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날 저녁 태주는 표를 샀다고 했다.
서경은 이미 예매했는지 물었다. 그는 자기 자리 하나를 골랐다고 답했다. 그녀가 화면을 보여달라고 하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정말 한 자리였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말씀하셨어요?”
서경이 물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는요. 오겠다고 하면 예매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회사 사람들 다 오라고는 안 하셨네요.”
태주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웃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조금은 기대했나 봐요. 객석이 너무 비어 있으면 싫을 것 같아서.”
태주는 바로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서경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 욕심이 늘 고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회사 이름으로 표를 사면, 내
객석에 앉은 태주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민지와 준우는 보호자들과 함께 태주의 앞줄에 앉아 있었다. 준우가 태주를 보고 손을 조금 들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옆 사람에게 프로그램을 펴 보였다. 서경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태주는 무대에 세워진 보면대를 보았다.함께 가지 못한 연습 날이 더 많았다. 아파서 그만했다는 전화도 받았고, 잘됐다며 보내온 녹음도 들었다. 태주는 오늘의 소리를 기다렸다.사회자가 연주자의 이름을 불렀다.“바이올리니스트 한서경, 피아니스트 오유진입니다.”서경이 걸어 나왔다. 객석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태주는 박수치다 손이 아픈 줄도 몰랐다. 그녀는 그를 찾는 대신 피아노 쪽을 보았다. 유진이 의자에 앉아 손을 올렸다.짧게 호흡을 맞춘 뒤 첫 곡이 시작됐다.***첫 음은 생각보다 작았다.서경은 더 크게 내야 한다는 마음을 눌렀다. 객석 뒤까지 닿는지 확인하려고 활을 세게 누르면 바로 다음 음이 거칠어졌다. 유진의 피아노가 곁에서 흘렀다. 연습실에서 수없이 들었던 소리였다.그녀는 그 소리의 끝을 기다렸다가 자기 음을 이었다.포레의 자장가는 중간에 한 번 떨렸다. 서경이 힘을 잘못 나눈 곳이었다. 오른손이 굳으려 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그 순간 관객이 알아차렸다고 생각하며 다음 마디까지 놓쳤을 것이다.오늘도 그 생각은 났다.손을 다치기 전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먼저 울렸다. 지금 소리와 나란히 놓자 너무 가늘었다. 서경의 엄지가 활을 더 세게 눌렀다. 오른손 마디가 당겼다.그때 피아노의 낮은 음이 들어왔다. 유진은 연습 때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길이로 기다렸다. 잘하라는 재촉도 안쓰러워 늘인 박자도 없었다.서경은 턱에 힘을 풀었다. 끝난 음을 고치러 돌아갈 수는 없었다. 대신 아직
금요일 리허설을 마친 뒤에도 객석은 비어 있었다.서경은 당연한 사실을 자꾸 확인했다. 아직 공연 전날이었다. 그런데도 빈 의자들이 내일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 내려와 뒷문까지 걸어보았다. 여기까지 자기 소리가 왔을까.유진은 피아노 옆에서 악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기획자가 다가와 다음 날의 입장 순서와 대기 장소를 설명했다. 예매는 처음보다 늘었지만 만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서경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빈 의자가 보이면 그쪽을 안 봐도 됩니다.”기획자가 말했다.서경은 가운데 빈 의자를 보았다.“그쪽에서도 들어보고 싶어요.”그녀가 객석을 가리켰다.“공연 시작하면 조명은 어느 정도 남나요?”기획자가 무대 감독에게 부탁했다. 조명이 바뀌자 객석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도 사람의 윤곽을 알아볼 정도였다. 서경은 그 밝기에서 무대 쪽을 다시 보았다.“여기서 한 번만 들어볼게요.”서경은 객석 뒷줄에 앉았다. 유진에게 마지막 구절을 부탁했다. 피아노 소리가 빈 등받이들을 건너왔다. 아무도 앉지 않은 곳에서도 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가장 두렵던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로 돌아갔다. 내일 저 자리가 비어 있어도 오늘 들은 소리를 잊지 않기로 했다.***준비한 드레스는 앉으면 허리 부분이 접혔다.서경은 숙소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앉았다 일어났다. 악기를 들지 않은 상태에서 팔만 움직여보았다. 아름답게 보이는 옷과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옷의 기준이 달랐다.태주에게 사진을 보낼까 생각했다. 보내면 예쁘다고 해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싶은 것은 맞았다. 그러나 내일 직접 보았을 때의 얼굴도 궁금했다.그녀는 사진을 찍지 않고
그날 저녁 태주는 표를 샀다고 했다.서경은 이미 예매했는지 물었다. 그는 자기 자리 하나를 골랐다고 답했다. 그녀가 화면을 보여달라고 하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정말 한 자리였다.“주변 사람들한테도 말씀하셨어요?”서경이 물었다.“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는요. 오겠다고 하면 예매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회사 사람들 다 오라고는 안 하셨네요.”태주가 그녀를 보았다.그녀는 웃으려다가 그만두었다.“조금은 기대했나 봐요. 객석이 너무 비어 있으면 싫을 것 같아서.”태주는 바로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서경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 욕심이 늘 고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회사 이름으로 표를 사면, 내 직원들이 오겠죠.”태주가 말했다.서경은 고개를 저었다.“제가 부른 관객은 아니겠네요.”그녀는 표의 날짜를 손끝으로 짚었다.“홍보 영상을 찍자고 하셨어요. 손 사진부터 보여주자고요. 싫은데, 그러면 더 많이 와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태주의 손이 그녀 쪽으로 조금 움직였다가 멈췄다.“그 사진을 안 보여줘도 내가 가는 이유는 같습니다.”그가 말했다.“태주 씨는 저 좋아하니까요.”“네.”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대답에 서경이 얼굴을 들었다.“그 이유를 빼고 판단하라고 하시면 못 하겠습니다.”그녀는 웃었다. 객석을 채울 방법은 하나도 얻지 못했는데, 자기를 보러 오는 한
