안쪽으로 들어왔다.남자 하나가 책상 위를 살폈다.“도면은 그대로네.”다른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이 구역은 오래돼서 출입 기록도 제대로 안 남아. 빨리 찾아.”리아는 책상 아래에서 손가락을 움켜쥐었다.남자의 구두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그가 몸을 숙이려는 순간, 복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서쪽 출입문 열렸다! 전원 이동해!”두 남자가 동시에 돌아보았다.“대상자 발견했어?”“아직! 하지만 바깥으로 나간 흔적이 있어!”경비원들은 곧바로 관리실을 빠져나갔다.리아는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들이 서쪽 출입문으로 몰려갔다면, 자신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리아는 벽면의 도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관리실을 나섰다.***폐기물 반출 구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리아는 벽을 짚고 걸었다.오른쪽 무릎에서 피가 흘렀고, 발을 디딜 때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손목의 상처도 심해져 손바닥까지 피가 묻어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도면에서 확인한 마지막 철문이 보였을 때, 리아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문에는 오래된 잠금 장치가 달려 있었다.그녀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움직이지 않았다.다시 힘을 주었지만 결과는 같았다.리아는 문에 이마를 기댔다.여기까지 왔는데.겨우 처형장에서 벗어났는데.다시 붙잡힐 수는 없었다.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리아는 몸을 굳혔다.누군가 문 앞에 멈춰 섰다.잠시 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천천히 열렸다.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문밖에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피 묻은 리아의 얼굴과 손목을 보더니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너…… 누구야?”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남자는 통로 안쪽을 살폈다.멀리서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그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안에서 도망친 거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곧바로 문을 닫으
리아는 몸을 낮춘 채 통로 안쪽으로 기어갔다.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벽면에서는 오래된 배관이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기계음이 그녀를 이끌었다.그녀는 훈련소에서 배웠던 생존 훈련을 떠올렸다.교관들은 어둠 속에 훈련생들을 가둔 뒤 출구를 찾으라고 명령하곤 했다.그때마다 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움직였다.성급하게 달려가던 훈련생들이 벽에 부딪히거나 함정에 빠지는 동안, 그녀는 손끝으로 바닥의 높낮이를 확인하고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살폈다.교관은 그런 그녀를 겁쟁이라고 불렀다.하지만 리아는 끝까지 살아남았다.그때 배운 것이 지금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다만 당시와 다른 점이 있었다.그때는 실패하면 처벌을 받았지만, 지금은 붙잡히는 순간 죽는다.리아는 손목의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그러다 통로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 사이에서 발이 걸렸다.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오른쪽 무릎이 금속 모서리에 세게 부딪혔다.그녀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신음을 완전히 참지 못했다.무릎에서 뜨거운 통증이 번졌고, 바짓단이 금세 축축해졌다.피였다.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더듬었다.찢어진 살갗이 손끝에 닿았다.그녀는 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이 상태로는 오래 달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뒤쪽에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경비원들이 관리 통로를 발견한 것이었다.리아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통로 끝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작은 관리실 하나를 발견했다.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안쪽에서는 비상등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리아는 잠시 망설였다.경비원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관리실에 들어갔다가 출구가 없다면 그대로 갇히게 될 수도 있었다.그러나 계속 복도를 따라가면 곧 붙잡힐 가능성이 컸다.그녀는 문 안쪽을 살폈다.벽면에는 오래된 설비 도면이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서류와 작업 장갑이 흩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사라져 있었다.“여기서 끝낸다.”***리아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예비 집행실까지 이동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경비원 하나가 그녀의 양팔을 뒤로 꺾었다. 다른 남자는 복도 양쪽을 살피며 통행하는 사람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냈다.리아는 숨을 골랐다.강시혁이 직접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다.그것도 지금, 이 복도에서.그녀는 그 사실을 기억하려 했다.누군가 나중에 그가 자신을 살리려고 했다고 말하더라도, 방금 들은 목소리를 잊지 않을 생각이었다.집행반장이 권총을 꺼냈다.리아는 총구를 바라보았다.두려움이 밀려왔다.살고 싶었다.이준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자신이 기록했던 훈련생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아내고 싶었다.무엇보다 자신을 팔아넘긴 남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눈 감아.”집행반장이 말했다.리아는 고개를 저었다.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마지막까지 고집이군.”리아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강시혁한테 전해요.”남자가 총구를 조금 더 들어 올렸다.리아는 입 안에 고인 피를 삼켰다.“내가 죽는 걸 직접 보라고.”집행반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바로 그 순간, 복도 끝에서 굉음이 울렸다.두꺼운 방화문이 안쪽으로 흔들리더니 천장에 설치된 경보 장치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경비원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집행반장도 마찬가지였다.리아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경비원의 손을 뿌리치려고 무작정 몸부림치지 않았다. 대신 힘이 풀린 다리를 접으며 아래로 주저앉았다.예상하지 못한 무게에 경비원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그가 균형을 되찾으려는 순간, 리아는 남자의 팔 아래로 몸을 틀었다.어깨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러나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몸을 멈출 수 없었다.총성이 울렸다.탄환이 벽면에 부딪히면서 콘크리트 파편이 튀었다.리아는 바닥에 엎드렸다.경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