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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화. 그날의 목소리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8 15:57:22

—손을 못 쓰게 해. 병원에는 내가 갈 테니까.

재생이 멈췄다.

서경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 더 말할 것 같았다. 농담이라고 하든, 잘못 들었다고 하든, 그 목소리를 아는 사람이 끼어들어 정정해주어야 했다.

식사 자리에서 생선을 발라주겠다고 하던 목소리였다.

서경이 다치기 전에, 시우는 이미 병원에 오기로 했다.

손을 못 쓰게 해.

그 손을 10년 동안 이 사람이 주물렀다. 약지가 펴지지 않을 때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서경은 아프다는 말조차 줄였다. 손을 놓지 말고 조금만 더 만져주기를 바랐다.

“한 번 더.”

그가 병원에는 내가 간다고 말하는 부분까지 들어야 했다. 자신이 울면서 기다린 사람이 언제부터 오기로 되어 있었는지.

“서경아.”

“다시 틀어.”

채린이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서경이 소리가 끝나기 전에 화면을 덮었다.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었다. 화면을 누르는 데 필요한 힘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시우가 병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늦어서 미안해.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정말 늦게 알아서 오지 못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다친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시우의 셔츠를 붙잡았다.

그때 그의 셔츠에 피가 묻는 걸 걱정했었다.

서경은 고개를 숙였다. 속이 뒤집혔다. 채린이 물컵을 밀어주었지만 받을 수 없었다.

“나도 그때 집이 망하게 생겼었어. 우리 아버지 회사 돈 막아주겠다고 하니까…….”

“너는.”

서경이 겨우 말을 이었다.

“전화 끊고, 무슨 생각 했어?”

채린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계속 빌었잖아. 손만 놓아달라고.”

“그 얘기는 하지 마.”

“넌 들었잖아.”

채린이 종이컵을 찌그러뜨렸다.

“부러지는 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들었잖아.”

눈물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서경은 닦지 않았다. 그때 못 본 척하던 여자 앞에서 오늘까지 얼굴을 정리해주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소리가 너무 작아서 커피 기계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에 묻혔다.

서경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넘어갔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물이 넘어간다는 게 이상했다.

“파일 보내.”

“전체는 못 줘.”

“방금 들은 거.”

채린이 한참 망설이다가 파일을 보냈다. 서경은 도착한 음성 파일을 확인했다. 재생 시간은 짧았다. 그날 전화를 통째로 담은 녹음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 수 있었다.

“원래 녹음은 어디 있어?”

“따로 있어. 그건 안 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야.”

“네가 받은 돈이 그 대가야?”

“꼭 녹음 때문만은 아니고. 서로 옛날 일 안 꺼내고 살자는 거지.”

서경은 파일을 닫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야.”

채린의 얼굴이 굳었다.

“신고할 거야?”

“아직 너한테 알려줄 이유 없어.”

서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흔들려 잠깐 의자를 잡았다. 채린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카페를 나와 몇 걸음 걷고서야 벽에 기댔다. 병원 건물이 길 건너에 보였다. 어머니가 저 안에 있었다. 시우의 돈으로 지내는 병실이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시우 씨.

서경은 화면에 뜬 사진을 보았다. 그가 직접 골라 저장해준 사진이었다. 자신을 어깨 안쪽으로 끌어안은 채 웃는 얼굴.

신호가 끊기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서경아, 면회는 끝났어?”

그 목소리였다.

서경은 손등으로 입을 눌렀다. 대답하려고 입을 여니 울음이 먼저 나올 것 같았다.

“엄마 머리…….”

“어머니가 왜?”

“머리 잘랐어요. 짧게.”

시우가 웃었다.

“보기 좋겠네.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지?”

서경은 길 건너 병원 정문을 보았다. 기사가 차에서 내려 자신을 찾고 있었다.

“네.”

한마디를 겨우 내놓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시우가 저녁 반찬을 물었다. 서경은 아무거나 좋다고 했다. 그 말까지 예전의 자신과 같았다.

통화를 끊자 무릎이 꺾였다. 벽을 짚은 손이 하필 오른손이어서, 오래된 통증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길 건너 병실에 어머니가 있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누구에게 먼저 전화가 갈지 알 수 없었다.

서경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돌아간다. 그러나 저 집에서 나올 방법을 찾을 것이다.

제 손을 부러뜨리라는 말을 들은 채로, 다시 그의 손을 잡고 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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