공연 프로그램 인쇄본이 도착했다.서경은 이름이 잘못 적혀 있지 않은지 먼저 봤다. 손이 불편해 돌아온 기적이라는 문장 대신, 오랜 공백 뒤 실내악 무대로 복귀한다는 짧은 소개가 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새로 찍은 것으로 썼다.연주할 곡은 세 곡이었다.포레의 자장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 현재 손과 호흡으로 연주할 수 있는 편곡과 길이를 유진과 함께 정했다. 익숙한 제목이라고 몸이 저절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짧은 음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오른손에 힘이 몰리면 소리가 거칠어졌다.리허설에서 서경은 마지막 곡을 한 번 중단했다.유진이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서경은 활을 내리고 어깨를 돌렸다. 잠깐 쉬고 다시 해보겠다고 했다. 그가 벽시계를 보았다.“오늘 남은 건 한 번입니다. 전체 말고 어려운 부분만 할까요?”서경은 첫 마디를 보다가 손가락을 폈다. 처음부터 다시 켜면 마지막 곡 전에 힘이 다 빠질 것 같았다.“그 부분만 해요.”다시 시작하자 피아노가 먼저 모퉁이를 돌았다. 서경의 활이 뒤를 쫓았다. 짧은 음 하나가 모서리에 부딪힌 듯 튀었다.그녀는 이를 악물지 않고 다음 긴 음에서 활을 눕혔다. 피아노가 돌아오는 자리에 자기 소리를 놓았다. 마지막 마디에서야 둘의 끝이 맞았다.서경이 악보의 자기 파트에 표시하려 하자 유진이 손을 들었다.“방금은 제가 너무 빨랐습니다.”서경이 악보에서 고개를 들었다.“어디요?”“여기 넘어가는 데서요. 녹음 들어보죠.”두 사람은 함께 녹음을 들었다. 모든 흔들림이 서경의 손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도 속도를 잘못 잡았고 그녀도 한 음을 서둘렀다. 둘은 서로의 표시를 고쳐
어머니에게는 저녁에 병원에서 이야기했다.전화로 먼저 선고 소식을 전했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부분은 얼굴을 보며 다시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서경이 들어가자 가까운 의자를 가리켰다.“밥 먹었니?”서경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웃다가 울었다.“먹었어. 엄마는?”“나도 먹었지.”둘은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서경은 판결 이유 중 자신이 이해한 부분을 천천히 전했다. 어머니는 남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 혼자 가버린 게 아니었네.”어머니는 무릎 위의 담요를 만졌다. 같은 주름을 펴고 또 폈다.“네 구두까지 닦아놓고 갔어. 나는 그걸 보고도…….”뒤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경은 어머니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앞에서 아버지를 너무 오래 말하지 않았다.“엄마. 우리 이제 아빠 얘기해도 돼.”어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담요에 작은 물자국이 번졌다. 서경도 더는 웃는 얼굴을 만들지 않았다.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둡지 않았다. 봄 저녁이 생각보다 길었다. 태주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경은 차 문을 열기 전에 그의 옷깃을 잡고 얼굴을 묻었다.그가 그녀의 등을 감쌌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싶어요.”“그러죠.”“내일은 연습해야 돼요.”“끝나고 연락 주십시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타자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시우 측 대리인이 정 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연락이었다.강시우가 편지를
서경은 선고가 시작되기 전에 손목시계를 풀었다.밴드가 조이는 것 같았다. 풀어도 맥박은 줄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를 가방에 넣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태주는 옆자리에서 법정 앞을 보고 있었다.시우가 들어왔다.그는 방청석을 한 번 훑고 서경에게 시선을 멈췄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그가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자기 쪽의 일이었다.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피고인들의 주장이 먼저 정리됐다. 수령과 지급을 관리했을 뿐이라는 설명, 현장의 일은 몰랐다는 주장, 피해자 가족에게 제공했던 지원. 서경은 그 말들이 다시 나오는 동안 가방의 모서리를 잡았다.이어 그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나왔다.독립된 진술과 연락 내역, 실제 돈이 움직인 경로와 사건 전후의 행동이 이어졌다. 증명되지 않은 일부 사실과 자료의 한계도 구분됐다.서경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한도진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읽혔다.서경은 숨을 들이켰다. 집에 남겨두고 온 사진 뒷면의 아버지 글씨가 떠올랐다. 냉면을 먹었다는 짧은 문장. 자기 딸과 다음 식사를 할 사람이 남긴 글씨였다. 그 글씨를 두고도 혼자 떠난 사람이라고 미워했었다.서경은 가방을 쥔 손을 풀었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 끝인사를 붙이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다음 말도 직접 듣고 싶어 앞을 봤다.권혜진의 사망 역시 우연한 교통사고라는 설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전의 연락과 비용, 실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진술, 은폐 경위가 이어졌다. 태주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가 들었다.서경이 그의 팔에 왼손을 대었다.서로를 위로하느라 중요한 말을 놓치지는 않았다.시우가 가족을 보살핀 사실도 판결문에서 언급됐다.그러나 도움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범